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81화 (81/150)

< 프랑스의 몰락 (1) >

영독 강화조약 체결은 독소 불가침조약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말이 강화협상이지 사실상 영국의 항복이나 다름없는 조약 체결에 세계는 일제히 경악했다.

세계의 전 언론사들이 영독 강화조약 체결 소식을 대서특필했고, 신문팔이 소년들이 거리를 오가며 호외를 뿌려댔다.

라디오를 들으며 아침식사를 하다가 소식을 듣고 놀란 나머지 빵이 기도에 걸려 급히 병원에 후송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속출했다.

영독 강화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BUF 당원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줄곧 반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반전파는 만세를 외쳤다.

“이번 조약은 역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사건입니다! 영국과 독일을 넘어 전 유럽이 오랜 증오와 갈등을 끝냈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자, 유럽인들의 축복입니다!”

BUF 당수 모슬리는 기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동시에 그는 이번 조약을 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핼리팩스 총리와 카도건 외무장관을 20세기 영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세운 위인들이라 칭송했다.

모슬리의 논평에 대한 영국 정부의 반응은 없었다.

BUF와 사이가 그닥인 영국 유대인대표위원회를 비롯한 영국 내 유대인 단체들, 그리고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로 독일에 대한 입장을 선회한 영국 공산당도 일제히 환영 성명문을 발표했다.

반면 전부터 히틀러를 경계하며 독일에게 강경책을 쓸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강경파는 협상 체결 소식에 격분하였다.

대독강경책을 지지하던 언론사들은 ‘대영제국의 몰락’, ‘영국이 독일에게 무릎을 꿇다!’, ‘역사상 가장 비겁하고 구차한 항복 선언’ 등의 자극적이고 정치색이 빤히 보이는 기사들을 신문 일면에 배치했다.

대표적인 대독강경파 언론인 <이브닝 스탠더드>는 핼리팩스와 카도건이 엎드려서 히틀러의 군화에 키스하는 모습을 그린 데이비드 로우의 만평을 실었다.

그러나 영독 강화조약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환영이었다.

됭케르크 이후로 영국인들은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군에 입대한 자식을 둔 부모들과 연인, 남편을 군대에 보낸 여성들이 정부의 결정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다.

항복이고 나발이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아들, 연인, 남편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당사자인 영국 국민들의 반응이 반으로 나뉜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영국이 우릴 배신했다!”

“개좆같은 놈들! 같이 싸우자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배신을 하다니!”

“순 사기꾼 새끼들 같으니라고!”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와 상의없이 독일과 강화하고 먼저 전쟁에서 발을 뺀 영국의 행동을 프랑스에 대한 배신으로 봤다.

언론사들이 앞다퉈서 영국을 비난하는 기사를 신문에 내보냈고 라디오의 아나운서는 격정적인 어조로 영국의 배신으로 프랑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반영 시위대가 유니언 잭을 불태우며 영국 대사관을 습격했고 프랑스 정부는 영국에게 단교까지 거론하며 극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탈리아는 영국에게 치졸하고 비열한 배신이라며 비난했다.

영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영국으로 도피하여 망명 생활을 이어가던 네덜란드 빌헬미나 여왕마저도 영국 정부의 행동에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선 영국도 할 말이 있었다. 전쟁에 가망이 없으니 독일과 강화협상을 맺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영국의 제안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수십만 대군을 보유한 프랑스, 국내 여론의 반발을 우려한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달리 육군의 주력을 됭케르크에서 잃은 영국은 동맹국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독일과 협상하는 것을 택했다.

연합국 중 가장 막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이 전쟁에서 빠지자 전황은 더더욱 독일에게 유리해졌다.

가뜩이나 낮았던 프랑스군의 사기는 이제 완전히 증발했고 누구도 독일군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이 포기했을 정도로 승기가 기운 전쟁인데, 어째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 한 번 퍼지기 시작한 패배주의와 비관주의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떨쳐낼 수 없었다.

***

1940년 5월 28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광장

“줄을 서시오! 줄!”

이른 새벽부터 표를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역은 포화상태였다.

역무원과 경찰들이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질서를 지키라고 소리쳤지만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공포로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은 돈을 몇 배로 줄 테니 당장 표를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값을 몇 배로 치른다고 해도 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었다.

9시가 되기도 전에, 파리를 떠나는 모든 열차의 표가 매진되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표가 매진되었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표가 매진되었습니다.

“표가 매진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어디서 거짓말을 치고 있어!”

“진정하세요, 여러분! 정말로 표가 매진되었습니다! 현재로선 저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열차표가 매진되었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급기야 난동을 부렸고 역무원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갔다.

경찰과 순찰 중이던 헌병들까지 나선 후에야 소동은 겨우 진정되었지만,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이 전쟁에서 발을 빼고 육군의 주력이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에서 궤멸되자 이제 독일군을 막을 장애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독일군이 파리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빛의 도시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부자들과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일찌감치 자가용이나 열차를 타고 파리를 떠났다.

정부와 자국군만 믿고 있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시민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파리를 떠나기 위해 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열차표는 이미 매진된 뒤였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정부는 징발한 열차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값비싼 그림과 전시물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포장하여 남프랑스로 보냈다.

주말마다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북적거리던 박물관과 미술관의 홀에는 이제 전시물들을 포장하고 포장된 전시물을 나무로 된 궤짝에 넣는 직원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경찰과 헌병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탈영병들을 찾아다녔다.

벌써 수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군이 탈영하여 헌병과 경찰들의 업무가 더욱 늘어났다.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일어났고, 신분증을 깜빡 잊고 외출을 나온 사람들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유치장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카페와 식당의 주인들은 전투와 폭격, 그리고 약탈에 대비하여 창문에 나무판자를 덧댔다.

식료품점에는 식량 부족에 대비하여 미리 음식을 사러 나온 사람들이 뱀처럼 긴 줄을 형성하여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다.

평소 하는 일이라곤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고객들 앞에서 항상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는지나 감시하던 사장들이 일본에서 직수입한 도자기와 접시들을 지하 창고로 옮기고 식량 부족에 대비하여 애완견의 사료용으로 여기던 통조림들이 든 상자를 조심조심 옮기는 광경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파리 시민 모두가 공포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것은 아니었다.

집이고 직장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무작정 도시를 떠나 시골로 피난을 가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판대에서 장신구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들이 그랬고 신문배달부들은 오늘도 집집마다 신문을 돌렸으며 몇몇 식당들은 전쟁 따윈 전혀 걱정되지 않는 듯이 정면에 ‘우리 가게는 정상영업합니다’가 적힌 커다란 도화지를 붙였다.

전보다 줄긴 했지만 가게에 앉아 있는 손님들도 있었다.

두 딸과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 마리 르누에르도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바스티유 광장 인근의 작은 저택에 세 들어 사는 그녀는 집주인인 노부부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음식을 사러 거리로 나왔다.

공병 하사인 그녀의 남편은 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었다.

나름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식료품점 앞에는 족히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사람들의 줄을 본 마리는 그제야 자신의 수중에 있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차례가 되기 전에 음식이 바닥나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운이 꽤 좋았다.

그녀보다 먼저 도착해 줄을 서던 사람 절반이 기다림을 찾지 못하고 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식료품점 안으로 들어선 마리는 진열대가 텅 비지 않은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꼈다.

남은 음식들은 시들기 직전의 상태인 채소들과 질기고 누린내가 심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냉육 통조림, 바위처럼 굳은 바게트, 그리고 치즈가 전부였다.

마리는 수중의 돈이 허락하는 선에서 모든 음식들을 샀다.

값을 치루기 위해 계산대에 늘어선 줄의 맨 끝으로 가려는 순간, 공습 경보가 울렸다.

“공습이다!”

“모두 방공호로 피하시오!”

가게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일제히 흩어졌다.

하지만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방공호로 가지 않았다.

가게 주인이 계산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방공호로 가려면 음식을 내려놓고 가라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의 건장한 아들 두 명이 눈에 불을 켜고 입구에 서 있었다.

미리 계산을 끝낸 사람은 입구 밖으로 내보내 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단호했다.

값을 치루던가, 아니면 수중의 음식을 내려놓고 나가던가 둘 중 하나였다.

마리는 방공호를 포기하고 자리를 지키는 것을 택했다.

만약 가게 위로 폭탄이 떨어진다면, 그녀는 꼼짝없이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폭탄을 맞아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에 깔려 납작해지는 것보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배를 굶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사이렌이 계속 울리고 대공포와 기관총 쏘는 소리까지 들렸다. 하지만 마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이게 전부요, 아가씨?”

어느새 그녀의 차례가 되자 가게 주인이 물었다.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요?”

“별 요상한 조합이다 싶어서 말이오.”

잡내가 심하기로 유명한 양고기 통조림과 비트 2개, 싹이 나기 직전인 감자 서너 알, 카망베르 치즈와 바게트가 전부. 하지만 마리도 할 말이 있었다.

“진열대에 남은 게 이것들뿐인데 그럼 어떡해요? 가뜩이나 가격도 전의 몇 배로 올렸으면서.”

주인은 어깨를 으쓱한 뒤, 계산을 시작했다. 계산은 금방 끝났다.

“3프랑만 주쇼.”

“여기 있어요.”

사이렌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폭탄이 터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끼며 밖으로 나온 마리는 곧 길거리를 가득 덮은 하얀 물체들을 발견했다.

“······종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종이였다. 하얀 종이.

주저하며 파리 시내를 뒤덮은 종이를 주워든 마리는 종이를 뒤집자 손톱 크기로 적힌 글자들을 볼 수 있었다.

종이의 정체는 독일군이 살포한 삐라였다.

‘파리 시민들이여!

우리 독일군은 그대들이 사는 도시를 파괴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대들이 헛된 싸움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미 영국인들은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택하는 현명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당신들이 굳게 믿었던 프랑스군은 붕괴되었고, 날마다 수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병사들이 항복하고 있습니다.

파리가 바르샤바처럼 파괴되는 광경을 보기 싫다면 즉시 항복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경고가 아닙니다.‘

삐라에는 항복을 권유하는 글과 함께 폭격으로 파괴된 폴란드의 도시들을 담은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삐라에 실린 사진 대부분 이미 신문과 뉴스영화에서 나왔던 것들이라 새롭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것을 다시 끄집어내 각인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특히 사진 밑에 실린 마지막 문구에 파리 시민들은 더할 나위 없는 공포를 느꼈다.

’추신 : 폭격기에 폭탄 대신 삐라가 실린 것을 감사하게 여기십시오.‘

***

1940년 5월 2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브라우히치의 보고에 따르면 A 집단군은 보베로 진격 중이고, B 집단군은 콩피에뉴 인근에서 프랑스군과 교전 중이라고 한다.

프랑스군의 사기는 바닥이며 아군이 공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투항하거나, 무기를 버리고 내빼기 일쑤다.

역사에선 그대로 프랑스 전차들이 독일제 전차들보다 성능에서 우위에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조차 없으니 더더욱 싸울 맛이 안 나겠지. 영국도 이미 발을 빼버렸고.

이제까지 마지노선의 프랑스군을 잡아두기 위해 독일-프랑스 국경에서 대기하던 레프의 C 집단군도 사흘 전부터 행동을 개시, 오늘 비텔을 점령했다고 보고했다.

C 집단군의 임무는 독일-프랑스 국경에서 프랑스-스위스 국경까지 진격하여 마지노선에 주둔한 프랑스군의 포위하는 것이었다.

됭케르크가 포위당할 때까지 마지노선에 처박혀 하릴없이 시간이나 때우던 프랑스군 40개 사단은 매우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대로 가만히 있자니 독일군에게 포위당할 처지였고 그렇다고 움직이자니 이번에는 정면의 독일군이 문제였다.

이런 상황을 보고 빼도 박도 못한다고 하지.

만약 프랑스가 마지노선에 5개 사단만 주둔시키고 35개 사단을 북부로 돌렸다면 낫질 작전에 적잖은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들이 자랑하던 정예 육군과 마지노선을 스스로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승리의 1등 공신은 단연 프랑스인들이오. 그들이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릴 줄 알았더라면, 전황이 정반대가 되었겠지. 전쟁이 끝나면 가믈랭에게 철십자훈장을 수여할 생각인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하하하, 적극 찬성입니다!”

“하하하하!!!”

승리가 머지않았다는 인식 덕에 회의실의 분위기는 늘 화목했다.

영국과의 협상이 타결된 후, 누구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베를린에선 이미 등화관제가 해제되었고,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 때문에 맥주홀은 아침 해가 뜨기 직전에야 문을 닫았다.

아직 프랑스, 이탈리아가 남아있지만 시민들은 벌써 전쟁이 끝난 것처럼 행동했다. 영국이 발을 뺐고, 파리는 함락 직전인데 무엇이 두려울까.

단치히에서 첫 포성이 울린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전쟁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총통 각하, 이탈리아가 휴전을 제안해왔습니다.”

“이탈리아가?”

남은 업무는 장군들에게 맡기고 슬슬 퇴근하려는데, 리벤트로프가 나타나 이탈리아 소식을 전했다.

리벤트로프의 말에 따르면 무솔리니는 자신의 사위 치아노 백작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휴전을 제안했다.

그놈의 허세는 끝까지 버릴 수 없는지, ’통 크게 화해하고 전쟁 이전의 국경으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엎드려서 빌어도 모자랄 판에 화해하자니. 너무 뻔뻔해서 감탄이 나올 정도다.

“누구 마음대로? 이 멍청한 놈은 휴전이 누구 집 개 이름인 줄 아는가 봅니다.”

카이텔이 말했다. 진심으로 어이가 없는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동감이오. 아직도 상황파악이 덜 되는 모양이군. 기가 차서 원.”

말할 필요도 없지만 나는 무솔리니의 휴전 제안에 응할 생각이 1g도 없다.

영국은 이미 GG치고 나갔고, 프랑스도 곧 항복 직전이다. 이미 최종보스와 중간보스까지 잡았는데, 보스 축에도 못 끼는 놈을 뭐하러 살려줘?

주제도 파악 못하고 깝죽거리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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