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지지 않은 불씨 (4) >
괴벨스의 연설 소식은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1차대전의 기억으로 독일에 적대적인 유고슬라비아인들, 특히 세르비아인들은 최후통첩이나 다름없는 괴벨스의 연설에 격노했다.
현실과 달리, 유고 정부는 국민에게 자국 군대가 전선에서 연승을 거두고 있다는 왜곡된 보도만 내보냈고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국민은 정부의 보도를 철석같이 믿었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알바니아를 정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승리가 코앞에 있는데 갑자기 독일이 훼방을 놓은 것이다.
즉시 전쟁을 멈추고 철군하지 않으면 피의 보복이 뒤따를 것이다.... 다 이긴 전쟁을 무로 되돌리려는 독일의 행패에 유고슬라비아인들은 분노했다.
“승전보까지 겨우 며칠밖에 안 남았는데, 독일 놈들이 협박을 해?”
“빌어먹을 돼지 새끼들!”
“대놓고 우리가 만만해 보인다는 거냐!”
1941년 4월 14일, 베오그라드에선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독일 놈들은 우리나라에 간섭하지 마라!”
“휴전 반대! 전쟁을 멈추지 마라!”
‘종전 반대’, ‘전쟁 지속’을 외치며 베오그라드 거리를 행진하던 시위대는 독일 대사관이 나타나자 일제히 폭도로 변했다. 분노로 눈이 뒤집힌 시위대는 독일 대사관 정문을 부수고 대사관 내부로 침입했다.
“뭐, 뭐야!?”
“독일 놈들이다! 모조리 다 죽여!”
“저기, 저년 도망친다! 잡아!”
“꺄아아악!!!”
***
1941년 4월 15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베오그라드의 주유고 독일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분노한 시위대에게 붙잡혀 린치당했다.
심지어 대사조차 시위대에게 끌려 나와 복날 개 맞듯이 두들겨 맞고 인사불성이 되었고, 독일 국기는 시위대에 의해 찢기고 불태워졌으며 여직원들은 겁탈당했다.
한발 늦게 소식을 접한 유고 정부에서 급히 헌병대와 경찰들을 대사관으로 투입했지만,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건을 벌어진 뒤였다.
이 소식이 독일에 전해지자, 이번에는 분노한 독일 시민들이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몰려갔다.
사전에 유고 대사관 일대에 무장친위대 1개 대대를 배치해뒀지만, 시위대의 수가 너무 많아 하마터면 뚫릴 뻔했다.
독일인들은 유고슬라비아인들의 만행에 격노했다.
지금 당장 유고슬라비아에 선전포고해야 한다는 성토가 빗발쳤고, 라디오 뉴스의 아나운서들조차 격정적인 어조로 보복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유고 정부에선 이번 사태는 우발적인 일로 유고 정부는 절대 관여한 적 없고, 현재 범인들을 수사 중이며 독일의 요구에 따라 알바니아와 휴전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알려왔지만 무시했다.
나는 유고 정부의 어떤 접촉에도 응답하거나 반응하지 말라고 모든 정부 부처에 지시했다.
“폭력은 나쁘지만, 매가 필요할 땐 매를 써야지.”
“맞습니다, 총통 각하.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유고 정부는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거절했다.
타국의 대사관을 습격하고, 대사랑 직원들을 폭행하는 초유의 사태를 저질러놓고 전쟁을 피하려 한다고? 개좆같은 소리.
물론 이번 일이 유고슬라비아 정부의 지시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아무리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미쳤다지만, 대놓고 독일에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짓을 할 정도로 정신 나간 정부는 아니거든.
그러나 여기서 어물쩍 넘어갔다간 독일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내가 독일에서 유일신 취급을 받는 존재라 해도, 대놓고 독일이 모욕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넘어가 버린다면 지지도에 엄청난 타격이 가는 것은 물론이요, 여태까지 쌓아 올린 이미지가 무너질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리고 저 세르비아 놈들이 다시는 날뛰지 못하도록, 아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밟아줄 필요가 있었다.
“괴링, 공군의 준비 상태는 어느 정도지?”
“명령만 내리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출격 가능합니다, 총통 각하. 이미 오스트마르크 방면에 제3, 4항공대가 전개되었으며 사흘 안으로 제5항공대도 전개를 마칠 예정입니다.”
“카이텔, 브라우히치 장군. 육군의 준비 상태는 어떻소이까?”
“제46차량화군단과 제49산악군단, 제1SS기갑군단이 유고슬라비아 국경 일대에 대기 중이며, 추가로 4개 사단이 이동 중입니다. 이틀 내로 모든 배치가 완료되리라고 봅니다.”
“총통 각하께서 지시하시면 당장에라도 교전 가능합니다. 병사들의 사기와 무장 모두 최고조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까.
***
1941년 4월 16일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상공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어로 ‘하얀 도시’를 의미했다. 도시의 모든 건물이 백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대 로마제국 시절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되어 온 유서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베오그라드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포격으로 쑥대밭이 되고 도시가 점령당하는 등 여러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복원되었고 신생 거대왕국 유고슬라비아의 수도로서 빠른 발전과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들도 곧 과거의 일이 되리라.
어둠이 내린 베오그라드의 상공을 비행하는 독일 폭격기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폭탄창을 개방했다.
Ju88, He 111, Do 217 등 기존의 중형폭격기부터 로마 공습에도 동원된 Fw 200, He 177 같은 중폭격기들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폭격기들이 총 망라된 폭격기 무리는 베오그라드에 죽음을 선사했다.
“폭탄 투하.”
“폭탄 투하.”
폭격수들은 적에게 더욱 큰 피해를 주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목표물을 조준했고, 폭격기 조종사들은 망설임 없이 폭탄을 투하했다.
폭격기를 떠난 폭탄들은 자유 낙하하며 베오그라드의 곳곳을 불 밝혔다.
폭격이 시작되고 나서야 뒤늦게 유고 공군의 호커 허리케인 전투기들이 급히 이륙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유고군의 전투기들은 폭격기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폭격기들을 호위하는 Bf109, Fw190에게 모조리 격추되었다.
기체의 성능도, 조종사의 실력도 훨씬 뒤떨어지는 유고 공군은 독일군 조종사들에게 날아다니는 표적에 불과했다.
“장작처럼 잘 타는구만. 개새끼들.”
베오그라드 공습에는 발터 베버 원수도 동참했다. 이번에는 리히트호펜을 대신해 그가 직접 폭격기의 조종간을 잡고 공습에 나서게 되었다.
이걸로 로마 공습에 출전하지 못한 한을 풀게 된 베버는 폭탄의 섬광에 휩싸여 타오르는 베오그라드 전경을 내려다보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천하의 독일을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지. 멍청한 슬라브 열등 종자들 같으니라고.”
말을 마친 원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부조종사를 쳐다봤다.
“자네도 뭐라고 말을 좀 하게. 내가 말하고 내가 답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잖나.”
“어? 죄, 죄송합니다!”
베버의 지적에, 폴란드 침공과 노르웨이, 프랑스, 이탈리아 전역에도 참전한 바 있는 베테랑 소령은 화들짝 놀랐다.
그가 목에 건 1급 철십자훈장에 달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죄송하단 말 말고, 뭐라고 아무 말이나 좀 해봐. 이토록 중요한 역사의 순간에 자네는 아무 생각도 안 드나?”
“아아, 그..... 적이 너무 형편없어서 실전이 아니라 모의훈련처럼 느껴집니다, 원수 각하.”
적기는 호위기들이 모두 처리했고, 대공포는 수량도 부족한 데다 1차대전에 사용되었던 구식이라 폭격기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베버는 부조종사의 말에 만족한 듯 씩 웃었다.
“그렇지? 나도 지금이 실전이 아니라 훈련처럼 느껴진다네. 그래도 뭐, 저 아래에 있는 놈들에겐 훈련이 아니겠지.”
***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이날 베오그라드에선 5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건물 수천 채가 전소되거나 손상되었으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오그라드의 문화유산들도 피해를 보았다.
1884년에 완공된 구왕궁과, 1922년에 완공되어 페타르 2세와 그 가족들이 거주하던 신 왕궁도 독일 공군의 맹폭을 맞아 뼈대만 남기고 파괴되었다.
베오그라드가 불길에 휩싸이는 사이 독일-유고슬라비아 국경 일대에선 독일군 포병이 유고슬라비아군 진지를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포격이 끝나고, 줄지어 대기하던 4호 전차와 장갑차들이 전진 명령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전차 전진!”
“앞으로!”
유고슬라비아 공군도 절망적이지만, 육군은 더더욱 형편이 없었다. 유고군이 보유한 기갑장비 중 가장 강력한 T-26은 알바니아 전장에 대거 투입한 상태라 독일 국경에 배치된 유고군은 1차대전에 사용되었던 르노 FT-17을 타고 독일군의 4호 전차와 싸워야 했다.
“정면에 적 전차 출현. 거리 900, 철갑탄!”
“장전 완료!”
“조준 완료!”
“발사!”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최초의 MBT로 평가받는 4호 전차와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르노 FT-17은 포탄을 쏘기도 전에 격파당하기 일쑤였다.
르노 FT-17의 주포로는 절대로 닿지 않는 거리에서 4호 전차들은 포탄을 발사해 프랑스산 골동품들을 일격에 불태웠다.
르노 FT-17 사이에 드물게 섞인 T-26도 4호 전차에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간신히 포탄을 4호 전차에 명중시키더라도, 차체 전면장갑을 뚫지 못하고 도탄 되기 일쑤.
공격에 실패한 전차들은 어김없이 반격타를 맞고 격파당했다.
전차 2개 중대에 달하는 24대의 전차들이 모두 불덩이로 변하기까지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유고군 전차의 장갑이 너무 얇은 탓에 75mm 철갑탄 한 발에 전차 2대가 격파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거 이거, 실전이 아니라 완전 훈련이구만.”
Sd.Kfz 251/3 지휘장갑차에서 참모들과 전장을 예의주시하던 파울 하우서 SS 상급대장은 적들의 저열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혀를 찼다.
장비의 성능 차이도 크지만, 병사들의 사기가 너무 낮았다. 국경을 넘기 무섭게 양손을 들고 투항하는 유고슬라비아군이 한 무더기로 쏟아진 것이다.
항복한 유고슬라비아군 병사들은 대부분 크로아티아인으로, 그들은 자신들을 차별하는 세르비아인들을 위해 죽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독일군이 나타나기 무섭게 무기를 내던지고 항복했다.
심지어 몇몇 크로아티아인 부대는 세르비아인 장교와 병사들을 쏴 죽이고, 독일군에 합류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1차대전 때 세르비아군은 매우 용감하게 싸웠다고 하는데, 그때보다 더 못 싸우는 것 같군. 겨우 20년 만에 이렇게 바뀔 수 있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저희와 싸운다는 것부터가 저들에겐 공포여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우서의 참모 실베스터 슈타들러 SS 중령이 말했다. 하우서는 슈타들러의 대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가? 흠, 설득력 있군.”
유고슬라비아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창설된 제1SS기갑군단은 창설 이전부터 말이 제법 많았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국방군보다 뒤늦게 창설된, ‘근본 없는’ 친위대에 기갑군단이라니! 많은 육군 장성이 SS기갑군단 창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필요성에 의문을 표했지만 힘러, 하우서를 비롯한 SS 수뇌부의 강력한 건의와 총통의 재가로 창설될 수 있었다.
제1SS기갑군단의 초대 군단장은 파울 하우서 SS 상급대장이 맡았다. SS로 이적하기 전, 국가방위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한 바 있는 그가 지휘를 맡으면 국방군의 반발도 적을 것이란 판단에서 진행된 인사였다.
하우서는 자신이 맡은 이 자리가 가지는 책임이 매우 막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그가 지휘를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지른다면, 평소 SS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국방군은 즉시 SS를 물어뜯으려 들 것이고, 자연스레 SS의 입지는 좁아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상당한 공훈을 세운다면, 국방군도 SS를 더 이상 싸움만 잘하는 얼치기 집단이라고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걸 노리고 총통은 SS를 공격의 선봉에 세운 것이고.
SS도 국방군만큼이나 전략, 전술에 노련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임으로 총통의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
하우서는 다시 한번 지도를 살피며 작전에 차질이 생길만한 요소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지금까지 작전은 예상보다 훨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군의 약하디약한 전투력 덕에 1시간으로 예상되었던 방어선 돌파에 단 20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 속도라면 오늘 안으로 충분히 류블랴나까지 닿을 수 있겠어.”
독일 국경에서 베오그라드까지의 거리는 독일 국경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보다 더 길었다.
하지만 전투력이 프랑스군보다 한참 못 미치는 유고슬라비아군이라면, 베오그라드까지 금방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유고군의 방어선은 버터처럼 토막 내며 전진하는 4호 전차들의 머리 위로, 슈투카들이 날아갔다.
동쪽을 향해 날아가는 슈투카들을 향해 지상의 병사들은 손을 흔들어댔고 슈투카 조종사들도 기체의 날개를 흔들어 화답했다.
***
1941년 4월 17일
독일 오스트마르크 클라겐푸르트
유고슬라비아 침공은 카이텔, 브라우히치 등 장군들에게 맡겨놓고 나는 독일의 새로운 맹우가 될 인물과 회담을 가졌다.
안테 파벨리치. 크로아티아의 파시스트로 발칸반도에서 나치만큼이나 악명높은 우스타샤(Ustaša)의 당수.
7년 전인 1934년에 자그마치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를 암살한 파벨리치는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다가, 유고슬라비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하자 우스타샤 당원들을 이끌고 독일로 넘어왔다.
자신이 그토록 고대하던 크로아티아 독립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인지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파벨리치 선생, 당신은 내가 당신을 신생 크로아티아의 지도자로 앉히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요.”
“예, 총통. 그 점에 있어선 뭐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그는 내가 자신과 우스타샤를 크로아티아의 요직에 임명하려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내게 상당한 호의를 보였다.
잔혹 행위론 나치, 일본에 결코 뒤처지지 않았던 우스타샤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는 살짝 회의가 들었지만, 크로아티아에서 얘네들만큼이나 친독적이고, 크로아티아인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소. 우리가 내건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당신과 우스타샤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요.”
“총통께서 내거시는 조건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지요.”
“크로아티아가 독립하게 될 경우,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이 문제가 될 거요. 우선 하나 물어봅시다. 이들에 대한 처우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야 모조리 죽여버려야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량학살이 해답이라고 말하는 파벨리치의 모습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이놈과 손절해야 하나?
“세르비아 놈들은 암 덩어리 같은 종자들입니다. 그냥 내버려 뒀다간 언제 우리의 목숨을 빼앗으려 들지 모르죠. 그전에 놈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흠, 흠. 학살 말고 다른 방법은 정녕 없는 거요?”
“뭐어, 굳이 다른 방법을 찾으라면 추방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추방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력과 행정력도 필요한지라 학살이 더 간편하고 훨씬 효율적입니다.”
“학살은 안 되오. 추방까지는 내가 건드리지 않겠다만, 학살은 결코 용납할 수 없소.”
내가 세르비아인 학살을 불허하자 파벨리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뭔 그렇게 충격받은 얼굴을 하냐. 사람 죽이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놀랄 말은 아닌 것으로 아는데.
“어째서입니까, 총통? 학살하면 안 된다니요? 총통께옵선 세르비아 놈들이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십니까?”
“모를 리가 있나. 나도 당신네 크로아티아인들이 세르비아에 원한을 가지는 것을 이해하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시오. 그 세르비아인들이 가축처럼 얌전히 총 맞아 죽어주겠냔 말이오.”
쥐도 궁지에 몰리면 사람을 무는 법인데, 같은 사람은 오죽할까? 세르비아인 학살은 필시 파르티잔의 저항을 가져올 것이고, 크로아티아 전역을 전쟁터로 몰고 갈 것이다.
역사에서도 우스타샤의 학살에 집과 가족을 잃은 세르비아인들은 파르티잔이 되어 우스타샤와 싸웠고, 나아가 독일군의 전쟁 수행까지 방해하며 히틀러의 골치를 썩였다.
나 역시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범죄를 자행한 세르비아인들이 곱게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대량학살할 이유는 결코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크로아티아인들과 세르비아인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가능하다곤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마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안은 추방밖에 없는데, 이 역시 세르비아인들의 반발을 사겠지만 그래도 학살보다는 낫지 않은가.
나는 세르비아인들의 저항과 파르티잔의 창궐, 이로 인해 초래될 수많은 인력, 물자 소모와 낭비를 이유로 들며 학살에 단호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처음에 내 말을 마땅찮아 하던 파벨리치도 내 설명을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말이 안 통하는 상대는 아니라서 다행이군.
“....확실히, 그건 문제가 되겠군요. 크로아티아에 있는 세르비아인 10명 중 한 명만 파르티잔이 되어도, 그 수가 족히 몇만 명은 넘을 테니 말입니다.”
이해가 빨라서 다행이군.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학살만 고집했으면 슈타우펜베르크처럼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최소한 말은 통하는 인간이었다.
“이다음 조건은 무엇입니까?”
“다음 조건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