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화
한수호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이미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굽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이야~다들 오랜만이다.”
“주인공이 이제야 등장했네.”
“자식아! 네가 만나자고 했으면서 늦게 오냐?”
“하하! 미안. 인수인계 때문에 조금 일이 밀렸다.”
수호가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용태가 소주잔을 내밀었다.
“한잔 받아라.”
“응.”
“그 망할 회사는 일만 죽어라 시키더니 나가기 직전까지도 일을 시키는구나.”
“인수인계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나가라고 한 적은 없어. 그냥 내가 자진퇴사를 결정한 거지.”
“눈치를 그렇게 줘놓고 무슨 희망퇴직이야?”
“에휴...너도 참 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사람이 좋을래?”
수호가 어색하게 웃자 용태가 말없이 술잔을 내밀었다.
“고생했다.”
“고맙다.”
처음이었다.
퇴사를 결정한 이후 고생했다는 말을 해준 사람이.
친구의 위로에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른 채, 소주를 들이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이렇게 우리 셋이 만나는 게 얼마만이냐?”
“형석이 둘째 돌잔치가 마지막이니까. 거의 6개월만인 거 같은데?”
“뭐? 벌써 그렇게 됐어?”
“벌써는 뭐가 벌써야? 지금이 10월인데.”
“헐~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월이라니. 그럼 우리가 내년에 43살이 되는 건가?”
“그렇지. 하~나는 정말 믿기지 않는다. 우리 나이가 벌써 40대 중반으로 향해가고 있다니.”
“난 그대로인거 같은데. 세월만 휙휙 지나가는구나~”
태수의 말에 수호와 용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식당 한쪽에 있는 TV에서 야구 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광주 타이거즈, 투수를 교체합니다. 마운드에는 팀내 최고참인 임광호 선수가 올라옵니다.
임광호 선수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20년이 넘는 현역생활을 뒤로 하고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아주 뛰어난 성적을 올린 건 아니지만, 어느 팀에서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며 마운드의 한축을 담당한 선수입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중계를 보던 용태가 삼겹살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광호도 은퇴하는구나.”
“설마 저 녀석이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러게 말이야. 부상을 당할 때만 하더라도 은퇴할 줄 알았는데 끈기 하나는 정말 대단해.”
세 사람은 야구부 출신이었다.
같은 야구부에서 만나 친해졌다.
원래는 세 사람이 아닌 임광호까지 넷이 자주 어울려 다녔지만, 그가 프로에 입단한 이후에는 그러지 못했다.
초기에야 그래도 한 두 번 봤지만,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서인지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우리 중에 제일 잘 된 건 광호지.”
“맞아. 프로라는 높은 벽을 뚫은 유일한 녀석이니까.”
“참, 수호 너는 광호랑 아직 연락하냐?”
“아니. 나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야.”
“야구부일 때 매번 붙어다니던 너희인데. 연락이 끊기다니.”
“어쩔 수 없지. 각자 살다보면 바쁘잖아. 우리도 가끔 이렇게 보는 게 아니면 딱히 만날 기회도 없고.”
“그건 그렇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그럴 정도로 세 사람은 어리지 않았다.
“이제 회사 그만두면 뭐 할거야?”
“그래도 명예퇴직이니까. 퇴직금은 원래보다 많이 받았을 거 아니야?”
“제법 되긴 하더라고. 문제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거지.”
“자영업이라도 해야 하나?”
“프렌차이즈라도 알아보는 게 좋지 않아?”
“나도 조금씩 알아봤는데. 요즘 자영업도 힘들다고 하더라.”
“그건 그렇지.”
두 사람이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나이가 비슷하다보니 수호의 일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너희들도 회사에서 명퇴 이야기가 나온 거야?”
“그건 아니야.”
“하지만 경기가 어려우니 언제 인원감축을 할지 모르니까 미리 대비하는 거지.”
“맞아. 회사가 언제 우리 사정 봐주냐? 미리 대비해야 날벼락을 피할 수 있지.”
“도경이가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서 앞으로 돈이 더 들어갈 텐데. 회사에서 잘리면...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도경이가 벌써 초등학생이야?”
“내년에 들어가잖아. 넌 삼촌이란 녀석이 그것도 모르냐?”
“뭐야? 수호 너 우리 서아가 올해 초등학교 들어간 것도 모르는 거 아니야?”
“어? 진짜?”
“이야~이거 진짜 나쁜 삼촌이네.”
수호는 아직 미혼이었다.
하지만 친구인 두 녀석은 모두 기혼이었다.
거기에 아이들까지 있으니 수호의 이야기가 더욱 무겁게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스트라이크입니다! 임광호 선수가 위기의 상황에서 팀을 구합니다!]
[본인의 장기였던 커브를 던지면서 역할을 다하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광호는 이제 완전히 원 포인트 릴리프구나.”
“나이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난 녀석이 프로로 간다고 했을 때, 선발투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은퇴까지 구원투수로 뛸 줄은 몰랐어.”
아마추어 시절 임광호는 언제나 선발로 뛰었다.
그렇기에 프로에 가서도 당연히 선발로 뛸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선발이 올라가기 어려운 자리라는 거지.”
“프로에서 뛴 것만 해도 어디냐? 대부분 애들이 프로지명도 못 받고 그만둬야 하는데.”
“맞아.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난 당연히 프로가 될 거라 생각했거든? 사실 나는 한국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뛸 거라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
“크크! 야, 그건 너무 오버 아니냐? 메이저리그는 무슨.”
“솔직히 용태 너도 그때 프로지명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하지만 현실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더라고.”
용태가 씁쓸하게 웃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태수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수호 너는 프로 지명이 가능하지 않았어?”
“맞아. 그때 코치님도 너 지명될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정확히는 지명이 아니라 육성선수 제안이었어.”
“육성선수면 연습생이지?”
“응. 아무래도 포수였기 때문에 데려가고 싶었나 보더라고.”
“그럼 지명해서 데려가면 되지.”
“그렇게 되면 계약금도 있고 지명권까지 써야 하니까. 그 정도 실력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나 보지.”
연습생은 지명권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계약금도 없다.
최저연봉은 줘야 하지만 구단 입장에선 지명권을 아낀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였다.
“그래도 육성선수면 프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거잖아. 왜 포기한 거야?”
“그냥 현실을 택한 거지. 지명권을 쓰는 것조차 아까운 내가 프로에 가서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
수호가 술잔을 기울였다.
“크으-! 무엇보다 당시에 공부를 시작하더라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는 거잖아? 더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어.”
“하긴 우리도 공부 다시 하느라 죽는 줄 알았지.”
“어우...야구 포기하고 다시 교과서 보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
“난 대학 간다고 재수까지 했잖아.”
운동부라면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에 투자한다.
그랬던 선수들이 갑자기 공부를 한다고 잘 할 리가 없었다.
수호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했던 것이다.
“자자, 옛날이야기는 그만하고 한 잔 하자.”
“그러자.”
잔을 부딪혔다.
술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덕분에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 * *
늦은 밤.
수호는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어디까지 모실까요?”
“천호동까지 가주세요.”
“예~”
곧 택시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보는 도심의 야경을 보며 수호는 생각했다.
‘예쁘네.’
이렇게 멍하니 야경을 보는 게 얼마만이지?
어릴 때는 그래도 야경을 보거나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다.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는 걸 즐겼다.
하지만 어느 샌가 그러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부터였다.
‘남들 다 가는 휴가 한 번 가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돌아오는 거라곤 명예퇴직이구나.’
세계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회사도 덩달아 힘들어졌다.
자연스레 인원감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이란 벽은 자신의 예상보다 더 높았다.
‘내가 받는 월급으론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더 안정되면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중으로 미루다보니 어느새 40대가 됐네.’
꿈을 포기한 이후에 수호는 그 선택에 후회되지 않게끔 살아왔다.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고 빠르게 사회에도 적응했다.
그런 삶이 이어지다보니 수호는 점점 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혼까지 미루고 결국 미혼으로 40대를 맞이했다.
“내 선택이 잘못됐던 걸까?”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했다.
그게 정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은 것이라곤 약간의 돈과 후회밖에 없었다.
그때 운전을 하던 기사님이 물었다.
“후회되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예?”
“계속 한숨을 쉬시길래요.”
“하하...제가 그랬나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뱉었나 보다.
“예. 뭔가 후회 가득한 한숨이라서 저도 모르게 말을 걸게 되었네요.”
그렇게까지 티가 났나?
마치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한 말에 수호가 입을 열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도 함께.
고해성사하는 신도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이야기를 털어두었다.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인데. 왜 처음보는 기사님한테 하게 되는 거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 열린 푸념은 봇물 열린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처음 뵙는 분한테 제가 우울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아닙니다. 제가 먼저 물어봤는 걸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편하게 물어보세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신다고 하셨는데. 만약 과거로 돌아가신다면 선택을 바꾸실 건가요?”
“과거로요?”
“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질문일까?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만약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다시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후회가 남을 인생. 제가 정녕 해보고 싶은 걸 끝까지 해보고 싶네요.”
“그 말씀은 선택을 바꾸실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예. 그럴 수만 있다면 꿈을 향해 달려보고 싶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어...?’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자연적이지 않은 갑작스런 졸음에 수호는 당황했다.
‘왜 이러지...?’
점점 멀어지는 의식 속.
택시기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그분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죠.”
‘그분들...?’
“아아~이걸로 저도 이제 좀 편해지겠어요. 그분들의 억지를 그만들어도 될 테니까요.”
‘도대체 무슨...?’
“그래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분들의 훈수라면 당신의 꿈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훈수라니...?’
“그럼 두 번째 인생, 후회없이 사실지 저도 가끔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인생...?’
“재밌는 방송을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방송이라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수호의 귀로 더 이상 택시기사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 수호는 생각했다.
‘두 번째 인생...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수호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