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29화 (129/150)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1) >

헤스의 순간적인 아이디어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굉장했다.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흘린 역정보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곧 소련에 있는 스파이들을 통해 우리가 뿌린 미끼들이 낚아 올린 대어들에 관한 정보가 속속 베를린으로 전달되었다.

소련 해군장관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가족들과 함께 NKVD에 체포. 직위는 박탈.

소련 공군의 2인자 알렉산드르 노비코프. 쿠즈네초프처럼 가족 전원과 함께 NKVD에 체포. 역시 직위는 박탈.

키릴 메레츠코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이 2명은 이미 체포되어 굴라그에 있었다. 이들에겐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들 외에 코룔로프같이 숙청되어 굴라그에 있던 과학자들 여럿도 함께 처형되었다.

독일군의 가장 큰 적수이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소련군을 약체화시킨다는 계획은 성공했다.

단, 위험대상 1순위인 주코프는 의외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는 직위를 박탈당하지도, 굴라그로 끌려가지도 않았다. 스탈린이 그에게 취한 조치는 가족들과 친척들을 체포해 감시하는 게 전부였다.

“아무래도 주코프를 향한 스탈린의 신뢰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나 보군.”

다른 장성들은 가차 없이 처형했으면서 주코프만 살려둔 걸 보면 스탈린의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실제 역사에서도 주코프는 남들이 죄다 숙청당할 때, 우랄군관구사령관으로 좌천되는 선에서 끝났지.

운빨 한 번 억세게 좋은 양반이군.

가장 큰 위협인 주코프를 제거하지 못해서 아쉽긴 하나,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이었다.

우리로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소련군의 전력을 크게 깎아낸 셈이니까. 소련의 과학 발전을 몇십 년 뒤로 후퇴시킨 건 덤이고.

죽은 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쩌겠나. 스탈린 같은 인간을 지도자랍시고 떠받든 자신들을 원망해야지.

즐거운 소식은 또 있었다.

이전부터 고향의 맛이 그리웠던 나는 총통이 되자마자 향수병에 걸린 혀를 위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오늘, 그 노력 중 하나가 결실을 맺었다.

“이게.... 무슨 음식입니까?”

“국수 같기도 하고.”

독일 최고의 과학자들과 식품 공학자들이 오랜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을 별 희한한 걸 다 본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각 군 수장들-괴링, 힘러, 카이텔, 브라우히치, 레더-에게 나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아아, 이건 바로 ‘라멘’이란 것이오. 이 세계에는 없던 음식이지.”

“라....멘?”

“그게 뭡니까?”

“설명하자면 조금 긴데. 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중국의 ‘라몐(拉面)’은 수타면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것을 국물에 말아서 먹는 탕면이 일본에서 현지화된 게 흔히 아는 ‘라멘(ラーメン)’이다.

일본이 낳은 전설적인 발명가 안도 모모후쿠가 이 라멘을 인스턴트화해서 1958년에 내놓은 게 우리나라에서 라면으로 알려진 인스턴트 라멘이다.

총통이 된 뒤로 아무리 비싸고 진귀한 고급 요리를 먹어도, 사람들이 엄마가 해준 집밥을 그리워하듯이 내 혀는 추억의 맛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독일 병사들을 위한 새로운 전투식량을 만든다는 명목하에 과학자들에게 인스턴트 라멘 개발을 지시했다.

인스턴트 라멘을 직접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대강의 제조방법은 책과 인터넷을 통해 본 기억이 있다.

삶은 밀가루 면을 실온에서 오랫동안 보존하려면 기름에 튀겨 수분을 제거하고 산소와의 접촉을 차단해야 하며, 면에 국물이 잘 스며들고 빨리 익게 만들려면 꼬불꼬불해야 한다든지 등등.

완성된 면을 스프와 함께 폴리스티렌으로 코팅된 종이컵에 넣어 포장함으로써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이 탄생했다.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인 치킨라멘은 닭육수가 베이스인 소유라멘이 모티브라 소유라멘 맛이 나는 스프가 들어갔지만, 독일에서는 소유라멘을 먹지 않으므로 아인토프 맛이 나는 스프가 들어갔다.

건더기는 일부러 넣지 않았다.

애시당초 본래 목적이 전투식량으로 만든 거라 제조공정을 조금 더 간단히 할 필요가 있었고, 완두콩이라든지 소시지 같은 다른 식량들이랑 혼합해서 먹으면 되니까.

나는 친히 측근들을 불러모아 인스턴트 라멘의 시식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첫째, 포장지를 연다. 대략 절반 정도.

두 번째, 스프를 면 위에 뿌리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세 번째, 다시 포장지를 덮고 3분간 기다린다.

“3분 뒤 뚜껑을 열면 완성이지.”

원래 라멘은 젓가락으로 먹어야 제맛이지만, 젓가락을 사용해본 적 없는 이 미천한 독일인들을 위해 포크를 사용해 시범을 보였다.

포크로 면 요리를 먹는 데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젓가락질이 더 편했다.

내가 나서서 시범을 보이자, 나머지도 일제히 내 설명에 따라 컵라면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스프를 뿌리고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포장지를 덮어 3분간 대기.

“으음. 처음 먹는 맛이군요.”

“전투식량이라 별 기대 안 했는데, 꽤 먹을만합니다.”

장군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통조림도 아니고 종이컵 포장이라 작은 충격에도 쉽게 파손될 우려가 있으며, 장기간 보관이 힘들다는 것, 그리고 포크가 없으면 취식이 아주 힘들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국수 종류다 보니 숟가락이나 맨손으로는 먹기가 힘들지.

“그래도 새로운 맛인 데다 제조방법도 간단하고 준비물도 간단하니 장병들의 반응이 좋을 것 같습니다.”

브라우히치는 입맛에 맞는지 컵에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암. 본래 전투식량용으로 만든 거지만, 민간에도 팔 생각인데 어떻소? 국민의 반응도 제법 괜찮을 거 같소만.”

“가격만 적당하다면 국민의 반응도 괜찮을 겁니다.”

라멘 외에 전투식량으로 기획한 음식은 또 있었다.

브로트주페(Brotsuppe)라고, 직역하면 ‘빵 수프’라는 독일 수프인데 이름 그대로 크림 수프에 빵조각을 넣어서 만드는 수프다.

이놈도 인스턴트 라멘처럼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분말 스프와 건조한 빵조각을 여러 개 넣어서 만들었는데 가격과 제조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쪽이 훨씬 더 싸다.

포크가 있어야만 먹을 수 있는 라멘과 달리 숟가락만 있으면 되고, 그조차 없으면 국 먹듯이 마시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놈 이름이 라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일본 요리에서 따온 이름이지.”

“엄연히 독일에서 만들었는데 이름이 외국식이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일본과 독일은 사이도 안 좋은데.”

카이텔의 지적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에서 만들었는데 정작 이름이 일본식인 것도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그것도 그렇군. 그럼 적당한 이름이 있겠소?”

텅 빈 컵을 들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던 괴링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총통께서 고안하셨으니, 퓌러누델(Führernudel)이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내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만들었으니까 이름도 ‘총통의 국수’로 하자고? 이미 티라미수도 퓌러쿠헨이라 부르는 마당에 굳이-

“오, 그거 아주 괜찮은 생각이군요.”

“찬성합니다!”

“아암. 총통께서 만드셨으니 마땅히 그렇게 불러야지요!”

의견 제시자인 괴링 포함 전원 만장일치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의 이름은 퓌러누델로 정해졌다.

와, 신난다.

***

1942년 2월 15일

말레이 반도의 끝자락이자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 싱가포르는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9만에 달하는 영국군과 영연방군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고,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가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적군이 노획해서 사용할 수 없게끔 제때 물자를 파기해야만 했지만, 도망치기 바쁜 3선급 부대들이 명령을 제대로 이행할 리가 없었다.

단적인 예로 일본군에게 노획된 쌀만 자그마치 32만 5천 톤.

10만 명의 병사들에게 1인당 연간 150kg씩 배급해도 20년은 버틸 수 있는 분량이다.

노획된 것은 식량뿐만이 아니었다. 승용차, 트럭 등 차량들부터 연료, 담배와 술 같은 기호품들까지 영국군은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물자를 일본군에게 고스란히 헌납했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반자이!”

일본군은 노획한 영국산 위스키를 마시며 승리를 자축했다.

일개 대위조차 노획한 승용차를 배차받았고 병사들은 인도산 쌀과 호주산 쇠고기 통조림으로 잔치를 벌였다.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이 맛본 치욕스러운 대패는 영국인들에게 상상 이상의 충격을 안겼다.

이미 사람들은 2년 전 프랑스에서 BEF가 거둔 대패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상대가 독일군이었다. 같은 백인들끼리 싸워서 패배한 것이기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지언정 치욕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렸다. 이번에 영국군이 싸운 상대는 같은 백인인 독일군이 아니라 황인종인 일본군이었다.

그런 열등한 군대에, 대영제국 군대가 패배한 것이다.

싱가포르 전투의 패전 소식으로 영국 전역에서 들끓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일본에까지 패배해 영국에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긴 정부와 군에 대한 성토와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스터 갈리폴리로 영원히 기억될 윈스턴 처칠도 정부를 향한 비난 여론에 가세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대영제국은 아시아에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대단히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했습니다.

우리의 장병들,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이들.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인들은 열심히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와 투혼은 보답 받지 못했습니다.

병사들은 버림받았습니다. 적에게 살육당했습니다. 적에게 포로가 되는 치욕을 맛봤습니다.

어째서 우리 병사들이 이런 굴욕과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까? 정부가 조금만 덜 무능했어도, 일본의 야욕을 제때 알아차리기만 했어도 오늘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옳소! 옳소!”

“무능한 정부는 물러가라!”

영국이 아시아에서 맛본 패배에 처칠 본인도 적지 않은 일조를 했으니 할 말이 없어야 했다.

그러나 처칠이 누군가. 그는 영국의 누구보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남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기는데 도가 튼 남자였다.

비록 체임벌린 때는 통하지 않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처칠을 도와주었다.

지난날 영국이 유럽에서 거둔 패배, 특히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을 영국의 적으로 만들게 한 처칠의 악수는 말레이 반도에서의 패전에 가려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혔다.

처칠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사람들의 망각을 이용해 그는 자신이 속한 내각을, 내각의 수장 핼리팩스를 공격했다.

이전부터 핼리팩스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노동당과, 처칠을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보수당의 일부 인원들도 다시 처칠에게 합류했다.

노동당은 이번 기회에 보수당을 끌어내리고자 했고, 보수당의 일부는 국민의 분노가 보수당 전체를 향하기 전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살 사람은 살아야지.

그 희생양으로 선택된 자가 영국의 현 총리 핼리팩스였다.

“지금 제정신이오, 당신?”

핼리팩스는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마냥 처칠을 증오와 혐오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칠은 핼리팩스의 시선에 잠시 움찔했지만, 곧 그답게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핼리팩스를 조롱했다.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습니까, 총리?”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

“나는 그저 국민에게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당신 나름대로 나름 노력했다는 것쯤은 나도 압니다. 하지만 총리, 역사는 노력한 이를 알아주는 게 아니라 결실을 본 사람을 알아주는 법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이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나는 것이오?”

“어허. 무슨 그런 말씀을. 나는 대영제국의 총리 자리가 탐이 나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대체 왜 나를 공격하는 것이오?”

“나는 총리를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이 참패에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드렸을 뿐이지요. 총리께서도 아시겠지만, 이미 국민들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보수당도 당신에게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시지요.”

“허, 결국엔 이 자리가 탐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그러셨소. 그러면 적어도 덜 추해 보였을 테니까, 미스터 갈리폴리 씨.”

평온을 유지하던 처칠의 얼굴이 단번에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처칠은 겨우 웃음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지만, 이미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얌전히 사임하신다면, 국민도 나중에는 당신을 이해할 겁니다. 그러니-”

“내 잘못은 부정하지 않겠소. 하지만 그거라면 당신도 할 말이 없을 텐데? 말레이 해전의 참패는 당신 잘못이 크지 않소?”

“흠, 흠. 말레이 해전의 결과는 비극이지만, 어디까지나 갑자기 닥친 기습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불운이었습니다.”

“전사한 장병들의 유족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군.”

“유족들도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원할 겁니다.”

상원과 하원, 보수당과 노동당을 통틀어 처칠에게도 영국군의 대패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처칠 외에 총리직을 맡을만한 인재가 없었다.

정확히는, 총리직을 맡고 싶은 이가 없었다.

그 누구도 지금처럼 전황이 절망적일 때에 총리가 되어 체임벌린이 걸었던 길을 반복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단 한 명, 처칠을 제외하고.

“핼리팩스 총리는 대영제국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두 번이나 남겼습니다. 그는 독일과의 휴전조약에 서명하였고, 일본에게 싱가포르를 빼앗겼습니다. 그가 권력을 놓지 않는다면, 런던은 불바다가 될지 모릅니다!”

“핼리팩스는 총리직에서 사임하라!”

“죽은 내 아들을 살려내라! 무능한 정부는 물러가라!”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의 압박이 거세어지자 핼리팩스도 도저히 버티지 못했다.

애초에 그는 자신이 원해서 총리가 된 게 아닌, 체임벌린의 부탁으로 총리직을 넘겨받았다.

그는 자신이 앉은 자리가 누군가는 마셔야 할 독배임을 알았고, 대영제국의 미래를 위해 기꺼이 그 독배를 마셨다.

핼리팩스의 든든한 동료였던 체임벌린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는 전쟁이 끝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원해서 오른 자리가 아니었던 만큼, 미련도 없었다. 핼리팩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잘 알겠소. 그럼 어디, 그토록 원하는 총리가 되서 이 나라를 자-알 이끌어 보시구려.”

“걱정하지 마시지요. 나는 대영제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생각이니까요.”

체임벌린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처칠을 물고 늘어진다면 이 자가 영국 총리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핼리팩스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귀 기울여 줄 이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조용히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사람들은 무능한 총리의 추한 변명으로 치부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그 잘나신 양반께서 과연 이 나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엔 똑같은 선동꾼에 불과했는지 핼리팩스는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행운을 빌겠소.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아두시오. 세상일은 결코 당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오.”

“어린애도 아니고 그 간단한 이치를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당부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소. 만약 그대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맞이한다면, 그대도 지금의 나와 같은 결단을 보여주길 바라겠소.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말이오.”

“명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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