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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로 가는 길 (2) (47/150)

바르샤바로 가는 길 (2)

정부는 이미 브레스트로 떠났지만, 여전히 바르샤바에는 12만 명이 넘는 폴란드군과 군 병력의 몇 배나 되는 바르샤바 시민들이 남아 악착같이 도시를 방어하고 있었다.

폴란드군이 독일군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는 동안 시내에선 시민들이 진지를 구축했다.

어린 학생들부터 노인들까지, 바르샤바의 거의 모든 민간인들이 진지구축 작업에 동원되었다.

포격으로 진지를 때려 부숴도 포격이 끝나면 바로 공사를 재개해 다시 진지를 만들어놓는다는 카이텔에 말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놀랍군.”

“예?”

“비록 적이지만 대단한 용기야. 폴란드인들이 독일의 적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용기 자체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네. 안 그런가?”

“확실히 보통 용기는 아니긴 하지요.”

카이텔은 헛기침을 한 뒤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폴란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피해가 누적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군은 꾸준하게 전진 중이며 퀴힐러의 제3군도 바르샤바 공략에 가담했다, 전쟁 전에 개편한 사단포병 5개 대대 체제는 실전에서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등등.

“그리고 9월 9일 브주라 강 인근에서 폴란드군이 역습을 시도했습니다. 폴란드군의 규모는 3개 기병여단과 8개 보병사단으로, 대략 22만 명에 육박합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던 탓에 아군 제24보병사단이 큰 피해를 입었고 지원에 나섰던 30보병사단도 브주라 강 남쪽으로 밀려났습니다.”

“으음.”

폴란드군의 반격으로 아군은 전선에서 20km가량 밀려나고 말았다.

확인된 사상자만 천 명에 달하고, 포로가 된 병사들의 수는 1,600명에 육박하는 크나큰 피해였다.

예상치 못한 피해에 놀란 아군은 즉시 공군을 동원해 폴란드군을 맹폭하는 한편, 바르샤바에 투입할 예정이던 기갑부대 일부를 브주라 방면에 투입하여 폴란드군의 공세를 저지하기로 결정했다.

아군의 발 빠른 대처로 폴란드군은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12일이 되자 철수를 시작했다.

보고에 따르면 폴란드군은 바르샤바로 이동하여 도시 방어에 합류할 계획으로 추정되었다.

지금도 바르샤바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폴란드군 병력이 추가로 합류한다면 큰일이었다.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폴란드군의 바르샤바 합류를 저지해야 했다.

“다행히 공군이 잘해주고 있습니다. 바르샤바로 이동하던 폴란드군 2개 사단이 공군의 맹폭으로 피해를 입고 도로 물러났으며, 바르샤바로 통하는 철로와 다리 모두 폭파되었습니다.”

함께 지도를 들여다보던 괴링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곁눈질했다. 녀석이 뭘 바라고 있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역시 공군은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구만. 아주 훌륭해.”

“크흠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지, 칭찬까지 하실 일은 아닙니다.”

겸손한 척해도 얼굴에 드러난 표정만큼은 숨기지 못하는군. 그래, 그래. 참 잘했다, 인마.

***

폴란드군이 처한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루프트바페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도 모자라 13일부터는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의 제8군과 귄터 폰 클루게의 제4군이 폴란드군을 포위했다.

지속적인 보급과 공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독일군과 달리 폴란드군은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공군은 바르샤바 구원을 위해 이동한 뒤였고, 지원은 끊긴 지 오래.

심지어 휴식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해 병사들부터 장교들까지 모두가 지쳐 있는 상태였다.

기병대의 군마들도 제대로 먹지 못해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적기다! 대피!”

“엎드려, 새끼들아!”

독일군은 폴란드군의 사정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굶주리고 지친 폴란드 병사들을 향해 슈투카와 Hs123 편대가 날아들어 폭탄을 투하했다.

독일기가 투하한 폭탄이 터질 때마다 사람과 말들이 종잇장처럼 날아다녔다.

피와 살점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단말마의 비명과 욕설이 폭음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폴란드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뿐인 순간에서도, 그들은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14일, 폴란드군은 전날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비트코비체와 소하체프의 독일군 포위망을 공격해 돌파를 시도했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에서 처절한 싸움이 벌어졌다.

“뛰어! 멈추지 마라!”

폴란드군은 사력을 다해 포위망 돌파를 시도했다. 독일군의 MG34 탄막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자유를 향한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병사들은 총탄을 맞고 쓰러진 전우들의 시체를 넘어 전진을 시도했다. 독일군은 폴란드군의 악착같은 끈질김에 충격을 받았다.

적이지만 폴란드군이 보여주는 용기와 투지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허나, 언제나 용기와 노력이 성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 법.

일부 병사들이 포위망을 뚫고 개별적으로 도주하는데 성공했지만, 다수의 병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탈출을 시도하던 폴란드군 수천 명이 기관총의 제물이 되어 들판에 널브러졌다.

폴란드군의 포위망 돌파 시도는 수많은 전사자들과 그 2배에 육박하는 부상자만 낸 채 실패로 끝났다.

적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독일군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갔다.

토끼몰이를 하듯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

1939년 9월 15일

폴란드 비트코비체

“안드레이, 불 좀 빌려줘.”

마지막 돛대를 입에 문 미코와이 쿠트초스키 중위는 전우 안드레이 키르프의 도움을 받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제 미코와이에겐 담배가 한 개비도 남지 않았다.

한 끼 식사보다 담배 한 개비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미코와이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젠장, 당분간 담배 구경은 못하겠네.”

“그러게 내가 아껴서 피우라고 하지 않았냐?”

안드레이도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이죽거렸다. 그러는 자기도 이게 마지막 담배인 주제에.

둘은 담배를 공들여 천천히, 오랫동안 음미하며 피웠다. 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수명을 토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특히 이게 인생 마지막 담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심란했다.

그들이 소속된 비엘코폴스카 기병여단은 독일군에 의해 포위된 상황이었다.

어제 포위망에서 탈출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폴란드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3명의 장교가 자살했고 스무 명이 넘는 병사들이 탈영하여 독일군 편으로 넘어갔다.

독일군은 장갑차에 확성기를 달아 폴란드군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폴란드군이여, 그대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으니 이제 그만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라. 목숨은 하나뿐이다.

독일군의 방송보다 더 듣기 괴로운 것은 부상병들의 신음 소리였다.

포위망 안에 의약품이 충분할 리 없었고 한 줌밖에 안 되던 위생병들은 이어진 전투와 독일군의 포격으로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때문에 부상병들은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붕대조차 감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었다.

중상을 입은 부상병들은 본인들의 간청으로, 혹은 지휘관들의 판단에 따라 죽음을 맞이했다.

부상병들의 머리를 권총으로 쏜 중사도 ‘일’이 끝나자 스스로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이 상황에서도 잘도 처먹는구나, 자식들.”

안드레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군마들은 당장의 주린 배를 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둥이에 들풀을 한가득 쑤셔 넣는 말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인생이란 게 뭔가 하는 쓸데없는 상념이 들었다.

“차라리 나도 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왜?”

“사방에 널린 게 풀이니, 굶을 일은 없잖아? 떡치고 싶으면 마음껏 떡칠 수 있고.”

“전자는 잘 모르겠는데, 후자는 그럴듯하네.”

최대한 아껴서 피웠는데도 담배는 금방 꽁초가 되어 이제는 손가락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담배 때문에 입맛이 썼다.

강물로 입을 헹굴까 생각했지만 어제 군마들이 강에다 오줌을 갈기던 광경이 떠올라 그만두었다.

“장교들은 모두 모여라! 상부의 명령을 하달하겠다!”

여단 참모가 나타나 장교들을 불러모았다.

장교들이 모이자, 참모는 상부가 내린 결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시 포위망 돌파를 시도한다! 기병이 선두가 되어 적의 포위망을 돌파한다. 전투에 필요한 탄약만 챙기고 쓸모없는 짐은 모두 버려라. 30분 뒤 돌격할 예정이니 전 병력에게 전파할 수 있도록.”

상부는 항복 대신 돌파를 택했다. 적의 포로가 되느니, 끝까지 싸우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미코와이는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상부가 만약 항복을 결심했다면, 그도 군말 없이 따랐을 생각이었지만 내심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싸워봤으면 하는 심정도 있었다.

폴란드군 장교의 신분으로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적에게 항복한다면 평생의 짐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그랬는데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번 싸워보자는 건가.”

안드레이도 미코와이와 같은 생각인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참모의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장교들도 많았다.

몇몇 장교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지만, 분위기 때문에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상으로 설명을 끝내지. 질문 있나?”

“부상병들은 어떻게 합니까?”

질문이 허락되자, 머리에 붕대를 감은 대위가 손을 들고 말했다.

“걸을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데리고 간다. 그렇지 못한 병사들은······ 적의 자비에 맡겨야겠지.”

그 말은 즉 걸을 수 없는 부상병들은 모두 버리고 간다는 뜻이었다. 예상했던 답변이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미코와이 역시 저 결정이 참모 본인의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참 비정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들만 덩그러니 남겨둘 수는 없지. 적어도 적에게 사정을 설명할 자가 필요하니까. 누가 부상병들과 남겠나? 자유롭게 손을 들어도 좋다.”

참모가 물었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선뜻 손을 들지 못했다.

눈치를 챈 참모가 덧붙였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스스로의 목숨을 적에게 맡기는 것은 보통 용기로 할 수 없는 행동이니까. 용기있는 자가 아무도 없나?”

이번에는 7명이 손을 들었다.

조금 전 질문을 한 대위와 돌격 명령에 낯빛이 어두워진 장교들이었다.

“부상병들은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나머지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라.”

부상병을 제외한 모든 병사들에겐 전투를 준비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전차와 기병이 선두에 서고, 보병들이 그 뒤를 따르기로 했다.

돌격 명령을 몇 분 앞두고 미코와이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무기를 점검했다.

기병대 장교로 임관할 때 받았던 기병도와 VIS wz.35 권총 한 정이 그가 가진 무기의 전부였다.

“드디어 이놈을 써볼 날이 오는구나.”

어제 돌격 때도 기병도를 들고 갔지만, 그가 기병도를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 그전에 후퇴 명령이 떨어져서였다.

이번에도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될까? 그러나 분위기로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폴란드군은 이번 돌격에 사활을 걸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땐 전멸뿐이었다.

“모두 정렬! 대열을 맞춰라!”

기갑병들이 전차와 장갑차에 시동을 걸었다. 결전의 날답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소풍 가기 딱 좋은 날씨로군.

미코와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기갑차량들이 먼저 독일군을 향해 돌격했다. 기병들의 순서는 그다음이었다.

“돌격, 앞으로!”

신호가 떨어지자 기병들은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적을 향해 돌격했다.

폴란드군이 돌격해오자 독일군은 즉시 비상이 걸렸다.

어제 돌격에 실패했는데, 오늘도 같은 수법을 사용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독일군은 방심하고 있었다.

급히 전투 준비태세에 돌입했지만, 폴란드군이 더 빨랐다.

빅커스 전차와 TKS가 기관총을 난사해 독일군의 대열에 균열을 내고 기병들이 균열로 파고들어 기병도로 적들을 베어 쓰러뜨렸다.

미코와이는 기병도를 휘둘러 등을 보인 채 도주하던 적병을 벴다. 피를 본 말들은 더더욱 흥분하여 울부짖었다.

“멈추지 마라! 계속 달리는 거다!”

방금 적 장교를 베어 고꾸라뜨린 중대장이 외쳤다.

전차와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20세기 전장에서 기병대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처럼 보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적 보병들의 방어선을 돌파한 선두는 계속해서 달렸다. 이대로라면 포위망을 돌파하는 일도 가능해보였다.

살 수 있다.

살아서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부풀어 오를 무렵, 새로운 장벽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차다!”

독일군 기갑부대의 행렬이 폴란드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개 보병들이 아닌, 강철로 이루어진 전차와 장갑차들이 거대한 포탑을 돌려 폴란드군을 조준했다.

양측의 전차들이 서로 포화를 주고 받았다.

폴란드군의 7TP와 빅커스 전차가 쏜 포탄은 튕겨나갔지만, 독일군 4호 전차가 쏜 포탄은 튕겨나가지 않았다.

75mm 포탄에 명중당한 전차들이 폭발을 일으키고 불이 붙은 전차에서 전차병들이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나오다 기관총을 맞고 쓰러졌다.

장갑이 최대 17mm밖에 되지 않는 빅커스 전차들은 전차포 포탄은 커녕 20mm 기관포의 공격에도 무력했다.

Sd.Kfz 222와 Sd.Kfz 231 장갑차가 발포하자 전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정지하는 전차들이 속출했다.

장갑판의 보호를 받는 전차들도 이럴진대, 살과 뼈로 이루어진 기병들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기병들을 쓰러뜨리는 데는 기관총만으로도 충분했다.

전차와 장갑차 뒤에 자리잡은 독일군 보병들이 일제히 기관총을 쏴대자, 저돌적으로 돌진하던 폴란드 기병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거리만 충분하다면 보병들도 충분히 기병을 상대할 수 있었다.

전투는 독일군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로 변모했다. 독일군은 마치 사격 연습을 하듯 돌격해오는 폴란드군을 하나씩 저격해서 쓰러뜨렸다.

말들과 사람의 비명소리, 전차의 폭발음이 한데 모여 끔찍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안드레이!”

미코와이는 자신보다 앞서 나가던 안드레이가 고꾸라지는 광경을 보곤 소리를 질렀다.

MG34에 난사당한 안드레이는 자신의 애마와 함께 벌집이 되어 조국의 들판을 나뒹굴었다.

연신 돌격을 외치던 중대장도 운명을 달리했다. 20mm 기관포에 정통으로 명중한 그는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뒤로 날아갔다.

도처에서 전우들이 쓰러졌지만, 미코와이는 멈추지 않았다.

선두 기병들 중에 총탄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주인의 마음이 통했는지 미코와이의 애마도 필사적으로 네 다리에 힘을 줬다.

충분히 먼 거리를 달려왔기에 슬슬 힘에 부칠만도 한데, 속도가 줄기는커녕 점점 빨라지는 듯했다.

어느새 독일군과의 거리는 100m도 채 남지 않았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60m, 50m, 40m.

미코와이는 적 전차와 전차 사이의 틈을 노렸다. 거리가 0이 되는 순간, 미코와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뒤에는 독일군이 있었다.

독일군은 미코와이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눈앞의 적들을 향해 사격하기 바빠 기병 한 명쯤은 놓쳐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

아무려면 좋았다.

이대로 도망칠 수 있지만, 적에게 학살당하는 동료들을 두고 혼자서만 달아날 생각이 없었던 미코와이는 기수를 돌려 독일군에게로 달려갔다.

기관총 사수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독일군 하사가 그의 첫 목표였다.

말을 달려 적에게 다가간 미코와이는 기병도를 힘껏 휘둘렀다.

기병도가 적의 목에 닿는 순간, 그는 적의 머리가 하늘로 솟구치는 광경을 상상했다.

“······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기병도로 목을 내리쳤는데도, 적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갔어야 할 머리도 몸통에 그대로 붙어있었다. 심지어 적은 미코와이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듯 열심히 사격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당황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적 전차 코앞에 널브러진 시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시체의 정체는 미코와이,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코와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떠올렸다.

전차와 전차 사이를 통과하기 직전, 총탄이 날아들어 그의 미간을 관통했다. 주인이 쓰러지기 무섭게 말도 몸에 총탄을 맞고 고꾸라졌다.

그랬나.

자신은 이미 죽은 것이었나. 

"하하, 하하하...."

진실을 깨닫자 미코와이의 의식이 흐려졌다.

그가 고삐를 쥔 말의 숨결도 서서히 희미해졌다.

미코와이의 영혼은 기억의 파도 너머로 서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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