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아직은 그리 말하지 마라. (4)
화산의 제자들은 하루가 지나도록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몸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세상에……. 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다가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니까!"
"왜?"
"그냥 가볍게 일어나려고 했는데 몸이 천정까지 솟아 버리더라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자소단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아니, 이들에게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영단을 하나 먹은 것만으로 육체가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단순히 내력이나 늘어날 줄 알았건만, 이건 숫제 몸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꾼 느낌이었다.
특히나 과거 청명이 준 매화단을 먹은 이들은 자소단이 얼마나 대단한 영단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측간은 여전히 붐비나?"
"말도 마. 나는 오늘 소변을 일다경은 봤다."
"그럼 죽어, 인마! 어디서 헛소리야!"
"진짜라니까?"
대부분의 제자들은 백천 일행들처럼 몸의 탁기를 단번에 빼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 며칠에 걸쳐 배출하는 중이었다.
육체의 정화.
수많은 무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경지를 영단 하나 섭취한 것만으로 얻어 낸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무위로 그 수준에 오른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어마어마한 성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 와중에도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식당이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아무도 서로를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모두가 이 기분에 취하고 싶은 것이다.
그 커다란 소음을 진정시킨 것은 누군가 내뱉은 단순한 말 한마디였다.
"이러다가 우리 진짜 예전 화산보다 세지는 것 아냐?"
"……."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소리가 나온 쪽을 바라보았다.
말을 꺼낸 백자 배 제자는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그 말 한마디가 이런 반응을 만들 거라 생각지 못했다는 듯 말이다.
"……."
모두가 입을 다문 것은 그가 한 말이 황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는 저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장문인 현종의 목표가 과거 화산의 영광을 재현하는 거라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그저 적당히 시킨 수련이나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청명에게 머리채를 잡혀 강제로 질질 끌려가는 처지였다.
최근에는 청명이 아니라 다른 사형들이 난리를 치고 있긴 하지만…….
여하튼!
그저 허공에 뜬 꿈 같았던 일이 이제는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인마, 말이라고……."
"아니. 예전의 화산이 얼마나 강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지금 어마어마하게 강해지고 있잖아."
"음……."
"종남도 꺾었고! 사형은 그 무당 놈도 꺾었잖아. 알고 보면 우리도 엄청 센 걸지도 몰라."
"청명이한테 한 대 맞으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거꾸로 말하면 그 청명이를 버티는 것도 우리잖아."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사실 그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른다. 대부분 강호에 나가 스스로의 힘을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저 백천과 청명의 활약을 귀로 들으며 어림짐작할 뿐이다.
백천은 자소단을 먹기 이전에 이미 오룡보다 강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는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또 이곳에 있는 이들은 얼마나 더 강할까?
"확실한 것 하나는……."
백상이 입을 열자 모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꿈이 이제는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거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기억해라. 백천 사형과 유 사매, 그리고 삼대제자들이 왜 운남까지 갔다 왔는지를. 우리에게 영단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녀온 이들이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린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사형!"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숙!"
백상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먹어라! 있는 대로 먹고 죽어라고 수련하는 거다! 그럼 지금 한 말도 언젠가는 꿈이 아니게 되겠지!"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화산의 제자들이 과격하게 음식을 먹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던 당소소가 무척이나 심각한 얼굴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농담이 아니야.'
몸으로 겪어 본 자소단의 위력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당소소조차도 이런 영단이 존재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보라.
정광이 어린 화산 제자들의 눈빛을.
'이만한 내력을 갖춘 이들이 이렇게 많은 곳이 강호에 또 있다고?'
소림이라고 해도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소림을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 그저 짐작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력만 보면 화산은 이제 천하제일의 반열에 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화산의 옛 무학이 더해질 수 있다면?
'정말 꿈이 아니야.'
당소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모두가 의지에 불타고 있는데 자신만 멀뚱히 떨어져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도 화산의 제자니까.
'나도 최선을 다해야지!'
내력은 충분히 갖췄으니 수련만 받쳐 준다면 그녀 역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여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가주의 딸 당소소가 아니라 화산의 여검수 당소소로서 천하에 그 이름을 알리고 싶다.
'내일부터 정말 죽어라고 수련하겠어!'
하지만 당소소는 몰랐다.
청명이 돌아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 * *
"히…… 히이이익."
당소소가 발아래로 보이는 끝없는 낭떠러지에 경기를 일으켰다.
"끄으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으."
"사, 살려……."
콰드득.
누군가 밟은 곳이 부서지며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돌이 후두둑 떨어진다.
"히익!"
"다, 당 사매! 정신 차려!"
들려오는 외침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당소소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위를 꽉 움켜잡았다.
"끄으으으응. 저 미친놈이 없어서 한동안은 이 짓거리 안 해도 됐었는데!"
"몸이 더 좋아졌으니 이젠 좀 편할 줄 알았는데……. 빌어먹을!"
어림도 없다!
당소소가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절벽에 튀어나온 부분을 꽉 움켜잡았다.
"끄응. 끄으으으응!"
그리고 힘겹게 몸을 끌어 올린다.
물론 그녀는 무인이다.
비록 당가에서 비전을 전수받지는 못했지만, 내공은 꾸준히 수련해 왔고, 거기에 어제 먹은 자소단의 기운마저 더해졌다.
아무리 절벽이 가파르다고는 하나 겨우 이 정도도 오르지 못할 사람은 아니었다.
허리에 묶여 있는 이 줄만 아니라면 말이다.
당소소가 떨리는 눈으로 아래를 슬쩍 바라본다.
그녀의 허리에 매어져 있는 줄이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친친 감고 있었다.
허공에 매달린 바위를 보던 당소소가 참다못해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이걸 달고 어떻게 절벽을 올라가! 미친 거 아냐?"
"다, 당 사매! 소리치지 마. 그러다 떨어져!"
"아아아악!"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어 정상 쪽을 바라보았다.
눈에 시뻘겋게 핏발이 선다.
"저 미친놈이!"
어쨌든 한때는 혼인까지 생각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인간인 줄 알고 나니 혼인이고 나발이고 머리통을 깨 버리고 싶어졌다.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화산은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수련은 그렇다 치자.
각 문파에는 고유의 수련법이 있기 마련이다. 설사 그것이 말도 안 되게 과격하고, 말도 안 되게 위험하다고 해도 마땅히 존중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대체 어느 문파에서 삼대제자가 이대제자를 훈련시키는가?
그녀가 알기로 청명은 분명 삼대제자 청자 배였고, 지금 절벽에 오르는 이들 중에는 이대제자인 백자 배도 있다.
그러니 지금 삼대제자가 이대제자를 훈련시키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이해해 볼 수 있다.
당소소의 시선이 슬쩍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향했다.
'왜 안 말리는 거냐고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면, 윗 배분에서 중재가 들어와야 마땅하다.
한데, 그 역할을 해야 할 운자 배는 청명을 말리기는커녕
'허허허. 그렇다고 해도 다치면 안 되지 않느냐. 걱정 마라. 우리가 아래서 지키고 있으마. 떨어져도 덜 다치도록.'
하고 태연한 말이나 내뱉고는 절벽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환장할 노릇 아닌가?
"끄으으으으!"
당소소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을 뻗는다.
"사매! 조금만 더 힘을 내!"
"끄으으으으!"
격려해 주는 사형들이 없었다면 벌써 떨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정상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올랐다.
"끄윽!"
마침내 정상까지 오른 그녀는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기어오른 자세 그대로 탈진해 엎어졌다.
"후욱! 후욱!"
입 안으로 흙이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지만, 지금은 그걸 뱉어 낼 정신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당가주의 딸로서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교육받아 온 그녀가 이렇게 흙바닥에 널브러져 경련하다니.
"끄으으으으. 망할!"
당소소가 양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정상에서 벌어진 참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으으으으."
"끄으으으으."
"주, 죽을 것 같다……. 후윽."
자소단은 화산 제자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함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강해졌다면 그에 걸맞은 수련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허리춤에 매고 올라온 바윗덩어리를 짊어진 채 다리를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는 사형제들을 보며 당소소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거 아냐?'
세상에 이런 수련을 하는 문파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이런 데를 내 발로 들어왔다고?
혼란과 공포와 충격으로 흔들리는 그녀의 눈이 이내, 청명에게로 가 닿았다.
그는 신음을 흘리는 사형제들과는 달리 태연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
딱히 이상할 것 없는 광경이다.
청명은 종종 저런 모습으로 쉬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지금 그가 누워 있는 곳이 백천이 짊어진 집채만 한 바위 위라는 점이었다.
"끄으……. 끄으으……. 아오, 빌어먹을!"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바위 위에서 청명이 육포를 촵촵 씹었다.
"거 속도가 느려진다, 사숙."
"아악!"
짐승 같은 고함을 내지른 백천이 과격하게 다리를 접었다 펴기 시작했다.
"옳지, 오옳지. 잘한다!"
청명이 낄낄대며 웃어젖힌다.
당소소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얼마나 참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가.
'미쳤어. 대체 어디서 이렇게까지 수련을 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되레 몸을 망치는 짓이다. 당가에서는 누구도 이런 식으로 수련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굳은 얼굴로 막 불만을 토로하려던 찰나였다.
"뭐 해?"
"네?"
청명이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안 해?"
"이런 수련은……."
뭔가 말을 하려던 문득 당소소가 입을 다문다.
백천의 옆.
유이설이 백천의 것과 비슷한 크기의 바위를 짊어지고 백천과 똑같은 속도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당소소마저도 감탄했던 그 아름다운 얼굴이 흘러내린 땀과 흙먼지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이설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훈련을 소화하는 데 집중할 따름이었다.
그 광경을 본 당소소가 살짝 주먹을 쥔다.
"왜?"
청명이 묻자 당소소가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저기가 아니라 사형."
"네, 사형!"
"왜?"
"바위 하나 더 짊어져도 되나요?"
"맘대로 해."
"네!"
주변에서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하나 더 찾아낸 당소소가 두 개를 겹쳐 올려 짊어지고는 끙끙대며 수련을 시작했다.
청명은 그 광경을 보며 몰래 피식 웃었다.
'잘 적응하네.'
목표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따를 이가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
"끄으으응."
"으으으으으으!"
"끄으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청명이 혀를 찼다.
"좋은 것도 먹여 놨는데 뭐 그렇게 힘들다고 낑낑대!"
'저 미친 새끼!'
'네가 해 봐, 이 새끼야!'
'죽이고 싶다. 진짜 죽이고 싶다. 죽이진 못해도 등에 칼침 한 방만 놓고 싶다!'
독기에 찬 시선들이 청명에게 쏟아졌지만 청명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육포를 질겅거렸다.
"몸이 좋아졌으면 그만큼 수련을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사숙?"
백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당연히 이렇게 될 일이었겠지!'
뭘 기대했다는 말인가?
그들이 세졌다고 해 봐야 어차피 청명의 눈에는 도토리가 두 배로 커진 것 정도에 불과할 테다. 좀 큰 도토리가 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게다가 저놈은 도토리를 굴리는 데 도가 튼 놈이다.
굴릴 놈들이 튼튼해졌으니 본인이 제일 기뻐하겠지.
이제 청명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버린 백천은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백천의 위에서 청명이 묘한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이걸 따라오네?'
살짝 무리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아무래도 자소단의 효능이 그의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곧 몸뚱어리는 완벽하게 단련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다음 단계인가?"
그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바위 위에서 살짝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몸이 완성됐으면 그다음은 하나뿐이다.
검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 육체에는 그에 걸맞은 검술이 필요하다.
그동안 꾸준히 기초를 단련하고 이해도를 높여 왔으니 이제는 슬슬 이들에게 진정한 화산의 정수를 넘겨줄 때도 되었다.
화산의 정수라면 당연히 화산의 검법!
바로 이십사수매화검법이다!
그런데…….
'이걸 뭐 어떻게 줘야 하는 거지?'
길에서 주웠다고 할까?
끄으으응.
고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