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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440화 (440/1,567)

440화.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5)

“읏차!”

“흐아아아아앗!”

수레는 마치 꽁지에 불이 붙은 말처럼 관도를 내달렸다.

울퉁불퉁한 길을 고속으로 달리니 수레가 바닥에 던진 공처럼 연신 튀어 올랐지만, 당가의 장인들이 수리한 덕에 오히려 새것일 때보다 더 튼튼하게 그 충격을 버텨 내고 있었다.

하지만 수레는 버텨도 사람이 그 충격을 버티는 게 어디 쉽겠는가?

“아오!”

청명이 수레 뒤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고 버럭 소리쳤다.

“살살 좀 가! 허리 부러지겠어!”

그러자 이를 악물고 수레를 끌던 조걸이 획 돌아보았다.

“수레도 안 끄는 게 뭔 잔소리냐!”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이리 달려 대!”

“늦게 가서 좋을 게 뭐 있냐?”

“아니, 당가로 가는 내내 그렇게 죽는 소리를 하더니?”

청명이 뚱하니 말하자 조걸이 태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젠 할 만하더라고.”

“……응?”

생각지 못한 답변에 청명은 살짝 당황했다. 그런데 조걸의 옆에서 함께 수레를 끌던 윤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제는 가뿐하다. 뭔가 좀 가벼워진 것 같고.”

둘은 아예 수레를 살짝 들었다 놓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쳤어? 다른 철도 섞였고 검집까지 추가됐는데 더 가벼워졌을 리가 있나?”

“그렇지? 그런데 그런 기분이 든다니까?”

그때 선두에서 수레를 끌던 혜연의 입에서 고아한 불호가 새어 나왔다.

“아미타불.”

그가 한 손으로 반장을 하더니 경건하게 말했다.

“시주들께서 불법의 진의를 논하시는군요. 세상 모든 것은 그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요. 무겁다 생각하면 무거운 것이고, 가볍게 생각하면 가벼운 것이니. 이는…….”

“뭐래. 사이비 같은 게.”

“…….”

혜연이 상처 입은 얼굴로 청명을 돌아보았다.

“시, 시주. 그래도 제가 소림승인데 사이비(似而非)라니요.”

“너 방장 말 안 듣고 뛰쳐나왔잖아. 그럼 파계승 아냐?”

“…….”

“파계승이면 사이비지.”

혜연의 얼굴이 일순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부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파, 파계……. 파계……. 방장……. 왜 저를 보내셨습니까. 방장…….”

금세 삶은 채소처럼 시무룩해진 혜연을 보며 청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이라는 놈이 저리 강단이 없어서야!

막 한 소리를 더 하려는 찰나, 말없이 수레를 끌던 백천이 고개를 천천히 돌리더니 청명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청명아.”

“응?”

“할 짓 없으면 시비 걸지 말고 얌전히 누워서 자라. 알아서 갈 테니까.”

“……으응?”

“돌아가는 길에 아무 말 안 하기로 분명히 약속했다.”

“…….”

“한 입으로 두말해 보시든가.”

결국 청명은 시무룩한 얼굴로 벌렁 드러누웠다.

에라, 모르겠다.

빨리 도착하면 나야 좋지, 뭐.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에 든 술병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러자 구석에 있던 백아가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마구 뛰어와 달라붙었다.

청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리 안 가? 확!”

키이이이이!

“어쭈?”

하지만 백아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그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좀 더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왔다.

“끄으응.”

청명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이야 이놈의 담비가 왜 그에게만 유독 이리 달라붙는지 이해 못 하겠지만, 청명은 대충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영물이란 기본적으로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영성을 가지게 된 짐승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더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들일수록 강해지고 장수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부비적. 부비적.

“…….”

아마 이놈은 청명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기운에 홀딱 빠져 버린 게 분명했다.

지금 청명의 몸에 흐르는 기운은, 일평생 선도를 갈고닦은 매화검존조차 만들지 못했던 청정함의 결정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맑게만 만들어 뒀더니 쥐톨만큼 모으는 데도 한세월이 걸리는 지랄 맞은 효율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 청정함에서는 세상 비할 데가 없는 기운이 아니던가?

백아의 입장에서는 뿌연 흙탕물을 거르고 걸러 겨우 목을 채우던 와중에, 자연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더없이 맑은 물을 본 격이니 눈이 돌아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그러니까 당연한 건데…….

“거 이상하게 얄밉단 말이야.”

청명이 들러붙는 백아의 목덜미를 잡아 구석으로 던졌다. 그러자 백아가 빼액 소리를 내며 청명에게 다시 달라붙었다.

“에휴.”

이젠 사람이 덜 달라붙으니 짐승이 달라붙네.

다 놓아 버린 청명은 백아를 달랑 들어 목 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베개처럼 백아를 베고 누워 몸에 힘을 빼고 하늘만 멍하니 보았다.

푸른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자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어쨌건 대충 정리는 됐네.’

당가를 방문해 맹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밑그림은 완성됐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만.

“아직 부족해.”

청명이 낮게 중얼거렸다.

과거의 화산은 지금의 화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그런 화산도 중원 전체를 불태우는 전화(戰火) 속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마교와의 전쟁은 한 문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화산의 과거보다 몇 배로 강해진다고 해도, 화산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우선은 힘. 그리고 돈. 그리고 또 하나는…….

청명이 슬쩍 고개를 들어 수레 한쪽에 걸터앉아 있는 홍대광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썩 도움도 안 되니 돌아가는 길엔 수레를 끌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홍대광이 천진하게 물었다.

“응? 왜?”

“…….”

에휴.

청명은 고개만 휘휘 내저었다.

그래도 옛날 그가 알던 거지들은 뭔가 하나씩 빠져 있기는 해도 정보는 곧 잘 물어 왔는데.

‘하기야 그때 내가 알던 거지들은 최소한 장로급이었으니까.’

아직 칠결개에 불과한 홍대광에게 구결개 급의 정보를 바라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너무 식충인데.”

“응? 그 담비 말이냐?”

“……네, 뭐.”

청명은 무어라 대꾸하기도 귀찮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거지 아저씨.”

“그래, 화산신룡.”

홍대광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물어봐라. 내가 바로 화산의 정보통 아니더냐.”

“……꼴통이겠지.”

“응?”

“아뇨, 뭐.”

청명은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거지 아저씨.”

“그래. 말하거라.”

“아저씨 지금 칠결개잖아요.”

“그렇지. 이 나이에 칠결개를 단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내가 그만큼이 유능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

“아, 됐고요. 아저씨 팔결 달려면 얼마나 걸려요?”

“팔결?”

“네. 구결이면 더 좋고.”

홍대광이 무슨 개소리냐는 듯 황당한 얼굴로 헛웃음을 흘렸다.

“화산신룡. 네가 어리고 견식이 없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개방의 팔결은 최소 장로 아니면 한 성의 책임자다. 무, 물론 나도 화음 분타를 넘어 섬서 지부의 지부장을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내 나이에 지부장이 되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럼 구결은 뭐예요?”

“구결이야 태상장로들이지!”

아. 그럼 그때 걔들이 태상장로였구나. 그래 봐야 거지라 별로 신경을 안 썼더니.

“흐음. 그럼 거지 아저씨가 지금 현실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은 팔결까지라는 거네요?”

“그렇지. 당장 방주님이 소걸개를 정하고 물러나지 않는 이상은.”

“으음.”

청명이 턱을 긁었다.

소걸개란 개방의 방주를 이어받을 이를 지칭한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 소걸개 후보 중 하나라고 하지 않았어요?”

“엣헴!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사실이지.”

“개방이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뭐라고 했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청명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사실 이게 거지 아저씨 잘못은 아니긴 하지.’

홍대광은 화음 분타의 분타주다.

화음이 천하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저 작은 현의 분타주가 할 수 있는 일이야 한정될 수밖에 없다.

화산이 코앞에 있으니 일반적인 분타보다야 좀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겠지만, 그래 봐야 분타는 분타.

결국 개방에서 좀 더 쓸 만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홍대광을 조금 더 높은 자리로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섬서를 총괄하는 지부장의 자리에 올라도 좋고, 소걸개가 될 수 있다면 더더욱 좋다.

문제는…….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일까?’

괜히 잘 살고 있는 남의 문파 기둥뿌리를 뽑아다가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는 짓이 아닐까? 저 양반이 방주가 돼도 진짜 괜찮을까?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청명은 대답 대신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건 고민을 좀 해 보자.’

물론 개방 역시 물어뜯어 마땅한 구파일방 소속이다. 하지만 나름 개중에서는 나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낀 청명이었다.

- 어이고? 양심이 다 생기셨어?

“카악!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오지 말라니까!”

말없던 청명이 대뜸 버럭 소리를 지르자 홍대광이 화들짝 놀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늘따라 이상하게 구는구나.”

그러게요. 거참.

청명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일단은 화산에 돌아가서 생각하자.’

요 며칠 머리를 얼마나 굴렸는지, 이제는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어차피 사형들도 못 건드리겠다, 차라리 화산에 돌아가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쿵!

“아오!”

하지만 격하게 튀어 오른 수레는 그것마저 허락지 않았다.

“아니, 또 왜 이리 덜컹대!”

짜증 범벅인 목소리로 외치자 앞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산길에 접어들었다. 단번에 넘을 테니까 짜증 낼 시간에 꽉 붙들어.”

아, 네. 그러시겠죠.

청명은 구시렁대며 술병을 아예 입에 꽂아 버렸다.

‘그런데 진짜 잘 끄네.’

수레가 비탈을 평지처럼, 아니 내리막길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이제는 인간 우마를 넘어 인간 적토마로 불러야 할 수준이었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네.’

어차피 시간도 남으니 청명은 사형제들을 위해 더 알차고 훌륭한 수련법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음?”

청명이 문득 고개를 획 들었다.

‘기척?’

파아아아앗!

그가 막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저 앞쪽 비탈에서 뭔가가 팽그르르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엇?”

“뭐야!”

달리던 수레가 급격히 정지했다. 힘을 이기지 못해 허공으로 번쩍 들렸던 수레가 내동댕이쳐지듯 바닥에 내려앉았다.

쿵!

“쯧.”

수레와 함께 튀어 올랐던 청명이 자세를 다잡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꽂힌 거대한 도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수레의 일 장쯤 앞에 꽂혀 있는 도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좋은 의도를 담고 있다 보긴 힘들었다.

그리고.

패애애앵!

파아아앗!

연이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수레의 뒤와 옆, 사방을 둘러싸며 커다란 병장기들이 날아와 꽂히기 시작했다.

빽빽하게 날아든 병장기는 삽시간에 마차의 사방을 가로막았다.

“하…….”

청명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아니, 이것들이 진짜 뒈지려고 환장했나. 어디다 칼을 던져 대? 대가리에 칼이 꽂혀 봐야 정신을 차리나?”

청명이 눈을 희게 까뒤집으려는 찰나 백천이 진지하게 말했다.

“청명아.”

“응?”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날아오는 병기에 실린 힘이 장난이 아니야.”

“그래 봤자야.”

청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좌우로 꺾었다.

이윽고 산길의 좌우로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청명이 기감을 세우며 말했다.

“그래 봐야 산적 수십 명 정도야. 이런 건 발가락으로도…….”

그런데 말을 하던 그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고개를 획 돌렸다.

“왜?”

“……어.”

그러더니 살짝 멋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방금 몇 명이라 그랬지?”

“수십 명이라며.”

“어……. 정정할게. 한 백 명……. 아니, 백오십. 아, 아니지, 이백…….”

백천의 얼굴이 멍해졌다.

“왜 자꾸 늘어나 이 새끼야!”

“아, 아니! 지금 저 산 뒤에서 뭐가 계속 몰려온다고!”

저 새끼들 왜 계속 나오지?

어, 잠깐만…….

어…….

수풀 안에서 산적들이 개미떼처럼 우글우글 몰려나왔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

몰려나온 이들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수레를 빽빽이 포위했다. 수풀 안에서 채 나오지 못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천이 넘어갈 듯했다.

“허허.”

청명이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백 장 이내에 사람이 없었는데.’

그의 감각에 잡히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다가 단숨에 좁혀 온 것을 보아, 처음부터 준비한 함정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그가 딱히 경계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어떻게 하냐?”

화산의 제자들도 그 수에 질려 버린 듯 당황한 눈으로 청명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청명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화산의 제자는 절대 물러서지 않아!”

청명이 당당하게 소리치자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냐, 그래!”

“그래 봐야 산적이지!”

모두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청명은 산적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자!”

굳건하게 서서 당당히 가슴을 쫙 편 모습이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그의 목소리를 신호로, 화산의 제자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청명이 신호만 하면 곧장 달려갈 기세로.

그런 그들의 귓가에 커다란 청명의 고함 소리가 우렁우렁 들려왔다.

“일단! 말로 합시다!”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화산 제자들은 믿을 수 없단 얼굴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청명은 너무도 당당하게 가슴을 쫙 편 채 크게 덧붙였다.

“지성인답게!”

“…….”

그리고 세상 다시없을 허망함을 담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형제들을 보며 당당하게 물었다.

“왜? 뭐?”

“…….”

일단 살고 봐야지.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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