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일을 좀 더 키워 봐도 되겠군요. (4)
"어서들 오십시오."
황문약이 양팔을 벌려 입구로 들어오는 화산의 문하들을 환영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상단주님."
"하하. 이를 말씀입니까. 화산은 저희 은하상단의 가장 좋은 친구인데 어찌 제가 환대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황문약을 보며 현영은 기꺼운 웃음을 지었다.
만일 황문약이 화산이 명성을 되찾고나서야 이런 반응을 보였다면 지금 그의 표정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황문약은 화산이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을 때부터 그들의 후원자를 자처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마음에 거리낌이 있겠는가.
"이러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해 뒀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황문약은 감사를 표하는 현영에게 웃어 보인 뒤 슬쩍 청명을 바라보았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보는군, 소도장."
"그러게요. 그간 강녕하셨어요?"
"소도장이 싹 비우고 간 좋은 술들을 다시 채워 넣느라 고생을 좀 했다네."
"헤헤. 그럼 제가 그거 다시 비워 드려야겠네요."
"여부가 있겠는가?"
황문약이 껄껄 웃어 젖혔다.
다른 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황문약은 그를 무례하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명은 아니다. 청명은 이곳에서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흠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말이야 바른말로, 저 청명 하나 덕분에 은하상단이 번 돈이 얼마던가?
'다른 건 다 접어 두더라도, 이번 운남의 차 무역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투자한 돈의 몇 배를 회수할 수 있다.'
하나 이 역시 앞으로 벌 돈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화산의 지배력은 이제 화음을 벗어나 이곳 서안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곧 서안뿐 아니라 섬서 전역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화산을 등에 업을 수 있다면 은하상단이 섬서를 모두 장악하고, 천하를 논하는 상단으로 성장하는 것도 꿈은 아니다.
그러니 어찌 청명이 어여쁘지 않겠는가?
'단순히 청명도장뿐만이 아니지.'
황문약은 내실로 향하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도록 종남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눌려 있던 애송이들이 이제는 천하에 그 명성을 떨치는, 촉망받는 후기지수들이 되어 있다.
화산의 성장세는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그조차 경악할 정도다.
'이대로만 된다면…….'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제는 감히 상상에 '천하제일문파'라는 말을 올려 볼 정도는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던 그 말을 말이다.
그리고 아마 이들의 서안행은 그 행보의 시작점이 될 게 분명했다.
간단히 황문약과 덕담을 나눈 현영은 지체 없이 제자들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흐음.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구나."
"덕분에 일정을 조금 당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긴말할 것 없이 바로 움직이도록 하자꾸나. 백천아."
"예!"
"너는 제자들을 이끌고 서안의 민심을 살펴보거라. 아무리 봉문 했다고 한들, 서안은 종남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미치던 곳이다.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예. 소상히 살피겠습니다."
"백상이 너는 황 대인에게 가서, 문파에 필요한 물자 목록을 작성하거라."
"예, 장로님!"
현영은 그 외에도 몇몇 제자들에게 해야 할 일을 할당했다.
확실히 재경각주다운 빠른 일 처리였다.
"모두 알겠느냐?"
"예, 장로님!"
"지체할 것 없다. 시간은 금이나 다름없으니 지금 바로 움직이거라!"
"예!"
"장로님?"
"응?"
"저는요?"
구석에 앉아 있던 청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자 현영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청명아. 너는 나와 함께 전각을 알아보러 간다."
"아, 문파를 열 전각이요?"
"그래."
"네. 그럼 제가 가야죠."
"그래. 나와 함께 가자꾸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핫!"
서로 마주 보며 웃어 젖히는 두 사람을 보며 다른 제자들은 모두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오……."
윤종이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엄청 크네요."
"낙양도 눈으로 본 놈이 뭘 새삼스럽게. 그리고 예전에 성도에도 들르지 않았더냐?"
"거기랑은 느낌이 좀 다릅니다."
백천이 피식 웃었다.
"많이 봐 두거라. 앞으로는 들를 일이 많아질 테니까 말이다. 이제는 이곳이 화음만큼 익숙해져야 한다."
"예, 사숙."
윤종은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듯 시선이 내내 움직였다. 백천은 피식 웃고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은 별일 없지?'
자꾸 밀려드는 긴장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종남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니, 화산에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 역시 아직 꽤 많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어. 저기 저……?"
"왜? 무슨 일인가?"
"저기 화산파 아닌가?"
지나던 행인 몇이 백천 일행의 가슴에 새겨진 매화 문양을 보고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화산의 제자들이 그 소리를 놓칠 리 없었다.
제자들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직 젊은 것 같은데?"
"그럼 저들이 이번 천하비무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는 그 후기지수들인 모양이로군."
"그렇지, 그렇지!"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에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다시 쫙 펴졌다.
'반응이 나쁘지 않은데요?'
'역시나 사람은 실적을 내야 한다니까.'
화산 제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특히나 조걸과 윤종은 뿌듯함을 숨길 수 없는지 만면에 미소를 내걸었다.
"허어. 요즘 화산의 기세가 굉장하다더니, 이제는 서안에서 화산의 제자를 보는 날이 생기는구나."
"대단하지. 아암, 대단하고말고. 최근까지만 해도 몰락했다는 말도 들리지 않을 만큼 관심 밖이었는데,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모르는 소리. 나는 그 종화지회에서 화산이 이겼다는 말이 들렸을 때부터 쭉 주목하고 있었네."
"예끼, 이 사람도! 갖다 붙이기는!"
수군대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어느새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니 이를 들은 사람이 많아진 건지, 아니면 화산의 매화 문양을 알아본 이가 많아진 건지, 그들에게 쏠리는 시선도 가면 갈수록 더 늘어났다.
백천은 뿌듯함 반, 겸연쩍음 반이 섞인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화산의 제자들은 저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환영해 주는 분위긴데?"
"생각보다 적대적인 사람이 없네요. 종남 이야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고."
"그러게. 그래도 언짢아하는 이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가만 듣던 조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사람의 생리가 그런 법이지요."
"생리?"
"청명이 놈이 매번 하는 말이 있잖습니까?"
"아……."
- 뭐? 협? 협의? 하이고오. 대단하신 협객 나셨네! 야, 이 양반들아. 그렇게 협의가 대단하면 사람들이 협행 많이 한 순으로 문파를 줄 세우겠네? 아니, 저 소림 땡중 놈들이 산에 틀어박혀 염불만 외는데 천하제일문으로 쳐주는 것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강호는 그냥 힘이야. 칼질 잘하는 놈이 최고라고.
"……틀린 말은 아닌데."
청명의 말을 떠올린 백천 일행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해도, 이건 정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입에 올릴 만한 소리가 아니다.
"서안, 더 나아가 섬서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대표하는 문파를 종남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건 종남의 역사가 깊어서도 아니고, 종남이 대단한 협행을 베풀어서도 아닙니다."
"가장 강하기 때문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조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안의 사람들이 종남에 보인 호의도 결국은 문파의 힘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종남은 봉문을 했고, 화산은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화산이 종남 대신 섬서를 대표하는 문파가 될 거라는 뜻이구나."
"예. 종남이 봉문 했다는 소식이 서안에 퍼지면 그 흐름은 좀 더 빨라질 겁니다."
잠깐 말을 멈춘 조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시기가 나쁘지 않아.'
서안에 속가문을 열게 된다면, 그 흐름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보아하니 서안에도 천하제일비무대회에 대한 소문이 충분히 퍼진 모양입니다. 다들 화산이 어떻게 이리 강해졌는지 궁금해하겠지요."
"그럼 화산의 무학을 익혀보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겠구나."
"예. 특히나 더 좋은 것은 화산의 명성이 이대제자와 삼대제자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새로 입문하여 무학을 익히려는 건 대체로 나이가 어린 이들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렇지."
"부모가 아이의 입문을 정할 때, 후기지수가 강한 문파라는 사실은 큰 강점이 될 겁니다."
"교육의 명가라는 건가?"
"정확합니다."
백천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건 화산이 좋은 인식을 가지게 된 건 축하할 일이다.
"몇 군데 더 들러 보긴 해야겠지만, 어쨌든 서안의 민심이 우려했던 만큼 나쁘지 않은 것 같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요. 종남이 오랫동안 서안을 장악한 만큼, 종남의 명성에 기대 밥벌이를 하는 이들의 수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이들은 화산이 속가문을 여는 걸 달가워하지 않겠죠."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백천의 눈에 단호한 빛이 어렸다.
"모두들 명심해라. 이 일은 화산의 명운이 달린 일이나 다름없다. 모두들 최선을 다하여 화영문주님을 도와야 한다."
"예, 사숙!"
"예, 사형!"
모두가 눈을 빛내며 씩씩하게 답했다. 이에 백천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게 기본인데, 이게!'
청명이 놈 하나가 없으니 얼마나 건설적인 대화가 오가는가?
평소에는 맛이 가도 좀 많이 가 버린 것 같았던 그의 사제들 역시 청명이 없는 지금은 정광이 넘치는 눈으로 높은 식견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놈 옆에 있으면 다 맛이 가는 게지.'
심지어 그 자신, 백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새삼 청명의 위력(?)을 실감한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청명이 놈이 없으니 이리 편안하구나."
"그놈이 옆에 있었으면, 지금쯤 대체 무슨 사고를 칠까 싶어서 마음을 졸였을 것 아닙니까?"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었을 겁니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라님도 욕한다고, 다들 청명을 질타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유이설은 생각이 다른지,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다들 안일해."
"……응?"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고?"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유이설은 찌푸린 얼굴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이유가 있지. 청명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했던."
"……그게 뭔데요?"
"우리가 없는 데서는 더 크게 사고를 친다."
"……."
그렇지.
그건 정말 맞는 말이지.
모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명이 놈은 어디에 있어도 위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답이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청명 중에 가장 무서운 건 지금 이곳에 없는 청명이다.
"……자, 장로님이 같이 가셨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불에 기름."
"……."
에이.
……설마.
모두가 애써 잊고 있던 불안함이 다시 밀려드는 걸 느꼈다.
그때.
"어?"
윤종이 앞쪽을 가리켰다.
"저거 청명이 놈 아닙니까?"
"응?"
백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윤종이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맞는 것 같은데? 옆에 장로님도 계시네."
"저기서 뭘 하는 거지?"
"그야…… 전각을 알아보러 간다고 했으니, 전각을 보고 계시는 것 아닐까요?"
"오? 여기서?"
백천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쁘지 않아.'
여기는 서안을 관통하는 대로변이다. 중심부에서는 거리가 있지만, 길이 넓다 보니 사람이 많이 지나고 생활하기에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런 데는 비쌀 텐데."
"그렇죠. 게다가 수련할 수 있는 커다란 마당이 있어야 할 테니, 더욱 비싸겠죠."
"돈이야 많이 버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현영 장로님이?"
그 마지막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다지만 그래도 화산을 대표하는 짠돌이가 현영 아니던가?
그런 이가 번화한 대로변의 비싼 전각을 사들여 문파를 연다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워낙 중요한 일이니까요. 장문인께서 따로 언질하셨을지도 모르고."
"그런 거라면 다행인데."
모두가 불안함을 어쩌지 못하고 슬금슬금 청명과 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사숙."
"응?"
"장로님과 청명이가 보러 간 게 전각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저게요?"
"……."
천천히 움직인 백천의 눈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전각.
그래. 전각은 전각이지.
기둥과 지붕이 있고 커다란 걸 전각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저건 확실히 전각이지.
문제는…….
'그 기둥이랑 지붕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저걸 전각이라 부를 수 있는가?
흉가가 된 지 족히 백년은 지났을 법한 커다란 집터가 눈앞에 덩그러니 펼쳐져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풀과 무너진 담, 그리고 반쯤 허물어진 건물들이 보기만 해도 을씨년스러웠다.
"아니겠지?"
"에이……. 아니겠죠. 설마."
"차라리 공터가 낫겠네. 공터는 무너지지라도 않을 테니까. 저건 창문이라도 한 번 잘못 건드리면 폭삭 주저앉겠는데?"
"……화산이 예전 같은 거지 문파도 아니고, 설마."
모두가 사색이 된 얼굴로 현영을 바라보았다.
당장 속가문을 열어야 할 판인데, 설마 저런 흉가를 인수하지는 않겠지, 설마!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유이설이 했던 말이 쉼 없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 불에 기름.
그때, 현영과 청명 앞에 선 장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예! 여기가 가격은 정말, 저엉말 저렴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보다 더 싼 곳은 찾아볼 수도 없지요! 하지만……. 하지만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좋은 입지의 전각이 이리 흉가가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뭔데요?"
슬쩍 주변을 둘러본 장년인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전에도 몇 번이나 이곳을 사서 들어간 이들이 있었지만, 다들 귀신을 목격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 버렸습죠."
……귀신?
백천 일행이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흉가에, 귀신.'
'제발! 제발 좀!'
'제발 청명아! 장로님! 안 돼!'
그런 그들의 마음이 통하기라도 했는지, 청명이 드물게 깜짝 놀란 얼굴로 장년인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귀신이 나온다고요? 여기에?"
"……예. 괜히 말없이 팔았다가 나중에 화를 내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소문이 있습니다."
"세상에, 귀신이라니!"
청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정말 싸겠네요!"
"……."
"그렇죠?"
"……저렴하긴 한데……. 하지만 진짜로 그런 소문이……."
청명과 현영이 서로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됐구나."
"됐네요."
"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곳은 귀신이 나오는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인부들도 일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건 괜찮아요."
"……예?"
청명이 빙그레 웃으며 뿌듯하게 말했다.
"인부 같은 건 남아돌거든요. 그것도 더없이 튼튼한 것들로."
"……."
하필이면 그때 청명과 눈이 마주친 백천 일행의 얼굴이 너나 할 것 없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계약합시다!"
울려 퍼진 현영의 밝은 목소리가 모두의 앞날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지옥 같다.'
'진짜 다 죽었으면 좋겠다.'
화산이든 화산이 아니든 청명이 있는 곳에 그들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