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100화 (100/150)

< 오늘도 하늘은 맑은 뒤 흐림 (3) >

파블레 왕자.

이름은 파블레 카라조르제비치.

17살에 불과한 어린 조카를 대신해 섭정 자격으로 유고슬라비아를 다스리던 그는 오직 자신만이 유고슬라비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독선은 자연스레 반대파가 형성되는 원인이 되었고,

조카이자 유고슬라비아 국왕 페타르 2세도 숙부의 독단에 질려 그를 몰아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마침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는 파블레를 몰아낼 좋은 구실이 되었다.

파블레 왕자는 열강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며 열심히 선전했지만, 얻은 것에 비해 유고군의 피해는 너무나도 컸다.

전사 및 실종 2,600명에 부상 4,400명, 도합 7천 명에 달하는 피해는 자다르 획득만으로 어물쩍 넘길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분명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블레 왕자를 향한 시선은 전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페타르 2세와 그의 측근들은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숙부님.”

“....”

“저는 이 나라의 국왕입니다. 알고 계시죠?”

“...모를 리가 있나.”

“알고 계신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말이죠, 숙부님이 제가 국왕이라는 것도 잊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

“숙부님이 그렇게나 우러러봤던 히틀러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우리 국민이 독일인들을 싫어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우리를 싫어합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왜 모르십니까? 아니면 아는데도 모른 척하신 겁니까?”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국왕이 된 몸으로서, 나라가 엉망으로 굴러가는 꼴을 가만히 지켜만 봐서야 되겠습니까? 국왕이면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지요. 그래서 저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 숙부님도 저를 이해하실 겁니다.”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보시지요, 국왕 폐하.”

쿠데타군에게 체포된 파블레 왕자는 자택에 감금되었다.

눈엣가시 같던 숙부를 해치운 페타르 2세는 친정을 선포했다.

***

1940년 12월 25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이번에 유고에서 터진 쿠데타가 독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단언할 수는 없으나, 당장은 독일에 별 영향을 주는 일은 없으리라 판단합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괴링과 카이텔, 브라우히치, 레더는 큰 문제 없다는 반응.

“저 역시 당장은 별 영향이 없으리라 보지만, 파블레 왕자는 유고에서 몇 안 되는 친독 인사였습니다. 친정을 선포한 페타르 2세의 측근들은 반독 인사들로 채워져 있죠.

파블레 왕자가 섭정으로 있을 때 독일과 유고 사이의 관계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더 험난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르비아는 원래 친영 국가였습니다. 대놓고 독일에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영국에 접근할 게 뻔합니다."

라이헤나우와 리벤트로프는 문제가 있다는 반응.

차라리 파블레 왕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았어야 했나?

....아니지. 그랬으면 쿠데타가 더 빨리 터졌겠지. 1차대전에서 세르비아가 보인 분투에 큰 감명을 받았던 히틀러는 슬라브 국가임에도 유고슬라비아를 우대해주며 동맹국 내지 친독 중립국으로 만들고자 했고,

파블레 왕자도 이탈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 유고슬라비아와 원수진 주변국들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면 독일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축동맹에 들어갔다.

이는 반독정서 MAX인 세르비아인들을 자극했고, 결국 쿠데타가 일어나 파블레 왕자는 실각당하고 만다.

친독파였던 파블레 왕자가 실각하고 쿠데타 세력인 친영파가 득세하자 독일이 유고를 침공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걸 알기에 파블레 왕자가 러브콜을 보내도 일부러 거리를 뒀건만.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건가.

그래도 유고슬라비아가 당장은 우리를 적대시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유고가 영국에 접근하는 것은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한다만, 원래 유고는 발칸반도에서 알아주는 친영 국가인 데다 휴전조약에 서명한 지 겨우 7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영국이 유고를 움직여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올 것 같지도 않다.

“유고슬라비아가 먼저 도발을 감행하거나 노골적으로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이상, 일단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일 것 같소. 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헝가리와 불가리아가 있으니까. 여차하면 이 두 나라를 움직여 유고슬라비아를 압박하면 되지 않겠소이까?”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유고 문제는 당분간 보류로 결론이 났다.

런던에 있는 벨기에, 네덜란드 망명정부는 최근 들어 쥐 죽은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항복을 받아낸 직후, 나는 두 망명정부에 독일군의 주둔을 인정하고 영구 중립국으로 남는다면 귀국을 허용하겠다고 권유했지만 둘 다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자존심 때문에 저러는지 자신들을 꾀어내기 위한 낚시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두 정부가 귀국할 의향이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망명정부가 내 제안을 거절한 다음 날, 나는 벨기에에는 벨기에 파시스트 정당인 렉스당의 지도자 레옹 드그렐을, 네덜란드에는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 운동의 창설자이자 당수인 안톤 무세르트를 수반으로 하는 괴뢰정부를 세웠다.

당연히 런던에 있는 두 망명정부는 합법적인 정부가 아닌 독일의 하수인들에 불과하다며 발광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애초에 좋게 좋게 가자고 했을 때도 거절한 것들이 인제 와서 ‘저놈들 가짜임! 우리가 진짜임! 빼애액!!!’ 소리를 질러 봤자 영국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들이 뭘 어쩌겠다고.

내가 두 정부에게 귀국을 권유한 것도 어디까지나 독일이 두 나라를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것보다는 이전 정부가 통치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였지, 이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런던에 있는 빌헬미나 여왕은 말할 것도 없고, 오스트리아에 억류 중인 레오폴드 3세도 꼴에 자존심은 남았는지 레옹 드그렐 내각을 벨기에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이참에 두 나라의 왕정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것까지 검토했지만 오히려 드그렐과 무세르트가 그것만큼은 참아달라며 사정을 해왔다.

“공화정으로 전환되면 자신들에게 이득일 텐데, 그 둘은 왜 반대를 한다나?”

“아무래도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SD의 조사에 따르면 벨기에 국민 전체의 58%가 왕정을 지지하며 네덜란드는 83%가 여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섣불리 왕정을 폐지했다간 국민들이 거세게 반발할 게 뻔하니 자기들도 겉으로는 왕정을 지지하는 척을 하는 것이죠.”

벨기에와 네덜란드 왕실에서 보면 드그렐과 무세르트는 이미 독일에 협력한 반역자라 사형 확정이다.

그런데도 이 둘은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왕정 폐지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왕실에선 괴뢰정부를 죽이려고 벼르는 중인데, 정작 괴뢰정부는 국민들 눈치 때문에 왕실 폐지를 반대하는 기막힌 상황. 이게 바로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현주소였다.

“그렇다면야 뭐, 본인들이 알아서 하라지. 우리에게 고개 숙이고 들어올 게 아닌 이상 런던의 작자들은 결코 본토 땅을 밟을 수 없으니 말일세.”

속으로는 런던의 망명정부를 지지하고 있어도, 벨기에와 네덜란드인들은 겉으론 조용히 지냈다.

나 역시 두 나라 국민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포로들을 모두 석방하고, 해당 지역 민간인들에게 해를 가한 독일 병사는 군법에 의거하여 엄히 처벌함과 동시에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제대로 배상해주었다.

이렇듯 침략자인 독일군이 의외로 공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마찰을 최소화하자 벨기에, 네덜란드 국민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와 맺은 협약에 따라 영국은 망명정부들의 활동에 제약을 걸었고, 설상가상으로 본토의 국민조차 저항 대신 현실에 순응하자 망명정부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됐다.

국민은 총과 폭탄 대신 연필과 공구를 들었지, 런던에선 할 수 있는 게 없지, 그렇다고 본토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지. 아주 답답해서 죽을 지경일 거다.

***

“지크 하일!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내가 입장하자 연회당을 가득 메운 참석객들이 한쪽 팔을 들어올리며 일제히 환호했다. 나는 그들의 환호에 손을 올려 보답했다.

연회당 전체를 수놓은 하켄크로이츠 깃발과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 때문에 온 세상에 붉은 잉크로 물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파티에는 국방군과 SS의 고위 장성들, SA와 나치당 고관들, 그리고 덴마크, 노르웨이, 헝가리 등 독일의 우방국 대사들이 참석했다.

연회당에 입장한 내가 마이크 앞에 서서 연설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성은 끊이질 않았다.

“나 같은 늙은이 한 명에게 이렇게나 열광하다니. 집에 있는 마누라들이 참 서운해하겠소.”

“하하하하하!!!”

“아무튼 다들 와줘서 고맙소. 1년 전 크리스마스에 나는 부디 내년에는 전쟁이 끝나고 독일의 아들들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내가 빌었던 소망은 이루어졌소. 전쟁은 끝났고, 독일은 승리했으며 유럽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지.

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내가 아니오. 바로 오늘날의 독일을 있게 한, 우리 독일의 진정한 자랑거리인 국민과 여러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기적이 현실이 됐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것에 자부심을 가집시다. 지크 하일!”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다 했다간 크리스마스가 끝날 것 같으니 이만 줄이겠소. 자, 모두 승리를 축하하며 건배합시다!”

“이야아아아!!!”

“총통 만세! 독일 만세!”

전쟁이 끝나고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다 보니 모두 들떠 있었다. SS 밴드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는 가운데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참석객들은 마음껏 먹고 마시며 파티를 즐겼다.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크기를 더욱 키워갔다.

“우리는 공포를 깨뜨리고, 크나큰 승리를 쟁취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 모조리 박살 날 때까지 진격할 것이며

오늘 우리가 독일을 손에 넣었듯이

내일은 전 세계를 거머쥘 것이다...”

***

1940년 12월 28일

일본 도쿄

“당최 이해가 안 되는군.”

찻잔을 내려놓은 일본 내각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독일이 황국이 아닌 열등한 지나 놈들과 가깝게 지내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소이다.”

독일처럼 강력한 나라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발전되고 영국, 미국, 소련 등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이 아닌 열등한 중국과 친하게 지내는지 고노에는 알지 못했다.

분명 중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 나가던 시절이 있긴 했다. 그러나 19세기를 거쳐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중국과 일본의 위치는 완전히 바뀌었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던 중국은 가진 것이라곤 황폐한 벌판과 국민의 8할 이상이 문맹인 별 볼 일 없는 후진국으로 전락했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산업국으로 변모하는 데 성공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자부하던 영국도, 미국도, 소련도 이제는 일본을 감히 무시하지 못한다.

땅덩어리만 넓고 실속은 아무것도 없는 중국은 황국의 군대에 연패를 거듭하며 지금은 멸망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마땅히 생각이 있는 자라면, 황국과 중국 중 누구와 손을 잡는 편이 더 이득인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예상을 뒤집고 중국의 손을 잡았다.

중국과 정식으로 동맹을 맺는 건 아니나, 중국에 무기를 파는 반면 일본에 머무는 자국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린 것만 봐도 독일이 황국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것은 자명했다.

더군다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획득한 무기 중 일부를 다시 프랑스에 되돌려주기까지 했다.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인도차이나를 지키고 있는 프랑스군의 무장이 열등하니, 이를 보충하려면 무기가 필요하다는 페탱의 요청을 받아서라고 한다.

지금 인도차이나를 황국이 노리고 있다는 것을 독일이 모를 리 없을 터. 그걸 알면서도 프랑스에 빼앗은 무기를 도로 돌려준다는 것은 프랑스를 앞세워 황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이전 베를린 올림픽에서 조센징을 따로 불러서 만난 것도 그렇고, 유럽을 정복한 남자가 열등한 지나, 조센징들 따위에게 호감을 보이다니 참 말세군.”

독일과 군사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마쓰오카 요스케 외무대신은 고노에가 발언하는 동안 조용히 차만 마셨다.

그도 고노에처럼 독일이 황국이 아닌 지나와 가까이 지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일독동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유럽을 제패한 독일과 황국이 서로 손을 잡는다면, 아시아-태평양 일대를 대동아공영권의 가치 아래 하나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터. 독일도 분명 황국처럼 뛰어나고 강력한 동맹국이 있어야 미국과 영국, 소련 등을 상대로 더욱 우위에 설 수 있을 텐데, 히틀러 총통은 왜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마쓰오카는 실로 통탄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쓰오카 외상,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독일은 황국과 동맹을 맺을 의향이 전혀 없는 것 같소이다.”

“....그러면 총리대신께선 따로 생각해두신 방안이 있으십니까?”

“일독동맹의 가능성이 사라졌으니, 해군에선 영미와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소. 독일 대신 영미와 손을 잡으면 지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건 안 됩니다! 영미와 손을 잡자니, 황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특히 미국 놈들은 황국을 업신여기며, 황국이 망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간악한 자들인데, 그런 무뢰한들과 협상하자니요!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고노에의 말에 마쓰오카는 즉시 반대입장을 밝혔다. 마쓰오카의 강력한 반대에 놀란 고노에가 물었다.

“외상은 일전에, 미국에서 제법 오래 거주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미국에 그렇게 반감을 품는지 모르겠소.”

마쓰오카는 13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미국인 가정집에서 하숙했다.

초중고교와 대학을 모두 미국에서 나온 마쓰오카는 프랭크라는 미국식 이름까지 가진, 사실상의 미국인으로 9년 동안 지냈다.

그런 그가 정작 미국에 이토록 강한 적개심을 보일 줄 몰랐던 고노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총리대신, 영미와 협상에 나선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황국이 지나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해올 겁니다. 저들은 황국의 입장에는 관심이 없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지나를 도와 황국을 위기에 빠뜨리려고 혈안이 된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입니까?”

“그러면 외상은 황국이 어느 나라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독일은 일본이 먼저 접근하려고 해도 이를 거부하고 있고, 영국과 미국은 중국 문제로 일본과 사실상 적대하고 있는 사이다.

프랑스는 독일에게 점령당한 데다 인도차이나를 두고 황국과 경쟁하는 관계이니 협상 대상에서 논외고.

이제 남은 국가는 단 한 나라뿐이었다.

“소련과 손을 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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