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전쟁 (2)
1939년 11월 18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총통 각하께서 직접 선정하신 릴리 마를렌이 병사들에게 대호평입니다. 심지어 영국군과 프랑스군까지 릴리 마를렌에 환장한다는 보고입니다.”
릴리 마를렌의 효과는 굉장했다.
독일 병사들은 물론이고 적국인 영국군과 프랑스군까지 시도 때도 릴리 마를렌을 불러대는 바람에 적군 상층부에서 고심 중이라는 무전까지 감청될 정도였다.
심지어 어느 영국군 부대는 기계 고장으로 릴리 마를렌 송출이 중단되자 왜 릴리 마를렌을 틀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표지판을 세웠을 정도다.
성능 확실하구만.
내가 릴리 마를렌을 선정했을 때 괴벨스는 그 노래를 부른 가수 랄레 안데르센이 반나치적인 발언을 해 게슈타포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며 릴리 마를렌을 트는 것을 반대했었다.
“이렇게 단조로운 노래를 사람들이 듣기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나는 그 말을 씹었고 이후 괴벨스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총통 각하의 혜안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알면 됐네. 그리고 바람도 좀 그만 피우고. 자네 부인인 마그다를 달래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긴 하나? 듣자 하니 엊그제에도 다른 여자와 만났다고 하던데.”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괴벨스는 미인 아내를 두고도 여러 여자들과 대놓고 바람을 피웠고, 이를 모르는 나치 고관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내 마그다도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남편의 바람을 알게 된 마그다는 남편의 부하인 선전부 차관 카를 한케와 맞바람을 피우는 방법으로 괴벨스에게 복수했고 자기는 바람을 피워도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던 괴벨스는 노발대발하며 마그다와 대판 싸웠다.
이혼 직전까지 간 이 둘을 중재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간신히 사이가 회복된 모양이지만, 약쟁이가 약을 끊지 못하듯이 괴벨스는 여전히 여자놀음은 못 끊고 있었다.
그나마 줄인 게 이 정도인데, ‘전성기’ 때는 어느 정도였을지 감도 안 잡힌다.
“그, 그 여자와의 관계는 오해입니다! 단지 선전영화 촬영 문제로 잠시 만나서 얘기만 나눈 것일 뿐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랄.
거짓말할 거면 입에 침 바르는 성의라도 보여라 좀. 전에는 선전부 회의 때문이라더니, 이번에는 영화 촬영이냐?
괴벨스는 중요한 회의가 갑자기 생각났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누구는 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부하라는 놈은 여자나 만나고 다닌다니. 팔자 한 번 기가 막히는군.
“총통 각하? 회의까지 이제 5분 남았습니다. 슬슬 움직이심이.”
“알겠네. 내 가지.”
괴벨스 문제를 뒤로 하고 나는 장군들과의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카이텔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전원, 총통 각하께 경례!”
“하일 히틀러!”
······내가 이 짓 하지 말라고 이미 몇 번이나 말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카이텔 저 양반도 아부 실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내가 민망하니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일종의 시험이라고 생각한 건지 아님 하지 말라고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건지 내가 회의실에 들어설 때마다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
아, 부담스럽다고, 좀!
“총통 각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영 좋지 않으십니다.”
“······아무것도 아니오. 얼른 회의나 시작합시다.”
회의가 시작되고 첫 번째로 언급된 것은 유보트가 거둔 성과였다.
“21형 유보트와 기젤라 어뢰는 실전에서 매우 우수한 성능과 위력을 입증해 보였습니다. 특히 지난달 14일에 있었던 귄터 프린 대위의 활약상은 해군을 넘어 독일군 전체의 사기를 크게 올리는데 기여했으며-”
10월 14일, 21형 유보트 U-47의 함장이었던 귄터 프린은 영국 스캐퍼플로 군항에 잠입하여 리벤지급 전함 로얄 오크와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펄스를 격침시켰다.
심지어 U-47은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뢰 3발을 발사해 구축함 한 척을 추가로 격침, 도합 3척의 영국 군함을 격침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엄청난 전과로 ‘스캐퍼플로의 황소’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귄터 프린은 소령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기사십자장을 수여받고 전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
그간 육군과 공군에 밀려 별로 활약한 기회가 없었던 해군은 간만의 대승리에 잔뜩 고무된 분위기다. 특히 되니츠가 가장 기뻐했다.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유보트가 실전에서 그 유용함을 입증해 보인 데다, 자신도 그 공적 덕분에 대장으로 특진했으니 당연히 뽕 찰 수밖에.
“-따라서 유보트 생산에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해줄 것을 요청드립니다. 유보트 300척만 있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잘 알겠소. 하지만 섣불리 결정하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이니, 당장 답변을 내놓긴 어려울 것 같소. 이해해주시구려.”
“알겠습니다.”
되니츠 다음은 구데리안의 차례였다.
폴란드전에서의 전공으로 기사십자장을 수여받고 상급대장으로 진급한 터라, 그도 되니츠처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75mm 장포신 주포를 탑재한 신형 4호 전차, 통칭 G형의 생산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기존 A형을 G형으로 개조하는 작업 또한 차질없이 진행 중입니다.”
“음.”
만족스로운 소식이군.
75mm 24구경장 주포를 장착한 4호 전차 A형은 탱켓, 빅커스 같은 경전차들로 무장한 폴란드군 기갑부대를 상대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마틸다, 소뮤아 S35 같은 영국, 프랑스제 전차들을 상대로는 우위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75mm 48구경장 주포를 장착한 G형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A형은 100m에서 50mm를 관통하는 게 최대지만, G형은 1km에서 97mm, 500m에서 130mm를 관통한다.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전차들을 단 일격에 격파하는 게 가능하다, 이 말이다!
A형에서 주포만 바꿔 달면 G형이었기에 나는 모든 4호 전차들을 A형에서 G형으로 개조할 것을 지시했다.
G형으로 개조됨에 따라 잉여가 된 75mm 24구경장 주포들은 Sd.Kfz 251, Sd.Kfz 232 장갑차에 장착하여 보병지원용 겸 간이 대전차 자주포로 개조했다.
“그리고 38(t) 구축전차 헷처도 모든 테스트를 끝내고 양산에 들어갔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38(t)의 생산을 중단하고 헷처의 생산을 위해 38(t) 생산 공장들을 뜯어고치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12월 전까지 모두 완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주 좋소.”
3호 돌격포와 더불어 가성비 하나는 끝내줬던 명품 구축전차 헷처도 양산이 시작되었다.
3호 돌격포보다 데뷔가 훨씬 늦어서 활약상은 좀 부족했지만, 가성비만 따지자면 헷처가 3호 돌격포보다 훨씬 위에 있는 물건이다.
두 차량에 탑재된 75mm 주포는 엄밀히 따지면 서로 다른 주포이긴 하나 별 차이가 없는 물건이라 화력은 동일하고 최고속력도 둘 다 40km/h이며 헷처 정면의 60mm 경사장갑은 3호 돌격포의 80mm 수직장갑보다 방호력이 더 좋다.
무게도 3호 돌격포 24톤(G형 기준), 헷처 16톤으로 헷처가 더 가볍고 단가 역시 헷처가 3호 돌격포보다 더 낮다.
화력, 속력 동등에 방어력 우수, 심지어 가격까지 더 싸다? 이게 바로 진정한 혜자가 아니겠는가!
헷처가 3호 돌격포보다 못난 점 하나는 내부가 좁아 승무원들이 고생한다는 점뿐인데, 원본인 38(t)가 경전차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오히려 체급이 경전차인데 방호력은 정면에 한정해서 웬만한 중전차 뺨치는 수준이니 감지덕지해야지, 암.
“그리고 일전에 지시하셨던 신형 중형전차 및 중전차 개발안 말입니다.”
“아, 그렇지. 그게 있었지.”
4호 전차와 헷처의 개발에 이어, 나는 장차 독일 기갑부대의 핵심 전력이 될 중형전차와 중전차에 대한 개발 지시를 내렸다.
중형전차는 4호 전차를 대신해 독일군의 주력전차로 삼을 예정이었고 중전차는 전선 돌파와 같은 공세용 병기로 쓰일 예정이었다.
눈치챘겠지만 중형전차는 바로 5호 전차 판터, 중전차는 6호 전차 티거를 의미한다.
아직 정식명칭 없이 각각 신형 중형전차, 신형 중전차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관련 부서들과 면밀히 토의한 결과, 역시 개발에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총통 각하께서 말씀하셨던, 내년 여름까지의 완성은 무리입니다.”
“으으음.”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결국 내년 여름까지의 완성은 무리라는 건가.
파리를 향해 질주하는 판터와 티거 전차부대의 모습을 끝내 현실에서 볼 수 없게 된 것이 유감이긴 하나, 나 역시 내년 여름까지 두 전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라고 예상했기에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영프군쯤이야 4호 전차와 헷처만으로도 족한데 뭐.
“그렇다면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었소?”
“대략적인 설계도는 이미 완성되었고, 엔진과 토션바 현가장치, 주포가 개발 중에 있습니다.”
3호 전차는 비록 시제품 몇 대만 만들고 개발이 중단되었지만, 3호 전차에 적용된 토션바 현가장치가 훗날 판터와 티거에도 적용되었다는 것은 알기에 토션바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다.
4호 전차의 리프스프링 현가장치는 가격이 싸고 제작이 쉬워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토션바보다 내구성이 약해 중량증가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판터, 티거는 물론이고 미국과 소련이 만든 전차들도 대부분 토션바 현가장치를 쓰고 있다.
21세기 최강의 전차 M1 에이브람스도, 에이브람스의 축소판이라 평가받는 국군의 K-1 전차도 토션바 현가장치로 굴러간다는 말씀.
티거에 탑재될 88mm 56구경장 주포는 88mm 대공포를 조금만 손보면 되는 물건이라 금방 완성했지만, 판터의 75mm 70구경장 주포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물건이라 이제 막 제작에 들어간 참이었다.
“또, 신형 중형전차의 개발을 맡은 MAN사에서 총통 각하께서 제시하신 요구대로 제작하려면 부득이하게 중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원본 판터의 중량은 45톤. 소련의 IS-2가 46톤, 미국의 M26 퍼싱-나중에 중형전차로 재분류되었지만, 2차대전 당시에는 중전차였다-이 42톤임을 감안하면 이름만 중형전차인 중전차 수준이다.
판터의 성능은 훌륭했지만, 45톤이나 되는 중량은 분명 단점이었기에 나는 신형 중형전차의 중량을 30~35톤 사이로 고정시켰다.
차체 장갑은 원본(G형)과 동일하게 전면 80mm, 측면 50mm, 후면 40mm로 지정했고.
“어느 정도로 말이오?”
“MAN사에서는 40톤이 적당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40톤, 40톤이라. 흐음······.
실제 판터가 45톤이나 나간 것을 생각하면 40톤까지 줄어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긴 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 제일이란 말 몰라?
야근 많이 한다고 해서 월급도 올려줬으니, 본전은 뽑아야 하지 않겠나.
“40톤이면 거의 중전차 수준이잖소. 36톤,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봅니다.”
판터보다 방호력이 뛰어났던 M26 퍼싱이 판터보다 3톤이나 가벼웠고, 마찬가지로 방호력은 판터 이상이었던 M4A3E2 셔먼, 일명 ‘점보 셔먼’의 중량이 38톤임을 감안하면 아주 불가능한 요구는 아니라고 본다.
앞의 놈들보다 무게는 더 나가면서, 정작 방어력은 뒤떨어지는 게 말이 되냐?
심지어 네놈들이 열등인종이라고 깔보던 그 러시아인들조차 36톤의 중량만으로 쾨니히스티거와 동급의 방호력을 가진 T-54를 만들어냈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노력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최소한의 노력 없이는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크기를 줄여도 상관없으니 중량은 최대한 낮추시오. 개발비도 더 지원하겠소. 필요하다면 내 사비까지 털어서라도 조달하지.”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티거의 제작을 맡은 헨셀사도 중량 증가의 필요성에 대해 토로했다.
45톤의 중량으로 요구한 조건-전면장갑 100mm, 측후면 80mm-를 충족하기엔 어려움이 많으니 장갑을 줄이던가 중량을 늘려야 한단다.
“48톤. 더 이상은 안 되오.”
판터는 36톤, 티거는 48톤으로 최종결론이 났다. 남은 건 공돌이들이 알아서 잘 만들어주겠지.
헷처, 그릴레와 더불어 38(t)를 개조해서 만든 나치 독일의 APC 케츠헨(Kätzchen, 새끼 고양이)과 38(t) 화염방사전차도 완성되어 테스트 중이고, 4호 구난전차와 4호 교량전차도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지뢰제거전차의 경우 지뢰제거장치를 전차 정면에 부착하면 되니 전차를 개조할 필요가 없고, 전투공병전차도 브룸베어가 그 임무를 수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노획한 폴란드제 전차들의 처분 문제입니다.”
폴란드를 정복하면서 독일군은 수백 대에 달하는 폴란드군의 전차 및 차량들을 노획했다.
트럭, 승용차,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그대로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전차들이었다.
르노 FT-17과 TKS, 빅커스 같은 구식 전차들은 2호 전차에서 정리가 가능하고, 폴란드군이 보유한 전차 중에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7TP조차 잘 쳐봤자 아군의 35(t) 수준이다.
전성기의 미국, 소련마냥 전차가 차고 넘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늘 전차 부족에 시달렸던 원래 역사의 독일군에 비하면 물량이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정비 중인 놈들은 제외한 수치지만 폴란드전에서도 2호와 4호, 체코제 전차들을 다 합쳐 겨우 60여대 정도밖에 잃지 않았고.
즉, 이놈들을 굴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기술적으로도 특출난 것도 아니라서 뜯어봤자 건질 것도 없다.
그렇다면 팔아먹어야지.
“어느 나라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우선 우리의 우방인 슬로바키아와 헝가리가 있지 않소. 불가리아도 있고. 아, 듣자 하니 전에 스웨덴과 핀란드도 폴란드 전차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나는 이것들에 적당한 가격을 붙인 다음 박물관에 기념품으로 전시할 것들과 훈련용 및 공군에서 기지 경비용으로 사용할 몇 대만 남기고 모조리 팔기로 결정했다.
7TP는 10대만 남기고 스웨덴과 핀란드, 불가리아에 판매했으며, TKS와 빅커스는 적당히 개조한 다음 전량 핀란드에 팔았다. 르노 FT-17은 슬로바키아에게 공여했다.
전차는 이쯤하면 됐고, 이제 대전차병기로 넘어갈 차례.
현실 역사에서도 판처파우스트의 개발과 생산을 담당했던 HASAG에게 흑색화약을 사용한 보병들이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대전차무기의 개발을 지시했다.
어떤 소설에서처럼 괴상한 합체병기가 나오는 일을 피하기 위해 나는 구체적인 조건을 붙였다.
보병들이 들고 다니기 쉽게 중량은 탄두와 발사관의 무게를 합쳐 10kg 이하일 것이며, 사용법도 간단할 것. 그래도 혹시 몰라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려줬다.
일회용에서 그치면 아쉬우니 기왕이면 여러 번 발사가 가능할 수 있으면 더 좋고.
판처파우스트는 본래 탄두만 발사하고 발사관은 버리는 일회용 무기인데, 발사관도 결국엔 다 돈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회용으로만 사용하기엔 아까웠다.
1937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결과, 드디어 시제품이 나왔다.
“이름은 판처파우스트. 탄두 무게는 2kg, 발사관은 4kg, 도합 6kg으로 보병들이 휴대하고 다니기에 적합합니다. 관통력은 140mm로, 명중만 한다면 현존하는 모든 전차들을 일격에 격파할 수 있습니다. 사용방법도 무척 간단해서 글만 읽을 줄 알면 남녀노소 누구나 다 쓸 수 있고요.”
HASAG의 관계자들이 자랑스러워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탄두에 적힌 설명서대로 안전핀을 뽑고, 가늠자를 세운 뒤 버튼을 눌러 발사하면 끝.
참 쉽죠?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그래도 초창기 물건이다 보니 사거리가 겨우 50m에, 재장전이 가능은 하나 6번 이상 사용하면 불발률이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전차에 근접해야만 쓸 수 있는 흡착지뢰나 무겁고 던지기 힘든 대전차수류탄 같은 물건들보다 훨씬 나으니 보병들 입장에선 축복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부족한 점이야 차차 고쳐나가면 되지.
“수고 많았소. 그대들은 독일의 아들들 수십만 명의 목숨을 건진 거요.”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아직 실전을 치르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들의 공로를 생각해서 판처파우스트 개발에 참여한 기술자 전원에게 전장공로훈장(Kriegsverdienstkreuz)을 수여했다.
StG39의 생산과 보급도 토트와 슈페어의 노력 덕분에 잘 진행되고 있다.
이전까지 독일군의 주력 소총이었던 Kar98k는 저격용으로 돌렸고, MP38의 생산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서부전선 개전 전까지 최대한 많은 StG39를 생산해 전군에 보급한다는 원대한 꿈은 어느새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4호 전차, 헷처로 구성된 기갑부대에 StG39, 판처파우스트로 무장한 독일군이라니.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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