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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94화 (194/1,567)

194화. 갑자기 너무 거물이 나오시는데? (4)

청명과 당군악이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청명을 응원하는 이들은 당연히 긴장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숙……."

윤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당가주님은 엄청 강하겠죠?"

"……그렇겠지."

"얼마나 셀까요?"

백천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얼마나?

어려운 질문이다.

"천하에서는 모르겠지만 사천에서는 못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겠지."

"……그렇게나."

윤종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다.

세 손가락이라니.

사천 땅이 얼마나 넓은데! 게다가 사천에는 구대문파인 아미파와 청성파도 있다. 그런데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단 말인가?

"그런 사람을 청명이 상대할 수 있습니까?"

"……."

백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모른다'였다.

상대적인 것을 잴 때는 기준과 잣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백천이 윤종의 강함을 논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윤종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윤종의 강함을 알 수 있고, 그를 기준으로 윤종과 비슷한 이들의 강함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군악은?

'그저 까마득하기만 하지.'

백천이라는 짧은 잣대로는 도무지 저 드높은 당군악의 힘을 잴 수 없다. 그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결론만 나올 뿐이다.

그만큼이나 당군악은 강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청명도 마찬가지 아닌가?'

백천이라는 잣대로 잴 수 없는 건 청명 역시 동일하다. 강함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맞붙는데 그 결과를 어찌 예측하겠는가?

그저.

"이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역시나……."

"하지만 십 초를 버티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

백천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평범한 후기지수라면 당가주의 십 초는커녕 일 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청명이 놈은 평범한 후기지수가 아니잖으냐."

백천의 눈이 청명의 등을 응시했다.

'눈도 깜빡이지 말고 지켜보라고?'

백천은 알고 있었다.

청명이 마음만 먹는다면 당군악과의 비무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강함을 증명하는 방법이 반드시 비무만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청명은 오히려 당군악을 도발해 이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들더러 지켜보라 한다.

왜?

'망할 놈 같으니!'

백천이 이를 갈았다.

화산에 가장 모자란 것.

하나는 내력.

또 하나는?

뻔하다.

'절대적 고수.'

화산의 무력을 채워 줄 강자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화산의 제자들이 보고 배울 만큼 드높은 지향점이 되어 줄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운검이 있고 현상이 있지만, 그들은 제자들에게 절대의 고수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 줄 수 없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 화경에 접어든 이가 얼마나 강한지 이해시킬 도리가 없다.

그렇기에 화산의 제자들은 그저 짐작할 뿐이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몸으로 실감하지 못하는 강함을 그저 더듬어 짐작하고 목표로 삼아 왔다.

그런 화산의 제자들 앞에 마침내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의 고수가 나타난 것이다.

백천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오냐.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마.'

아무리 정확하게 짐작한다고 해도 직접 보는 것과는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다.

이 승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백천은,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확신을 담고 백천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당군악은 자신의 앞에 선 청명을 보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모르겠군.'

웬만한 이는 이리 마주 서면 어느 정도 그 격이 보이기 마련이다. 자신보다 약하다, 혹은 강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청명은 말 그대로 모호함 그 자체였다.

텅 비어 있는 듯하지만, 또한 뭔가 빨려 들어갈 듯 깊어 보이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지만, 때로는 당군악마저 흠칫하게 만드는 노회함이 배어난다.

'괴이하다고 해야 할까?'

한 사람에게서 어찌 이리 다양한 면모가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건 호승심이 아니다. 그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당군악은 대체 이놈의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그가 아주 어릴 적, 그의 아버지가 꽁꽁 싸맨 선물을 들고 왔을 때의 기분 같았다. 그 싸맨 포장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열어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잠도 이루지 못할 듯했었다.

'음?'

당군악이 새삼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최근에 이리 흥분한 적이 있었던가?'

기이한 일이다.

이건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당군악은 낮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가 느끼고 있는 흥분의 근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십 초다."

이건 청명에게 확인을 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당군악 스스로가 이 승부의 목적을 명확히 하려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지 않으면 흥에 취해 버릴 것 같으니까.

"십 초를 버텨 낸다면 나는……. 아니, 당가는 너를 인정할 것이다."

"뭘 새삼스럽게."

청명이 손을 내밀고는 까딱거렸다.

"시작하시죠. 선수는 양보할 테니까요."

당군악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당돌하군."

다른 이가 감히 자신 앞에서 이런 식으로 굴었다면 당군악은 절대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저 청명이 그리 고깝지 않았다.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인가?'

그렇다면 미울 이유가 없지.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오고 실력은 노력에서 나오니까.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무인이 자신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

항상 기에 눌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자신의 아들들보다는 청명이 백배 낫지 않은가?

"네가 내 아들놈의 비도술을 파훼했다고 들었다."

"그거 조걸 사형이 한 건데요?"

"……마찬가지겠지."

"네? 전혀 다른데요?"

"……별다를 것 없다."

청명이 묘한 눈으로 당군악을 바라본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그가 알던 당가 놈도 겉으로는 엄청 근엄한 척하는데 알고 보면 허당이었다. 어쩌면 당군악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같은 비도술로 상대하겠다."

"오? 한번 보여 준 것을요?"

"같은 비도라고 생각하느냐?"

청명이 씩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잘 아는군."

똑같은 비도술이라고 해도 같은 비도술일 수 없다.

같은 검이라 해도 조걸의 검에서 펼쳐지는 것과 백천의 손에서 펼쳐지는 것, 그리고 청명의 손에서 펼쳐지는 것이 모두 다르다.

그렇듯 당군악이 펼치는 비도술을 당잔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게 실력이니까.

당군악이 소매 안으로 손을 넣는다. 다시 빠져나온 그의 손에는 조금은 낡아 보이는 비도가 들려 있었다.

"……."

청명이 뚫어져라 당군악의 손에 들린 비도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조금 굳은 얼굴로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오랜만에 보는군.'

저 유엽비도.

"이 비도로 너를 상대해 주는 것을 영광으로 알 거라. 이 비도는 길고 긴 당가의 역사에서도 가장 완벽한 비도술을 구사했던 분의 애병이니까."

청명이 가볍게 웃었다.

글쎄. 그 비도에 관해서는 그쪽보다는 내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말이지.

모를 수가 없다.

저 낡고 손때 묻은 비도. 저 비도가 바로 당보의 애병이었으니까.

추혼비(追魂匕).

'당가로 돌아갔구나.'

당보의 애병이 당군악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진다.

청명이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영광이네요."

"영광?"

파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가공할 파공음과 함께 당군악의 손에서 발출된 추혼비가 말 그대로 빛살처럼 날아들어 청명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르르륵.

스쳤을 뿐인데도 뺨이 길게 갈라지며 붉은 선혈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당군악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영광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지. 이건 영광스러운 죽음은 아닐 테니까."

당군악의 말에, 청명이 가만히 손을 들어 뺨에 흐르는 피를 가볍게 훔쳤다. 그리고 손끝에 묻은 피를 혀로 핥는다.

"아으."

그러더니 질색이라는 표정으로 손을 털어 낸다.

"퉤퉤! 에이, 입맛 버렸네."

아무래도 피 맛에는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손끝에 남은 피를 대충 옷에다 문질러 닦은 청명은 피식 웃고는 당군악을 보았다.

"일 초예요."

"……뭐라?"

"공격 한 번 한 거라구요. 이제 아홉 번 남았어요."

"허?"

당군악이 멍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본다.

얼굴 바로 옆으로 그가 발출한 비수가 지나갔다. 그 위력과 속도를 똑똑히 보았을 터, 지금 당장 비무를 포기하겠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을 판에.

이제 구 초가 남았다?

'도무지 모를 놈이로군.'

까드득.

당군악의 손에 잡힌 두 자루의 추혼비가 서로 마찰하며 거슬리는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구 초라."

당군악의 서늘한 눈이 청명을 응시한다.

"네 목숨을 빼앗기에는 모자라지 않은 수 같은데?"

"아니요. 후회할 걸요? 어설프게 한 수를 낭비해 버렸다고 말이죠."

"너는……."

"알려 드리죠."

스르르릉.

청명의 손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그게 왜 실수였는지. 지금부터 이 검으로."

그와 동시에 청명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진다.

천천히 들어 올려진 검이 당군악을 겨눈다.

청명의 검 끝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당군악은 저도 모르게 비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가슴속에 차오른 낯선 감정에 낯빛이 굳어졌다.

'이 감정을 뭐라 하더라?'

……그래.

섬뜩함이었지.

당군악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아들보다 어린 아이의 검에 섬뜩함을 느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군악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졌다.

'나는 독왕 당군악이다.'

자존심이 살짝 구겨진 당군악이 진심으로 살기를 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봐줄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그의 비도를 막아 내지 못해 죽는다면 청명은 거기까지인 놈이다. 그런 이 하나 죽였다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하나 만약 청명이 그의 비도를 모두 막아 낸다면?

'당가는 몇십 년 만에 진정으로 손님을 받게 되겠지.'

인정하고 대접해야 할 손님을 말이다.

그러나…….

까드드드드득!

당군악의 눈이 무시무시한 광망을 뿜어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내력을 머금은 추혼비 한 자루가 다시 한번 발출되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다.

당군악의 손끝에서 출발한 추혼비는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청명을 향해 쏘아졌다.

카아아아앙!

그 순간 청명이 검을 부드럽게 휘두르며 날아드는 추혼비를 후려쳐 쳐 낸다.

방향이 뒤틀린 추혼비가 청명을 스쳐 지나가 뒤쪽에 있는 전각 기둥을 뚫고 들어갔다.

동시에 당군악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진다.

'쳐 냈다고?'

이 나의 추혼비를?

'대체?'

그가 발출한 비도는 그저 빠르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그가 밀어 넣은 내력이 과할 정도로 담겨 있었다.

어설프게 쳐 내거나 막으려 했다가는 검이 부러져 나가고 추혼비가 목에 틀어박혔을 것이다.

하지만 청명은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의 추혼비를 쳐 내어 방향을 틀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짐작할 이가 이곳에 단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당군악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어린다.

"내가 너를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이군."

"말했잖아요. 후회할 거라고."

"그렇지. 그러니……."

순간, 당군악의 양 소매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 주변에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끓어오른 진기가 주변의 기운마저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 뒤쪽에 있던 화산의 제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훌쩍 물러났다.

청명조차도 움찔하여 발을 뒤로 뺀다.

당군악이 양팔을 좌우로 벌리며 일갈했다.

"이제부터는……."

독왕의 노기가 청명을 그대로 덮친다.

"전력을 다해 상대해 주마!"

"……그건 좀 심하지 않아요?!"

농담을 모르시네, 저 양반?

옛날 당가는 안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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