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40화
* * *
수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입니까?”
“그래. 시범경기까지 동행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헐~]
[대박.]
[와...이게 뭔일이래?]
레전드들 역시 믿지 못할 반응이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아직 공식전에 데뷔도 하지 않은 루키를 시범경기까지 데려간다니 말이다.
‘이거 꿈 아니죠?’
[아쉽다.]
‘예? 왜요?’
[현실이면 꼬집어줄 텐데 ㄲㅂ.]
[ㅋㅋㅋ 현실이다 인마.]
[그런데 진짜 파격적인 결정이긴 하네.]
[고위층에서 어지간히 좋게 봤나 본데?]
메이저리그는 의외로 고지식한 곳이었다.
한 번 정해진 룰을 고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불문율도 그중에 하나였고 구단의 운영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뛰어난 루키라 하더라도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를 보더라도 20명이 넘지 않았다.
한국인으로 마이너리그에 데뷔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는 코리안특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직 데뷔는 아니고 시범경기임.]
[그것만 해도 대단하긴 하지.]
[이건 우리도 예상 못했다.]
[일종의 테스트일 거 같은데?]
‘테스트요?’
[ㅇㅇ 시뮬레이션 게임까지 잘 했으니 시범경기에서 보자는 거지.]
[진짜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이나 보고 싶다 이건가?]
시범경기는 시뮬레이션 게임과는 다르다.
개막전을 앞두고 모든 팀이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간다.
그렇기에 진정한 메이저리그 경기를 한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나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수호였다.
* * *
남는 자가 있으면 떠나는 자도 있는 법이었다.
“흑...수호야! 넌 꼭 계속 남아라!”
첫 룸메이트였던 앤서니가 눈물을 흘리며 짐을 챙겼다.
두 번째 시뮬레이션 게임까지 치렀지만, 그는 마이너캠프로 돌아가게 되었다.
남는 수호가 부러웠지만,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는 그였다.
“너도 꼭 올라올 거야.”
“그래. 언젠가 내 공 다시 받아줘!”
그렇게 첫 번째 만남이었던 앤서니가 돌아갔다.
사람들이 빠지면서 캠프장이 한산해졌다.
[이제야 좀 훈련할만하네.]
[이 멤버로 웬만하면 시범경기까지 가겠네.]
‘그러겠죠?’
[시범경기부터는 애들의 상태가 장난 아닐거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장난으로 느껴질 거야.]
‘그 정도로 차이가 심하게 납니까?’
[장난 아니지.]
[시뮬레이션 게임이 더블A라면 시범경기부터는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모드라고 생각하면 됨.]
[네가 홈런을 때리고 톱 수준의 주자를 잡은 것도 시뮬레이션 게임이니까 가능했던 거다.]
[시범경기부터 쉽지 않을 거야.]
레전드들은 혹시나 수호가 가질 자만심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더 강하게 이야기했다.
‘예. 더 노력해야죠.’
하지만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다는 건 한순간의 성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선배님들이 도움 주신만큼 선배님들이 원하는 걸 꼭 이루어드리겠습니다. 그게 제 꿈을 이루는 길일 테니까요.’
수호는 마음을 다잡으며 훈련을 기다렸다.
* * *
한선예의 기사를 통해 수호가 메이저리그 캠프에 살아남았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졌다.
[작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을 맺고 미국행을 택한 한수호 선수가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여전히 생존해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반응은 야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 고졸 선수가 아직도 메이저리그 캠프에 남아 있다고?
- 이거 국내선수들 중에는 거의 최초 아니냐?
- 과거 코리안특급은 바로 빅리그 데뷔함.
ㄴ 그건 기록 만들기었잖아.
ㄴㄴ 어쨌든 데뷔한 건 사실이지.
ㄴㄴㄴ BK도 마이너리그에서 올라갔는데.
- 설마 바로 빅리그 데뷔 가나요?
ㄴ 무리일걸?
ㄴㄴ 메이저리그 좀 아는 애들은 무리란 걸 바로 알지.
ㄴㄴㄴ 아무리 능력이 특출나도 결국 적응기간이 필요함.
- 시범경기 전에 내려간다에 올인.
ㄴ 뭐 걸거임?
ㄴㄴ 만약 시범경기까지 나오면 강남역에서 삼겹살 구워먹겠습니다.
ㄴㄴㄴ 벌칙이 아닌데?
ㄴㄴㄴㄴ 그럼 강남역에서 한수호 만세 삼창하겠음!
- 시범경기까지 살아남으면 올해 한수호 빅리그에서 보는 거냐?
ㄴ 리얼무토 때문에 힘들거 같은데.
ㄴㄴ 백업으로는 가능할 듯?
- 메이저리그를 졸로 보냐?
ㄴ 절대 무리지 ㅋㅋ
의견은 무리라는 쪽이 많았다.
기사의 반응을 보면서 한선예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분위기는 좀 어때?”
“대부분 무리라는 분위기죠.”
“예상대로인가?”
“사실 그동안의 전례를 보면 유례를 찾기 힘들어요. 그 긴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마이너리그를 패스하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사례는 18번밖에 없었으니까요.”
“한국선수로는 코리안특급이 마지막이었지?”
“최초이자 마지막이죠. 특히 21세기부터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유망주 성장에 시간을 더 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제대로 키우겠다는 건가?”
“네. 기초부터 차근차근 키워서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뛸 선수를 만들겠다는 거죠. 그래서 브라이스 하퍼도 1년은 마이너리그에 있었잖아요.”
브라이스 하퍼만이 아니다.
21세기를 빛낸 마이크 트라웃, 후안 소토,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같은 선수들도 마이너리그에서 최소 2-3년을 머물다 콜업이 됐다.
그만큼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유망주의 빅리그 콜업에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면 메이저리그로 바로 올리지 않을까?”
“일단 시범경기를 지켜봐야겠죠.”
곧 알 수 있을 거다.
수호가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시범경기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수호는 오랜만에 오후 훈련에 시간을 내서 캠프를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탬파 국제공항이었다.
“오빠!!”
게이트가 열리고 나온 동생 수빈이 단숨에 달려와 수호에게 안겼다.
고작 3개월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일까?
동생의 그리움이 느껴지는 재회였다.
“키가 좀 큰 거 같은데?”
“당연하...지. 그런데 오빠가 더 컸네?”
“하하! 그런가?”
“그러게. 우리 조카 몸이 더 좋아졌네!”
고모와 고모부가 뒤이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조금 멀긴 한데. 네가 보내준 티켓 덕분에 편하게 왔지.”
“수호 덕분에 내 생전 비즈니스를 다 타보는구나!”
“다음에 오실 때는 퍼스트클래스로 오실 수 있게 준비할게요.”
“말만 들어도 좋구나!”
“오빠, 퍼스트클래스가 뭐야?”
첫 비행이었던 수빈이 큰 눈을 껌벅거리며 물었다.
그런 동생이 귀여운지 수호가 수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주 좋은 게 있어. 다음에 꼭 태워줄게.”
“아싸~!”
좋아하는 가족들을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전의 삶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 있는 동생과도 자주 못봤으니 말이다.
“일단 호텔로 안내해드릴게요!”
“그래.”
가족들과 함께 수호가 공항을 빠져나갔다.
* * *
다음 날.
수호는 다시 훈련에 전념했다.
수빈이는 고모네 부부와 함께 디즈니랜드에 놀러갔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고모부가 영어를 하실 수 있어서 다행이네.]
‘예. 덕분에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수빈이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고 훈련에 전념한 수호는 그날 밤, 레전드들과 상의에 들어갔다.
‘시범경기에서 살아남아 빅리그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강렬한 모습을 보여야겠죠?’
[그래야지.]
[그것도 보통 잘하는 모습으로는 힘들 거임.]
[거기에 기회도 많이 찾아오지 않을 거다.]
필리스의 주전포수는 명실상부 리얼무토였다.
그는 커리어 내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슈퍼스타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시범경기에서도 당연히 그가 메인으로 나설 것이기에 한정적인 기회만 찾아올 가능성이 컸다.
‘결국 그 한정된 기회를 제가 잡느냐 아니냐에 걸렸군요.’
[기껏해야 한 두 번이겠지.]
[그 기회를 날리는 순간 바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도 있음.]
[그럼 최소한 올해에는 못 올라간다고 봐야지.]
[우리 기록을 깨는 것도 상당히 어려워지고.]
레전드 플레이어들 대다수의 기록은 최소 20년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해야 갱신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기록들을 깨기 위해선 1년이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게 유리했다.
‘강렬한 인상이라...’
수호는 고민에 잠겼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포수로서의 모습은 강렬하게 남기는 게 어렵다. 프레이밍이나 송구 등이 화려해보일 수 있지만, 임팩트가 다소 약해.’
수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하나씩 체크했다.
‘타자로서 남긴다면 역시나...’
[뭘 고민하냐?]
그때 레전드의 채팅이 올라왔다.
[베이스볼의 꽃은 당연히 홈런이지.]
그는 다름아닌 야구의 신이었다.
[베이브 루스 : 홈런밖에 없다.]
베이브 루스.
그가 답을 제시했다.
* * *
현대야구에 접어들면서 베이스볼에는 첨단장비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숨겨져 있던 새로운 부분들이 발견됐고 새로운 스탯들이 탄생했다.
과거에 주로 쓰이던 스탯들이 유명무실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가장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타자를 빛나게 해주는 기록이 있었다.
그건 바로 홈런이었다.
그리고 홈런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 바로 베이브 루스였다.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단기간에 가장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건 홈런밖에 없다.]
[그건 그렇지.]
[홈런만큼 직관적인 게 없긴 하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다른 레전드들 역시 동의했다.
답을 내린 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베이브 루스에게 말했다.
‘선배님의 과거를 좀 보겠습니다.’
[오케이~]
그동안 훈련을 통해 동기화의 한계치를 늘려둔 수호였다.
하지만 새로운 동기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에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축을 해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빙의할 시청자를 선택해주세요.]
여러 레전드들의 이름이 떴다.
이번에는 고민할 것도 없이 목록 중 한 명을 골랐다.
[베이브 루스로 빙의하시겠습니까?]
[Y/N]
Y를 누르자 시야가 어두워졌다.
* * *
1932년 리글리 필드.
월드시리즈 3차전은 4 대 4로 박빙의 대결을 이어가고 있었다.
시카고 컵스의 선발투수 찰리 루트가 1구를 던졌다.
그의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해 그대로 개비 하트넷의 미트에 꽂혔다.
퍽!
“스트라이크!”
구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자 시카고 컵스 팬들이 일제히 야유를 쏟아냈다.
“우우우우우-!!”
“겁쟁이 베이브! 뭐하는 거야?”
“야 이 자식아! 자고 있는 거냐?”
“네까짓게 무슨 타자야! 집에 들어가서 네 마누라 발이나 닦아줘!”
“으하하하!”
조롱은 팬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이봐! 노인네! 이제 잠에서 좀 깨어나지?”
“거기는 자는 곳이 아니란 말이야!”
“자고 싶으면 그냥 들어가!”
컵스 더그아웃에서도 조롱이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수호는 경악했다.
‘이 정도라고?’
21세기에도 팬들의 야유와 조롱은 상당히 강한 편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조롱과 야유는 날것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관람석과 타석의 거리가 가까워 그들의 반응이 그대로 귀에 꽂혔다.
그리고 그건 베이브 루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망할새끼들이...!)
그때 루스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클레어에게 침을 뱉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모욕까지 준다고?!)
루스는 그 화를 참지 않았다.
“너희들 똑똑히 지켜봐!”
루스가 컵스의 더그아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이 녀석의 공을 담장밖으로 넘겨버릴 테니까!”
뒤이어 다시 중앙 담장을 가리키고는 타격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찰리 루트가 부드러운 폼으로 공을 뿌리는 순간.
베이브 루스의 벼락 같은 스윙이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타구는 단숨에 중앙 담장을 넘겨버렸다.
순식간에 리글리 필드에는 침묵이 흘렀고 베이브 루스는 유유히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3루 베이스에 도착한 루스는 컵스 더그아웃을 향해 조롱의 뜻이 담긴 제스처를 날렸다.
[빙의를 종료합니다.]
베이브 루스가 홈을 밟는 모습과 동시에 그의 시야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 * *
눈을 뜬 수호는 전율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수호에게 베이브 루스가 물었다.
[어떠냐? 홈런이 왜 베이스볼의 꽃인지 알겠지?]
‘...예.’
야유가 쏟아지던 적진을 한순간에 침묵하게 만들 힘이 홈런에는 있었다.
이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길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후폭풍이 어느 정도 가신 수호는 동기화 목록을 확인했다.
[동기화]
[요기 베라 : 7퍼센트]
[테드 윌리엄스 : 7퍼센트]
[빌리 해밀턴 : 3.2퍼센트]
[루 브록 : 3.2퍼센트]
[베이브 루스 : 1퍼센트]
새로운 항목이 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1퍼센트죠?”
수치가 너무 많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