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47화
* * *
야구에는 두 명의 신이 존재한다.
한 명은 베이브루스이며 또 한 명은 조시 깁슨이다.
니그로리그에서만 뛰었기에 정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900홈런 이상을 때렸다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100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명예의 전당에 걸린 동판에는 Almost 800이란 문구가 박혀 있었다.
즉 800홈런 이상을 때린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또한 포수로 매년 200경기 이상에 출전했고 4할 이상의 타율 그리고 양키스타디움에서 2개의 장외홈런을 때리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사첼 페이지와 함께 니그로리그의 전설로 남은 인물이었다.
공격형 포수라는 말이 그의 등장과 함께 생겼을 정도이니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조시 깁슨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네가 경험한 그 시뮬레이션이라는 거는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아니야.]
‘그럼 이게 뭔가요?’
[통찰력이 다른 방식으로 발현한 거지.]
‘통찰력이요?’
[그래.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걸 발견하는 능력이지. 넌 그게 예지력 비슷하게 나타난 거고.]
[그게 가능함?]
[무슨 초능력도 아니고...]
[나도 가능했었으니까.]
조시 깁슨도 가능했다는 말에 눈이 커졌다.
‘선배님도 이게 가능했다고요?’
[정확히는 너처럼 시뮬레이션이 펼쳐진 건 아닌고 직감에 가까웠지. 아, 여기에서는 이 녀석이 이걸 던지겠구나 싶은?]
[정말?]
[그런 치트 같은 게 가능했다고?]
[와~이 색히 완전 사기네!]
[겁나 시끄럽네.]
레전드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만큼 조시 깁슨의 발언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공이 어디로 올지 알고 있다면 그걸 때리는 건 메이저리그 레벨에선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난 죽은 뒤에 내 능력에 대해 의문을 가졌고 그거에 대해 연구를 했었다. 그 결과 초능력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지.]
‘그럼 조시 선배님의 것도 통찰력 같은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지. 나는 선수를 관찰하는 걸 좋아했어. 관찰하다보면 여러 정보를 얻게 되고 그 정보를 토대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조금씩 이해가 됐다.
[나는 그걸 타고났었지만, 너는 그게 아니었던 거 같은데?]
‘예. 사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내 생각에는 아마 우리가 영향을 끼친 거 같다.]
[우리가?]
[왜?]
[아무짓도 안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저승튜브와 연결되고 빙의를 통해 우리의 경험을 얻으면서 네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쌓인 거지.]
머리가 번뜩였다.
‘즉, 선배님들의 경험을 얻게 되면서 저에게도 통찰력 비슷한게 생겼다는 거군요?’
[ㅇㅇ 타고난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거다.]
분명 회귀 전에는 이런 비슷한 것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회귀를 하고 능력이 새로 생겼다.
조시 깁슨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한 마디로 네 오리지널 능력이다.]
자신만의 무언가가 생겼다는 걸 말이다.
* * *
데뷔경기에서 홈런을 때린 수호는 큰 화제를 모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 경기에서 홈런을 때린 한수호!]
[130년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단 129명만이 기록한 데뷔 경기 홈런!]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사례는 2022년 LA다저스 소속으로 뛰었던 제임스 아웃맨!]
[한수호의 활약으로 2차전 역시 승리로 가져간 필리스!]
한국언론은 모두 수호의 소식으로 도배되었다.
미국 역시 수호의 활약을 무척이나 비중있게 다루었다.
[데뷔 첫 경기 홈런을 때린 수호 한은 누구인가?]
[마이너리그를 패스하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수호 한, 데뷔 첫 경기부터 대형사고를 치다.]
지역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전국구언론에서도 수호의 소식을 전하면서 그에게 관심이 몰렸다.
전문가들 역시 그에 대해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수호 한은 개막시리즈에서 가장 돋보이는 루키다. 그가 날린 홈런의 비거리는 134m였고 타구속도는 120마일에 달했다.
이는 시즌이 개막하고 나온 66개의 홈런들 중 가장 빠른 타구속도를 기록했다.]
어떤 전문가는 수호의 기사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기도 했고.
[데뷔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수호 한은 시범경기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J.T리얼무토를 제치고 필리스의 주전포수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필리스는 포지션에 따른 교통정리가 필요해보인다.]
누군가는 현재 필리스 상황에 맞는 솔루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수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식은 필리스의 단장 마크 레이어의 귀에도 들어갔다.
“한이 때린 홈런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필리스 커뮤니티에선 벌써부터 차세대를 이끌 스타루키의 등장이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이제 한 경기에 나섰는데, 스타루키라니. 하여간 우리 팬들의 설레발은 따라갈 수 없다니까요.”
누군가는 회의적으로 보긴 했지만, 구단 입장에서 중요한 건 팬들이 수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매디슨 감독.”
“예.”
“내일부터 기회가 생기는대로 수호를 기용하는 쪽으로 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리얼무토와 포지션이 겹치는 이상 수호의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잡을 건지는 수호에게 달려 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마크는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안건을 넘겼다.
* * *
수호의 두 번째 등판은 뉴욕 메츠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루어졌다.
(브라이스 하퍼의 안타에 이어 리얼무토가 안타를 때려내며 1사 1, 3루의 찬스를 맞이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좋은 찬스를 잡았습니다. 외야로 보내는 타구 하나면 경기를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스코어는 5 대 5로 박빙의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에서 매디슨은 고민도 하지 않고 수호를 호출했다.
“한, 네 차례다.”
“예!”
본래 루키에게는 조금 더 쉬운 상황에서 출전기회를 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매디슨은 득점찬스 상황에서 수호를 기용했다.
이는 수호가 가진 능력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시범경기부터 봐왔던 수호는 득점권 찬스에서 강하다. 거기에 데뷔 첫 타석에서도 긴장하는 거 없이 본인의 스윙을 가져갈 수 있는 배짱이 있어.’
그런 배짱은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타고나야 하는 것이었고 수호는 그 타고남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안타가 아니더라도 이번 타석에서는 플라이볼만 만들어줘도 돼.’
단 1점만 내더라도 경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수호라는 카드를 썼다.
(타석에 한수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데뷔 첫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했던 한수호 선수가 다시 찬스상황에서 타석에 서게 되네요!)
타석에 선 수호가 타격자세를 잡았다.
[시뮬레이션 해봤음?]
‘예. 대기타석에 있는 동안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수호는 통찰력을 통해 마운드에 있는 잰슨과의 승부를 시뮬레이션 돌렸다.
[주자가 있는 상황도 가정했냐?]
‘예. 물론 두 명이나 나갈 상황은 가정하지 못했지만요.’
[시간이 제법 있었는데. 뭐했음?]
‘제법 시간이 걸리네요.’
시뮬레이션을 한 건 잰슨과의 대결이다.
하지만 그 하나의 대결에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덕분에 주자 1, 3루의 상황은 시뮬레이션 하지 못했다.
[뭐, 그래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
[ㅇㅇ 상대도 널 경계하겠지만, 중요한 건 넌 그런 상황을 이미 경험했다는 거고.]
[그래서 어떤 공을 노릴 거임?]
대답 대신 수호가 타격자세를 잡았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 * *
사인을 교환한 잰슨이 주자들을 확인했다.
‘뛰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대타까지 썼는데. 여기에서 작전을 내진 않겠지.’
작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잰슨은 오직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홈런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지만...’
세트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을 밟은 모든 힘을 손끝으로 모았다.
‘이번에는 그렇게 안 돼!’
그의 선택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최고구속 96마일까지 나오는 그의 패스트볼은 스트레이트 형식의 패스트볼이 아니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뱀처럼 휘어서 들어가는 싱커성 패스트볼을 던졌다.
이 공을 잰슨은 내츄럴 싱커라고 칭했다.
딱히 싱커 그립을 잡지 않아도 심한 무브먼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수호의 바로 앞에서 공이 꿈틀거리며 몸쪽을 파고들었다.
수호는 그 공을 오픈 스탠스를 밟아 히팅포인트를 만들어 그대로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번개 같이 날아간 타구가 좌익수 키를 넘어 펜스를 그대로 때렸다.
(장타 코스! 3루 주자 하퍼, 홈으로! 그리고 리얼무토도 2루를 돌아 3루까지! 한수호 선수도 2루에 안전하게 들어갑니다!)
(몸쪽으로 꺾여 들어오는 공을 오픈스탠스를 만들면서 때려내다니, 한수호 선수 정말 훌륭한 스윙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의 대타동안 3타점을 올리는 한수호 선수! 왜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는지 알려주는 모습입니다!)
2루 베이스에서 주먹을 들어올리는 수호를 보며 잰슨이 얼굴을 구겼다.
‘젠장...브레이킹볼에 강한 거 같아서 일부러 패스트볼을 택했는데...’
자신의 공은 싱커성 패스트볼이다.
처음 상대하는 루키가 쉽사리 때려낼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그런데 수호는 그걸 너무나 쉽게 때려냈다.
그 사실이 잰슨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잰슨을 보며 수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보다 더 휘어서 들어오네.’
[처음부터 패스트볼을 노린 거임?]
‘예. 몇 번을 시뮬레이션 돌려도 초구에 패스트볼을 던질 가능성이 높았어요.’
[왜?]
‘데뷔타석에서 브레이킹볼을 때렸기 때문이죠. 다른 팀이라면 모를까 같은 메츠 소속으로 그 경기를 봤는데. 굳이 브레이킹볼을 던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점짜리 답안이네.]
[확실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음.]
[이열...조언해주지 않아도 잘하네.]
[그런데 생각보다 더 휘어서 들어왔다고?]
‘예. 시뮬레이션에선 이렇게까지 휘어서 들어오진 않았거든요.’
[하긴 꼭 똑같다고 하긴 어렵지.]
[어쨌든 눈도장은 제대로 찍었네.]
단 2경기.
수호의 존재감을 어필하기엔 충분했다.
* * *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개막시리즈를 위닝시리즈로 만들면서 지구 최강자 뉴욕 메츠를 돌려보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띈 선수는 단연 루키 한수호로 그는 2번의 대타출전으로 3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수호의 활약에 지역언론이 그를 비중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필리스 커뮤니티에서도 수호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면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성향의 커뮤니티에선 그를 선발출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물론 이는 일부의 주장이었기에 많은 동의를 얻진 못했다.
이후 경기들에서도 수호는 대타로 주로 출전했다.
홈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두 번째 경기.
(한수호 선수가 주자 2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매디슨 감독이 확실히 한수호 선수를 찬스 상황에서 쓰기로 결심했나 보네요.)
(앞선 두 번의 출전과 마찬가지로 과연 이 찬스를 잡아낼 수 있을지! 투수 초구 던집니다!)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과 함께 공이 손에서 떠났다.
그 순간 수호의 배트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딱!!
(때렸습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장타코스! 2루 주자 3루를 돌아 홈으로! 한수호 선수도 2루에 안착합니다! 다시 타점을 기록하는 한수호 선수!!)
세 번째 출전에도 타점을 기록, 확실히 찬스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크 레이어의 생각이 깊어졌다.
‘개막 초반이긴 하지만, 한수호의 타격 페이스가 무서울 정도군. 저렇게 컨디션 좋은 타자를 대타로만 출전시켜야 한다니.’
아쉬움이 남았다.
만약 그가 선발로 나서서 지금과 같은 타격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
문제는 포지션이었다.
리얼무토와 겹치는 수호의 포지션상 그를 선발로 출전시키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둘의 타격 시너지를 합치면 우리 팀은 확실히 리그 최정상급의 공격력을 얻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물론 그 전에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그가 선발로도 지금과 같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지.’
대타 한수호가 아닌 선발 한수호의 모습을 확인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