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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48화 (248/1,567)

248화. 아직은 그리 말하지 마라. (3)

"모두 받았느냐?"

"예."

"그럼 지체할 것 없다. 이 자리에서 바로 섭취하고 운공에 들어가거라!"

"예!"

화산의 제자들이 살짝 거리를 벌리고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었다.

과거 화산의 전성기에 비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 많은 이들이 연무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벅차오르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는 현종이었다.

더구나 지금 이들은 모두 자소단을 쥐고 있지 않은가?

'화산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현종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

'이 많은 이들에게 영단을 모두 나눠 준다고?'

한편 당소소는 살짝 질린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들린 영단을 바라보았다.

'대체 여기는 뭐 하는 문파야?'

나름 의술에 조예가 높고 여러 차례 연단에 참여했던 그녀는 굳이 먹어 보지 않아도 이 영단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청아한 향이 흘러나오는 걸로 보아, 못해도 천독단급은 될 영단이다.

그리고 천독단은 그 당가에서도 최고로 치는 영단이다.

그런데 그만한 영단을 이리 간식 나눠 주듯 뿌리는 문파가 있다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이다.

일단 그만한 일을 할 수 있는 문파가 존재할 리가 없고, 설령 영단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어느 문파가 이 귀한 영단을 삼대제자에게까지 나눠 줘?'

사천의 패자라 불리는 사천당가에서도 영단의 향이라도 맡아 볼수 있는 건 가문의 직계, 그중에서도 핵심에 있는 이들뿐이었다.

그 외의 이들은 설사 영단이 남아돈다고 하더라도 감히 영단을 바랄 수 없다.

이유?

아주 간단하다.

한 문파에 있어 영단이란 휘하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상이니까.

그렇기에 문파의 수장들은 영단과 비전무학을 당근으로 사용하여 제자들의 충성을 끌어낸다.

그런데 영단을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대뜸 사람 수대로 분배해 버린다고? 심지어 화산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당소소에게까지?

'멍청한 거야? 아니면 대단한 거야?'

당소소는 겪으면 겪을수록 이 화산이라는 문파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몰락했다 말을 분명히 듣고 왔는데, 문파에는 돈이 넘쳐난다.

과거에 무학을 잃어 약해졌다더니, 청명 같은 괴물이 떡하니 튀어나온다.

대체 이 화산이라는 문파가 어디까지 갈지 감도 잡히지 않는 당소소였다.

'잘 온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곳은 당가와는 다르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됨을 강조하는 당가지만, 당소소가 보기에는 오히려 화산의 제자들이 한 가족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툭툭 던지는 말에서조차 신뢰가 느껴진다.

막연하게 당소소가 생각해 온 가족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도 될 수 있을까?'

이들의 가족이?

당소소가 입술을 꾹 닫고 앞을 바라보았다.

"복용하거라!"

"예!"

현종의 지시에 제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일제히 자소단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백천은 감회가 새로운 얼굴로 자소단을 바라본다.

'이게…….'

사천을 넘어 운남까지 그 고생을 하며 얻어 온 자목초가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은은한 자색의 영단을 바라보던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단을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사르르르.

순식간에 녹아 액체가 되며 뭐라 말할 수 없는 향이 뿜어져 나왔다.

흡사 입 안이 향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미처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에 녹아 버린 영단이 식도를 타고 스르륵 넘어갔다.

백천은 곧바로 눈을 감고 운기를 시작했다.

이미 한번 혼원단을 복용하며 흡수한 경험이 있으니, 딱히 걱정할 게 없…….

'응?'

일순간 그의 몸이 움찔했다.

'다르다!'

뭐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그의 배 속으로 넘어온 영단은 과거 그가 먹었던 영단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혼원단 역시 더없이 청아한 느낌이었지만, 이 자소단은 그런 혼원단조차 탁했다 느끼게 할 만큼 티 없이 맑았다.

마치 산속 깊은 곳의 청정수를 한껏 입에 머금은 기분.

그 맑디맑은 기운이 천천히 백천의 전신을 휘돌기 시작했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영단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굳이 뭔가를 하려 들지 않아도, 기운이 스스로 기맥을 따라 흐르며 녹아내리기 마련이다.

이미 혼원단에서 한번 경험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는 전과 다를 게 없었다. 기운이 스스로 흐르고 또 흐른다. 마치 백천의 몸이 대지가 되고, 기운은 그 대지를 타고 흐르는 강이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차이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응?'

백천이 놀라 육체를 타고 흐르는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움직이지 않아?'

천천히 십이주천을 통해 기운을 단전으로 인도하려 했지만, 몸 안으로 들어온 자소단의 기운은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몇 번이고 기운을 부드럽게 타일러 인도하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요지부동이었다.

'빌어먹을! 이거 청명이 놈이 만들었지?!'

과연 그 주인에, 그 영단이다.

도무지 말을 들어 처먹지를 않는다.

'주, 주화입마인가?'

백천이 기겁을 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자소단의 기운이 돌연 백천의 전신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기분을?

몸 안에 심산유곡의 청정수가 콸콸 쏟아지는 것 같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자소단의 기운의 백천의 몸 안에 있는 탁기(濁氣)들을 모조리 후려치고 걷어차 댄다.

백천은 몸을 떨었다.

'이거 진짜…….'

탁기란 사람이 세상에 얽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기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의 몸 안에 쌓여 기의 운용을 방해하는 노폐물이 되고 만다.

그 탁기를 걷어 낸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그 방식이 과격하기 짝이 없는 게 꼭 누구를 연상케 한다.

'영단에 의지가 있을 리 없는데…….'

왜 꼭 하는 짓이 청명이 놈 같지?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자소단의 기운은 백천의 십이경락에 있는 탁기들을 모조리 찾아 끌어냈다.

맑다.

너무도 맑다.

이 맑은 기운은 탁기와의 공존을 용납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러운 기운이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 쫓아내기를 반복한다.

'아!'

그러더니 다시 한곳으로 뭉쳐 들어, 숫제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위로, 또 위로 향한다.

그곳에 뭐가 있는지를 아는 백천이 몸서리를 쳤다.

'설마?'

기운이 임독양맥으로 솟구친다.

임독양맥. 곧 천문(天問)!

절정의 영역에 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뚫어야 하는 곳.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막힌 천문(天問)은 쉽사리 그 길을 열어 주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과 준비가 있어야만 타통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임독양맥이었다. 어설프게 시도했다가는 되레 크게 내상을 입어 불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소단의 기운은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과격한 기세로 임독양맥을 향해 질주했다.

'제발 적당히 하라고!'

덜컥 겁이 난다.

이 미친 기운은 제 주인을 닮아 뒤를 돌아볼 줄 모른다. 훗날을 기약하는 건 겁쟁이나 하는 짓이라는 듯, 눈을 까뒤집고 임독양맥을 맹렬한 기세로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아앙!

머릿속에서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백천은 멀어져 가는 의식을 억지로 다잡았다.

'아, 안 돼.'

이미 통제권을 잃은 상황이지만, 여기서 의식을 잃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보라.

제 주인을 닮아 반쯤 돌아 버린 기운이 그의 임독양맥을 들이받고 있지 않은가?

머릿속에서 연신 거대한 종이 울리는 듯한 고통에, 백천은 연신 몸을 부르르 떨며 신음했다.

'뭐 이런 걸 만들었어?'

혼원단은 모든 것이 조화로운 기운 그 자체였다. 부드럽게 감싸고, 따뜻하게 포용한다. 그 어떤 이라도 혼원단의 기운과 반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은 뭔가 좀 이상하다.

느낌은 더없이 맑고 익숙한데, 도무지 말을 들어 처먹지를 않고 제멋대로 움직인다. 마치 기운 자체가 의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의지가 연거푸 백천을 들이받고 있다.

쾅! 쾅! 쾅!

'이런 미친!'

임독양맥에 막힌 기운이 발악하며 막힌 혈을 미친 듯이 가격하고 받아 댄다.

쾅! 쾅!

하지만 백천의 임독양맥은 여전히 굳건하기만 했다.

'자자, 청명아. 아니, 기운아.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마련이다. 아직은 아니야. 그러니 이제 그만 포기하고 얌전히 단전으로 돌아가자.'

뭔가 청명을 말리는 것과 비슷하게 되어 버렸지만, 백천은 지금 나름 필사적이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주화입마에 들지도 모른다.

워낙 맑은 기운이라 그럴 가능성이 낮기는 하겠지만,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다.

그 순간이었다.

몇 번이나 임독양맥을 들이받고도 길을 열지 못한 기운이 돌연 꼬리를 말더니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왔다.

'그래!'

거기로. 그래, 인마! 거기로! 단전으로 가라고!

머리에서 내려온 기운은 척추를 따라 내려오더니 결국은 배를 지나 단전 근처까지 다다랐다.

'들어가!'

하지만 기운은 단전의 바로 코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작게 요동쳤다.

'응?'

설마?

아니겠지? 아니지?

두어 번 더 요동을 친 기운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몸 안에서 뭔가 거대한 태풍이 휩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

그리고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기운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솟구쳤다. 그리고 임독양맥을 그대로 냅다 들이받아 버렸다.

'야, 이 미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세상이 터져나가는 듯한 폭음이 들리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눈앞이 아찔해지고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몸 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머리 윗부분이 뜯겨 나가는 것과 흡사한 고통에 백천이 이를 악물고 경련했다.

하지만 그 순간.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무언가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세상이 느껴진다.

그것도 생생하게.

'대체?'

지금 그는 분명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다. 심지어 운기 중이라 소리도 잘 들리지 않고 촉감마저 둔해져 있다.

그런데도 완연하게 느껴진다.

그를 내려다보는 하늘이. 그를 받치는 있는 대지가. 그를 스치고 지나는 공기의 흐름은 물론, 기의 흐름마저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천통(天通).

천문을 열어젖힌 육체는 오감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세상을 받아들인다.

'이, 이게 절정고수가 보는 세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

백천이 그 쾌감에 전율하는 동안, 마침내 임무를 달성해 낸 자소단의 기운은 양맥에 남아 있는 탁기를 모조리 치워 낸 후 의기양양하게 단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스르르 녹아내리며 본래 머물러 있던 백천의 내력과 하나가 되었다.

우우우우우웅.

강대하게 불어난 내력이 경쾌한 기세로 백천의 몸을 일주천하고는 다시 단전에 안착한다.

백천의 눈이 번쩍 뜨였다.

"후우!"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세상이 몇 배는 선명해진 느낌. 그동안 눈을 가린 채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 천을 걷어 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디 시각뿐인가?

저 멀리서 누군가가 숨을 쉬는 소리마저 생생하게 잡힌다.

민감해진 그의 촉각은 몸을 스쳐 지나는 공기의 결마저 정확하게 포착했다.

한 번에 너무도 많은 것을 받아들이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백천은 그 어지러움조차 기껍기만 했다.

'벽을 넘었구나.'

굳이 단계로 표현하자면, 일류를 넘어 절정으로 가는 벽. 그 벽을 마침내 뛰어넘었다. 이제 백천은 말석이나마 저 당가주나 야수궁주가 사는 세상에 들어선 것이다.

'진짜 어마어마한 영단이다!'

벅찬 감격이 몸을 휘감고 돌았다.

혼원단과는 전혀 다른,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이상을 만들어 내는 영단이었다.

"끝냈느냐?"

"예?"

백천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현종을 비롯한 장로들을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

자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운기를 끝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백천이 서둘러 주위를 돌아보았다.

정렬해 있는 화산 제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달라졌다.

분명 달라졌다. 눈에 어린 정광과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큰 효과를 봤는지 알 수 있었다.

백천이 앞을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문……!"

하지만 그가 몸을 일으킨 순간 앞에 서 있던 세 사람이 일제히 후다닥 몸을 물렸다.

"……."

응?

어안이 벙벙한 백천을 보며 현종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서, 성과가 좋았던 모양이구나. 몸 안의 노폐물이 모조리 빠져나온 것을 보니."

네?

노폐물?

백천이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이, 이게 뭐야?"

깔끔하기 그지없던 그의 의복이 거의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그제야 코를 찌르는 악취를 인식한 백천이 헛구역질을 해 댔다.

"우욱. 이거 뭐……. 욱!"

구역질 탓에 눈물이 맺힌 채로 둘러보니 그와 비슷한 몰골인 이들이 몇 있었다.

거기엔 유이설과 조걸, 그리고 윤종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들 시커먼 오물에 빠졌다 나온 꼴로 떨어 대는 모습이 볼만했다.

"으으……."

"내, 냄새 때문에 죽을 것 같습니다."

"목욕. 목욕! 빌어먹을! 목욕!"

응?

방금…… 유 사매가 욕을 한 것 같은데?

게다가 목소리도 평소보다 두 배는 높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백천을 보며 현영이 코를 막은 채 벌컥 소리쳤다.

"당장 가서 씻고 오거라! 냄새가 심해서 참을 수가 없구나!"

"아, 알겠습니다!"

옷이 시커멓게 변한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부리나케 연무장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던 장문인과 장로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윽고 그 시선은 한곳을 향했다.

"어찌 생각하느냐?"

"뭐가요?"

청명이 육포를 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영이 물었다.

"환골탈태를 이룬 것이냐?"

"에이. 무슨 환골탈태예요. 그냥 뭐……. 음, 그냥 속을 다 비운 정도죠."

"……으음. 그래?"

"그런데 뭐 효능은 비슷할 거예요."

"오오. 그렇다면!"

세 사람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청명의 다음 말은 그들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이제 겨우 준비가 끝난 거죠."

"……응?"

현종이 의문 어린 시선을 던졌지만, 청명은 말없이 육포를 씹어 댔다.

이제야 겨우.

제대로 검을 배울 준비가 끝난 것이다.

청명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뒈져 봐야지.'

지금까지는 쉬엄쉬엄했던 거란 사실을 알고도 그리 즐거운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궁금하네.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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