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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

전쟁에서 진 것도 모자라 막대한 배상금까지 짊어지게 된 탓에 1919년의 독일은 해방 직후의 대한민국처럼 전국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러시아 혁명에 광분한 공산주의자들이 독일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설치고 다니는가 하면, 제대는 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한 퇴역군인들이 모여 ‘자유군단’, ‘철모단’ 등의 준군사조직들을 조직해 빨갱이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게 일상이었다.

문자 그대로 개판 5분 전인 상황.

나라 꼴이 이 모양이니, 당연히 군대도 할 일이 많았다.

“하사, 분대원들 다 깨우게.”

“이번엔 또 무슨 일입니까?”

“시내에서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군.”

“그거야 늘 있는 일이잖습니까. 애초에 그건 경찰 관할이 아닙니까?”

“그 경찰들조차 이번엔 감당이 안 돼서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네. 10분 안으로 출동해야 하니까 서두르도록.”

툭하면 데모나 폭동을 일으키는 빨갱이들을 때려잡으러 출동하길 여러 번.

휴가를 받아도 딱히 갈 곳이 없는 데다, 수중에 돈도 얼마 없어서 관사 침대에서 늘어지게 자는 게 전부인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중,

마침내 ‘그날’이 왔다.

“하사, 자네가 할 일이 있네.”

자신을 육군 정보작전참모부 소속이라 밝힌 소령은 내게 ‘특수임무’를 내렸다.

“최근 공산주의를 비롯해서 수많은 정당들이 생겨난 것을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그중 한 단체를 알아봐줘야겠어.

독일 노동자당(Deutsche Arbeiter Partei, DAP)이라고 들어봤나?”

알다마다.

히틀러 가입 전에는 평범한 듣보잡 정당이었다가 훗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로 악명을 떨치게 된 나치당의 옛 이름이 아니던가.

***

“정보부의 보고에 의하면 워낙 작은 중소정당이라 위험대상은 아니라고 하지만, 혹시 몰라서 말이지. 원래 레닌 같은 빨갱이들도 처음엔 작은 모임에서 시작했으니까 말이야.

자네 임무는 이들이 어떤 단체인지, 뭘 꾸미고 있는 알아내는 것일세.”

말은 거창하게 했다만, 소령이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게 있다.

이 독일 노동자당이란 단체는 히틀러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쩌리로 남았을 정당이란 사실을 말이다.

여태까지 이 순간이 오기만을 내가 얼마나 기다렸던가.

들뜬 표정을 숨기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나는 즉시 독일 노동자당이 자주 모임을 가진다는 창고로 향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에 등장한 수많은 정당들처럼 돈이 없던 독일 노동자당은 낡은 창고를 빌려 당 토론회를 가졌다.

말이 토론회지, 실상은 맥주나 마시면서 정부 욕이나 해대는 게 전부였지만.

창고는 펍처럼 개조되어 일반 시민들도 술을 주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적당히 구석진 자리에 앉아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해서 우리도 현 시국을 잘 이용해야 하네. 그래야 대중의 관심을 받고 나아가 본격적인 정치를 할 수 있단 말이야.”

저기, 가운데 좌석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떠들어 대는 안경잡이가 현 독일노동자당 당수 안톤 드렉슬러였다.

바로 직전 생에서 한 번 만났으니,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요즘 정부는 하는 게 없어. 물가 하나도 못 잡고, 빨갱이들이 마구 설치게 내버려 두잖아. 그놈들도 다 빨갱이랑 한통속이야.”

“옳소, 옳소.”

“맞는 말이지. 암.”

주문한 맥주를 다 마셔갈 무렵, 한 남자가 일어서더니 열정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저 사람이 바우만 교수였던가? 벌써 몇십 년 전의 일이라 가물가물하네.

“썩어빠진 정부에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순 없소이다. 이곳 뮌헨이 러시아처럼 빨갱이들 소굴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자각을 해야 합니다!”

“옳소!”

“따라서, 바이에른은 독립해야 합니다! 저 무능한 정부에 의해 계속해서 고통받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탁.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킨 뒤, 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우리는 모두 독일인이오!”

“?”

“댁은 뉘슈?”

뜬금없이 웬 불청객이 난입하니 다들 어리둥절한 기색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바우만 교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의 주장에 반박했다.

“바이에른이 독립해야 한다고?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당장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딴 살림 차리자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래서야 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겠소? 생각을 좀 하란 말이오!”

“무, 무슨···.”

“지금 독일은 위기에 처해 있소! 실업자가 들끓고, 빨갱이들이 활개 치고 다니지. 그런 상황에서 독립을 주장하면, 다른 지역들은 뭐 좋다고 이 나라에 남아있겠소? 너도 나도 다 독립해버리겠지. 그렇게 독일은 지도에서 사라질 테고!

지금 중요한 건 바이에른의 독립 따위가 아니오! 어떻게 하면 독일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들지, 독일 국민들이 이념과 출신을 넘어 하나의 가치 아래에 단결할지 고민해야 된단 말이오!”

바우만 교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마법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 남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드렉슬러와 그의 동지들은 물론,

구석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프레첼을 와그작대던 사람도, 주문을 받던 웨이터도,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참았던 말들을 드디어 쏟아낼 수 있는 기회가 오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나처럼 전쟁터에서 싸워본 이들도 있을 거요. 군대에 갔다 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테지.

그런데, 독립이라니!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적들이 가장 바라던 일이란 사실을 모르겠소? 그걸 알면서도 독립을 주장한다면 참으로 괘씸한 일이고, 모르고 독립을 주장한다면 멍청한 일이오!

여러분은 지금 상황에 만족하시오?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지 않겠지. 독일이 다시 과거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모두가 뭉쳐야 하오. 독립 따위를 주장할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이 말이오!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오. 바로 우리는 모두 독일인이라는 사실이지. 이거 하나만큼은 절대로 잊지 마시오. 그럼 이만.”

연설을 마치고 외투를 챙겨 나가려는 순간,

“잠깐!”

역시나.

드렉슬러가 나를 멈춰 세웠다.

“선생,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아돌프 히틀러요.”

드렉슬러는 길을 가다 우연히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돈뭉치를 발견한 사람이 지을법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말하는 솜씨가 예술이더군. 웬만한 정치인들보다도 말을 잘하는 것 같은데. 혹시 누구한테서 배웠소?”

“누구한테서 배운 적은 없고, 순전히 독학했소이다.”

실제로도 히틀러는 오로지 독학만으로 자신만의 연설기법을 만들었고, 전설이 되었다.

“허! 독학으로 이 정도 실력이라니. 내가 보기에 선생은 연설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소이다!”

“칭찬 고맙소.”

그는 품에서 얇은 책자를 꺼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우리 당의 소개가 담긴 안내서요. 한 번 읽어보시고, 정치에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와주시구려. 우리 당은 선생 같은 인재를 늘 환영하니까.”

***

히틀러는 처음 드렉슬러의 제안을 받았을 때 코웃음을 쳤었다고 한다.

그날 일기장에 ‘당 기금이라곤 어린애 용돈 수준인 작자들이 황송하게도 나를 받아주겠단다’라고 적을 정도였으니, 히틀러가 이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 알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노동자당은 정치는커녕 활동비조차 당원들의 자발적인 기부에 의존할 정도로 가난한 듣보잡 정당이었으니까.

만약 히틀러가 그대로 군대에 남았더라면 역사는 우리가 아는 것과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꿔 군대에서 나온 뒤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하였고, 훗날 우리가 아는 독재자가 된다.

그때 히틀러가 무슨 생각으로 입당을 택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미 생각을 정해둔 상태였다.

“자네, 진심인가?”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따로 ‘해야 할 일’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허어···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선택한 것을 뭐라고 말릴 자격이 내겐 없으니까. 아무튼 알겠네. 몸 건강히 잘 지내게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전역신청서는 일사천리로 수리되었다.

이로써 히틀러 하사에서 민간인 히틀러로 변신한 나는 곧바로 드렉슬러를 찾아갔다.

역시나 드렉슬러는 함박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잘 왔네! 내 틀림없이 당신이라면 이리 올 줄 알았지!”

나는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했다.

당원 번호는 555번. 독일노동자당의 55번째 당원이라는 뜻이었다.

***

정식으로 당원이 된 나는 역사 속의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우선 당의 이름부터 뜯어고쳤다.

“당 이름을 바꾸자고?”

“그래. 기존의 이름은 임팩트가 너무 약해. 인상이 강해야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는 법인데, 지금 이름으론 그게 힘들어. 조금 더 강렬하게 인식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꾸자고.”

당명을 바꾸자는 내 제안에 드렉슬러는 다소 불편한 심기였다.

자기가 고안한 당 이름을 바꾸자고 하니, 당연히 내킬 리가 없지.

하지만 그도 내심 지금의 이름으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긴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내 제안을 반대하지 않았다.

“좋네. 하지만 뭐로 바꾸지? 나는 떠오르는 게 없네만.”

“걱정말게.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그게 뭔지 말해줄 수 있겠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 Partei, NSD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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