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77화
메이저리그 역사에 4연타석 홈런이 나왔던 건 46번에 불과했다.
그리고 오늘 47번째 기록을 한국에서 온 루키가 달성했다.
이 소식은 곧 속보로 미국을 비롯해 한국 그리고 일본에까지 전달됐다.
[(속보) 한수호 47번째 4연타석 홈런 달성!]
[(속보) 한국인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한수호!]
[(속보) 이번 시즌 23호 홈런을 4연타석 홈런으로 장식한 한수호!]
[(속보) 애런 저지의 24홈런과 단 1개 차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이제 일상을 버리고 TV와 모니터 그리고 스마트폰 앞에 앉았다.
대한민국의 일상이 멈췄다 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SNS 역시 수호에 대한 피드로 도배되었다.
-#한수호 #뉴욕 #직관
-#한수호 #신기록 #직관
특히 직관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올라오면서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자 움직이는 이들도 생겼다.
“한수호 선수에 대해 광고료를 책정하고 미팅을 가지도록 해.”
“알겠습니다.”
“한수호 선수와 계약된 에이전시가 없다고? 바로 움직여!”
“예!”
한국의 광고 계약 방식은 에이전시를 통한 계약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이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면서 대기업과 모델을 연결해 주며 수수료를 받았다.
그들이 움직였다는 건 수호에 대한 모델 수요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에서도 감지됐다.
특히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직접 계약을 맺는 스포츠 에이전시들이 바빠졌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전용기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전용기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양키스와 필리스의 경기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후회로 물들었다.
“포텐셜을 가진 선수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터뜨릴 줄이야…….”
보라스 역시 수호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성공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데뷔시즌에 이 정도로 성공한 선수는 애런 저지 와 마이크 트라웃 정도밖에 없었다.
‘세부적인 스탯으로 보자면 신인 시절의 저지와 트라웃을 합쳐놓은 것과 같다.’
마이크 트라웃은 WAR 10.8이라는 역사상 루키시즌 1위의 WAR을 기록하며 올해의 신인을 타냈다.
애런 저지는 2017년 WAR 8.3이자 루키 최다 홈런인 52개를 때려내며 올해의 신인을 받았다.
두 선수를 합친 것과 같다는 건 스캇 보라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LA에 도착하면 곧장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해.”
“하지만 LA에서 회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 미루도록 해. 지금 그보다 중요한 비즈니스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스캇 보라스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다른 에이전시들 역시 수호를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번 홈런 대결은 수호의 승리로 끝났네.
-4연타석 홈런이면 이미 끝났지.
-저지가 아무리 대단하지만, 이 이상은 무리임.
-수호의 승리다.
수호 vs 저지의 대결은 수호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애런 저지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7회 말, 애런 저지가 타석으로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 3연타석 홈런을 터뜨린 애런 저지, 하지만 그의 맞수인 한수호 선수는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며 승부에서 한발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3연타석 홈런도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긴 역사를 생각한다면 흔한 기록 중 하나다.
그러나 4연타석은 고작 47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
한 경기에 두 번이나 나올 거란 기대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승부는 수호의 승리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딱!!
-3구를 강타!! 이번 타구도 큽니다!!
애런 저지의 스윙과 함께 날아간 타구가 좌익수 키를 넘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펜스를 넘겨 버렸다.
-넘어갔습니다!! 애런 저지의 4연타석 홈런!! 한 경기에 무려 두 명의 선수가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합니다!!
-제…… 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양키 스타디움이 들썩입니다!!
뉴욕의 슈퍼스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인 애런 저지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시즌 25호를 4연타석 홈런으로 장식하는 애런 저지! 2위인 한수호 선수를 다시 2개 차이로 따돌립니다!!
-역대 47번째 기록과 48번째 기록이 한 경기에 동시에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루 베이스를 돈 애런 저지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기록을 자축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안쓰러운 건 두 팀의 투수들입니다!!
대기록의 향연 속에서 투수들만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 * *
두 사람의 기록은 4연타석 홈런에서 멈췄다.
수호가 다섯 번째 타석에서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홈런 행진을 멈추자 애런 저지도 귀신같이 다음 타석에서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두 선수의 환상적이었던 홈런 대결이 막을 내립니다!
한 경기 4연타석 홈런.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나 터뜨린 진풍경에 경기장을 찾은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했다.
짝짝짝짝-!!
양키 스타디움에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애런 저지가 먼저 더그아웃을 나와 모자를 벗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퍼가 수호의 등을 떠밀었다.
“너도 나가서 인사하고 와.”
“저도요?”
“그래. 팬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건 애런 저지 혼자만의 힘이 아니야.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지. 무엇보다 저들은 저지만이 아니라 너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거야.”
옆에 있던 잭도 거들었다.
두 사람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인 수호가 매디슨 감독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디슨은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길을 열어 수호가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다녀와라.”
“감사합니다.”
더그아웃을 나온 수호가 관중석을 향해 모자를 벗었다.
-오늘의 주인공들인 한수호와 애런 저지가 더그아웃을 나와 팬들의 커튼콜에 화답합니다!
-오늘 4연타석 홈런이란 기록을 동시에 달성한 두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겁니다!
2027시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로 불리는 두 선수의 서막을 알리는 경기가 마무리됐다.
* * *
[메이저리그에서 대기록이 작성됐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뉴욕 양키스의 2027시즌 첫 번째 맞대결에서 한수호 선수와 애런 저지 선수가 각각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47번째, 48번째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4연타석 홈런이 한 경기에 두 번이 나온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며 두 선수는 각각 시즌 23호 홈런과 25호 홈런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 2위에 올랐습니다.]
두 선수의 소식은 전 세계를 뒤집어놓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수혜를 입은 건 역시 수호였다.
[슈퍼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슈퍼루키 한수호는 누구인가?]
[19살 시즌에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한수호!]
[역대 최소 경기 히트 포 더 사이클, 20홈런 기록을 달성한 레코드 브레이커 한수호의 모든 것!]
수호의 기록이 재조명되면서 별명이 하나 붙었다.
그 별명은 바로 레코드 브레이커.
메이저리그 역사에 부술 수 없을 거라 생각되던 기록들을 하나둘 파괴하는 그의 존재에 메이저리그 팬들은 열광했다.
-R.B(Record Breaker) 지난달에 히트 포 더 사이클 달성하지 않았나?
└ㅇㅇ 내추럴 사이클이었음.
-한 달 만에 4연타석 홈런이라니. 진짜 미쳤네.
└얘 이번 기록으로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4연타석 홈런 달성자 됨.
└└그것만이 아니라 역사상 최연소 20홈런 달성도 함.
-진짜 기록파괴자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별명 하나는 제대로인 듯.
미국의 커뮤니티에선 수호의 별명인 레코드 브레이커를 줄여 R.B로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이런 분위기는 곧장 그의 인기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은 유니폼을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에서 그의 유니폼이 품절이 된 것이다.
“단장님, 한수호 선수의 유니폼이 품절됐습니다. 재고도 모두 떨어졌어요.”
“뭐?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재고가 충분했잖아?”
“오늘 모두 나갔습니다!”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그의 유니폼은 미치도록 팔려나갔다.
구단의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량에 마크 레이어는 당황했다.
‘이런 선수를 난 마이너리그에 보내려고 했던 건가?’
과거 자신이 내리려 했던 결정에 소름이 돋으면서 정신이 들었다.
“당장 재고부터 확보하도록 해! 그리고 홍보팀과 영상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
“알겠습니다.”
‘수호는 하퍼를 넘어서는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지금 기회를 놓쳐선 안 돼!’
구단의 홍보 전략을 모두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메이저리그에 큰 충격을 주었다.
* * *
2차전을 앞두고 스캇 보라스가 수호를 찾아왔다.
그의 요청에 수호는 다시 한번 자리를 마련했다.
“어제 경기를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지난번의 제 무례를 사과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가 고개를 숙였다.
아시아 선수와도 자주 일했기에 그는 동양권 문화의 예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호는 예의라는 건 결국 성의로 표시해야 한다는 걸 아는 나이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사과는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찾아오신 건 계약에 대해 논의하시기 위해서겠죠?”
시간 낭비는 좋아하지 않았다.
양쪽이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것을 주고받으면 될 일이었다.
비즈니스에 사적인 감정이 끼어드는 걸 싫어하는 그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스캇 보라스가 오히려 당황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선수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많은 신인을 만나왔다.
그들 중 대다수가 스캇 보라스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에 제대로 원하는 걸 이야기하지 못했다.
간혹 예외가 있긴 했지만, 수호 같은 타입의 선수는 처음이었다.
‘마치 노련한 비즈니스맨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다.’
구단의 고위 간부들을 만나면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수호는 19살의 소년이었으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수호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점이었다.
‘이런 타입의 상대는 괜히 이야기를 질질 끄는 걸 싫어한다.’
스캇 보라스는 수호가 19살이 아닌 노련한 비즈니스맨이라 생각하고 협상을 이어나갔다.
“정확합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은 한수호 선수를 서포트하고 싶습니다. 최고의 조건을 한수호 선수에게 제공하겠습니다.”
“정확한 숫자를 원합니다.”
고작 한 달.
수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스캇 보라스는 그런 수호를 놓치고 싶어 할 사람이 아니다.
그걸 잘 아는 수호는 보라스의 머리 위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날 원한다면 그만큼의 조건을 말해야 할 거야.’
말하지 않아도 보라스는 수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최고의 조건을 이야기했다.
“아시겠지만, 에이전트는 선수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이는 메이저리그에 등록된 제너럴 에이전트라면 모두 동일한 사안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등록된 에이전트는 선수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제공할 수 없다.
계약금은 물론이거니와 선수에게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형태도 불가능하다.
심지어 500달러 이상의 선물 혹은 금품을 제공할 때는 선수협회에 신고해야 했다.
만약 이런 규정이 없다면 자본력이 큰 에이전트가 선수를 독점할 수 있으니 생긴 규정이었다.
“단, 한수호 선수의 가치를 인정해 장기계약 혹은 FA가 되기 이전에 받는 커미션은 4퍼센트로 제한하겠습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이 받는 통상 수수료는 5퍼센트였다.
이는 선수가 누구더라도 동일하게 받는 커미션이었다.
루키부터 슈퍼스타까지 예외는 없었다.
그런 커미션을 1퍼센트 깎는다는 건 수호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답변은 당장 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죠?”
“물론입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시면 어디에 있든지 날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보라스와의 세 번째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