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내 물건 건드리는 놈들은 다 뒈지는 거야! (5)
"따라붙습니다!"
"빌어먹……. 무량수불!"
허산자의 입에서 욕지기가 흘러나오다 급히 도호로 바뀌었다.
그만큼이나 지금 마음이 다급하다는 의미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다는 말인가?'
검총에 들어오기까지는 별게 없었다. 아니,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검총을 노리고 모였던 이들이 모조리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허산자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중 무당의 적수가 될 만한 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이들의 수가 생각보다 적고, 위에 모인 이들 중에서도 강자들만이 진입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얼핏 생각한다면 검총으로 진입한 이들의 수가 적다는 건 무당에게 희소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오묘한 면이 있어서 그리 단순하게만은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인원이 많다면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인원이 적다면 의견의 교환이 쉬워지는 법이다. 특히나 서로를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는 강자들이 모인다면 더더욱.
그 결과 무당은 지금 검총에 진입한 이들의 연합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저들이 일단은 무당이 검총을 파훼하는 것을 막아 내자 합의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연합의 방해 공작은 무당에게도 확실한 위협이 되었다.
허산자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난다.
"뭐가 이리 넓단 말이더냐!"
"구조상 곧 끝이 보일 것입니다!"
"으으음!"
그럼에도 허산자의 얼굴은 도무지 펴질 줄 몰랐다.
'빌어먹을. 약선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곳을 만들었단 말이더냐?'
귀물이 있는 곳에 위험한 함정이 있는 일이야 빈번하다. 귀물을 자신의 후예들에게 남기지 않고, 굳이 은밀한 곳에 숨겨 두는 이들치고 괴팍하지 않은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이들은 대개 자격이 있는 자만이 자신이 남긴 물건을 얻을 수 있다 여긴다. 그래서 그 자격을 시험하기 위한 함정을 제멋대로 설치해 둔다.
하지만 이곳은 약선의 무덤이 아닌가?
약선이 그 괴팍한 이들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함정이 가득 도사린 무덤을 만들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고약하기 짝이 없군!'
이미 허산자는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겼다. 선두에 선 만큼 약선의 함정도 그가 가장 먼저 받아 내야 했다.
쏟아져 나오는 강침. 갑자기 바닥이 꺼지는 무시무시한 함정. 그 외에도 전신의 털이 곤두설 만큼 괴악한 함정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앞에는 함정이 기다리고 뒤에서는 그들을 저지하려는 자들이 눈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쫓아온다. 짧지 않은 그의 삶 중에서도 이토록 고통스러운 상황은 거의 없었다.
허산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건 우연히 벌어진 상황이 아니다.'
자꾸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조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인의장막으로 저들의 진입을 막아 주거나, 아니면 함께 검총 안으로 들어와 저들의 발을 묶었어야 할 이들이 아무도 검총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설마 그 어린놈이……?'
화산의 그 청명이라는 놈이 장보도를 뿌려 군웅들을 모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혹시 이런 상황도 청명의 의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허산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너무 나간 생각이다. 그 어린놈이 그토록 먼 미래를 보고 상황을 만들 수는 없다. 머리야 빠릿빠릿 돌아갈 수 있다지만, 강호인들의 특성을 예상하고 판을 까는 건 강호에 대한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지금 남영에는 화산의 윗대들이 오지 않은 상황 아닌가?
그 화정검인가 하는 백천이 제자들을 이끌고 있다. 그런 이들이 이런 상황까지 내다봤으리란 건 너무 과한 망상이다.
"장로님! 압박이 거셉니다!"
"으음."
허산자가 무겁게 침음하였다.
"허공!"
"예, 사형!"
"후방에 오는 이들을 최대한 막아라. 제자들을 이끌고 저들의 발을 묶으란 말이다!"
"사형께서는?"
"나는 몇몇을 이끌고 빠르게 전진하겠다."
"알겠습니다!"
허공진인이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진현! 무길! 무평!"
"예! 장로님!"
"따라와라! 우리가 혼원단을 손에 넣는다!"
"예!"
허산자가 재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후방을 견제하며 시간을 끄는 것은 절대 상책이 될 수 없다. 허산자를 비롯한 몇몇이 빠지는 것만으로도 남는 이들에게는 큰 부담이겠지만, 지금은 다소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혼원단을 손에 넣는 게 먼저다.
거리를 벌리며 앞으로 박차고 나가던 허산자가 돌연 이를 악물었다!
"숙여라!"
파팟! 파파파팟!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앞쪽에서 날카로운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든다. 화살촉이 녹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아하니, 극독이 발려 있는 게 분명했다.
"약선!"
허산자의 검이 날아드는 화살들을 사방으로 쳐 낸다. 면면부절 이어지는 그의 검은 단 하나의 화살도 허락지 않았다.
"약선이라 불리는 이가 극독에 암기라니! 이곳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장로님 앞쪽에 인기척이 있습니다."
진현의 말에 허산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건만, 인기척이라는 게 대체 무슨…….
그 순간이었다.
달려 나가던 허산자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허산자가 당황한 것은 사람이 들지 않은 이 검총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움직이고는 있는데,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이라면 당연히 생기가 있어야 할 텐데,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대체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무어란 말인가?
그으으으.
그으으으으.
안쪽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에 허산자는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움직이는 것들의 정체를 확인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격한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너무도 확실하다. 수도 없이 들어 왔으니까.
"……강시(?
尸)."
죽은 시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눈에 생기가 없고, 피부가 잿빛으로 변해 버린 시체가 어기적어기적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보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거부감이 그들을 덮친다.
허산자가 분노와 경악을 담아 소리쳤다.
"대체 이곳은 뭐란 말이냐!"
하지만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자, 장로님! 옵니다!"
"빌어먹을!"
허산자가 검을 움켜잡았다. 다가오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이 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죽어서도 쉬지 못하는 망자들이다! 가엾게 여겨 잠들게 해 주어라!"
"예! 장로님!"
허산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가, 약선!'
어쩌면 그가 약선에 대해 잘못 판단했던 건지도 모른다. 혹여 그렇다면…….
'어쩌면 이곳에서 살아 나가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허산자는 머릿속을 파고드는 잡념을 날려 버리고, 도호를 외며 강시들에게 달려들었다.
* * *
억울하다.
홍대광은 미칠 듯이 억울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뭐가 그리 억울하냐고?
'잘못은 했지.'
그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잘못을 해도 그렇지.
"내가 어른인데!"
"확, 마!"
청명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순간 움찔한 홍대광이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어휴, 승질 같아서는 확 그냥!"
지금 청명이 예전 매화검존의 몸이었다면, 홍대광은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몸으로 사람을 패려고 하면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을 상대로는 미묘하게 거리낌이 생긴다.
그래서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도 모르고 저리 억울한 얼굴이라니.
"끄응. 내가 속이 터져서 원."
그런 청명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홍대광은 서글픈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거라고는 칼날 같은 시선뿐이었다.
"내 저 인간 언젠가는 사고 칠 줄 알았지."
"확 묻혀 버리지. 여기서 화산신룡한테 맞아 뒈지면 과분하지! 과분해!"
"어쩌다가 분타주랍시고 저런 인간을 만나서는!"
"뒈지려면 혼자 뒈지지!"
서글프다.
지금 저 비난을 날리는 이들이 화산의 제자들이 아니라 그의 수하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서글펐다.
분타원들이 날리는 독설과 쌍욕을 실컷 얻어먹으면서 홍대광이 눈가를 문질렀다. 그래도 어둑어둑한 암실이라 멍든 눈가가 잘 보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내가 이래서 거지새끼들이랑은 상종을 안 하려고 했는데!"
"……거지, 거지 하지 마라. 듣는 거지 기분 나쁘다."
"그럼 거지 하지 말든가!"
"……."
지금은 뭔 말을 해도 욕밖에 들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무는 홍대광이었다.
"여하튼……."
청명이 홍대광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또 구박할 게 없는지 찾는 모양이다. 서슬 퍼런 시선이 온몸에 쑤셔 박힐 때마다 홍대광이 움찔움찔 몸을 뒤틀었다.
그 모습에서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백천이 슬그머니 청명에게 다가와 화제를 돌렸다.
"여기서 시간을 끌 게 아니잖으냐."
"에휴."
청명이 앓는 소리를 냈다. 마음 같아서는 사흘은 날 잡아 털어 버리고 싶지만, 지금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잘해요."
"……죄송함다."
"쯧."
청명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홍대광을 노려보고는 몸을 획 돌렸다.
"옛날 개방은 안 이랬는데. 왜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냐, 다들."
네가 아는 옛날 개방이 언젠데?
뭔가 억울함과 서글픔이 뱃속부터 북받치는 홍대광이었다. 그때 백천과 윤종이 다가와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위로하지 마. 눈물 날 것 같잖아!"
"이해합니다."
"끅."
홍대광이 고개를 털어 젖히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또 어디야?"
청명이 주변을 둘러본다. 긴 복도 끝에 도달한 곳은 다시 드넓은 석실이었다. 그리고 그 석실의 끝에는 또 새로운 문이 보인다.
"흐으음."
청명이 묘한 눈을 했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사람이 들어온 흔적이 없는데?"
"끄으으응."
청명이 이를 갈았다.
"중간에 옆으로 빠지는 샛길이 하나 있었어. 원래라면 그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어느 거지가 천장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그 '어느 거지'가 어깨를 움츠린다.
검총 밖에서는 나름 개방에서 손꼽히는 인재이자 노련한 강호의 고수로 취급받았었는데, 여기서는 사고만 치는 거지에 불과했다.
"……그럼 뭐가 잘못된 거냐?"
"쯧. 잘못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가 봐야지."
청명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돌아갈 길은 어차피 막혔으니까."
그 말에 다들 표정을 굳혔다.
조금 전까지는 일이 꼬이면 어떻게든 떨어져 내려온 곳으로 다시 기어 올라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후퇴할 방법이 없다. 오로지 전진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
"일단 가 볼 테니까. 바짝 붙어 따라와."
"알았어."
"또 이상한 거 건드리면 손모가지 잘라 버릴 거야!"
"……알았다."
청명이 눈을 부라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한다.
"왜?"
"아니. 비린내 같은 게 나는 것 같아서."
"응?"
"아니다. 들어간다."
청명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전에 지나 왔던 복도와는 다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동굴이 눈앞에 펼쳐졌다.
'좁은 동굴이라는 건 같지만…….'
청명이 살짝 미간을 좁힌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동굴을 타고 들어가던 중이었다.
후드득.
"소리 내지 마."
"응."
후드득.
"소리 내지 말라니까."
"안 냈어."
후드득.
"그럼 이게 무슨 소린데? 내가 냈나? 내가……."
후드득.
청명의 말이 멈춘다. 그리고 그의 고개가 천천히 위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
설마.
그 순간.
마치 동굴 벽면에 새빨간 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작고 붉은 점 수백 개가 동시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
이거 망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