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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가는 길 (2) (38/150)

전쟁으로 가는 길 (2)

전에 얘기했듯이 주데텐란트를 잃은 체코슬로바키아는 등껍질 없는 거북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비록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안전을 보장했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막상 전쟁이 터지면 체코슬로바키아 일대가 불바다가 되어도 영프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아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에밀 하하는 독일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는 순간, 그날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지도에 사라질 터.

독일이 프라하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어도 체코슬로바키아가 베를린을 불바다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하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독일의 요구를 뭐든지 들어주었다.

그러나 세계는 약자의 사정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는 냉혹한 곳이었다.

***

1939년 3월 15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총통 각하,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게나.”

리벤트로프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에 들어온 하하는 벌써 안색이 좋지 않았다.

평소 심장이 약했던 그는 슈페어가 설계한 신 총통관저의 거대한 위용에 기가 눌린 듯 창백한 얼굴이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모습이 마치 겁먹은 유기견을 보는 것 같군. 불쌍한 양반 같으니라고.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초,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총통.”

내가 손을 내밀자, 하하는 주저하면서도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가볍고 약한 손.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러질 듯한 작고 연약한 손이었다.

손을 놓은 하하는 상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어지간히 긴장되는 모양이군.

하긴, 나 같아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걸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한 나라의 수장답게 독일에 올 때는 수십 명의 인원과 함께 왔지만, 신 총통관저에 들어설 때는 하하 혼자만 입장이 허락되었다.

이는 명백한 외교적 결례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부터 독일에 설설 기다시피 했던 하하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하고 홀로 관저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의 수행원도 없이 홀로 적지에 내던져진 하하는 다가올 미래를 직감한 듯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누가 보면 벌써 여름이 온 줄 알겠구만.

“리벤트로프 장관, 잠시 나가있으시오. 대통령과 둘이서 은밀히 나눌 얘기가 있으니.”

“알겠습니다.”

리벤트로프가 나가자 이제 집무실에는 나와 하하, 단 두 명만 남게 되었다.

하하는 전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총통, 무슨 이유로 나를 이 먼 곳까지 초대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대통령. 부디 잘 들으십시오.”

나는 하하의 질문을 일부러 무시한 채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통령,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할 생각입니다.”

“······네?”

하하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경악의 꽃이 피어났다.

“그, 그게 무슨······!”

“나 역시 이런 말을 전하게 되어 무척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대독일의 미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말했지만 참 개소리군.

하지만 같은 개소리라도 방구석 백수가 하는 말과 독일 총통이 하는 말은 무게가 서로 다른 법이다.

“어제 나는 요제프 티소 총리와 만나 슬로바키아의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비록 당신은 슬로바키아의 독립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곧 그렇게 될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요.”

내가 말하는 동안 하하는 멍하니 앉아서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혼이 떠나고 빈 껍데기만 남은 송장처럼.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십시오. 1918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는 지도에서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아니라 제3제국의 일부가 되는 것뿐입니다.”

“허, 허어······.”

“제3제국의 일부가 된 체코의 새 이름은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으로 할 생각입니다. 귀하는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의 대통령으로 남으실 것이고요. 비록 보호령이긴 해도, 귀하의 대통령직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겁니다. 내가 보증하지요.”

“잠깐···.”

“체코 국민들은 삶 또한 그대로 유지될 겁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독일어를 가르쳐야 하는 것만 빼면 말이죠. 병사들은 힘들고 고된 군생활을 계속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독일 군대에서 복무할 의향이 있는 자들만 계속 군대에 남고, 나머지 젊은이들은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그리운 집과 고향으로요.

체코의 공무원들과 경찰들도 그대로 놔두겠습니다. 우리가 파견한 공무원들이 그들의 상관이 되겠지만,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체코인들은 독일 법의 보호를 받으며, 독일 법과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물론 독일인들도 마찬가지이니, 차별대우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새 국기도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어때요? 괜찮지 않습니까? 내가 직접 만들었는데.”

나는 하하에게 백적청의 삼색기를 보여주었다. 이것이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의 국기가 될 예정이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십시오.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우, 우리 국민들이 이것을 가만히 지켜보리라고 새, 생각합니까?”

하하의 목소리는 나비의 날갯짓보다 더 가냘파서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지만, 두 손은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토록 굴욕스러운 조약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그럴 리 없습니다.”

말이 잘린 하하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노쇠한 대통령의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서부전선에서 본,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는 부상병의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숨이 붙어있지만,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상태였다.

“대통령, 나는 당신을 잘 압니다. 한평생 조국을 위해 노력해오셨죠. 당신이 그 무엇보다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를 사랑하는 것을 압니다. 당신이 프라하가 불바다가 되는 광경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요.”

“서, 설마······?!”

“나 역시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오랜 역사를 가진 프라하가 한낱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 미래의 후손들도 프라하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감상에 젖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당신의 선택에 달린 일이지만요.”

하하는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

불쌍한 하하는 응급조치를 받고 깨어나자마자 자신을 마주한 무거운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 모든 게 다 악몽이길 바랬던 하하는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임을 깨닫고 다시 기절할 뻔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에게, 나는 한 잔의 물을 권했다. 그는 내가 건넨 물에 독약이 있지는 않을까 의심하여 마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잔에 든 물을 마시고 새 잔에 물을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제야 그는 불편해하면서도 끝내 잔을 받아서 마셨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대통령. 그저 이 문서에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게 다 끝날 겁니다.”

나는 그에게 문서를 내밀었다.

독일과 체코의 통합에 찬성한다는 내용이 적힌 문서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니까. 체코인들은 대독일의 품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고, 당신은 평화를 지킨 사람으로 남을 겁니다.

비록 당신을 증오하는 이들은 당신을 매국노라고 갖은 비난을 퍼부어대겠지만, 훗날 역사가 당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것입니다.”

“······.”

문서를 집어 든 하하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결국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어 문서에 갖다 댔다.

“하느님, 저를 용서하소서.”

서명을 끝낸 하하는 다시 기절해버렸다.

***

체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던 날.

헝가리군이 국경을 넘어 슬로바키아로 진입했다.

헝가리군과 슬로바키아군 사이에서 사소한 교전이 있었지만, 금방 잠잠해졌다.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요제프 티소가 독일과 맺은 조약에 따라 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의 영토 일부를 헝가리에게 양도했다.

재무장 선언과 라인란트 재점령으로 국제적인 어그로가 잔뜩 끌린 독일에 슬쩍 묻어가는 방식으로 재무장을 추진하던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으로 상실했던 영토 일부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3월 20일. 

헝가리 왕국의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는 헝가리의 재무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가 즉각 비난성명을 발표했지만 미클로시는 신경쓰지 않았다.

재무장 선언 바로 다음 날에 독일과 군사동맹을 체결했으니까. 동맹의 대가로 우리는 헝가리의 석탄과 석유를 싼값에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루마니아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긴 했지만, 유전이 있는 플로이에슈티에서 독일까지 통하는 직통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뱃길을 통해 석유를 그리스에 하역한 뒤 다시 육로를 통해 독일로 들여오고 있었는데, 이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비록 헝가리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석유의 양이 루마니아의 그것보다 적지만 가격도 싼데다 들여오는 시간도 절약될 테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유고와 루마니아는 가뜩이나 헝가리와 전쟁을 벌일 힘조차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독일이 그 뒤를 봐주자 입으로만 헝가리를 비난하며 뒤로는 몸을 사렸다.

헝가리 일은 헝가리가 알아서 할 테니 지금은 우리 일에 집중해야지.

체코슬로바키아군이 보유했던 전차 중에서 AH-IV와 LT-34, LT-35 경전차는 구데리안과의 회의를 통해 처분이 결정되었다.

AH-IV와 LT-34는 국방군이 사용하기엔 너무 구식이었으므로 체코 합병의 기념품으로 남길 몇 대만 빼고 전량 슬로바키아와 루마니아에게 양도 및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LT-35는 35(t)로 이름을 바꾼 뒤 육군 제1기갑사단에 배치했다.

탱켓 수준인 1호 전차, 전차포 대신 20mm 기관포를 탑재한 2호 전차보다 훨씬 낫지만, 그렇다고 생산을 지속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난 것도 아닌지라 생산라인은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LT-38은 앞의 녀석들과 달리 취급이 좋았다.

38(t)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에 배치되었는데 4호 전차보다 약해도 35(t)보다 성능이 좋았기에 당분간 생산을 계속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35(t)와 38(t)가 배치됨에 따라 여태까지 현역에 남아있던 1호 전차는 훈련용을 제외하고 모두 퇴역 처리되었다.

그리고,

“한 번 보시오, 장군. 내가 구상한 것들인데 장군의 평가를 듣고 싶소이다.”

“이건······.”

내가 건넨 설계도를 차분히 살피던 구데리안의 입에서 곧 탄성이 튀어나왔다.

“상당히 괜찮군요.”

전차밖에 모르는 바보답게 구데리안은 내가 건넨 설계도들의 진가를 단숨에 파악했다.

나는 38(t)를 활용하여 돌격포-구축전차-와 자주포, APC(Armored Personnel Carrier, 병력수송장갑차)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내 창작이 아니라 전부 역사에 실존했던 놈들로 이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하는 놈은 단연 돌격포였다.

“차체 전면의 60mm 60도 경사장갑은 수직장갑 120mm에 버금가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요. 현존하는 모든 전차들의 공격을 튕겨낼 수 있는 수치지.”

38(t) 구축전차 헷처(Hetzer)는 2차대전 말기인 1944년에 등장하여 독일 패망시까지 활약한 명품 무기다.

무게는 16톤으로, 4호 전차보다 9톤이나 가벼운 녀석이 방호력은 티거 이상이다(정면 한정이지만).

가격도 착한 데다가 생산까지 용이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전후 자국에 남아있던 공장들을 이용해 헷처의 생산을 지속하였고, 스위스도 헷처를 수입해 ‘G13 대전차자주포’라는 이름으로 1972년까지 운용했다.

심지어 그 이스라엘조차 헷처의 성능에 주목하여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결국 무산되었지만.

지금부터 개발을 시작하면 늦어도 1940년에는 헷처를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PaK 38은 양산 중이고, PaK 40도 낙엽이 지기 전에 나올 예정이다.

헷처가 나올 때쯤이면 양산에 들어갔을 시점이니 주포 탑재에 문제가 없을 테지.

수량이 부족하면 PaK 38이라도 달면 되고. 동부전선에서 T-34와 KV-1을 만나기 전까지 PaK 38의 성능은 준수한 편이었으니까.

탱켓 같은 전차호소인을 굴리는 적들에게 독일 전차군단의 무서움을 보여줄 상상을 하며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빨리 내일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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