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07화 (107/150)

< 꺼지지 않은 불씨 (3) >

1941년 4월 13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이로써 두 나라 사이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소.”

“오늘은 두 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뜻깊은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서기장 각하!”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과 일본 제국의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는 두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는 모습을 사진사들을 카메라 필름에 담았다.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귀청을 간지럽혔다.

독일이 발칸반도 문제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소련은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중국 진출을 꿈꾸는 일본에 소련은 거대한 걸림돌이었고, 중국을 집어삼키기 위해선 소련과의 타협이 필요했다.

소련 역시 독일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상대하려면 온전히 유럽 방면으로 전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자면 극동의 일본과 타협해야 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극동의 독소 불가침조약, 소일 불가침조약이 탄생했다.

소련은 만주국과 내몽고가 일본의 영역임을 인정하며 일본의 중국, 동남아 진출을 묵인하는 대가로 극동의 안전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으로의 진출을 인정받았다.

“진작에 두 나라가 이랬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무의미한 충돌로 발생한 피해가 없었겠지요.”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어쩌겠소? 이제부터라도 잘해나가면 되지.”

“하하, 서기장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자,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모두 축배를 듭시다.”

스탈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쓰오카와 잔을 부딪쳤다. 보드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짜릿한 술기운이 온몸으로 쫙 퍼졌다.

이걸로 당분간 극동은 문제없으리라.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치르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소련, 몽골과 크고 작은 국경분쟁을 일으키며 스탈린의 신경을 긁어놓았다.

독일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일본이 극동을 공격하는 사태를 가장 걱정했던 스탈린은 소일 불가침조약으로 근심을 덜게 되었다.

이로써 소련이 서쪽과 동쪽, 양면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쓰오카 역시 스탈린만큼이나 이번 조약에 대단히 만족해했다.

당장 중국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하던 일본은 소련이 언제 마음을 바꿔 중국을 도와 일본을 공격하지 않을지 우려했다.

소련이 일본의 공격을 우려해 극동에 수십 개 사단을 배치한 것처럼, 일본 역시 소련의 침공에 대비하여 만주 일대에 수십 개 사단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에선 병력과 물자를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마당에.

그러나 일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으니, 만주에 배치한 관동군 정예사단들을 지나 전선에 투입하는 게 가능해졌다.

가만, 소련에 중국 서북을 미끼로 참전을 요청해볼까? 천하의 황군조차 상대하기 버거운 소련 붉은 군대를,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소련이 참전을 선언한다면, 장제스는 즉시 황국에 강화를 애걸해올 것이고, 그 즉시 전쟁은 끝난다.

도쿄로 돌아가는 즉시 고노에 총리대신에게 말해봐야겠군. 극동 전체가 대동아공영권의 가치 아래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하며 마쓰오카는 기분 좋게 코냑을 들이켰다.

“몰로토프 외상, 우리도 건배합시다.”

“좋지요. 자, 쭉 마십시다!”

“와하하하!!!”

소련과 일본의 거물들이 파티의 흥겨움을 만끽하는 동안 스탈린은 측근, 일본인들과 거리를 두고 홀로 앉았다.

그가 빈 잔을 들자 웨이터 복장을 한 NKVD 요원이 후다닥 달려와 잔에 술을 따랐다. 조지아 전통주 차차(Chacha)였다.

차차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해서 만드는데, 도수가 40도에서 70도에 이르는 독한 술로 유명했다.

스탈린은 홀로 술을 마실 때 70도짜리 차차를 마셨지만, 공식 석상에선 40도짜리만 마셨다. 술에 취해 측근들 앞에서 실수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차차를 마신 스탈린은 돼지고기 샤슬릭을 씹었다. 숯불에 구운 비계의 맛이 혀에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의 독재자이자 1년 만에 서유럽 전체를 손아귀에 넣은 전무후무한 남자.

히틀러 자신은 제2의 비스마르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비스마르크가 히틀러를 보고 한 수 배워야 할 정도로 히틀러가 이룬 성과는 기적이나 진배없었다.

히틀러에 견줄만한 성과를 올린 위인을 꼽으라면,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 정도는 데려와야 할 것이다.

파리가 함락된 그날부터 스탈린의 머리에서 히틀러가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지배하는 독일은 현재 소련에서 가장 위험한 대상이자, 조지아의 인간백정 스탈린을 밤잠 설치게 만든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오늘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도 사실은 전부 독일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중동 진출은 소련이 오래전부터 계획한 중대사지만, 그보다 독일을 막는 게 몇십, 몇백 배는 더 중요했다.

우선 독일부터 막아야 중동이든 인도든 노려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최근 NKVD가 알아낸 바로는 히틀러는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의 알바니아 침공에만 신경 쓸 뿐, 소련 침공을 준비하거나 이에 대한 발언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NKVD의 보고에 스탈린은 내심 안도하면서도, 끝까지 불안을 떨쳐내지 못했다.

사실은 이 모든 게 다 자신의 눈을 속이기 위해 철저히 위장된 것이라면? 히틀러처럼 머리 회전이 빠른 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잦은 충돌을 이어왔고, 양쪽 모두 서로를 완전히 멸망시키기를 진정으로 바랐다.

대독일주의를 제창하며 정권을 잡은 히틀러가 소련 정복이라는 야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증거나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반공주의 국가인 독일이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공존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상호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도 어디까지나 당장 눈앞에 있는 공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였지 진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동지라고 여겨서 그런 게 아니다.

히틀러,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서기장 각하, 한 잔 더 받으시지요.”

“아아. 그러지요.”

스탈린의 상념을 방해한 이는 마쓰오카였다. 코냑과 위스키, 보드카를 연거푸 퍼마신 그는 거나하게 취해 만찬장을 배회하던 참이었다.

상념을 방해받은 것에 대해 스탈린은 짜증이 났지만, 표정관리에 능숙한 그답게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는 이만 마쓰오카가 다른 곳으로 떠나주길 바랐지만, 취할 대로 취한 마쓰오카는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서기장 각하? 나는 말이죠, 사기 치는 법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조약을 어긴다면, 제 목은 서기장 각하의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당신의 목을 가지러 오겠습니다.”

마쓰오카는 농담이랍시고 한 말이었지만, 스탈린에게 마쓰오카의 농담은 농담이 아니었다. 짜증이 난 스탈린이 대꾸했다.

“허, 내 목은 소련에 중요하오. 당신 목도 당신네 일본에 더 중요할 거요. 그러니, 남의 목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논할 게 아니라 머리를 어깨 위에 그대로 둘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 좋을 거 같소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크하하하하!”

눈치 없는 마쓰오카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 모습에 더욱 짜증이 난 스탈린이 뇌까리듯이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아시아적인 인간들이오.”

유럽에서 ‘아시아적’이란 말은 곧 야만적이라는 말과 같았다. 만찬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너무 나간 표현이었기에, 스탈린은 황급히 덧붙여서 말했다.

“물론, 나 역시 당신과 같은 아시아인이오.”

“그렇죠. 우리 모두 아시아인이죠. 우리, 아시아의 안녕을 위해 건배합시다.”

스탈린과 건배한 마쓰오카는 내친김에 그와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카메라 셔터가 눌러질 때도, 스탈린의 머릿속에는 오직 히틀러 생각뿐이었다.

***

“....이제 어쩌면 좋겠소?”

세계는 소일 불가침조약으로 떠들썩하지만, 페타르 2세에게 소일 불가침조약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알바니아를 침공하더라도, 독일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하에 유고슬라비아는 알바니아를 침공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독일은 즉시 유고슬라비아에 경고를 보내며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가해왔다.

독일의 육군과 공군이 유고슬라비아 국경지대로 이동 중이란 보고에 이어, 선전장관 괴벨스가 라디오 방송에 나와 공개연설로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 단도직입적으로 경고했다.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 이다음부터는 절대로 말로 하지 않을 것이다.... 페타르 2세는 독일이 단순히 협박용으로 말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히틀러는 한다면 하는 인간이었다.

그는 폴란드를 합병하고 프랑스를 정복했으며, 이탈리아까지 굴복시킴으로써 전 유럽을 평정했다. 그런 그에게 유고슬라비아 정복 따윈 일도 아닐 것이다.

“입이 있으면 말들 해보시오.”

“.....”

“.....”

“그대들이 분명 말하지 않았소. 독일은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의 독일은 그대들이 말한 독일과 다른 나라란 말이오?”

측근들의 말만 믿고, 전쟁을 최종승인한 이는 페타르 2세 본인이었으니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황제의 분노에, 아버지뻘 되는 신하들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소, 송구합니다.....”

“송구하다는 말은 됐소. 그 말 하나 듣자고 모인 게 아니니. 나는 경들에게 대책을 묻고 있는 거요. 이 상황을 해결할 대책을.”

대책이라면 독일의 경고대로 전쟁을 멈추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게 또 쉽지가 않았다.

유고 왕실과 정부는 국민에게 자국군이 연일 승전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유고슬라비아군은 알바니아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며, 현재까지 국경에서 겨우 몇 km만 진격한 게 전부였다.

독립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알바니아군은 악착같이 싸웠다.

나라가 망한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다시 외세에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는 신념 아래 알바니아인들은 하나로 뭉쳐 침략자들에게 저항했다.

모병소에는 자원입대자들이 줄을 이었고, 전쟁터에 나갈 수 없는 여자들은 군인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군복을 수선했으며 부상병들을 간호했다.

반면 유고슬라비아군은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 몬테네그로인 등 여러 민족별로 나뉘어 싸우기 바빴다.

세르비아인 장교들은 크로아티아인 병사들만 우선으로 위험한 임무에 투입했고, 크로아티아인 병사들은 세르비아인 장교들의 명령에 반발하며 전투를 회피했다.

질 낮은 훈련도도 유고슬라비아군의 피해를 가중시켰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대공사격이 가해지면 도망치기 바빴고, 전차 조종수들은 전차를 도랑이나 구덩이에 처박기 일쑤였다.

알바니아군의 훈련도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심과 지리적 유리함은 이러한 단점을 상당 부분 상쇄시켰다.

그나마 그리스군은 알바니아군을 상대로 선전하여 사란더와 코르처 등 알바니아 남부 일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리스군도 알바니아군의 치열한 저항과 병참 문제로 진격을 멈춘 상태.

지금 여기서 전쟁을 멈춘다면, 유고슬라비아는 건진 게 하나도 없이 애꿏은 장비와 병력만 잃은 셈이 된다.

얻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잃은 것만 많다면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이유로 숙부를 실각시킨 그였는데, 피해는 그와 비슷한데 정작 얻은 게 하나도 없다면?

국민이 무능력한 국왕을 계속 지지해줄까? 절대 아니지.

이러한 연유로 페타르 2세는 전쟁을 멈출 수도, 계속할 수도 없는 난감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독일의 최후통첩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

진퇴양난이 따로 없군. 이 꼴을 보려고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게 아닌데....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페타르 2세는 신하들을 둘러봤다.

“폐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침묵하던 시모비치가 발언했다.

“현 상황에서, 독일의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전쟁으로 얻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서 전쟁을 멈추면 국민이 가만히 있겠소?”

어린 국왕은 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총리를 노려봤다.

“알바니아를 정복하겠노라고 큰소리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전쟁을 멈추자니! 어떻게 그리 무책임할 수 있냔 말이오!”

“폐하. 그 점에 있어선 소신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방법 외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은 필시 이 나라를 파멸로 몰고 갈 겁니다.”

시모비치의 말대로, 독일과의 전쟁은 곧 파멸을 의미했다.

유럽 최강 육군을 자부하던 프랑스조차 4주 만에 백기를 올렸는데, 당장 알바니아도 버거워하는 유고슬라비아가 독일을 상대로 싸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다.

“총리의 말이 맞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희 군대는 결코 독일군을 막을 수 없습니다. 히틀러가 마음만 먹는다면, 베오그라드는 일주일 만에 함락될 것입니다.”

칼라파토비치가 발언했다. 자신의 책임은 쏙 빼놓고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던 페타르 2세도 서서히 냉정함을 되찾았다.

국민의 분노도 두렵지만, 히틀러의 독일은 더 무서웠다.

이미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독일인데, 유고슬라비아를 그냥 내버려 둘까?

독일군 외에 헝가리군과 불가리아군 병력도 국경 일대에 배치되고 있다는 보고도 페타르 2세의 현실감각을 일깨웠다.

알바니아는 독일 외에 헝가리와 불가리아에도 도움을 요청했는데, 두 나라 모두 유고슬라비아라면 이를 가는 나라들.

알바니아가 멸망하면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가증스러운 유고슬라비아를 제대로 손봐주겠다는 의지도 병력 이동에 한몫했으리라.

“....어쩔 수 없군. 단,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경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이건 각오해두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놓고 자긴 아무 잘못 없다며 남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국왕의 모습에 대신들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겉으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 최종원인은 알바니아 침공을 밀어붙인 자신들의 책임이었으니까.

그런데,

국왕과 신하들도, 그리고 독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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