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26화 (126/150)

< 동상이몽 (3) >

분위기만 보면 회담이 당장 파토나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의외로 회담은 계속 진행되었다.

영국을 공동으로 공격하는 제안이 거절당하자, 스탈린은 이번에는 핀란드를 요구했다.

“비록 재작년에는 실패했지만, 나는 조만간에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복속시킬 생각입니다. 하지만 독일이 핀란드에 무기를 판매하고, 고문단을 보내 핀란드군을 훈련하고 있죠.

물론 독일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앞에서 실컷 까놓고 뭐라는 거야. 하여간 뻔뻔하기론 따라올 자가 없다니까.

“그래서 말인데, 핀란드에 파견한 고문단을 철수시키고, 핀란드에 더 이상의 무기와 물자를 판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독일이 핀란드에 판 무기와 탄약이 붉은 군대 병사들 죽이는데 이용된다는 보고는 듣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허허.... 그 건에 대해서는 뭐라 즉답을 드리기가 어렵군요.”

내가 눈빛을 보내자 리벤트로프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받았다.

“핀란드로부터 대금까지 모두 지급 받은 마당에 무기와 탄약의 인도를 거부한다면 독일의 신용도는 하락할 것입니다. 그리고 독일은 일찍이 핀란드에 안전을 보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핀란드가 공격당하는 것을 수수방관한다면, 세상에 어느 나라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싶어 하겠습니까?”

“즉, 핀란드는 양보할 수 없다. 이 말인가요?”

“독일의 신용이 걸린 문제라 부득이하게 양보가 힘들 것 같습니다. 이해해주시지요.”

나는 스탈린이 불만을 토로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입맛만 다실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스탈린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내가 그것을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하거나 협상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스탈린은 우리가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압류한 함정 일부를 소련에 팔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나는 레더와 상의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또 몰로토프가 꺼낸,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을 독일과 소련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터키 정부는 전쟁을 무릅쓰고서라도 거부할 것이라는 말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고 소련의 요청을 무조건 다 거절한 것은 아니다.

독일 의사들을 소련으로 파견해, 소련의 낙후된 의료기술 체계를 재정비하고 소련 의사들을 교육해달라는 스탈린의 요청을 나는 순순히 허락했다.

그리고 Sd.Kfz 251 반궤도 장갑차, Ju52를 연구용으로 들여오게 해달라는 티모셴코의 요청도 허락했다.

“대신, 우리도 귀국에 요구할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중국 국경 봉쇄를 해제하고, 독일에 공급하는 석유와 몰리브덴, 텅스텐의 물량을 늘려주길 원합니다. 자세한 수치는 이 자료를 보고-”

리벤트로프가 서류가방에서 몇 장의 문서를 꺼내 소련 측에 건넸다.

스탈린은 리벤트로프가 건넨 서류를 훑어보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석유와 광물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은 저희 쪽에서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 국경 봉쇄를 해제하는 것은 조금 검토를 해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소련의 위신이 걸린 문제라서 말이죠.”

나는 몇 차례나 스탈린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은 요지부동이었다.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쟁에 끼어들었지만, 중국은 국경 봉쇄가 풀리지 않아 물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팔켄하우젠의 보고에 따르면, 4호 전차와 헷처의 탄약이 4, 5회분 정도밖에 남지 않아 운용이 어렵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트럭과 항공기를 굴릴 기름도 부족하단다.

그나마 미국과 영국이 중국에 물자를 보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양이 쥐꼬리만 했다.

중국과 바다를 잇는 거의 유일한 출구였던 버마가 일본군에게 넘어가기 직전이라 부득이하게 수송기편으로 티베트를 통과해 공중으로 보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차나 대포 같은 중화기는 꿈도 못 꾸고, 기껏해야 약간의 식량과 탄약, 연료와 의약품을 제공하는 게 전부.

팔켄하우젠 말로는 지금 일본군이 총공격을 감행해온다면 충칭까지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중국의 사정은 보통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영국 정부에서 소련에 압력을 행사 중이지만, 스탈린은 짖을 테면 짖어 봐라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중국이 없어도 태평양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테지만, 중국이 무너지면 중국 방면의 일본군 병력이 태평양과 인도양 일대에 투입될 것이고 당연히 종전도 뒤로 미뤄질 것이다.

일본의 항복이 늦어질수록 연합국의 희생은 커질 것이고 소련만 더욱 유리해질 터.

자칫 잘못하다간 한반도까지 위험해질지 모른다.

혹시 일본의 눈치 때문에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괜히 스탈린의 기분을 건드려서 그러잖아도 뒤숭숭한 회담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지.

회담이 슬슬 마무리될 무렵에 스탈린이 지나가듯이 물었다.

“모처럼 소비에트 연방을 방문하셨는데,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하시지요. 뭐든지 내드릴 터이니.”

스탈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데리안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붉은 군대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전차를 보고 싶습니다.”

구데리안의 발언에 소련 측 인사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4명 모두 구데리안의 말에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하고 스탈린의 얼굴만 응시했다.

“붉은 군대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전차라.... 히틀러 총통께서는? 따로 부탁이 있으신가요?”

“저도 구데리안 원수처럼 소련 육군의 전차들을 보고 싶군요. 아, 기왕이면 야포와 항공기도 볼 수 있다면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

작년 소련 협상단이 독일을 방문해 판터와 티거를 보고 간 것처럼, 우리도 소련에 왔으니 소련군이 보유한 무기들을 보고 싶었다.

사실 이 시기 소련군이 어떤 전차를 굴리는지 대강은 다 알고 있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픈 마음도 컸다.

혹시 내가 모르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무기가 이미 나왔을지 모르니까(소련이 이걸 우리에게 보여줄 가능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스탈린은 나와 구데리안의 부탁을 듣고 고심하는 눈치였다.

통 크게 보여줘, 아님 말어? 천하의 인간 백정이 겨우 전차를 보여주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꼴이라니.

내가 아는 스탈린의 냉혹한 모습과 비교되는 유치한 태도에 헛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아아. 우리가 너무 어려운 부탁을 한 것은 아닌-”

“크흠, 흠. 알겠습니다. 독일도 일전에 우리 측 협상단에게 신형 전차를 보여준 적이 있으니, 안될 것도 없지요.”

이제 와서 통 큰 척하기는. 모양만 빠지거든? 나와 눈빛을 교환한 구데리안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고맙습니다, 서기장 각하.”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만 일어나시지요. 여러분을 위해 작은 연회를 마련했으니 말입니다.”

***

연회장은 음식과 술 냄새로 가득했고, 참석자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참석자들과, 그들만큼이나 멋들어진 복장의 군악대 무드 있는 곡을 연주하고 웨이터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술과 음식을 날랐다.

“오늘 연회의 건배사는 히틀러 총통께서 해주시지요.”

“그럴까요?”

스탈린의 권유에 나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나섰다.

스탈린이 손뼉을 치자 끼리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일제히 말을 멈추고 내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로봇들을 보는 것 같군. 명령어를 치면 알아서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된 로봇. 개발자 이름은 스탈린이고.

“우선, 지금 이 자리를 만들어준 소비에트 연방의 위대한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오스트리아 촌구석에서 태어난 일개 화가지망생이,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의 마누라들과 결혼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죠.”

“와하하하하!!!”

파블로프가 내가 한 말을 러시아어로 통역해서 좌중에 들려주자, 일제히 폭소가 터져 나왔다. 몰로토프도, 보로실로프도, 심지어 스탈린도 내가 한 농담이 꽤나 취향 저격이었는지 껄껄 웃어댔다.

“그럼, 다 같이 건배합시다. 소련과 독일, 위대한 두 나라의 영원한 우정과 미래를 위해 건배!”

“건배!”

좌중이 잔을 든 손을 위로 뻗으며 건배를 외쳤다.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손을 내리는데, 갑자기 스탈린이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스탈린이 하일 히틀러를 외치자 참석자들도 너 나 할 거 없이 일제히 하일 히틀러를 연창했다.

독일 측 인사들조차 반사적으로 하일 히틀러를 외쳤고.

이 넓은 연회장에서 하일 히틀러를 외치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어.... 뭐지? 너무 뜻밖이라 당황스러운데. 스탈린이 하일 히틀러라고 말했으니 나는 스탈린 우라라고 말해야 하나?

“놀라셨습니까?”

스탈린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 못 했거든요.”

“하하하하. 원래 세상은 아무도 예측 못 하는 일투성이지요. 그 일부라고 생각하시죠.”

스탈린이 떠나고,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리벤트로프는 몰로토프와 대화 중이고, 구데리안은 보로실로프, 티모셴코와 함께 있었다.

나는 헤스를 데리고 연회장을 거닐며, 스탈린이 우릴 위해 준비한 요리들을 조금씩 맛보았다.

러시아 요리가 반, 독일 요리가 반이었는데, 크렘린 요리사들이 만든 독일 요리는 맛은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2% 부족한 맛이었다.

역시 원조의 맛은 따라가지 못하는 건가.

어차피 독일 요리는 매일같이 먹던 거라, 나는 러시아 요리만 골라 먹었다.

러시아 요리도 독일에서 먹을 수 있지만, 기왕이면 본토에서 현지인이 만든 요리를 먹고 싶었다.

“이 샤슬릭 맛있네."

만든 지 오래돼서 식은 줄 알았는데 온기가 남아있었다.

굽기도 적당히 잘 구워졌고, 고기의 잡내도 거의 나지 않았다.

채식주의자였던 헤스는 고기 요리에는 일절 손대지 않고, 양상추와 채 썬 당근이 들어간 샐러드만 조금 먹었다.

“이 사람아, 사람이 채소만 먹어서야 오래 살겠나? 풀떼기만 먹지 말고 이것도 좀 먹게.”

보다 못한 나는 그에게 연어 알이 듬뿍 올려진 블린(Блин)을 권했다.

블린은 프랑스의 크레이프와 비슷한 러시아 요리로, 맛도 비슷할뿐더러 잼이나 크림을 발라 디저트로, 감자나 고기, 연어를 올려 식사로도 먹을 수 있었다.

“총통 각하. 제 건강을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따르는 헤스지만, 음식에 관해서는 이놈도 한 고집했다.

자기 주치의가 짜준 식단대로 먹지 않으면 안 된다나 뭐라나.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는데, 식사자리에서 혼자만 도시락을 까먹거나 하는 혼모노짓을 해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든 채식주의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실제 히틀러도 그렇고 동물권이니 뭐니 하면서 마트랑 정육점 가서 행패 부리는 인간들처럼 채식주의자들은 왜 하나같이 죄다 고집이 셀까?

알량한 내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음식은 입에 맞으시는지?”

그때 스탈린이 자기 똘마니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잔을 살짝 들어 올렸다.

“독일로 돌아가면 계속 생각날 것 같은 맛이군요.”

“으하하하! 우리 요리사들이 기뻐할 겁니다.”

“아, 옆에 계신 분은-”

“내무인민위원회 위원을 맡은 라브렌티 베리야라고 합니다. 총통 각하와 만나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나치 독일에 게슈타포가 있다면 소련에는 내무인민위원회, 줄여서 NKVD가 있다.

그 NKVD의 수장이 바로 이 남자, 라브렌티 베리야였다.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에 둥근테 안경을 쓰고 있는 것까지 꼭 힘러와 판박이었다.

하는 짓이랑 맡고 있는 지위도 비슷하고.

아, 차이가 있다면 힘러는 얘보다 머리숱이 조금 더 풍성한 데다 베리야처럼 남을 직접 고문하고 구타하는 것을 즐기는 사디스트는 아니었다.

홀로코스트를 진두지휘했어도, 정작 총살형 장면을 눈앞에서 참관하곤 거의 기절까지 할 뻔했던 힘러와 달리 베리야는 자주 고문실에 들러 고문에 직접 참여하기까지 했다지.

베리야는 내가 기억하는 역사의 모습보다 훨씬 교활하고, 후덕한 인상이었다.

베리야가 웃으면서 손을 건네자 나도 반사적으로 손을 건넸다.

“나도 만나서 반갑소.”

베리야의 손은 땀으로 번들거렸고, 몸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이 인간, 씻고 다니기는 하는 건가....?

베리야 다음 차례는 콧수염을 기르고 훈장들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나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 그가 세묜 부됸니임을 깨달았다.

“부됸니 원수시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하핫, 총통께서 제 이름을 알고 계시다니, 이거 영광이군요.”

땀에 젖어 미끌거리는 베리야의 손과 다르게 부됸니의 손은 크고 강하고 억센 나무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숙청이 한창일 때, 자신을 체포하러 온 NKVD 요원들과 몸싸움을 벌여 그들을 제압했다고 하는데 과연 손의 악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살짝만 쥐었는데도 손이 얼얼할 정도인데, 진심을 다하면 손을 으스러뜨리는 것도 가능할 듯싶었다.

“손힘이 상당하군요.”

“어려서부터 장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요. 지금은 좀 약해진 편입니다.”

“허어, 약해진 게 이 정도면 젊었을 적에는 당해낼 사람이 없었겠습니다. 그려.”

“아하하하!”

부됸니는 내 칭찬이 기쁜지 호탕하게 웃으며 보드카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가 연회를 즐기러 자리를 뜨자 인중에 콧수염을 기른 스킨헤드가 다가왔다.

“그리고리 쿨리크라고 합니다, 총통 각하.”

“아아, 쿨리크 원수. 원수의 이름도 내 알고 있소이다."

누군가 했더니, 너구나? 소련군 전설의 똥별.

쿨리크의 활약상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소련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다.

전설의 명전차 T-34의 양산을 반대하고, 기관단총이나 경야포, 지뢰도 필요 없다며 모조리 생산 중단시킨 것도 모자라 독소전쟁이 발발하고 2주 만에 휘하 부대를 모두 잃고 자기는 빤쓰런하는 화려한 전과를 올린 게 바로 쿨리크다.

스탈린이 옛정을 생각해서 그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줬지만, 죄다 본인의 무능과 근무 태만으로 말아먹고 결국엔 원수직을 박탈당하고 공산당에서도 추방당했다.

그런데도 공금을 횡령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스탈린의 뒷담화까지 하다가 걸려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한, 다른 의미로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그래도 나는 쿨리크가 싫지는 않았다. 이 친구 덕분에 소련군의 발전이 몇 년은 뒤로 늦춰졌거든.

게다가 멀쩡히 잘 나오던 T-34의 생산이 중단된 것도 쿨리크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라고 들었다.

이토록 이쁜 짓만 골라서 하는데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있나. 되도록 그가 지금의 지위보다 더 높은 지위로 올라서, 독일을 위해 활약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쿨리크 외에 스킨헤드는 한 명 더 있었다.

니키타 흐루쇼프. 스탈린 다음으로 소련 서기장이 되어 전 주인님을 맹렬하게 통수친 남자.

“니키타 흐루쇼프입니다. 독일의 총통을 만나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나도 반갑소.”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 여기 나랑 악수하는 이 친구가 나중에 자길 개새끼라고 욕하고 다닐 거란 사실을.

마지막 인물은 소련군 전설의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였다.

각진 턱과 험상궂은 외모, 커다란 몸집까지 마치 불곰이 군복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대가 주코프 대장이구려. 할힌골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어마어마한 활약을 했다지.”

“알고 계셨군요.”

“알다마다요. 일본이 얌전히 물러난 것도 귀관의 활약 덕분이라고 들었소.”

“허허허, 과찬이십니다.”

주코프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와 잔을 부딪쳤다.

그러자 스탈린의 옆에 있는 베리야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맞다. 베리야는 주코프를 존나게 싫어했었지? 보통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이려고 숙청 명단에 올렸다가, 주코프가 할힌골 전투에서 대활약을 펼쳐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러 번 주코프를 숙청하려고 시도했다고 들었다.

주코프도 베리야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스탈린 사후에는 그를 직접 체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일설에는 베리야를 직접 총살시킨 것도 주코프라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이 내게서 극찬을 받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대놓고 시기와 증오가 판을 치는 이곳이 바로 소련의 심장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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