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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18화 (218/1,567)

218화. 지금 화산이라 했느냐? (3)

"이놈이! 어디 물건을 훔쳐! 그거 당장 내놓지 못해!"

"아니에요! 아까 어떤 사람이 준 거란 말이에요! 훔친 것 아니에요!"

"이놈이 어디서 새빨간 거짓말을! 이 곤명 땅에서 다른 이들에게 제 먹을 것을 나눠 줄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당장 그 손 안 푸느냐?"

아이를 후려치던 상인이 콧김을 뿜었다.

"오냐! 내놓기 싫다는 말이지? 네놈이 손목이 잘려 나가도 그 손을 안 푸는지 어디 보자!"

그러더니 끝내 허리에 찬 커다란 식도를 뽑아 들었다. 아이의 손을 틀어쥐고는 식도를 높이 쳐든 그 순간이었다.

"뭐 하는 짓이오!"

아이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윤종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식도를 든 상인의 손을 콱 움켜쥐었다.

"이건 또 뭐……!"

뜻밖의 방해에 화를 내려던 상인은, 자신의 손을 조여 오는 힘에 재빨리 입을 닫았다. 순식간에 말투가 누그러졌다.

"아, 아니, 그게 이유 없이 괴롭히는 게 아니옵고, 이놈이 만두를 훔쳐서……."

"훔치기는 뭘 훔쳤단 말이오! 내가 조금 전 이곳에서 사서 나눠 준 것인데!"

"……나, 나으리께서 주셨단 말입니까?"

윤종의 눈이 사나워졌다.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아이를 때리다니!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나으리! 외, 외지인이신가 본데……. 곤명에는 더는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이가 없어서, 당연히 훔쳤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윤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물건을 훔쳤다고 아이의 손을 자르려 들다니.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소!"

"거, 겁만 주려고 했습니다! 진짭니다!"

상인이 죽는소리를 하자 한참 동안 상인을 노려보던 윤종이 그제야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이곳 인심이 그리 좋지 않소?"

상인이 울상으로 손목을 어루만지며 눈치를 살피다 허리를 조아렸다.

"어, 어찌 남에게 먹을 것을 주겠습니까? 제 입에 넣을 것도 없는데요."

"으음."

"다들 굶어 죽을 판입니다. 오는 길에 보셨잖습니까."

윤종이 한숨을 내쉰다.

"상황은 알겠으나, 아이에게 함부로 손을 댄 건 잘못이오!"

"죄, 죄송합니다."

엄히 일갈한 그는 상인을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쓰러진 아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괜찮으냐?"

"……저, 저는 괜찮은데……."

입술이 터지고 여기저기 까진 아이가 다친 곳은 돌볼 생각을 하지 않고 제 손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짓밟히는 바람에 뭉개지고 흙투성이가 되어 버린 만두를 보던 아이의 퀭한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동생 가져다줘야 하는데……."

윤종이 안쓰러운 듯 웃으며 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말거라. 만두는 내가 새걸로 또 사 주마."

"지, 진짜요?"

"그럼."

그 광경을 보던 조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사형은 도인이시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어려운 이의 사정부터 챙기다니.

자목초에만 정신이 팔려 주변의 어려움을 돌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대사형을 본받아 나도…….'

"걸아."

조걸이 재빨리 대답했다.

"예! 사형!"

"돈."

"……예?"

윤종이 고개를 돌린다.

살짝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그가 투명하고 무구한 눈으로 조걸을 바라보았다.

"내 쌈짓돈은 다 썼다."

"……."

"주머니 까 봐라."

"……."

"얼른."

사형.

왜 그 자비심이 사형제에게는 발휘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싸그리 털렸다.

주머니에 든 돈은 물론이거니와 소매에 꿍쳐 둔 돈, 심지어 버선에 끼워 둔 최후의 비상금까지 싹 다 털렸다.

'청명이 놈에게 이상한 것만 배우셔서는!'

어떻게 사람을 이리 먼지 한 톨 남지 않게 깨끗하게 털어 버릴 수가 있는가?

"……사형. 그걸 다 가져가 버리면 저희는 돌아갈 때 뭘 먹고 돌아갑니까?"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경비는 사숙께서 가지고 계시잖느냐?"

"……그건 그렇지만, 저희도 돈 쓸 곳이 있는데……."

"돈 쓸 곳? 운남에 돈을 쓸 곳이 있더냐?"

없죠.

아니, 없었죠.

말은 맞는 말이다. 사천에서 출발하여 곤명에 도착하는 동안 제대로 된 도시를 본 적이 없다. 본 것이라고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들판과 산지뿐이다.

"사천에 돌아가면 집에 가서 돈을 타 쓰면 되지. 부잣집 아들놈이 뭐가 문제라고."

"그, 그래도……."

윤종의 고개가 조걸을 향해 다시 슬쩍 돌아온다.

"그래도?"

"……아닙니다."

윤종의 눈에서 청명의 똘기를 보고 만 조걸이 조용히 입을 닫았다.

'아니, 뭔 눈이…….'

자칫 입을 잘못 열었다가는 죽빵이 날아올 것 같다.

'다들 이상해졌어.'

그 자애로웠던 윤종은 어디로 갔는가?

슬픔에 잠긴 조걸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윤종은 조걸에게서 강탈(?)한 돈으로 곡식과 만두를 사서 아이들에게 퍼 주고 있었다.

아무리 나눠 주어도 아이들의 수는 줄지를 않았다.

"하, 하나만 더 주세요."

"여기 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정말 먹어도 돼요?"

"많이 먹어라. 배고프면 내일도 나오거라. 내일도 줄 테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윤종이 살짝 입술을 깨문다.

넝마 같은 옷 사이로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가 보인다. 아이는 만두를 잡자마자 입에 허겁지겁 밀어 넣더니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뭐 하느냐! 가서 물이라도 떠 오지 않고서!"

"넵!"

조걸은 두말없이 우물가로 달렸다.

청명이 사형도 몰라보고 패악질을 부릴 때나, 화산을 뒤집어 놓을 때도 윤종은 한숨을 내쉴지언정 화는 내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저토록 화를 내니 청명이 화를 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쥐 죽은 듯, 시키는 대로 하자!'

조걸의 생존 본능이 그렇게 속삭였다.

우물에서 물을 떠 온 조걸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양손으로도 다 들지 못할 만큼의 만두와 곡식을 사 왔건만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윤종은 비어 버린 자루의 바닥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아……."

곡식 자루가 모두 비어 버렸다는 것을 안 아이들의 눈에서 순식간에 생기가 사라진다.

윤종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보통 아이들은 생각이 짧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이유를 따져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받던 것이 자신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화를 내고 생떼를 부려야 한다. 윤종의 사정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이 아이들은 이런 것에 익숙하다는 듯 그저 울먹일 뿐 윤종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그게 윤종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획 돌려 조걸에게 말했다.

"더 사 오거라."

"사형. 쌈짓돈은 다 털지 않았습니까? 이제 돈이 없습니다."

"숨겨 둔 것 없느냐?"

"속곳에 있는 비상금까지 다 털어 가셨잖습니까! 이제는 진짜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습니다."

"……그래?"

윤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울먹이던 아이들이 입술을 꽉 깨물곤 되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저희 배 안 고파요."

윤종의 이마에 핏대가 선다.

그가 요대를 잡고는 허리에 찬 검을 검집째로 뽑아 들었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겁을 먹은 듯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윤종은 말없이 그 검을 조걸에게 내밀었다.

"가서 이걸 팔고 곡식을 사 오거라."

조걸의 얼굴이 굳었다.

"사형, 이건 매화검입니다!"

"나도 눈이 있다."

"사형! 사문의 신물을 제멋대로 판다면 징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징계라고 했느냐?"

"예."

"장문인께서, 왜 검을 팔아 아이들을 먹였느냐고 화를 내신다 이 말이냐?"

"……어?"

아니지.

그분이 그럴 분이 아니시지.

되레 너는 칼 안 팔고 뭐 했냐고 조걸에게 화를 내고도 남으실 분이지.

"긴말할 것 없다. 나는 검수이기 전에 도인이다. 사람과 싸우는 칼을 지키기 위해서 아이들이 굶주리는 걸 지켜볼 수는 없다. 빨리 가서 이걸 팔아 곡식을 사 오거라."

"사, 사형. 하지만……."

완강한 말에도, 조걸이 이것만은 따를 수 없다는 듯 머뭇거리자 윤종의 입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얼른!"

그때, 어쩔 줄 모르는 조걸에게 구원자가 등장했다.

"무슨 일이더냐?"

"사, 사숙!"

백천을 발견한 조걸과 윤종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백천은 윤종의 손에 들린 곡식 자루와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며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 봐야 할 것 같구나."

윤종이 마른침을 삼키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잠시 후.

설명을 모두 들은 백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침음하였다.

"윤종."

"예, 사숙."

윤종이 고개를 숙인다.

"네 마음은 잘 알겠다만, 가뭄으로 말라 버린 논에 물 몇 방울 떨어뜨린다 한들 바뀌는 것은 없다. 알고 있느냐?"

"……예. 압니다, 사숙."

침착하게 대답하는 윤종의 눈을 본 백천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알지만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뜻이구나."

"죄송합니다."

윤종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

좋은 마음으로 베푸는 것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그들의 목적은 곤명에서 눈에 띄지 않고 자목초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리 곡식을 나눠 주고 일을 벌인다면,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게 된다. 백천이 윤종에게 화를 낸다고 해도 변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서둘러라."

"예?"

백천이 품 안에서 전낭을 꺼내 조걸에게 던졌다.

엉겁결에 전낭을 받아 든 조걸이 눈을 끔벅였다.

"사숙?"

"곤명 상가에도 곡식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일단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사거라."

"괘, 괜찮겠습니까?"

"임무는 물론 중요하다."

백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나,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헐벗은 이들을 외면했다고 하면 장문인이나 장로님들이 잘했다 하시겠느냐?"

잠깐 말을 멈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잘못된 게지. 나는 화산의 영광을 바란다. 하지만 그 화산의 영광은 협의가 없이는 무의미하다. 우리가 협의를 내려놓는다면 화산이 다른 문파들 위에 설 의미가 어디에 있느냐?"

조걸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나도 상황을 가리지 않고 협의만 좇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지금은 별문제가 없을 것 같구나. 그러니 서둘러라."

"예?"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별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서두르라니?

조걸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백천이 살짝 껄끄러운 눈으로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청명이 놈이 알기 전에, 어서!"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조걸이 부리나케 곡식을 사러 달려갔다.

남은 백천과 윤종은 혹여나 멀리서 청명이 오지 않는지 초조하게 살폈다.

"여기 있다!"

"여기도 있습니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 서두르지 마세요!"

커다란 곡식 포대를 가운데에 두고, 윤종과 조걸, 그리고 백천이 함께 곡식을 나눠 주었다. 분명 모여 있던 아이들에게만 나눠 주었었는데, 어떻게 소문이 퍼진 건지 다른 아이들까지 구름처럼 몰려왔다.

"애들이 이렇게 많았습니까?"

"곤명은 큰 도시다. 다들 굶주려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뿐이지."

"아무래도 곡식이 턱없이 모자랄 것 같은데……."

백천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지."

백천이 몰려드는 아이들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평소 스스로 자비롭다 자부하는 이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꾀죄죄한 몰골을 보니 참을 수가 없다.

일행을 통솔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시선을 끌어 버린 윤종을 탓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가 먼저 하지 못한 일을 해 준 윤종에게 고마울 지경이다.

"빨리 빨리 끝내자꾸나!"

"예! 사숙!"

윤종이 만두를 나눠 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많이 먹어라."

"가, 감사합니다."

큰 눈망울이 살짝 겁에 질려 있다. 이리 음식과 곡식을 나눠 주고 있음에도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는다.

이들이 그만큼 많이 시달렸다는 뜻이리라.

"점점 더 많이 오는 것 같은데요?"

"이젠 슬슬 어른들까지도 오는구나. 음……."

백천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이목이 집중되고 만다.

'차라리 곡식을 여기에 두고 가면…….'

안 된다.

그럼 사고가 몇 번은 날 것이다. 아비규환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한 톨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게 될 것이다.

그럼…….

그때였다.

"웬 놈들이냐!"

곡식을 나눠 주던 세 사람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

백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상의를 반쯤 가린 백색의 무복. 그 위에 걸쳐진 짐승의 가죽.

'야수궁…….'

어느새 나타난 야수궁의 문도들이 화산의 제자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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