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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상병 (2/150)

히틀러 상병

다섯 번째로 회귀했을 때, 나는 1918년의 서부전선에서 한창 전령으로 구르던 상병 히틀러가 되어 있었다.

첫 번째 회귀 땐 빙의 했을 때의 1시간 전의 시점에 눈을 떴었다.

두 번째는 하루, 세 번째는 일주일, 네 번째는 한 달 전.

그리고 이번에는 1년 전인 1918년의 서부전선에서 눈을 떴다.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추측하건대 회귀를 반복할수록 시점이 뒤로 가는 이유는 일종의 패널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뭐랄까, 롤의 강등 시스템과 비슷한 이치라고 해야 하나. 게임에서 질 때마다 등급이 도로 낮아지는 거.

그간 수많은 실패를 반복했으니, 이로 인한 패널티 누적으로 서부전선 상병 시절의 히틀러가 되었다면 얼추 맞아떨어진다.

씨발, 생각할수록 빡치네?

본래 역사에선 히틀러에게 전쟁하지 말자고 징징거리던 융커 새끼들이 전쟁 안 일으킨다고 쿠데타를 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러나 내겐 하소연을 들어줄 친구도, 다음에는 이렇게 행동하라고 조언해줄 멘토도 없다.

오직 나 혼자뿐.

여기서 절망할 수 없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나를 통수치고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놈들의 대갈통에 납탄을 박아줘야지.

그리고 미션을 완수해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고, 돈만 내면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으며 내일 전쟁이 터질 염려 없이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본래 세계로 말이다.

어디 포기할까 보냐.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어이, 히틀러.”

“상병 히틀러.”

“이거 좀 창고로 날라.”

“알겠습니다.”

“히틀러, 애들 좀 모아서 2번 진지 좀 보수해라. 오후에 연대장님 시찰 나온다니까 꼼꼼하게 하고, 알겠지?”

“상병 히틀러,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다름 아닌 군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삐 이어지는 일상 속에 나는 완전히 녹아내렸다.

히틀러에 빙의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사건’이 일어났다.

“히틀러 상병님?”

“왜?”

“중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지금 간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1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보직은 전령이다.

이 당시에는 통신장비가 그리 발달하지 않은 탓에, 사람이 직접 전선과 후방을 오가며 정보를 전달해야만 했다.

“상병 히틀러, 출두했습니다.”

“왔군. 연대장님의 명령이다. 이걸 최전선에 있는 2대대에 전달하고 오게나.”

“지금 말입니까?”

참고로 하늘에선 해가 막 지려고 하는 중이다.

“그래. 지금 바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참으며 중대장이 내미는 연대장의 명령서를 받아 챙겼다.

하필이면 중대에 한 대밖에 없는 자전거가 수리 중인 탓에 최전선까지 두 발로 뛰어서 가야만 했다.

빌어먹을 히틀러 녀석.

왜 하필이면 이런 귀찮고 위험한 보직에 자원해서 사람을 고생시키냔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나. 일개 상병 나부랭이가 위에서 시키면 그대로 따라야지.

그래도 체력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 몸이라 뛰는 건 딱히 어렵지 않았다.

그저 남들 다 쉬는데 혼자서만 뺑이치는 것 같아 기분이 껄끄러울 뿐.

군대에서 체력단련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는 최전선으로 향하길 1시간,

해가 완전히 저문 뒤에야 겨우 2대대에 도착했다.

“정지, 정지! 움직이면 쏘겠다!”

“부엉이!”

“캥거루!”

암구호를 외치자 초병은 나를 향해 겨눴던 총구를 내렸다.

“어디 소속이냐?”

“1대대. 여기가 2대대 맞지? 지금 명령서를 들고 왔으니 대대장실이 어딘지 가르쳐주쇼.”

안내를 받아 2대대 대대장 앞에 도착한 나는 경례부터 한 뒤 품에서 명령서를 꺼냈다.

봉투 가장자리가 꼬질꼬질해진 것만 빼면 상태는 양호한 수준이다.

“연대장님의 명령서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음, 공식 명령서가 확실하군. 밖에 나가서 기다리게”

내가 건넨 명령서를 받아든 대대장은 부하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영국군이라던가 보급, 병력 수 얘기가 들려오더니 젊은 나이의 소령이 걸어 나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전달 사항이 따로 없으면, 가봐도 되겠습니까?”

“가도 상관은 없다만, 곧 저녁 배식인데 먹고 가지 그러나? 오늘은 특별히 닭고기 스튜가 나오는데.”

“···먹고 가겠습니다.”

아, 닭고기는 못 참지.

가뜩이나 이곳에 떨어진 뒤로 고기는 구경조차 못 해 봤는데 닭고기라니.

그동안 순무찜만 줄기차게 먹은 탓에 사그라들었던 식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소령의 배려로 나는 저녁 배식을 기다리는 병사들 사이에 껴서 배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고, 취사병 4명이 커다란 국 통 2개를 들고 나타났다.

“냄새 죽인다, 진짜.”

“이게 몇 달 만에 맛보는 고기냐.”

지치고 굶주린 병사들은 은은하게 풍겨오는 닭고기 스튜의 냄새에 흠뻑 취해 침을 줄줄 흘렀다.

물론 나도.

취사병이 솥뚜껑을 열자, 냄새는 한층 더 강렬해졌다.

병사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갑작스레 땅이 울리며 폭음이 들렸다.

“포격이다!”

“모두 대피!”

적군의 포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포격이 시작되자, 병사들은 지체 없이 대피호로 달려갔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일단은 목숨부터 구하는 게 먼저였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생면부지의 병사들과 함께 인근의 대피호로 들어갔다.

해골마냥 얼굴에 볼살이 없는 하사가 마지막으로 대피호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격렬한 진동이 전해졌다.

“씨발 새끼들, 밥도 못 먹게 하네.”

“이래서 난 토미들이 싫어.”

“이 좆같은 포격은 언제 끝나는 거야?”

다들 밥도 못 먹고 좁은 대피호 안에 쭈그려 있어야 하기에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기대하던 닭고기는 먹지 못하고, 포격이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라니. 이렇게 처량한 일이 또 있을까?

에휴 내 팔자야.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못 보던 얼굴 같은데. 어디 소속이오?”

포격이 시작되고 30분째, 구석에 조용히 쭈그려 있던 내게도 질문이 들어왔다.

“1대대요.”

“1대대? 1대대는 후방에 있을 텐데?”

“전령으로 왔다가 그만 발이 묶였거든. 빌어먹을.”

닭고기 좀 먹으려다 졸지에 대피호에 갇히게 되었다고 말하자 2대대 병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양반, 제대로 재수 옴 붙었네.”

“후방에서 꿀 존나게 빨았을 테니, 이 정도면 약과 아녀?”

“꿀이라니! 전령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전령이건 뭐건 후방에 있으면 죄다 꿀 빠는 거지!”

“맞아, 맞아.”

이래 봬도 전령이라 고생은 있는 대로 하는데, 정작 여기선 후방에서 왔다고 꿀빨러라 비웃음당하는 처지다.

그러는 자기들은 최전선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다고.

짜증이 난 내가 한마디 해주려고 입을 여는 순간,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진동이 대피호를 강타했다.

“이번에는 제법 가까운 곳에 떨어진 모양인데.”

“그러게 말이··· 어!?”

천장에서 흙먼지가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천장을 이루고 있던 나무판자들이 반으로 쪼개지면서 흙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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