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화. 저 매화검존 아닌데요? (3)
“응?”
조금 당황한 당군악이 고개를 갸웃하다 큰 목소리로 외쳤다.
“패야! 당패 거기 있느냐?”
“예, 아버님!”
당패가 재빨리 문을 열고 가주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혹여 내가 없는 동안 가주실에 다녀간 이가 있더냐?”
“예? 그건 왜…….”
당군악은 의아함이 어린 얼굴로 물었다.
“여기에 있던 자오철(紫烏鐵)이 어디 갔느냐?”
“글쎄요. 그…….”
눈살을 찌푸린 채 잠깐 고민하던 당패는 일순간 눈을 커다랗게 뜨며 숨을 들이켰다.
“어? 그, 그럼 그거……?”
“응?”
입을 뻐끔거리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 아, 아침에 증조부님께서 뭔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공방 쪽으로 향하시는 것을 보긴 했습니다만……. 그, 그…… 분명 이 근처에서…….”
당군악의 동공에 거센 지진이 일었다.
“설마?”
그는 황급히 여기저기를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가주전의 왼쪽에 장식되어 있던 현철(玄鐵)도 보이질 않는다. 그 외에도 몇몇 귀한 금속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사천당가의 가주전은 당가타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굳이 이곳을 걸어 잠그지 않는 것은 사천당가의 가주가 가지는 권위를 믿기 때문이고, 외부의 누구도 이곳에 숨어들 수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저, 적이 내부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당군악이 부리나케 공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종조부니이이이이이임!”
공방에 도착한 그는 다짜고짜 안으로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간이 문을 부서져라 열어젖히고 고함을 내지르기 위해 숨을 들이쉬었다.
“흡!”
하지만 그는 그대로 숨을 삼킨 채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카아아앙!
청아하기 짝이 없는 망치 소리.
살아온 세월 내내 망치 소리를 노래 삼아 들어 온 당군악의 심혼마저 울릴 만큼, 진정 혼이 담긴 소리였다.
카아앙!
불꽃이 춤을 춘다.
끓어오르는 열기와 흔들리는 공기, 흩날리는 불똥이 뭐라 말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을 자아냈다.
당군악은 사천당가의 가주.
장인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장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이 순간만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카아아앙!
평생을 묵묵히 불 앞에서 망치를 쥐었던 당가 최고의 장인이 지금 자신의 혼백을 부어넣고 있었다.
당군악의 시선이 당조평에게서 그 뒤에 선 청명에게로 옮겨 갔다. 청명 역시 당조평이 하는 양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굳게 다물렸던 당조평의 입이 열렸다.
“가주도 이리 오게.”
카아아앙!
뒤를 돌아보지 않았음에도 그가 왔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당군악은 홀린 듯이 다가가 그의 뒤에 섰다.
카아앙!
망치가 길게 늘어난 철을 강렬하게 두드렸다.
손을 뻗어 화로에 열기를 끌어올린 당조평은 무심한 손길로 철을 숯 사이로 쑤셔 박았다.
그리고 가라앉은 눈으로 화로를 응시했다. 망치 소리가 잠시 멎은 틈을 타 당군악이 입을 뗐다.
“종조부님, 이게…….”
“조용.”
“…….”
말없이 화로 안에 든 철을 바라보던 당조평은 집게로 달아오른 철을 꺼내 모루 위에 올렸다.
카아아아앙!
그의 망치는 어김없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평생을 당가에서 살아왔네.”
“…….”
“때로는 검을 만들고, 때로는 비침을 만들었고, 때로는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만들었지.”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고 있음에도, 어쩐지 당조평의 말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만들고 또 만들었네. 딱히 대단한 장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어. 그저 내 나이에 맞는 것들을 만들어 왔지.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당가의 장인들을 이끌고 있더구먼.”
지난 삶을 반추하는 노인의 목소리는 그저 담담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 내 삶을 돌아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나는 대체 무엇을 만들었는가?”
“……종조부님.”
당조평이 오로지 모루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잘 보시게 가주. 나는 무인이 아니라 자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네. 설령 전해 줄 것이 있어도 말주변이 모자라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네.”
당군악이 숨을 죽였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노인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평생을 오로지 불꽃과 쇠에 바친 장인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카아아앙!
망치가 철괴를 두드린다.
검수는 수없이 검을 휘둘러 그 검 끝에서 도를 좇는다.
그렇다면 수없이 망치를 휘둘러 온 장인의 망치 끝에 어찌 도가 없겠는가?
평생을 쌓아 온 기술.
평생을 지탱해 온 신념.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쇠를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당조평이 집게로 한철을 집어 물동이에 담갔다.
치이이이이익!
새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쇠라는 건…….”
순간 부옇게 흐려진 공간에 당조평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불에 달구고, 물로 식히고,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하지.”
그 음성은 그가 걸었던 길을 닮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삶이란 것도 그리 다르지 않네. 때로는 즐거웠고, 때로는 힘겨웠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지.”
카아아앙!
모루 위에서 다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검존 어르신, 기억하십니까?”
“……음?”
“저는 장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독과 암기를 쓰는 당가의 무인이 되고 싶었지요. 예, 할아버지처럼 말입니다.”
“…….”
“쇠 같은 건 다루고 싶지 않다고 울던 저를 보고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죠.”
- 야, 이놈의 자식아! 칼 휘두르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고 좋은 일이라고 못 해서 안달이냐. 손에 피 묻히고 사는 놈들이 세상에서 제일 썩을 놈들이다. 그리고 검을 만드는 이가 없으면, 나는 지팡이를 들고 싸우랴? 뭐든 자기의 길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그걸로 충분하다.
당조평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천하제일검이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마음을 다잡고 제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던 청명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제야 그때 해 주셨던 말씀에 보답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님도 기특하다 해 주시겠지요.”
머뭇거리다 간신히 입을 떼는 청명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어르신……. 저는…….”
“상관없습니다.”
카아아앙!
청명의 하려던 말은 청아한 망치소리에 묻혀 버렸다.
“이 검을 쓰는 이가 매화검존이든.”
카아아앙!
“화산을 다시 이끌 젊은 화산의 검수든.”
카아아앙!
“뭐가 다르겠습니까. 검존께서 이 검을 쓰셨어도 결국에는 화산에 전해졌겠지요. 검존의 검은 화산의 검. 그러니 이 검이 화산의 제자의 손에 쥐여진다면 이 검은 검존의 검입니다.”
카아아앙!
쇠와 쇠가 뭉쳐 들고, 다시 펴진다.
달궈지고, 식고, 다시 달궈진다.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손끝에 들린 망치가 움직일 때마다, 오랜 과거의 기억과 살아 숨 쉬는 지금이 함께 녹아들었다.
작고 하얗던 손은 어느새 거무튀튀해졌고 주름과 상처로 울퉁불퉁해졌다. 검디검었던 머리 역시 새하얗게 바래 버렸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무언가를 이뤘던가?
한참 묵묵히 쇠를 두드리던 당조평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런 건 이제 의미가 없다.
망치가 쇠 위로 올곧게 떨어졌다.
하루, 그리고 이틀.
사흘 밤낮이 지나 꼬박 아흐레에 이르기까지, 망치 소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검신(劍身)은 더없이 투명했다.
은색을 넘어 거의 백색으로 보일 만큼 티 없이 맑았다.
평균적인 검에 비해 두 배쯤은 얇은 검은 일견 가벼워 보였지만, 보면 볼수록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묵직함을 지니고 있었다.
손잡이로 이어지는 검면(劍面)의 아랫부분에는 살아 있는 듯 생생한 매화가 정교하게 새겨졌고, 질 좋은 가죽을 감은 손잡이 끝에는 당가의 색을 담은 녹색 수실이 소담스레 달려 있었다.
“들어 보십시오.”
그새 몇 년은 늙은 듯한 당조평이 권했다. 청명은 가만히 손을 뻗어 검을 쥐어 보았다.
그리고 이내 알 수 없는 감각에 잠시 눈을 감았다.
검이 그의 손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의 일부였던 것처럼 말이다.
손끝으로 가볍게 검면을 때리자 얇은 검신이 낭창하게 휘어졌다가 빠르게 제자리를 되찾았다.
연검(軟劍)처럼 부드럽지만, 패검처럼 단단했다. 날에 어린 예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여기.”
당조평이 청명에게 검집을 내밀었다.
검은 묵철로 만든 검집에 붉은 매화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만개한 매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청명은 검을 느리게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
당조평의 물음에 청명은 잠시간 망설였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청명이 슬쩍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도 괜찮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게.”
청명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내가 이 검에 대해 뭐라고 평가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마음에는 드십니까?”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은 없을 정도로.”
당조평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조금 전의 그 한마디로 그간의 고생을 모두 보답받은 느낌이었다.
“그럼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름?”
“주인을 찾은 검에는 이름이 붙어야지요. 적당한 이름을 붙여 주십시오.”
이름…….
이름이라.
청명이 가만히 검을 응시하다 다시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스르르릉.
검집이 어두운 밤에 피어난 매화 같다면, 검집 속에서 드러난 검은 밝은 대낮에 핀 매화를 보는 것 같다.
한참 동안 검을 바라보던 청명이 마침내 작게 웃었다.
이 검의 이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암향매화검(暗香梅花劍).”
“……암향.”
당조평이 따라 되뇌며 살짝 눈을 감았다.
당군악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살짝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이름이 좋지 않겠는가? 물론 화산에서 암향이라는 말을 꽤 쓰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이 검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표현하지 못한 것 같네. 줄인다면 암매검이 될 터인데, 그건 너무 투박한 이름이지 않은…….”
“암(暗)이라…….”
하지만 조용히 뇌까리던 당조평은 눈을 뜨며 빙그레 웃었다.
더없이 밝게. 그리고 더없이 즐겁게.
그런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좋은 이름입니다. 정말 좋은 이름이네요.”
당군악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당조평이 왜 이 이름에 눈물마저 흘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을 만들어 준 당조평이 저리 말했으니 이 검의 이름은 이제 결정이 난 것이다.
청명은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천당가가 만들어 준 화산의 검에는 이 이름 말고 다른 건 붙일 수가 없어.”
“그렇지요. 암요, 그렇지요.”
당조평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과거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달빛이 밝던 밤.
평상에 마주 앉은 암존(暗尊) 당보와 매화검존(梅花劍尊) 청명이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이 검은 매화검존의 검이자 사천당가와 화산의 우정을 상징하는 검이 될 것이다.
과거의 그들이 그랬듯이.
“잘 써 주십시오.”
청명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잡이를 잡은 손으로 검이 내뿜는 차가운 한기가 전해져 왔다.
하지만 그저 차갑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뭐랄까.
조금은…….
- 도사 형님.
……그래.
조금은 따뜻하다.
검을 밀어 넣고 허리에 찬 청명이 당조평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고맙구나.”
당조평은 이렇다 할 말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
뭔가를 말하려던 청명은 결국 고개를 돌리고는 몇 번 헛기침을 했다.
“나는 그…… 어, 다른 검들이 어찌되었는지 봐야 하니까. 어…… 그래. 좀 나가 볼게.”
청명은 그 길로 획 몸을 돌려 얼른 간이 문을 열고 나갔다. 당조평은 나지막이 웃었다.
당군악이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종조부님, 사실은…….”
“군악아.”
그는 입을 다물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당조평이 그를 군악이라 부른 게 몇십 년 만이던가?
“예! 종조부님.”
“만들고 싶은 게 생겼다. 내 공방을 준비하거라.”
“바, 바로 말입니까? 좀 쉬시지 않고요.”
“장인은 죽는 날까지 망치를 손에서 놓으면 안 된다. 내가 그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구나.”
당군악은 가만히 당조평의 얼굴을 살폈다.
오래도록 생기가 없던 그의 얼굴에 더없이 흐뭇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당군악은 결국 저도 모르게 마주 웃었다.
“그러겠습니다.”
그가 재빨리 밖으로 나가자 당조평은 깊고 깊은 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매화향은…….”
그리고 느리게 눈을 감았다.
“……사라지지 않는구나.”
깊디깊은 어둠 속에서 매화의 향은 더 깊어지는 법(暗香梅花).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짙은 매화의 향이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오래도록. 또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