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내 물건 건드리는 놈들은 다 뒈지는 거야! (4)
석실에서 이어진 복도는 생각보다 밝았다.
홍대광은 슬쩍슬쩍 위쪽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야명주를 박아 놨군.'
이곳은 딱히 사람이 이용하라고 만들어 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리 야명주를 박아 넣었다는 건 이곳을 만든 이의 재력이 굉장했다는 뜻이리라.
콰득. 콰득.
"약선이라면 재산이 넘쳐흘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그의 혼원단은 천금으로 거래……."
콰득. 콰득.
"그런데 이게 뭔 소리야, 아까부터."
홍대광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
천장에 거미처럼 들러붙은 청명이 천정에 박혀 있는 야명주를 양손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냐, 화산신룡?"
"보면 몰라요? 돈 벌잖아요."
"……아, 아니."
속에서 천불이 난 홍대광이 청명을 보며 삿대질을 했다. 선두에 설 테니 자기 뒤나 잘 따라오라더니 저게 뭐 하는 짓거린가?
"지금 그게 눈에 들어오냐? 지금?"
"이게 돈이 얼만데! 이런 걸 안 챙기니까 거지로 사는 것 아니에요?"
"내가 돈이 없어서 거지인 줄 알아?"
"그럼요?"
어?
……어. 맞긴 맞지. 돈이 없으니까 거지지.
야명주를 캐낸 청명이 품속에 야명주를 쑤셔 넣는다. 가슴께가 불룩불룩한 것으로 보아 뒤쪽에 있는 야명주를 모조리 챙긴 모양이다.
"돈 많이 벌어 좋겠다."
"아껴야 잘사는 거예요. 화산에 딸린 입이 얼만데."
"……그래."
홍대광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놈은 알면 알수록 알 수가 없다.
"앞쪽에서 무당이 벌써 혼원단을 손에 넣었을 수도 있잖느냐?"
"아닐걸요."
"그걸 어떻게 알아?"
"아직 가고 있으니까요."
홍대광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기파를 느끼고 있다는 건가?'
홍대광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 앞쪽에 일련의 무리가 있다는 느낌이 얼핏 들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어렴풋한 감각일 뿐,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청명은 먼저 앞서간 이들의 존재를 확연히 느끼고 있다는 듯 말했다.
'기감이 얼마나 뛰어나면 그게 가능한 거지?'
홍대광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이 어린 녀석을 만난 이후로는 놀랄 일들뿐이다.
"그래도 그들이 먼저 도착하는 건 사실 아니냐?"
"그렇죠."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야 우리가 좀 편해지거든요."
"응?"
"가 보면 알아요. 어이쿠! 여기도 야명주가!"
다시 천장으로 박차고 올라가는 청명을 보며 홍대광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 새끼를 정말 믿어도 될까?'
어쩌면 목숨을 건 도박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일을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게 아닐까 후회하는 홍대광이었다.
"그런데 여기 복도 점점 좁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윤종의 말에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것 같구나."
처음 문밖으로 나왔을 때는 장정 다섯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너비였는데, 이제는 장정 셋이 어깨를 붙이고 걸어야 겨우 통과할 정도로 좁아졌다.
"일부러 이런 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백천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들의 의문은 곧 사라졌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잠깐!"
"이거?"
일행이 일제히 얼굴을 굳혔다.
'혈향?'
앞쪽에서 짙은 피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청명아!"
"흠. 가 볼까?"
청명이 선두로 달려 나갔다. 화산의 제자들과 개방도들이 일제히 청명을 따라 속도를 높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풍겨오는 피비린내의 정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이거."
백천과 윤종이 우뚝 선 청명의 너머로 보이는 시체들을 보며 입을 꾹 닫았다. 바닥에 여럿이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그들의 입가로 흘러나온 피가 붉은색이 아니라, 거의 검은색이라는 점이다.
"독? 앞서간 자들 중 독을 쓰는 이가 있나?"
홍대광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독 하면 당장 떠오르는 곳은 당문이지만, 강호에 독을 쓰는 이들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아니. 기관이네."
"응? 기관이라고?"
"봐요."
청명이 가리킨 시체를, 홍대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샅샅이 살폈다.
"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세침들이 시체에 빽빽하게 박혀 있다. 그것도 한 방향이 아니라 사방에서 얻어맞은 모양새다.
'이 벽에서 튀어나왔다는 건가?'
소름이 돋는다.
얼핏 봐서는 누구도 이곳에 기관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집중해서 신중히 보아야만 벽에 아주 작은 구멍들이 무수히 뚫려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만약 홍대광이 먼저 이곳을 지났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의미다.
"……약선이 이런 잔인한 기관을 설치할 줄이야."
홍대광은 자신이 뭔가 크게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곳은 검총이다.
하지만 홍대광은 탈검무흔의 정체가 약선이라는 걸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인의(人義)를 위해서 평생을 바쳐 온 그 약선이 자신의 무덤에 이런 잔악한 함정을 설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으면, 이런 깊은 곳에 무덤을 만들지도 않았겠죠."
"그렇긴 하다만."
홍대광이 영 찝찝하다는 듯이 벽과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어쩌면 이번 일은 길보다 흉이 많겠구나.'
홍대광이 살짝 머뭇대는 와중에도 청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처, 청명아."
"왜?"
청명의 태연한 시선이 돌아오자 되레 당황한 건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시체가 있는데.'
그들이 강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지만, 시체를 이리 가까이서 적나라하게 보는 건 처음이다.
강호행을 하는 와중에 간간이 시체를 볼 일이 있었던 백천조차도 미묘한 께름칙함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명에게는 흔하디흔한 일일 뿐이다.
전생에 마교와 전쟁을 하며 시체는 질리도록 봤다. 하루하루 전투가 끝나고 시체가 널린 곳에서 밥을 먹는 게 일상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새삼 시체 조금 봤다고 호들갑을 떨 일도 없다.
"여기 있으면 괜히 중독될 확률만 높아지니까 일단은 가. 그리고 괜히 주변에 뭐 건드리지 마. 위험하니까."
"아, 알았다."
백천이 마른침을 삼키며 조금 서둘러 청명의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이게 강호구나.'
새삼 실감이 난다.
그들은 지금 화산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곳에 있다. 아차 하다가는 목이 달아나고 마는 것이다.
새삼 마음을 다진 백천은 청명의 뒤로 가까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시체들을 넘어 앞으로 전진한다.
"이런 기관이 많이 설치되어 있을까?"
"모르지."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약선이라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하나는 확실해."
"어떤 것?"
"여기가 그냥 보물 창고는 아니라는 거지."
청명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신병을 숨긴다거나, 무덤으로 사용할 거였다면 이런 기관 같은 것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는 이 무덤을 만든 이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 의도가 뭐냐에 따라서 위험도가 달라지겠지.'
청명이 살짝 신중해진 그 순간이었다.
"오? 저거?"
홍대광이 느닷없이 천장 쪽을 가리켰다.
"저기 야명주가 지금까지 보던 거랑 다른데?"
"응?"
청명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지금까지 그가 뽑아낸 야명주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는데, 홍대광이 가리킨 것은 붉은빛을 띠고 있다.
"비싸 보이네."
그러자 청명이 뭐라 말할 틈도 없이 홍대광이 몸을 훌쩍 날리더니 천정에 붙은 야명주를 뽑아내었다.
탁!
바닥에 착지한 홍대광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야명주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붉은색을 띠는 야명주는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은데, 이게 보물일지도……."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응?"
홍대광이 청명을 보며 씨익 웃는다.
"거지로 안 살려면 돈 되는 건 부지런히 챙기라며, 설마 여기 있는 야명주가 전부 네 거라고 하지는 않겠지? 하나 정도는 내가 챙겨도……."
"내가……."
청명의 눈이 희번덕거린다.
"이상한 거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죠?"
"어?"
홍대광이 살짝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본다.
"아니, 뭐 별문제 없는 것……."
그때였다.
쿠릉.
아주 작은 소리였다.
무겁고 둔탁하지만, 크지 않은 소리.
"어……."
쿠르릉.
이윽고 그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홍대광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한다.
"아, 아니……."
쿠르르르릉.
소리가 이제 잡힐 듯 가까워졌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지나 온 복도.
그곳에서 뭔가 커다란 소리가 밀려든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있는 곳이 진동하며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후우."
청명이 짧게 숨을 내쉬고는 빙그레 웃었다.
"뭐 해?"
"응?"
"달려! 뒈지고 싶지 않으면!"
그 말과 동시에 청명이 빛살 같은 속도로 앞쪽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한 화산의 제자들 역시 두말없이 그를 쫓아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다, 달려! 달려라, 거지들아! 빨리이이이이이!"
홍대광이 고함을 치자 영문을 모르던 개방도들도 꽁지가 빠져라 달리기 시작했다.
왜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콰르르르르르르릉!
동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저 끝부터 천장이 통째로. 그리고 천장이 붕괴된 곳부터 토사와 바위들이 물처럼 쏟아진다.
"히이이이이이이익!"
홍대광이 기겁하며 다리에 있는 대로 힘을 주었다.
저기 휩쓸리면 죽는다! 절대 못 살아남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달려라! 거지들아! 죽어라고 달려! 죽는다! 죽는다고! 으아아아아아아!"
"내가 이래서 거지새끼들이랑은 상종을 안 하려고 했는데!"
청명은 달리는 와중에도 버럭버럭 역정을 부려 댔다.
"청개구리를 삶아 처먹었나! 건드리지 말라는데 그걸 꼭 건드려서 이 사달을 내요! 강호에서 굴러먹을 만큼 굴러먹은 인간이!"
당연히 홍대광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으아아아아! 무너진다! 여기도 무너진다!"
"달리라고, 이 거지새끼들아! 뒤처지면 뒈지는 거야!"
"아이고! 분타주 잘못 만나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개방도들의 원성도 하늘을 찔렀다. 이 모든 사달을 만들어 낸 범인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죽어라고 달릴 뿐이었다.
'내가 알았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 망둥이 놈이 그렇게 뽑아 젖힐 때는 별일 없다가. 그가 딱 하나 건드렸는데 그게 이 사달을 내는 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하늘을 원망할 틈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천장이 무너지는 속도가 그들을 따라잡고 있으니까.
설상가상으로 길이 점점 더 좁아져서 이제는 일렬로 달릴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청명이 성질을 부리며 뒤쪽으로 빠진다.
"돌아보지 말고 달려!"
"화산신……."
뻐엉!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려던 홍대광이 자신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청명의 발길질에 눈물을 머금고 전방에 시선을 고정했다.
'맞아도 싸지.'
돌아보지 말라는데 왜 돌아보려고 했을까?
나는 왜 이럴까? 지상에서는 안 이랬는데.
쿠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르릉!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리는 것 같다. 심지어 토사가 쏟아지며 뿜어져 나오는 흙먼지가 뒤통수를 간질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다 죽는다! 달려어어어어어어어!"
홍대광은 숫제 발악을 하며 발에 땀이 나도록 달렸다. 중간 중간 발이 삐끗할 때마다 네 발로 달렸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를 반복한다.
"저기 빛이다!"
"튀어나가! 당자아아아아앙!"
모두의 눈에 끝이 보였다. 복도의 끝을 눈으로 확인한 이들이 마지막 힘을 짜내 있는 힘껏 경공을 펼쳤다.
"으아아아아아아!"
앞선 이들이 모두 밖으로 뛰쳐나가자 홍대광도 빛 속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달렸다.
그리고.
쿠르르르릉!
쏟아지는 토사가 앞으로 고꾸라진 그의 발끝을 스친다.
콰당!
바닥에 쓰러진 홍대광이 반사적으로 몸을 바로 돌렸다.
'됐다!'
정확히 어떤 곳에 들어오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까지는 무너지지 않는 모양이다. 무너지는 건 딱 복도까지였다.
그런데…….
"청명아!"
"이런, 빌어먹을!"
홍대광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발에 토사가 스쳤다는 말인즉, 그가 복도에서 빠져나온 마지막 사람이라는 뜻이다.
"화산신룡!"
홍대광이 기겁을 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명은 복도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토사에 묻혔다는 의미다.
홍대광의 눈이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떨렸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가졌다 해도, 저만한 토사에 파묻혀서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 때문에……."
홍대광은 밀려드는 죄책감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강호에 동량이 되어야 할 어린 검수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이런 곳에서 유명을 달리하다니. 생각 같아서는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화산……."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앞쪽이 터져 나가더니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청명아!"
"빌어먹을! 걱정했잖아! 이놈아!"
홍대광이 반색을 했다.
'살았구나!'
그럼 그렇지. 화산신룡이 이런 곳에서 죽을 리가 없지!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달려가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런 반가움은 곧 먼 곳으로 사라졌다.
"……거지 어디 갔어."
흙먼지가 가라앉은 곳.
전신에 먼지를 뒤집어쓴 청명이 금방이라도 사람 몇은 죽일 듯한 얼굴로 눈을 희번덕대고 있다.
그리고 금세 홍대광을 찾아낸 그의 뒤틀린 입술 새로 빠득빠득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홍대광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아, 아니, 화산신룡. 이건……."
"할 말이 많겠지."
청명이 우드득우드득 목을 꺾으며 홍대광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거 알아?"
"……뭘?"
"말로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으면 세상에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아!"
"……."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회까닥 돌아 버린 청명이 야차 같은 얼굴로 홍대광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