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하늘은 맑은 뒤 흐림 (4) >
1941년 1월 1일
독일 페네뮌데
뤼겐(Rügen)섬 다음으로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우제돔(Usedom)섬은 ‘태양의 섬’이라 불리며 많은 사람이 찾는 휴양지다.
1937년, 나치는 우제돔섬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페네뮌데에 육군 연구 센터를 설립해 각종 무기를 실험했다.
페네뮌데 육군 연구 센터에서 실험된 무기 중 단연코 가장 유명한 무기는 대전 말 나치가 영국 본토 공습에 이용한 V1, V2 로켓이다.
보복병기 1호(Vergeltungswaffe 1)의 줄임말인 V1 로켓은 현대 순항 미사일의 효시이자 세계 최초의 제트 추진 순항 미사일으로 평가받으며,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인 보복병기 2호-V2는 전후 등장한 수많은 탄도 미사일들의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히틀러는 정작 이들 로켓병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전차와 전투기 생산이 급하다는 이유로 로켓병기 연구에는 많은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로켓에 살고 로켓에 죽는 로켓 광이었던 베르너 폰 브라운과 발터 도른베르거, 이 둘은 히틀러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했고 끝내 히틀러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 시기가 독일의 패배가 확실시되던 전쟁 말기였다는 것이다. V1과 V2의 투입으론 전황을 바꾸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고, 끝내 독일은 패전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1934년부터 도른베르거가 소장으로 있던 육군 로켓연구소에 무제한의 지원을 약속했다.
지원의 대가는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연구를 멈추지 말고 계속할 것. 그게 전부였다.
괴링과 리히트호펜 등 공군 인사들은 내 결정에 두말없이 찬성했지만, 경제를 책임지는 샤흐트는 그런 허무맹랑한 연구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반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들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푸쉬를 받은 브라운과 도른베르거는 마음 놓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로켓 개발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결과, V1과 V2는 역사보다 일찍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3, 2, 1.... 발사!”
버튼을 누르자 소음과 불꽃을 동시에 내뿜으며 창공을 향해 솟구치는 V2 미사일을 참관자들은 감탄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실험은 성공이었다. V1과 V2 둘 다 발사에 성공했으며 속도와 탄도 역시 안정적이다.
초조한 얼굴로 서 있던 연구 센터 관계자들은 시연식이 무사히 끝나자 휘파람을 불며 자축했다.
“거 보시오, 장관. 헛된 돈 낭비가 아니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소.”
“끄응.”
로켓연구소에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내 말을 듣고 예산 낭비라며 펄쩍 뛰던 샤흐트는 자기 예상과 달리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도 저게 실전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아직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저는 제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고집부리기는. 예산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일을 지키려면 저런 무기들이 필요하다니까?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무기 개발을 게을리 했다면, 항복 문서에 서명한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이 됐을 거요.”
“굳이 저런 무기가 없어도 독일의 군사력은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래. 네가 이겼다. 어째 한 마디도 안 지려고 하냐.
“수고했소. 역시 당신들이라면 내 분명 해낼 줄 알았지. 그간 정말 고생했소.”
“이게 다 총통 각하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도른베르거와 악수한 뒤, 도른베르거의 옆자리에 선 젊은 과학자에게 다가갔다. 이 남자가 로켓 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폰 브라운이었다.
“자네의 활약상은 익히 들었네. 연구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면서? 역시 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답군.”
“과찬이십니다, 총통 각하. 총통 각하께서 이루신 업적에 비하면 저따위가 감히-”
“이 사람, 겸손은. 자네 정도면 충분히 자랑할만해! 자네가 만든 역작을 보게나. 저런 건 돈을 쏟아붓는다고 뚝딱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자부심을 가지라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V2 로켓 개발에 참여한 클라우스 리델, 헬무트 그뢰트룹 등과도 인사를 나눈 뒤 V1 로켓을 개발한 피젤러사의 기술자들과 만나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기념으로 회식 한번 거하게 시켜줘야겠군.
“V2는 영국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프랑스 북부에 배치하면 되겠군. 그리고 V1은....”
역사에서 나치는 V1을 영국 공격용으로 사용했지만, 나는 V1으로 영국으로 공격하는 것에 다소 회의적이었다.
V1 자체가 영국 공격용으로 만든 물건이지만, 정작 영국에 준 피해가 크지 않단 말이지.
요격할 수 없어 영국을 애먹게 했던 V2와 달리 V1은 최대속도가 640km/h에 불과해 대공포와 전투기들에 의해 요격당하기 쉬웠다.
이것만으로도 문제인데 명중률이 매우 낮아(당시 기술력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영국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V1 개발과 생산에 들인 돈과 인력, 시간을 생각하면 명백한 손해였다.
대신 Bf109 1기를 뽑을 돈(42,900마르크)이면 V1 12발을 만들 수 있고, Ju88 같은 폭격기 한 대를 뽑을 돈이면 V1 30발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미사일이라 인명손실률도 제로라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장 많은 폭탄을 영국에 투하할 수 있는 수단이라 나치가 전쟁 말기 V1 생산에 매달린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가성비를 생각하면 V1을 영국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건 조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잠깐. V1을 도시 공격용이 아니라 전선에서 사용하는 건 어떤가?”
“예?”
“V1을 전선에서 사용한다...고 말입니까?”
V1 개발진은 내 말을 듣고 일순간 벙찐 얼굴이 됐다. 분명 도시 공격용으로 쓸 로켓병기를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갑자기 전선에서 쓴다고 하니 황당하겠지.
“가능합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사거리도 V1보다 길고, 탄속도 빠른 V2가 있으니 도시 공격은 V2에 맡기고, V1은 전선 공격용으로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해서 말이네.”
V1의 중량은 2,150kg(탄두 중량은 850kg). 4호 전차 H형이 25톤을 살짝 초과하는 수준이니 4호 전차 1대 대신 V1을 열차에 실으면 12개를 운송할 수 있다.
문제는 V1을 발사하려면 전용 기지가 필요하다는 건데, 실시간으로 전선이 바뀌는 전장에서 고정식 기지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군의 진격 또는 퇴각으로 전선이 이동하면 그사이 위치한 기지는 이용할 수 없게 되니까. 그러자면 기지 대신 이동식 발사대가 필요하다.
이동식 발사대라면,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 19세기 초부터 세상에 존재했던,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인류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사용되리라고 예상되는 물건.
열차다.
“V1을 열차에 탑재해서 사용하는 걸세! 그렇게 하면 V1 전용 발사기지를 따로 짓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이 훨씬 적게 들고,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 아군이 전진하든 후퇴하든 간에 열차에 실어서 쏘고 움직이면 끝이니까 말이야. 어떤가? 열차포보다 더 효과적인 무기가 되지 않겠나?”
“호오?”
“제법, 아니, 상당히 괜찮은 발상입니다!”
열차에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해 이동식 미사일 기지로 사용하는 발상은 소련에서 최초로 나왔고, 북한이 이를 따라 해 21세기에도 알뜰살뜰하게 운용 중이다.
타격수단이 고도로 발달해 굳이 열차를 이용할 필요가 없는 21세기에는 위치가 애매한 물건이지만, 현대 병기의 시초가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2차대전이라면? 이만큼 선진적인 타격수단이 따로 없지!
“좋았어. 그럼 여러분, 내일부터 V1을 열차에 탑재할 수 있도록 연구해주시게.”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여러분이라면 틀림없이 해낼 걸세. 빠른 시일 안에 좋은 소식이 있길 기다리지.”
***
독일군이 프랑스군으로부터 노획 및 압수한 장비들의 반환은 새해 다음날인 1월 2일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르노 FT-17. 1차대전에 사용된 골동품이라 돌려줘도 전혀 아깝지 않은 데다 접수한 수량도 1천 대가 넘기에 생색도 낼 수 있다.
그다음이 FCM 36, D1 같은 보병전차들. 기동성을 중시하는 우리 군의 전략에도 맞지 않고 성능도 애매해서 역시 돌려줘도 아깝지 않은 놈들이다. 기병전차들 역시 마찬가지.
소뮤아 S35와 S40, 샤르 B1의 경우에는 셋 다 합쳐 30대만 반환했다. 여기에 목탄차, 오토바이 등의 차량까지 다 합치면 800대의 장비가 프랑스군에게 반환되었다.
“암만 구식 장비라고 해도 프랑스군에게 도로 돌려주기에는 아깝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 군이 굴리기엔 너무 구식이라 딱히 쓸모도 없잖나. 차라리 프랑스에 떠넘기고 생색내는 게 낫지. 그 대가로 프랑스의 식민지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데다 전쟁 발발 시 프랑스의 참전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나름 제값을 받고 판 거라고 보네.”
“그 오합지졸들이 전장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십중팔구 엄마를 찾으면서 바지에 오줌이 지릴 겁니다. 아니면 우리 병사들을 향해 총부리를 돌리거나.”
프랑스군의 졸전을 기억하는 괴링은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군이 서부전선에 보인 추태를 생각하면, 이렇게 단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러니 전투력을 기대할 수 없으니 되도록 후방에 주둔시켜서 뒷정리나 맡겨야지. 그리고 후방에 배치되는 프랑스군의 숫자만큼 병력을 전선에 투입할 수 있을 테니 완전히 쓸모없진 않네. 병력의 질도 중요하지만, 머릿수도 중요한 요소 아닌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프랑스 놈들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로 우리가 위기에 처할 상황이 오겠습니까?”
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괴링의 말이 현실이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어쨌든 독일에 되돌려받은 장비들로 무장한 프랑스군 2개 사단은 인도차이나로 배치되었다.
최근 인도차이나에 대한 일본의 압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에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인도차이나 일대에 거주 중인 자국민들을 본토로 송환할 준비를 하는 한편, 인도차이나-중국 국경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일본이 항의했지만, 페탱은 무대응으로 맞섰다.
독일에 남은 르노 FT-17 300대 중 260대는 열차에 실어 중국으로 보냈다. 독일에선 쓸모가 없어도, 중장비 부족으로 늘 고생하는 중국에 르노 FT-17의 가치는 남달랐다.
결코 막강하다고 할 수 없는 일본군의 기갑전력에 쩔쩔매는 국민혁명군에게 갓 공장에서 출고된 신형이든 철 지난 구식이든 전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존재였다.
물론 국민혁명군조차 르노 FT-17을 원본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포탑을 떼 내고 PaK 38을 올려 50식 전차로 만들어서 사용했다.
독일인 기술자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50식 전차들은 전차에 도색 할 틈도 없이 전선으로 보내졌다.
50식 전차를 단 한 대라도 더 많이 만들어서 전선에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대륙을 구할 수 있다. 장제스가 휘하 참모들에게 한 말이었다.
50식 전차는 전차가 아닌 대전차자주포였기에, 전차처럼 운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어차피 주로 방어전을 수행하는 처지의 국민혁명군에겐 매우 안성맞춤인 물건이었다.
적당히 으슥한 곳에 자리 잡고 일본군의 전차가 나타나면 쏴서 맞추기만 하면 됐으니까.
간혹 공세의 선봉에 방어력이 거의 전무한 50식 전차를 세웠다가 역으로 격파당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팔켄하우젠이 50식 전차를 무조건 방어전에만 사용하고 공세에 사용하는 것은 금하는 지시를 내리자 이런 사례는 빠르게 줄었다.
일본도 얼마 못 가 50식 전차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이것이 독일의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격렬히 항의해왔다.
“지금 당장 중국에 있는 모든 독일인을 본국으로 철수시키지 않으면, 일본은 독일과 단교까지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흥.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들이군. 겨우 이런 같잖은 협박 따위에 우리가 굴복할 것 같나.”
도쿄에 있는 디르크젠이 보낸 전문을 전한 리벤트로프에게, 나는 평소처럼 무시하라고 지시를 내리려 했다.
하지만 내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리벤트로프가 먼저 말했다.
“하지만 총통 각하, 아직 일본에 완전히 철수하지 않은 우리 국민이 있습니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선 조금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그렇군. 그럼 디르크젠에게 이렇게 전하게. 지금 중국에 있는 독일인 기술자들은 독일 정부의 명령으로 중국에 간 게 아니라 국민당 정부에게 고용되어 중국으로 갔기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고. 철수 명령을 내리긴 하겠다면, 강제력을 동원하기엔 힘들다는 말도 말이야."
“일본인들이 그 말을 믿을까요?”
“안 믿으면 어쩔 건데? 그래 봤자 단교가 끝인데.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우리와 단교하겠다면, 나야 좋지. 우리가 할 일이 하나라도 줄어드는 셈이니 말일세."
“일본이 단교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행동을 할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희박하지. 특히 지금 시기라면 더더욱. 놈들은 우리와는 절대 전쟁을 할 생각이 없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자기들도 알고 있거든.
일본군의 폭격기가 베를린을 폭격하려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거나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북해까지 와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할 것 같나? 그리고 우리 독일은 태평양에 식민지가 하나도 없네. 공격하고 싶어도, 공격할 목표가 없단 말이지. 그러니 무슨 수로 전쟁을 하겠나?”
리벤트로프는 내 말에 납득하며 돌아섰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간 뒤 헤스가 입을 열었다.
“총통 각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
“만약 일본이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면 그땐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헤스의 물음에 괴링과 괴벨스, 힘러도 내 답변이 궁금한 듯 슬며시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말로 놈들이 미쳐서 독일에 선전포고하면 마땅히 싸워야지. 저쪽에서 먼저 전쟁을 걸어왔는데, 무시할 수도 없지 않나.”
“하지만 조금 전엔 거리 차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전쟁할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군이 독일을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지, 국방군이 일본을 공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었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들은 우리 영토를 공격하는 게 불가능한데, 우리는 가능하다니요?”
“답은 간단하네. 국방군을 육로를 통해 극동의 전장으로 이동시키면 되니까.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하면 나는 스탈린에게 우리 군의 통과를 요청할 생각이네.”
“스탈린.... 소련에게 말입니까?”
“그래, 소련. 소련 영토를 통과하는 방법 외엔 우리 기갑부대를 대규모로 중국에 보낼 수단이 전무하니 말이야.”
“하지만 스탈린이 우리의 요청을 순순히 들어주겠습니까?”
힘러가 물었다.
“아마도 그럴걸세. 왜냐면 지금 놈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바로 우리거든. 미국이나 영국, 일본이 아니라 독일이란 말일세. 그러니 우리에게 밉보이기 싫어서라도 우리 요청을 받아들여주겠지. 그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겠지만 나중에 가서 생각하자고.
아무튼 소련의 협력을 얻어 우리 공군과 기갑부대가 중국에 도착하면 일본군 따윈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릴 걸세.
국방군이 보유한 무기는 일본군의 무기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니까. 중국 대륙을 넘어 만주와 한반도까지 해방시키고, 최종적으론 V2를 개량해 사거리를 대폭 늘린 로켓 무기를 일본 전역에 퍼부어 덴노의 항복을 받아내는 거지.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현재로선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네.”
“오오오오!”
“이야~ 오늘도 어제보다 많은 걸 배웠습니다!”
“역시 총통께선 생각하시는 게 저희와 다르십니다!”
4명은 내 말이 끝나자 저마다 준비한 아부성 멘트를 날리며 나를 치켜세웠다. 누구나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정인데.
아니, 됐다. 내가 뭔 말을 해도 ‘오오옷! 총통 각하 스고이!’라고 외치는 게 버릇인 녀석들인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