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틀러가 되었다-76화 (76/150)

< 대서양을 향한 질주 (3) >

“좋았어! 계속 명중이군!”

참모들과 함께 쌍안경으로 전투 현황을 주시하던 롬멜은 아군 대전차포가 영국군 전차를 격파할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사에서 롬멜은 기존의 PaK 36이 영국군의 마틸다 전차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자, 급히 88mm 대공포를 끌어와 대전차포로 활용하여 간신히 영국군의 공세를 저지시켰다.

그러나 여기서는 히틀러의 지시로 PaK 38과 PaK 40이 일찍 개발되어 전선에 배치된 덕택에 88mm 대공포를 투입할 일이 없어졌다.

굳이 무겁고 육중한 88까지 갈 필요 없이 PaK 38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연합군이 아라스 일대에서 역습을 가해올지 모르니 이에 대비하라’는 총통의 지시를 받은 롬멜은 대전차포를 촘촘하게 배치하여 적습에 대비하긴 했지만, 패주하기 바쁜 적들이 역으로 공세를 가해오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진격이 지체되어 적이 재정비를 할 시간을 준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총통의 예상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정말로 영국군은 2개 전차연대를 앞세워 역습을 시도했고 그 장소가 아라스인 것도 맞았다.

총통의 지시대로 대전차포와 병력을 다수 배치해두지 않았더라면 영국군은 아군의 측면을 그대로 유린했을 것이고 자신의 7기갑사단은 꼼짝없이 포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롬멜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총통의 지시가 그와 그의 사단을 전멸의 위기에서 구한 것이다.

“대체 총통은 어떻게 이 상황을 다 예측해낸 것인지 알 수가 없군.”

어쩌면 정말로 그는 신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하는 것마다 착착 들어맞을 수 있단 말인가?

단순히 운이라고 하기엔 상황이 너무 절묘했다. 이제는 총통이 독심술을 쓴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간혹 피해를 무릅쓰고 돌진하는 영국 전차들에 의해 대전차포가 파괴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후방에서 대기하던 헷처가 즉시 반격에 나서 영국군의 돌파를 저지했다.

방어력이 사실상 제로나 마찬가지인 대전차포와 달리, 헷처는 정면에 한정해서는 거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무적이었다.

“헷처도 총통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던데 사실인지 모르겠군.”

“사실입니다. 병기국에서 근무하는 동기한테서 들었는데 총통께서 직접 설계에 참여하셨답니다. 헷처만 아니라 그릴레와 케츠헨, 살라만더도 전부 총통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쯤되니 그분이 못하시는 게 뭔지 궁금해지는군.”

별안간 창공에서 들린 굉음에 롬멜과 참모들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슈투카 편대가 V자 대형을 이룬 채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슈투카 편대를 발견한 롬멜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참 빨리도 오는군.”

“왜 그러십니까? 도착 예정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것입니다만.”

“나도 알아. 그런데 이제보니 굳이 공군 녀석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아도 해결될 문제 같아서 말이야. 우리 힘으로 다 해치울 수 있는데, 공을 나누게 생기지 않았나.”

“아······.”

참모들이 보기엔 사치스러운 불만이었지만, 롬멜 본인은 한없이 진지했다.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영국군을 격퇴한 공은 오직 자신의 전공으로 남았을 텐데, 괜히 공군에 지원을 요청하는 바람에 본인의 몫이 줄고 말았다. 롬멜은 그것이 진심으로 통탄스러웠다.

“앞으론 상황을 봐가면서 지원을 요청해야겠어. 안 그런가?”

“각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우리 괴링 원수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야. 조금만 게을러져도 될 텐데.”

“······.”

롬멜이 투정 아닌 투정을 참모들에게 털어놓는 사이, 슈투카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

“토미(영국군의 멸칭) 녀석들, 많기도 하구만.”

슈투카의 조종간을 잡은 한스 울리히 루델 중위는 입맛을 다시며 지상의 영국 전차들을 내려다봤다.

아군 대전차포가 열심히 불을 뿜었음에도 들판에는 격파된 전차보다 움직이는 전차가 더 많았다.

어림잡아 50~60대 정도? 대전차포의 포성과 전차의 폭발음이 불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이 진짜 전장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루델의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폴란드전에서 그는 Fi 156 슈토르히를 타고 적진을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단순 정찰만 한 게 아니라 이동 중인 폴란드군 대열 위로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소사를 가해 몇 명의 적군을 사살한 적도 있었다.

폴란드 침공이 마무리된 후, 루델은 정찰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로로 2급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고 빈의 제43항공훈련연대로 보내져 연대 부관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날 총통과 괴링이 연대를 시찰한 일이 있었다.

조종사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며 이름과 나이, 고향을 묻던 히틀러는 루델의 차례가 되자 고개를 한 차례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인데······ 혹시 이름이 뭔가?”

“한스 울리히 루델입니다, 총통 각하!”

“루델이라고!?”

그 말을 들은 히틀러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무슨 일이십니까, 총통 각하?”

괴링의 물음에 히틀러는 가까스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닐세. 그냥 내가 아는 사람과 이름이 똑같아서 놀랐을 뿐이야. 아주 오래 전에 알던 사람이지.”

“그렇습니까?”

히틀러는 여전히 놀란 눈으로 루델을 바라봤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던 루델에게, 히틀러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자네, 혹시 슈투카 조종사를 해볼 생각이 없나?”

“슈투카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는 루델이 놀랐다. 그러잖아도 슈투카 조종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던 루델은 틈만 나면 상부에 슈투카 부대로 전속시켜줄 것을 요청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상부는 일개 중위의 요청 따위에 별 관심이 없었고 이에 낙담하고 있었는데 총통이 직접 슈투카 조종사를 권한 것이다.

이 무슨 꿈만 같은 일인가.

“아아, 강제는 아냐. 어디까지나 권유일세, 권유. 내가 보기에 자네는 슈투카 조종사가 딱이야. 그······ 체격도 그렇고, 깡다구가 있게 생겼거든.”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루델은 본 히틀러가 말했다. 아무래도 루델의 생각을 잘못 판단한 듯했다.

조종사는 원래 아무나 되는 게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슈투카 조종사는 정말로 기량이 뛰어난 조종사만 될 수 있었다.

급강하 시 최대 5G에 달하는 압력을 견뎌가며 적진에 정확히 폭탄을 명중시켜야 하는 슈투카 조종사가 되려면 뛰어난 체력과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뛰어난 조종실력이 필요했다.

여태껏 정찰기만 몰았던 루델은 자신이 슈투카 조종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실력을 입증하지 못했다(사실 입증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그는 꿈에 그리던 슈투카를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슈투카 조종사가 된 루델은 날마다 맹훈련에 들어갔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슈투카 교관들이 루델에게 그만 연습하고 쉬라고 권할 정도로 연습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 지금까지 그가 거듭했던 훈련의 성과를 보여줄 차례가 되었다.

슈투카가 강하를 시작하자 그 즉시 몸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졌다.

거대한 바위에 깔려 납작해지기 직전의 상태처럼 호흡이 가빠지고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가 어려웠다.

루델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줬다.

압력 때문에 눈이 뽑혀 나갈 것만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기합으로 버텨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수십 번이 넘는 훈련을 거듭하지 않았던가.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슈투카 조종사가 되었는데, 첫 실전에서 죽을 수 없지.

반드시 살아서 파리와 런던에 독일의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흐읍!”

무게가 1톤에 육박하는 SC1000 폭탄을 투하한 루델은 즉시 조종간을 당겨 기체를 상승시켰다.

그가 투하한 폭탄은 옹기종기 모여있던 영국 전차들의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궤도가 끊어진 전차 뒤에 비스듬히 숨어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공축 기관총을 쏘던 마틸다 전차들이 섬광에 휩쓸려 분해되고 전차들 뒤에 숨어서 사격하던 병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폭탄 한 발에 전차 3대가 격파당하고, 보병 9명이 즉사했다. 첫 전과치곤 상당히 나쁘지 않았다.

“하하, 하하하하!!! 봤냐, 봤냐고! 이 몸의 전적을!”

루델의 외침에 응답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의 전우들도 모두 영국 전차들을 향해 급강하하거나 폭탄을 투하한 후 다시 고도를 높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루델은 여전히 신이 나서 떠들어대기 바빴다.

“맛이 어떠냐, 토미들아! 아직 4발 더 남았다!”

슈투카의 주익에는 폭탄 4발이 그대로 달려있었다. 앞서 투하한 SC1000보다 작고 가벼운 SC50 폭탄이었지만, 영국군을 때려잡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루델이 다시 급강하에 돌입할 무렵, 다른 조종사들도 제각기 폭탄을 투하하고 급상승했다.

폭탄이 착탄할 때마다 무게 수십 톤에 달하는 전차들이 장난감처럼 튀어 오르고, 병사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

“으아아! 으아아아아!!!”

기어코 정신줄을 놔버린 신병이 주저앉아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러댔다.

실시간으로 죽음을 목격하자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아아아아!!! 엄마, 엄마!”

“진정해, 새꺄!”

보다못한 그레이엄은 신병의 목덜미를 잡아 잔해 뒤로 끌고 가려고 했지만, 신병은 한사코 거부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게 된 신병은 그레이엄을 피해 도망쳤다.

“야! 멈추라고! 야!”

신병이 적진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을 본 그레이엄이 다급히 소리쳤지만, 신병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MG40에 의해 몸이 벌집으로 변한 후에야 신병은 고함을 멈췄다.

몸에 생겨난 무수히 많은 구멍으로 쏟아져나온 피가 대지를 흠뻑 적셨다.

“제기랄.”

또 한 명의 목숨이 헛되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한 그레이엄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전장은 감상에 젖을 시간조차 불허하는 곳이었다.

상공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그레이엄은 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빌어먹을, 또야!?”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는 것은 슈투카가 급강하를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레이엄은 눈을 감고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폭탄이 착탄할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배를 땅에 붙인 탓에 땅의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속이 울렁거렸다.

“사람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

폭탄을 투하하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슈투카를 향해 홉킨스가 중지를 세워 보였다.

폭탄이 투하된 자리에는 사람 열댓 명이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구덩이가 생겨났는데, 구덩이 주변에는 팔과 다리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귀를 양손으로 막았는데도 폭음 때문에 귀가 얼얼했다.

그레이엄은 왼쪽 뺨에서 따뜻한 액체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손을 갖다 대보니 빨간 피가 묻어나왔다. 고막이 찢어진 것이다.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청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전보다 소리가 더 작고 희미하게 들렸다.

환장하겠군.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귀까지 문제가 생기다니.

“저 좆같은 놈들 때문에 귀머거리 되게 생겼어.”

“그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입니다.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죠.”

홉킨스는 바닥에 침을 뱉은 뒤, 총구를 막은 흙덩이를 털어냈다. 그런 다음 총알이 날아드는 방향을 향해 브렌의 방아쇠를 당겼다.

적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기에 일단 무작정 쏘기만 했다.

점사로 끊어서 쐈는데도 금방 탄창이 바닥났다.

탄창을 교체하던 홉킨스가 별안간 생각났다는 듯이 그레이엄을 돌아봤다.

“중사님, 저희 후퇴 안 합니까?”

“뭐라고? 잘 안들려!”

“저희 후퇴 언제 하냐고요? 이러다간 다 죽습니다!”

“나도 몰라! 위에서 명령이 내려와야 후퇴를 하지, 지금 도망치면 우린 총살감이야!”

그레이엄은 이 이상 자신에게 묻지 말라는 듯 고개를 휘휘 저은 뒤 적진으로 총구를 겨눈 뒤 발포했다.

그는 숲 언저리의 기관총 발사광을 향해 연거푸 세 발을 쐈지만, 섬광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후퇴 명령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둘은 열심히 사격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세를 낮췄다가 폭음이 끝나면 다시 몸을 일으켜서 사격을 재개했다.

슈투카들은 폭탄을 모두 소비한 후에도 복귀하지 않고 전투 현장을 맴돌면서 지상의 영국군을 향해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MG17의 총탄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에야 슈투카들은 기수를 돌려 기지로 되돌아갔다.

셀 수 없이 많은 잔해와 시체들을 아라스의 들판에 남겨둔 채로 유유히 떠나는 슈투카들을 보며 병사들은 분노와 안도감이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슈투카들은 떠났어도 대전차포와 기관총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대전차포가 전차를 격파하면, 기관총이 전차에서 탈출하는 전차병을 사살했다.

“후퇴! 후퇴해라, 후퇴!”

마침내 후퇴 명령이 떨어졌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이미 3분의 1에 달하는 전차들이 격파되었고, 살아남은 전차들조차 공격은커녕 포탄을 피해 기동하느라 바빴다.

전진하는 것도 어렵지만, 후퇴하는 것은 시야가 제한된 전차들에겐 더 어려운 일이었다.

앞을 볼 수 없는 조종수에게 전차장이 관측창으로 뒤를 보면서 방향을 가르쳐 줘야 하는데, 좁은 관측창 때문에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았다.

“잠깐! 정지, 정지!”

뒤늦게 후방에 엎드려 있는 아군을 발견한 전차장이 정지를 외쳤지만, 조종수가 전차를 멈춰 세웠을 땐 이미 무한궤도 밑에 병사가 깔린 뒤였다.

궤도에 깔린 영국군은 온몸이 으스러져 즉사했다.

“후퇴! 전원 후퇴!”

격파되어 버려진 마틸다 I을 방패삼아 버티던 무어 소위는 후퇴를 외친 뒤 자신도 서둘러 후퇴하는 병사들 사이에 섞였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홉킨스는 어이가 없어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저 새끼, 온갖 폼은 다 잡더니 순 쫄보 새끼였잖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어쩔 수 없어. 우리도 얼른 후퇴하자고.”

일찌감치 몸을 내뺀 소대장을 대신해 그레이엄은 돌아다니며 아직 후퇴 명령을 듣지 못한 병사들에게 후퇴 소식을 전했다.

살아남은 소대원들을 찾아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그는 발목에 총을 맞고 쓰러져 끙끙거리던 일병을 발견하곤 위생병을 외쳤다.

“위생······ 아.”

총상을 입고 쓰러진 일병의 팔에 달린 적십자 완장을 본 그레이엄은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홉킨스도 서둘러 뛰어와 왼편에서 상병을 부축했다.

“고맙습니다, 전우들. 정말로 고맙습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게. 여긴 아직 전장이니까.”

용케 격파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전차들이 퇴각하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불을 뿜었다.

궤도가 파괴당하거나, 혹은 행렬의 선두에 위치하여 도망칠래야 도망칠 수 없게 된 전차의 전차병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군을 저승길 길동무로 만들고자 했다.

“적 전차 정면! 거리 400, 철갑탄!”

“장전 완료!”

“무한궤도를 노려라! 발사!”

2파운더 철갑탄으론 헷처의 전면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영국군은 적의 기동이라도 막기 위해 궤도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적 전차의 우측 궤도가 끊어져 풀리자 포수는 적의 포구를 향해 조준을 맞췄다. 포탄을 적 전차의 주포에 명중시킨다면 격파할 수 있을지 몰랐다.

“장전 서둘-”

그러나 헷처가 발포하여 포탑에 먼저 구멍을 뚫어버렸다.

포탑이 쪼개진 마틸다의 전면해치를 열고 나온 조종수는 적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항복할 테니 쏘지 말라는 필사의 애원이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틸다 II가 PaK 40에 의해 전면이 관통되어 격파당하자 전장에 홀로 남겨진 마틸다 I의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나와 투항했다.

도망칠 방법도 없고 총탄도 바닥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폭과 전사, 투항뿐이었다. 살고 싶었던 두 전차병은 투항을 선택했다.

***

영국 육군 제4전차연대와 제7전차연대의 공격은 독일군의 대전차화망에 의해 돈좌되었다.

영국군은 진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병사들의 투지와 용기만으로 전황을 뒤집기엔 상대가 너무나도 강력했다.

아라스 전차전은 영국군의 대패로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이 전투를 통해 연합군이 얻은 소득은 독일군의 대전차포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토록 맹신하던 마틸다 전차의 방어력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것, 그리고 이젠 무슨 수를 써도 독일군의 진격을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세계를 주름잡던 두 식민제국에도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종말이 서서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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