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차 장검의 밤 (36/150)

2차 장검의 밤

1938년 10월 10일.

독일군이 주데텐란트에 진주했다.

주데텐란트의 독일인들은 독일군을 열렬히 환영하며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흔들었다.

독일 전역의 모든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렸고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쳤다.

라인란트, 오스트리아에 이어 이번에는 주데텐란트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접수하게 된 나는 독일에서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영독 정상회담의 결과에 환호한 이들은 독일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주데텐란트를 양도받는 조건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안전을 약속했고, 체임벌린이 내 서명이 들어간 서약서를 들고 영국으로 돌아가 영국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방금 독일의 히틀러 총통과의 회담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제 손에 들린 이 서약서에는 히틀러 총통의 서명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습니다. 드디어 우리 시대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영국인들만큼이나 프랑스인들도 전쟁의 위기에서 무사히 벗어난 것에 환호했다.

오직 체코슬로바키아인들만이 총 한 번 쏘지 못하고 영토를 빼앗긴 것에 분노할 뿐.

베네시는 무력하게 주데텐란트를 빼앗긴 책임을 지고 대통력직에서 사퇴했다. 베네시의 뒤를 이어 변호사 출신의 에밀 하하가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직에 올랐다.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을 제외한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빠져있을 때, 나는 조용히 다음 작업을 준비했다.

“하이드리히, 놈들의 동태는 어떻던가?”

“총통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놈들 사이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여럿 포착되었습니다. 여길 보시면······.”

하이드리히가 건넨 문서에는 명단에 있던 감시 대상들의 행적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군. 역시 이놈에게 맡기는 게 정답이었다.

“증거는? 확보했나?”

“확보했습니다. 놈들 끄나풀을 사로잡아 몇 대 쥐어박았더니 바지에 오줌을 지리면서 술술 불더군요.”

“그놈은 죽였나?”

“일단 살려뒀습니다.”

“‘청소’가 다 끝난 후에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명백한 증거까지 있으니, 명분은 모두 갖춰진 셈이다.

나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총통관저의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주요 간부들을 소집했다.

군 병력의 출동 준비 또한 완료된 상태.

시작하자.

***

1938년 10월 24일.

독일 베를린.

“히틀러, 그놈이 또 해낼 줄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베크는 벌써 담배를 두 갑이나 태우는 중이었다. 재떨이에는 거칠게 비벼 끈 담배꽁초가 바람만 불어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이었던 베크는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일개 하사 나부랭이가 세운 전략들이 하나같이 죄다 대성공을 거두는 것일까?

정말로 놈은 놈의 똘마니들이 말하는 것처럼 신의 은총이라도 받고 있는 것인가?

아니야. 베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럴 리 없지.

그렇게 천박하고 무식한 선동꾼 따위가 신의 은총을 받고 있을 리가 없다. 아무렴.

베크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독한 꼬냑을 잔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알코올이 위를 찌르자 희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히틀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베크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칭 혁명 운운하면서 애들 장난 수준의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히틀러의 이름을 듣고 3일이 지나자 베크는 그 이름을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

나의 투쟁이 유행할 때, 베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 쓸데없는 헛소리들을 적어놓은, 소위 말하는 예언서들이 거기서 거기지.

하지만 대공황이 발생하고,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면서 히틀러의 추종자들이 빠르게 늘었다.

심지어 국가방위군 내부에서도 히틀러와 나치 지지세력이 생기자 베크는 서서히 경계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히틀러라는 놈은 자기 생각처럼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훨씬 더 음험하고, 위험한 인간이었다.

베크는 나치당에 가입한 장교들을 국가방위군에서 추방하고자 했지만, 대통령이었던 힌덴부르크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전쟁영웅이자 독일군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힌덴부르크는 이미 히틀러에게 홀라당 반해 놈의 충실한 지지자로 변한 지 오래였다.

이미 히틀러는 베크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역시 그때 놈을 죽였어야 했나.”

히틀러가 라인란트 재점령을 강행하려고 하자, 베크는 쿠데타까지 계획했었다.

히틀러의 압박에 눌러 그만 그의 주장에 찬성하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베크 입장에선 ‘충분히 만회 가능한 실수’였다.

라인란트 점령이 실패하고 영프의 압박이 들어올 경우 베크는 쿠데타를 일으켜 히틀러를 몰아낼 생각이었다.

여차하면 프랑스에게 히틀러를 제물로 넘길 생각까지 있었다.

어디까지나 생각만.

주데텐란트까지 무혈점령에 성공하면서, 히틀러는 독일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등극했다.

국민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히틀러를 연호했고, 국방군마저 히틀러의 추종자들로 가득 찼다.

한때 베크와 눈도 못 마주치던 후배들조차 이제는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빌어처먹을 기회주의자 녀석들 같으니라고.

화가 난 베크는 잔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잔 밑바닥에 금이 가면서 탁자에 흠집이 생겼다.

멍청한 라이헤나우 놈은 자기 집 안방에 히틀러의 초상화를 걸어뒀다고 한다. 병신 같은 놈.

구데리안과 카이텔은 또 어떻고? 히틀러의 구두만 핥기 바쁜 사냥개 녀석들.

베크가 담뱃갑에서 마지막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려는 그때,

불청객이 찾아왔다.

“주인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베크를 모시는 하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손님이? 누군가?”

“그······ 비츨레벤 장군께서 보내셨다고 하는데요.”

“비츨레벤이?”

“네.”

이 늦은 시간에 비츨레벤이 무슨 일로 사람을 보냈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베크에게 하녀가 물었다.

“돌려보낼까요?”

“아니. 안으로 모시게.”

비츨레벤이 보냈다는 사자는 2명이었다.

둘 다 건장한 체격의 성인 남성으로, 트렌치코트를 입고 머리에는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그래, 비츨레벤이 무슨 이유로 자네들을 나에게 보냈나?”

“비츨레벤 장군께선 각하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으셔서 저희를 보냈습니다. 지금 당장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지금? 이 늦은 시간에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말이 있다면 전화로 하지 않고?”

“도청의 위험 때문에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베크는 머리를 굴렸다.

비츨레벤이 사자를 통해 자신과 정보를 주고 받은 적이 있긴 하나, 급한 용무의 경우 전화를 사용했다. 정말로 급한 용무였더라면 틀림없이 전화를 사용했을 터.

그런데 갑자기 도청의 위험이 있다며 사자를 보냈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수상한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베크의 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각하?”

“죄송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가셔야 합니다.”

“······알겠네. 하지만 잠깐만 기다리게. 마침 전화를 걸 상대가 있었으니.”

“각하, 도청의 위험이-”

“닥치게. 1분이면 되니까.”

베크가 수화기를 드는 순간, 비츨레벤이 보냈다는 사자들이 품에서 권총을 꺼내 베크를 겨냥했다.

권총의 총구를 보는 순간 베크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도 잊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노친네가 곱게 말하면 조용히 따를 것이지. 사람 귀찮게 하고 있어.”

***

같은 시각.

비츨레벤의 집에도 불청객들이 들이닥쳤다.

비츨레벤의 경우 베크보다 먼저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서랍장에 넣어놨던 루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게슈타포 요원들이 더 빨랐다.

“크학!”

게슈타포 요원이 쏜 발터 PPK의 권총탄이 비츨레벤의 어깨를 맞췄다. 비츨레벤은 어깨를 부여잡으며 뒤로 넘어졌다.

“허튼 짓은 꿈도 꾸지 마쇼. 한 번만 더 수작질 부리면 그땐 미간에 총알을 박아버릴 테니까.”

턱에 칼자국이 있는 게슈타포 요원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가 품에서 수갑을 꺼내 손목에 채우고, 얼굴에 두건을 씌울 때까지 비츨레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포박당한 비츨레벤은 바위처럼 차가운 트럭 짐칸에 물건처럼 내동댕이쳐졌다.

카나리스는 앞의 둘과 달랐다.

아프베어의 수장답게 그는 진작에 눈치를 채고 뒷문으로 도주를 시도했다.

“도망간다!”

“쫓아!”

그러나 게슈타포 요원들도 눈치가 빨랐다. 카나리스가 뛰기 무섭게 게슈타포 요원들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해왔다.

1차대전에서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어도 끝내 독일로 탈출한 바 있던 카나리스였지만, 그조차 나이는 이길 수 없었다.

나이가 50을 넘어가면서 가벼웠던 몸은 어느새 무겁고 축 늘어졌고 폐와 심장은 약해졌다. 별로 뛴 것 같지 않은데 벌써 숨이 찼다.

“빌어먹을.”

체력의 한계에 부딪힌 카나리스는 도주를 포기하고 맞서 싸우는 것을 택했다.

그는 토끼처럼 얌전하게 잡혀줄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 두 놈 정도는 저승길 길동무로 데려가야지.

그는 자신의 발터 PP로 한 게슈타포 요원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아악!!!”

“어이! 게르더!”

허벅지에 총탄을 맞은 요원이 쓰러지자 다른 요원이 쓰러진 동료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다.

카나리스는 다시 발포했지만, 이번에는 맞추지 못했다.

“카나리스! 넌 포위되었다! 얌전히 투항해라!”

“무기를 버려!”

“웃기고 자빠졌네. 힘러의 똘마니 녀석들.”

카나리스는 게슈타포의 투항 권고에 코웃음을 치며 다음 표적을 겨냥했다.

나무 뒤에 숨어 동태를 살피는 놈이 다음 목표였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어둠 속에서 날아온 총알이 손에 명중했다.

“우욱··· 이런 씨발······.”

미리 가로수에 올라가 대기하던 저격수가 카나리스의 손을 쏜 것이었다.

전장이었다면 머리를 노렸겠지만 가급적이면 생포해서 데려오라는 명령이 있었기에 일부러 머리가 아닌 손을 노렸다.

총을 맞은 충격으로 카나리스는 권총을 떨어뜨렸다.

왼손으로 총을 주으려고 했지만, 두 번째 총알이 날아와 왼손마저 관통했다.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잡아!”

“덮쳐!”

팔팔한 게슈타포 요원 서너 명이 동시에 달려들자 카나리스는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덫에 걸린 멧돼지마냥 포박당했다.

“이 개같은 새끼. 드디어 잡았다.”

***

“루트비히 베크, 에르빈 폰 비츨레벤, 빌헬름 카나리스 3명 모두 체포 완료했습니다.”

좋아, 좋아. 잘하고 있군.

가장 골치 아픈 세 놈을 사로잡았으니,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만.

하이드리히의 보고에 만족한 나는 즉시 차가운 콜라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크라우제가 쟁반에 콜라와 얼음잔을 담아 내 앞에 대령했다.

“이 좋은 날에 한 잔 안 할 수 없지. 크라우제, 자네도 들게.”

“감사합니다.”

긴장을 한 탓인지 배가 고팠다. 콜라로 입가심을 한 뒤 버팔로윙을 집어먹고 있는데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총통 각하? 한스 오스터도 생포했답니다.”

“좋군. 아주 만족스러워.”

한스 오스터는 아프베어 소속 장교로, 본래 역사에서 히틀러 암살을 꾀했다가 체포되어 처형된 인물이다.

주데텐란트 위기가 한창이던 1938년 9월.

중령 신분이었던 오스터는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감행할 경우 쿠데타를 일으켜 히틀러와 나치스를 몰아내고 신정부를 세울 계략을 꾸몄다.

이 사건을 ‘오스터 음모사건’이라 하는데, 음모자들의 예상과 달리 영프는 히틀러의 협박에 굴복하였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오스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히틀러 암살을 꾀했던 오스터는 1944년 7월 20일 발퀴레 작전에 참여했다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종전을 앞두고 처형당했다.

설명만 봐도 알 수 있듯이 21세기의 독일에서 오스터는 양심을 지킨 군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나 또한 그것 때문에 과거에 오스터를 등용했었고.

그놈이 나를 잡으러 오기 전까지 말이다.

이전 회귀에서 헤스와 괴벨스를 총으로 직접 쏴죽이고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운 놈도 오스터였다.

나의 처형식 당일, 현장에도 놈이 있었다.

네놈은 절대로 곱게 못 죽을 줄 알아라.

베크와 카나리스, 비츨레벤, 오스터뿐만 아니라 프란츠 할더, 한스 위르겐 폰 블루멘탈, 헤닝 폰 트레슈코프, 에리히 펠기벨, 프리드리히 울브리히트, 카를 괴르델러 등 이번 음모에 참가했거나 이전부터 반나치 모임에 몸담아왔던 모든 이들이 체포되었다.

생포된 반역자들은 프린츠 알브레히트 슈트라세 8번지에 위치한 게슈타포 본부의 지하실에 감금되었다.

체포된 반역자들이 고문 끝에 새로운 명단을 내뱉으면 새로 끌려온 반역자들이 또 다른 동료들의 이름을 댔다.

‘두더지 작전’이 개시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게슈타포 지하실은 만원이 되었다.

감방 하나에 죄수 한 명씩 수용하는 게 원칙이었기에 게슈타포 지하실만으론 관련자들을 모두 수용하는 게 불가능했다.

급한 대로 인근 경찰서의 유치장과 국방군 병영에도 죄수들을 수감시키고 보초를 세워 철저하게 감시했다.

힘러가 수감된 죄수들의 사진을 찍어 내게 가져왔다.

절망과 공포, 허무함으로 얼룩진 얼굴들. 눈은 퉁퉁 부었고 입술은 찢어져 피가 흘렀으며 팔과 다리에는 멍이 들어있었다. 몇몇은 자해를 시도했는지, 팔뚝에 이빨 자국이 있었다.

반역자들의 모습은 도축을 기다리는 돼지들 같았다.

“힘러.”

“예, 총통 각하.”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아무도 모를 걸세.”

10월 25일 아침.

하이드리히는 내게 두더지 작전이 완료되었음을 보고했다.

훗날 ‘2차 장검의 밤’으로 불리울 숙청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