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저 매화검존 아닌데요? (4)
“저…….”
백천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렇게까지는…….”
“뭐?”
눈에 핏발을 세운 당가의 장인이 그를 획 돌아보았다. 그 광기 어린 눈빛에 천하의 백천마저 움찔하여 주춤 물러섰다.
“아, 아니요.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도장은 이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요?”
“예? 그야…… 검…….”
“한철검이요! 한철검! 빌어먹을 만년한철검이라고!”
“…….”
“이제는 어디서 만들지도 못할 천하의 보검들이란 말이오! 그런데 대충 만들라고?”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방해되니 저리 가시오! 당장!”
백천은 결국 더 만류하는 걸 포기하고 힘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뒤쪽에서 지켜보던 화산의 제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뭐랍니까?”
“……꺼지라는데?”
“…….”
화산의 제자들이 힘없는 얼굴로 공방 안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데 진짜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검을 만드느라 혼을 불어넣는 거라면 말리지도 않는다. 차라리 응원을 했겠지.
하지만 지금 장인들이 하고 있는 일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놈아! 꽃잎이 어긋났잖아!”
“여기 삐져나온 것 안 보이냐! 여기!”
“끄으으응. 망할. 너무 단단해.”
정과 망치를 든 이들은 저마다 검에 달라붙어 끙끙대고 있었다. 거의 열흘 가까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시뻘게진 눈으로 한철검에 매화문양을 새겨 넣고 있는 중이었다.
“……저거 그냥 막 쓸 검인데.”
“그러게요. 저렇게 해도 결국은 그냥 예뻐지는 게 전부 아닙니까?”
“예뻐지면 좋긴 한데……. 그래도 저렇게 피를 토해 가며 꾸밀 필요까지 있나?”
화산 제자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끄르르륵.”
“에이, 귀찮게 왜 쓰러지고 난리야! 이놈 당장 끌어내라!”
“예!”
그것도 저리 육신과 영혼을 탈곡해 가며…….
영 불안해진 백천이 당소소를 보며 말했다.
“소소야. 우리들 말은 안 통하는 것 같으니, 네가 어떻게 말 좀 해 봐라.”
“뭘요?”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뭐요?”
“…….”
하지만 그는 이내 입을 다물어야 했다. 당소소의 눈에 쌍심지가 켜진 것이다.
“사숙! 이건 장인의 자존심이에요!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은 것처럼 보검은 누가 봐도 보검의 태가 나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요! 사숙은 투박한 명검 본 적 있어요?”
“……없지.”
“사숙이나 사형들은 뭐 어떻게 생겼든 날만 잘 들면 그만이겠지만, 만드는 입장은 다르다고요! 더구나 이건 당가에서 만든 한철검이에요. 어설프게 만들었다가 다른 공방 놈들이 당가도 한물갔다는 말이라도 지껄이면 그거 사숙이 책임지실 거예요? 예?”
“…….”
그녀의 기세에 질린 백천이 목을 움츠렸다.
‘아니, 얘는 왜 날이 갈수록 성격이 나빠지나.’
“이건 자존심 문제예요! 당가의 자부심과 자존심은 천하의 어떤 문파에도 뒤지지 않아요!”
“……네. 잘 알겠습니다.”
결국 화산의 제자들은 장인들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청명이 놈은 뭐 합니까? 원래 이런 일이 벌어지면 ‘검 그까짓 거 잘만 들면 그만이지, 매화 새기면 매화검법이 더 잘 써지기나 한대?’라면서 제일 먼저 역정을 냈을 텐데.”
“저기 있잖아.”
“네?”
“저기.”
백천이 턱짓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과연 전각 앞쪽에 놓인 평상 위에 청명이 있었다. 그는 꼿꼿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경건한 동작으로 손에 든 검을 뽑았다.
더없이 경건하고 진중한…….
“흐흐흐흐흐.”
“…….”
“낄낄낄낄낄낄낄.”
입꼬리가 거의 귀까지 올라갈 지경인 청명을 보며 백천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역대 최고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혼원단 찾았을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죠.”
“전문가적 시선으로 볼 때, 저 정도면 거의 금자로 만든 탑을 발견했을 때 수준입니다.”
백천이 입맛을 다셨다.
“……그럴 만도 하지.”
“……그렇죠.”
부럽다.
미치도록 부럽다.
악공이 좋은 악기에 욕심을 내는 것처럼, 검수는 기본적으로 좋은 검을 탐내기 마련이다.
그간 구파일방들을 상대하며 나름 좋은 병기를 여럿 보았지만, 지금껏 그들이 본 어떤 검도 지금 청명이 들고 있는 것에 비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 영감님은 왜 하필 저놈에게!”
“그러니까요!”
“영감님이 이젠 눈까지 삐셨……. 소소야! 내가 잘못했다. 그, 그 주먹 내려놔라.”
이제는 사형뿐 아니라 사매에게도 맞을 뻔한 조걸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화산의 제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슬금슬금 청명에게로 다가갔다.
“……청명아.”
“응?”
청명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그거 한 번만 만져 보면 안 되냐?”
“안 돼.”
“아니, 휘둘러 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만져만 보…….”
찰싹!
청명이 은근슬쩍 다가오는 백천의 손등을 매섭게 때렸다.
“어디 누추한 것들이 귀한 물건에 손을 대겠다고! 저리 안 가?”
“아, 한번 만져만 보자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저리 꺼져!”
청명은 흡사 독이 오른 살쾡이처럼 암매검을 사수했다. 절대 내어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백천과 다른 제자들이 이를 갈아붙였다.
“치사한 새끼!”
“욕심만 많은 놈!”
어지간하면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욕심이 가시련만, 그럼에도 자꾸 눈길이 갈 만큼 암매검은 끝내줬다. 검을 쓰는 이라면 누구라도 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검집만 해도 묵직하게 시선을 잡아끌고, 검을 뽑았을 때는 황홀함마저 느껴졌다.
“이래서 보검, 보검 하는구나.”
“저 정도면 날이 안 들어도 차고 다니겠다.”
“훔칠 거다.”
모두가 암매검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던 그때.
“끝났다!”
“으아아아아아! 완성이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공방 쪽을 향해 획 돌아갔다.
불과 열흘 사이에 피골이 상접해 버린 장인들이 그 몰골에 어울리지 않는, 기운 넘치는 눈빛으로 한철검을 십여 자루씩 품고 나왔다.
“비단! 비단 깔아!”
“예!”
공방 앞에 비단이 쫘악 깔리고 그 위에 한철검이 오와 열을 맞추어 놓였다.
‘검 놓겠다고 비단을 다 까네.’
‘세상에 저리 지체 높은 검이 있다니.’
그 지체 높으신 검을 자신들이 쓸 거란 사실에 더없는 흥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어디…….”
공방 안에서 걸어 나온 당군악이 비단 위에 놓인 한철검 하나를 집어 들고는 가볍게 뽑아냈다.
스릉!
귀를 즐겁게 만드는 맑은 소리와 함께 은빛의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좋구나.”
당군악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완벽하게 조율된 무기를 보는 것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흥취를 주기 마련이었다.
“모루를 가져와라!”
“예!”
당군악의 명령에 장인들이 부리나케 안으로 뛰어가 끙끙대며 모루를 옮겨 왔다.
“여기 있습니다, 가주님!”
“물러나라.”
장인들이 모루 주변에서 물러나자 당군악이 손에 든 한철검을 모루를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스슷.
별다른 소음도 없었다. 통주물로 만들어진 커다란 무쇠 모루가 반으로 갈라져 두 동강이 났다.
“허?”
검을 휘두른 당군악조차 놀라며 검을 바라보았다.
“쇠가 두부는 아닐진대.”
이번엔 내력도 불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검 전체에 날카로운 예기가 어린다. 검수가 아닌 그가 휘둘러도 이만한 위력인데, 화산의 검수들이 이 검을 쓴다면 얼마나 위력적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끄응. 생각보다 너무 좋은 물건을 주는 것 같…….”
“저어…….”
“응?”
중얼거리던 당군악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화산의 제자들이 거의 침을 흘리며 그의 뒤에 주르륵 서 있었다.
“하, 한 번만 휘둘러 봐도 됩니까?”
“……그러게나.”
“감사합니다. 가주님은 좋은 분이시군요.”
“…….”
이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일이던가?
바닥에 놓인 검을 재빨리 챙겨 든 화산의 제자들이 저마다 검을 뽑아 휘둘러 보기 시작했다.
“이, 이거 엄청 가볍습니다, 사숙!”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검이 이토록 강맹하게 휘둘러질 수가 있지? 대체…….”
“와. 이래서 좋은 검, 좋은 검 하는구나.”
“지금까지 쓴 검이 다 쓰레기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당군악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너희들이 전에 쓰던 거 당가에서 만들어 준 거다.’
생각을 하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이놈들아!
당군악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저 반응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도 놀랄 정도인데 저들은 오죽하겠는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천과 다른 제자들이 장인들에게 달려가 얼굴이 땅에 닿을 듯 연신 허리를 숙였다.
“허허, 이러지 마시게.”
“아닙니다! 정말 이렇게 좋은 검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크게 술 한번 쏘겠습니다!”
“어이쿠. 듣자 하니 사해상회의 자제분이시라던데, 이러면 정말 크게 얻어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이지요! 그럼 차라리 제가 상회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하. 됐습니다, 아이고.”
장인들은 껄껄 웃으며 뿌듯하게 웃었다.
‘거참 이상한 녀석들이란 말이야.’
아무리 그들이 당가 소속이라고는 하나, 결국에는 대장장이. 세상에서 그리 높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지금껏 당가에 물건을 의뢰해 받은 이들 중 가주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그들에게 이리 직접 고개를 숙여 준 이들은 없었다.
‘화산이라.’
참 재미있는 문파다.
가주께서 왜 이들과 연을 맺으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 했으면 이제 실어.”
“응?”
어느새 다가온 청명이 바로 곁에 서 있었다.
“얼른 챙겨서 돌아가야지.”
“바로?”
“바로는 아니고 내일 아침에 출발해야지. 이걸로 둘둘 말아 가지고 가면 되…….”
“이걸 둘둘 말아 간다고? 미쳤어?”
“저 새끼가 지 검은 더 좋다고 귀하게 여기고!”
“보검은 보검답게 다뤄야지!”
예상하지 못했던 화산 제자들의 맹렬한 반항에 청명은 살짝 움찔했다. 그때 장인들이 말했다.
“검을 담을 목궤도 준비해 뒀으니, 여기에 담아 가면 되네.”
“오!”
백천이 화색을 띠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봐야 짐만 늘어나고 더 무거워지는 것뿐인데.”
“너는 좀 다물어, 너는!”
“주둥아리!”
청명이 구시렁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생을 사서 하네.’
하기야 지들이 고생하겠다는데 뭐…….
“아직은 돌아갈 수 없지.”
“네?”
당군악의 말에 청명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였다.
“아직 회포를 못 풀지 않았는가?”
“아, 그렇죠. 그러니까 내일 출발해야죠. 오늘 저녁에는 진탕 마셔 보려고요.”
“아니, 그 말이 아닐세.”
“……네?”
당군악이 빙그레 웃었다.
“나야 오늘 하루 정도면 만족하겠지만, 그 사람이 과연 하루 정도로 만족하겠는가? 사흘 내내 술을 퍼부어도 만족하지 못할 사람인데.”
“그 사람이요?”
누굴 말하는…….
그때였다.
쿠르릉!
“응?”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한차례 진동했다.
“이게 뭔…….”
쿠르르릉!
다시 한번 크게 들썩였다. 그러더니 이내 연이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인가?”
“아니, 지진은 아닌 것 같은데?”
“저쪽이다!”
화산의 제자들이 당가의 정문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당군악은 조금도 놀라지 않은 모양으로 빙그레 웃으며 청명에게 말했다.
“우리도 가세.”
“예?”
“손님을 맞아야지.”
그리고 가타부타 말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청명은 고개를 갸웃하며 일단 그의 뒤를 잠자코 따랐다.
“아이고! 세상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대체 뭔 일이야 이게!”
놀라 밖으로 뛰쳐나온 당가의 식솔들이 웅성거렸다. 당군악과 함께 대문으로 향한 화산의 제자들은 그들을 지나쳐 곧장 대문 앞에 섰다.
“열어라!”
당군악이 크게 외치자,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이들이 커다란 문을 좌우로 활짝 열어젖혔다.
“헐…….”
“우와…….”
이윽고 화산 제자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야말로 기경할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뿌우우우우우!
집채만 한 짐승이 기다란 코를 번쩍 들어 올리며 울음을 토하고, 웬만한 범보다 두 배는 더 큰 커다란 호랑이가 포효했다.
그 좌우로 흰색의 털을 가진 백표(白豹)가 이를 드러냈고, 날카로운 뿔이 코에 돋아난 짐승이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짐승. 또 짐승. 그리고 짐승.
생전 본 적 없는 커다란 짐승들이 줄을 맞추어 당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세, 세상에! 저게 다 뭐야!”
“막아야 하는 거 아냐?”
“이게 뭔 일이래!”
그리고.
파아아아앗!
그 짐승의 무리 가운데서 새하얀 섬전 같은 것이 순식간에 당가로 파고들어 선두에 있는 화산의 제자들에게로 쏘아졌다.
“뭐, 뭣!”
“피해!”
턱!
순간적으로 몸을 젖혔던 백천은 이내 의문 어린 얼굴로 제 앞에 선 청명을 보았다.
정확히는, 청명이 앞으로 내민 손 위를.
“갸르르르르!”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담비가 청명의 손에 올라 앉아 얼굴을 비벼 대고 있었다.
“오? 너 백아 아니냐?”
백아?
어? 그럼?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침 귀를 터뜨릴 것 같은 거대한 웃음소리가 당가를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수많은 이들이 있지만, 이렇게 호탕한 웃음을 가진 이가 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이 숱한 맹수들을 부리는 이가 누가 또 있겠는가.
“화산신룡! 화산신룡은 어디에 있느냐! 이 몸이 오셨는데 당장 나오지 못할까!”
“거참, 어디 있긴 어디 있어요. 여기 있는데!”
“오오!”
짐승들 사이에서 철탑으로 만든 것 같은 거인이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구나, 화산신룡!”
“하하……. 운남이 아니라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궁주님.”
남만야수궁의 궁주 맹소가 크게 웃으며 청명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좋아! 좋구나! 오늘 어디 한번 진탕 마셔 보자꾸나!”
“술 좀 느셨어요!”
“네놈을 이길 만큼은 늘려 왔다!”
“호오? 감히?”
낄낄대며 마주 웃는 두 사람을 보며 화산의 제자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바람 잘 날이 없네.
바람 잘 날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