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전야 (3) >
1942년 5월 22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긴급속보.
소련이 중국 국경을 다시 열었다고 한다.
중국이 화를 내고 사정을 해도 끄떡없던 놈들이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 국경봉쇄를 해제했는지 모르겠다.
보유한 전차포탄을 모두 소진해 귀중한 4호 전차를 창고에 모셔두기만 했던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한 호재였다.
국경봉쇄가 해제되기 무섭게 중국은 즉시 우리에게 무전을 보내 다시 탄약과 예비 부품을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어쩌면 국경봉쇄 해제가 스탈린만의 화해 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심은 금물.
아직 소련은 서부 국경에 배치한 군 병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병력도 계속해서 서쪽으로 보내고 있다.
왠지 느낌이 너무 이상하단 말이지.
국방군도 이상함을 느꼈기에 중국의 요청에 대해선 수락만 하고 물자를 보내는 일은 잠시 미루자고 제안했다.
장제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야 손해 볼 게 없었기에 그러라고 했다.
빅 뉴스는 하나 더 있었다.
소련이 어제 갑자기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해온 것이다. 날짜는 대강 7월 초로 잡고, 장소는 차차 합의하는 것으로.
리벤트로프는 이것이야말로 스탈린이 독일에 보내는 화해의 메시지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래도 영 수상했다.
지금까지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대면서 보란 듯이 군대를 국경에 깔던 놈들이 갑자기 정상회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암만 봐도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전략 같은데....
그런데 리벤트로프 말대로 스탈린 나름의 화해 시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스탈린은 철두철미한 성격.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지금의 소련군으로는 전쟁 기계인 독일과 맞서는 게 힘들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괜히 되지도 않는 헛짓거리 벌였다가 좆될 것 같으니 포기하고, 그렇다고 여기서 바로 군대 빼면 모양만 빠지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당분간은 현상유지를 할 수도 있다.
“일던 먼저 제안을 해왔으니 우리도 답장을 보내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만나서 구체적으로 어떤 안건들을 논의할 건지 물어보게. 날짜는 그쪽이 정하되, 장소는 되도록 우리가 정하고 싶다는 것도 전하고.”
“예, 총통 각하.”
날이 갈수록 독일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처칠에 대항하여 우리도 선전방송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재개했다고 보는 게 좋겠군.
BUF 당원이자 지금은 독일 시민권을 취득해 독일인이 된 윌리엄 조이스-영국에선 ‘호호 경’이라고 불렀다-가 제국방송(Reichsrundfunk)에서 진행하는 ‘독일이 부른다(Germany Calling)’가 바로 그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친애하는 청취자 여러분. 오늘도 베를린의 하늘은 쾌청....하지는 않고, 곧 비가 쏟아질 날씨입니다. 우산을 집에 두고 왔는데, 퇴근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길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은 특별 손님을 모셨는데요. 누굴까요? 바로.... 인도에서 오신 찬드라 보스 씨입니다!
조이스가 진행을 맡았던 선전방송은 반유대주의로 떡칠 된 탓에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효과와는 별개로 인기가 의외로 상당해서 영국 정부에서 국민이 조이스의 방송을 너무 많이 듣는다며 대책 마련을 고심했을 정도다.
따라서 조이스의 방송을 잘만 이용하면, 제법 쏠쏠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영국인들에게 전쟁의 부당함을 설파하고 영국에 사는 인도인들을 선동할 목적으로 찬드라 보스를 방송에 내보냈다.
방송에 출연한 보스는 때론 덤덤한 어조로, 때론 격정적인 말투로 영국의 식민통치를 비판했다.
-1차대전 때, 영국은 자치권을 미끼로 인도인 수십만 명을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만 명이 돌아오지 못했고, 수만 명이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그들에게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약속한 자치는커녕 되려 인도인들의 목줄을 더욱 조이며 반발하는 사람들을 총칼과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그 결과 인도 전역에서만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인도인에게 전합니다. 이제 우리는 독립을 위해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인도의 운명은 더 이상 영국인들이 아닌, 인도인들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전 인류를 향한 사랑을 믿으신다면 이제 인도를 놔주십시오. 여러분은 우리 인도인들을 하찮고 불결한 존재로 여기면서도 정작 그 하찮고 불결한 인도인들의 조국인 인도만큼은 손아귀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이다음에는 여러분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 얘기를 좀 나눠볼까요? 우선 여러분은 그가 갈리폴리 전투에서 수만 명의 젊은이를 터키의 흙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계셨습니까? 몰랐다고요? 저런. 지금부터 제가 차근차근 알기 쉽게 알려드릴테니 잘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해서 처칠은 작전의 실패를 존 피셔 제독에게 떠넘겼지요. 이 얼마나 추잡한 짓입니까? 심지어 처칠은 이때의 버릇을 못 고치고 체임벌린에게도 같은 짓을 하려다가 망신만 당했지요. 지금은 겨우겨우 총리가 됐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가 말레이 해전의 대패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처칠의 망나니짓은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여러분! 정말이지 파도파도 괴담 밖에 안 나오는군요. 양파같은 인간이랄까요? 저는 평소에도 죽기 전에 무언가를 많이 남기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처칠처럼 저렇게 많이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영국인의 입에서 듣는 처칠 욕이라. 21세기에서도 통용되는 선전 방법이 바로 상대방 나라 국민을 데려와서 그 나라 욕을 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선전방송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없는 것 같은데. 처칠이 제국방송을 들을 리 없겠지만, 만약 듣는다면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하군.
***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위 세 나라 모두 영국과 그럭저럭 괜찮은 사이를 유지하던 나라들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영국과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당연히 우리 대영제국의 위대하신 총리 각하 덕분이지요!
“개씨발, 좆같은 제리 새끼들!”
처칠은 분을 참지 못하고 라디오를 집어 던져 박살을 냈다.
그가 박살 낸 라디오는 영국 하층민들이 한 달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일해서 모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비싼 제품이지만, 이성을 잃은 처칠에게는 사탄 들린 저주받은 물건, 악마의 주둥아리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후우, 후.....”
라디오를 박살을 낸 것만으로도 화가 덜 풀리는 모양인지 처칠은 연신 심호흡을 하며 방안을 서성거렸다.
참자, 참아. 벌써 화를 내기엔 너무 이르다. 아직 독일과의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독일을 멸망시키면 난 후에는 히틀러와 조이스를 생포해서 고환을 구둣발로 짓이겨주겠노라고 맹세하며 처칠은 자신에게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 눈을 돌렸다.
소련에 있는 MI6 요원들이 종합해 온 정보로 추정컨대, 6월이 되기 전에 독일을 칠 계획이라는 몰로토프의 말은 사실인 듯싶었다.
히틀러라는 제2의 칭기즈칸이 유럽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손을 잡았을 뿐 뼛속까지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처칠은 소련을 결코 신뢰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이든에게 자국의 비밀은 최대한 숨기거나 일부만 알려주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치 놈들 다음으로 역겨운 빨갱이들이지만, 교수대에 매달린 히틀러 놈의 불알을 걷어차기 전까지는 놈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인정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대영제국 혼자서는 독일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루스벨트는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 히틀러와 나치를 혐오하는 입장인 루스벨트는 독일이 보내오는 러브콜도 죄다 씹어버리고 영국이 위기에 처하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혀 처칠을 기쁘게 만들었지만, 대독전 참전에는 소극적이었다.
진주만 공습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는 일본과 달리 독일은 전쟁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일본과의 전쟁에는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나, 하등 관계없는 독일과 전쟁을 한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미 의회도 같은 반응일 테고.
처칠은 히틀러가 일본이 아닌 중국과 손을 잡은 것을 무척 아쉽게 여겼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독일이 일본과 동맹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루스벨트는 마음 놓고 독일에 선전포고할 수 있었을 테고, 대독개전도 훨씬 빨라졌을 텐데.
굳이 자유 프랑스의 손을 빌리면서까지 암소 작전 같은 자작극을 벌일 필요도 없었을 테고.
아쉬운 일이었다.
“각하. 슬슬 시간이.”
“아아. 지금 가겠네.”
전쟁성으로 이동한 처칠이 받은 첫 번째 보고는 영국 내 전투기 생산량에 관련된 것이었다.
군수장관 비버브룩 경 윌리엄 맥스웰 에이트켄은 대영제국의 하늘을 책임질 스핏파이어 전투기 생산량을 성공적으로 증대시킨 것에 대해 처칠의 칭찬을 받았다.
1940년 프랑스 전장의 창공에서 사용되었던 Mk.I은 나치의 Bf109, Fw190을 상대로 처참한 교환비를 보여줬지만, 20mm 기관포를 장착해 화력을 강화하고 여러 잡다한 문제점을 개선한 스핏파이어 MK.V라면 분명 Bf109, Fw190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동남아 전장에 투입된 스핏파이어 MK.V는 일본군이 자랑하는 제로센, 하야부사를 상대로 나름 호각으로 싸우며 꾸준히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문제는 독일도 신형 전투기를 개발했다는 것인데.... 스핏파이어와 더불어 새로 개발한 호커 타이푼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 아직도 개발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칠은 한숨을 푹 쉬며 회의가 끝나는 대로 타이푼 개발진에게 전화해서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해군참모총장 더들리 파운드 제독은 구축함 생산에 할당된 자원이 부족하다며, 해군은 지금보다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처칠에게 하소연했다.
인도양을 휘젓고 다니는 일본 해군 잠수함들 때문에, 인도와 호주로 향하는 영국의 수송선 여러 대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망할 쪽발이들의 잠수함을 잡고 수송선들을 보호하려면 더 많은 구축함이 필요하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자신의 주장에 열변을 토하는 파운드에게 처칠은 적극적인 동의를 표했다.
대독전이 시작되면 쪽발이들의 잠수함 말고도 제리들의 유보트까지 상대해야 하니 당연히 더 많은 구축함이 필요하다.
루스벨트가 구축함 30대를 영국에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루스벨트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구축함들은 1차대전 때 사용한 구식함들이었다.
배 한 척이 아쉬운 입장이었던 영국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1차대전의 구식함들로 독일 해군의 최신형 유보트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프랑스에서 성능 부족임이 드러났던 마틸다 전차는 의외로 동남아 전장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유탄이 없어 적 보병들과 대전차포를 공축기관총으로만 상대해야 한다는 단점만 빼면 호평 일색이었다.
워낙 장갑이 단단해서 웬만한 공격에는 면역인 데다 크기와 무게도 적당해서 도로가 잘 발달하지 못한 정글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발렌타인 전차도 마틸다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처칠은 영국에 남은 마틸다의 잉여 생산분과 새로 생산하는 발렌타인은 전부 동남아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쪽발이들의 항공기와 전투함들은 무시할 수 없지만, 전차는 정반대였다. 놈들이 굴리는 전차 같지도 않은 전차는 영국의 마틸다, 발렌타인에게 무력했다.
일본군이 보유한 전차 중에 가장 강력하다는 3식 전차도 덩치만 클 뿐이지 바늘포나 다름없는 37mm 주포를 장착해 마틸다와 발렌타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구축함과 더불어 루스벨트가 영국에 지원한 M3 스튜어트 경전차와 M3 리, M4 셔먼 중형전차는 장차 있을 유럽 본토 상륙에 대비해 본국에 쟁여두기로 했다.
프랑스나 네덜란드 어딘가에 상륙한 영국군과 맞닥뜨릴 나치의 군대를 대비하려면 고화력, 중장갑의 전차가 필요하다.
처칠은 바로 그때를 대비해 영국이 보유한 전차 중에 가장 강력한 미제 전차들을 남겨두기로 했다.
아직 개발 중인 크롬웰 순항전차와 처칠 보병전차도.
“에니그마 해독은 아직인가?”
“죄송합니다, 각하. 블레츨리 파크 소속 인원 모두가 사력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에잉....”
개전 전, 폴란드의 암호해독팀이 에니그마 암호 해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전쟁이 터진 후에는 영국이 폴란드 망명정부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에니그마 해독에 뛰어들었다.
영국의 연구는 나름 진전을 보이는 듯했지만, 에니그마 해독 전담부서의 팀장을 맡고 있던 앨런 튜링이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부터는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수준이 아니라 나름의 진전이 있는 상태라는 것인데, 이마저도 에니그마를 완전히 해독하려면 6개월은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에니그마를 해독한 상태에서 대독전을 시작하고자 했던 처칠은 답답함을 느꼈지만, 무작정 소리만 지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았기에 더욱 노력하라는 원론적인 말만 하고 넘어갔다.
그래도 그는 블레츨리 파크를 믿었다.
1차대전에서 영국이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듯이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승리는 대영제국의 것이 되리라!
유니언 잭이 베를린의 총통관저에 휘날릴 날만을 기다리며 처칠은 현재에 집중했다.
***
“후.... 씨발. 좆같아서 진짜.....”
브루네거는 울분을 삼키며 저녁 배식으로 나온 소시지를 포크로 내리찍었다.
선지와 비계로 만든 블루트부르스트에서 진하디 진한 피맛이 느껴졌다.
“그래, 사회 구경은 잘했냐?”
“말도 마십쇼. 페트 SS 상사님은 지금 제 심정 모르실 겁니다.”
옆자리에 동석한 요아힘 페트 SS 상사가 실실 웃으며 말을 걸었다.
과거 브루네거의 분대장이었던 그는 상의 주머니에서 힙플라스크를 꺼냈다.
힙플라스크 안에는 체리를 증류해서 만든 키르슈바서가 반쯤 들어있었다.
“잔 받아.”
페트 SS 상사는 군용 양철컵에 키르슈바서를 따라서 브루네거에게 건넸다.
도수가 제법 있는 술이었지만 브루네거는 단숨에 들이켰다.
키르슈바서의 주 재료는 체리지만 제조과정에서 단맛이 거의 다 날아가 알코올 특유의 씁쓸한 맛만 느껴졌다.
곧 위장이 얼얼해지면서 불이 타오르는 듯한 화한 느낌이 전신으로 퍼졌다.
“재입대 전까지는 뭐하면서 지냈냐?”
“호텔에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기껏해야 일주일 일한 게 전부지만.”
“그래? 무슨 호텔인데.”
“회너 호텔이라고, 그냥 평범한 호텔이에요. 주로 돈 좀 있는 여행객들이나 사업가들이 묵는 곳인데 사장이 SS 대원이라 바로 합격했죠.”
호텔은 돌아오면 언제든지 다시 받아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보다 브루네거는 왜 자신이 다시 군대에 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대한 지 얼마나 됐다고!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냐? 자그마치 총통 각하 명령인데.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불렀겠지.”
“페트 SS 상사님은 들으신 거 없습니까? 왜 제대한 예비역들에게 다시 소집령이 떨어졌는지.”
“대대장도 모르는 것 같던데. 대신 소문은 들었어. 소련 놈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그렇다고 하던데. 원래 우리 사단도 다하우에 있다가 갑자기 쾨니히스베르크까지 온 거잖냐.”
갑작스러운 재입대 명령도 그렇고 다하우에서 쾨니히스베르크로 재배치된 것에 대해서도 여러 소문이 돌았다.
숭숭한 사단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사단장 테오도어 아이케 SS 대장이 도시에서 악단과 무용수들까지 초청해 초대형 연회를 열었지만, 여전히 소문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브루네거는 제발 소문이 소문에서 그치길 바랐다.
4년간 전쟁터에서 굴렀으니,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