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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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시작은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죽일 놈의 호기심 같으니라고.

***

휴대폰 게임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나의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였다.

돈도 안 들고,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즐길 수 있으니 나처럼 돈 없는 백수에겐 딱 알맞은 취미다.

평소처럼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어디 새로운 게임이 없나 뒤지던 중에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강철의 심장?’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이름에 이끌려 게임을 클릭하자, 간단한 설명문이 나왔다.

원하는 국가, 원하는 인물을 택해 역사를 바꾸는 게임이라.

나쁘지 않겠다 싶어 메뉴를 클릭하자 수백 개에 달하는 국가들의 목록이 나왔다.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네임드 국가들은 물론이고, 네팔이나 아르메니아, 에티오피아 등 제3세계 국가들부터 지부티, 나우루 같은 듣보잡 국가들까지,

없는 나라가 없었다.

‘좀 치는데?’

처음 내 선택은 감비아였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영혼이 시켰을 뿐.

허나 안타깝게도, 감비아를 클릭하자 아직 준비 중이라는 말만 뜨고 접속이 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왜 넣은 거람.

그렇다면 뭘 하지?

미국? 이미 초강대국인데 여기서 뭘 더 바꿔?

영국? 프랑스? 딱히 흥미가 안 생기고.

중국은 내가 싫고, 러시아도 딱히 흥미가 안 간다.

아프가니스탄? 티베트? 흥미는 간다만 난이도가 너무 헬일 것 같은데.

고심 끝에 내가 선택한 국가는 독일이었다.

독일.

지금은 유럽 강국이라 자부하면서 직무 유기나 하는 얌체지만 한 세기 전에는 세계 최고의 문제아였던 국가.

난이도 자체도 적당할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독일을 선택했다.

독일을 클릭하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목록이 떴다.

프리드리히 1세부터 마르틴 루터, 비스마르크, 현 독일 총리인 올라프 숄츠까지.

스크롤을 넘겨도 넘겨도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길고 긴 목록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맙소사, 이게 대체 몇 명이야?

족히 천 명은 될법한 목록에서 하나를 고르라니, 고민하다가 시간 다 가겠군.

귀찮아진 나는 랜덤 버튼을 클릭했다. 아무나 걸리면 그놈으로 가야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게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걸 깨달았을 땐 이미 게임이 시작된 뒤였다.

룰렛이 멈추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히틀러라고? 실화냐?”

아돌프 히틀러.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류 역사상 희대의 독재자.

그런데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으니까, 독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뭐, 히틀러 본인 스스로가 독일인이라 생각했고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으니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만.

히틀러가 가지는 이미지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긴 했지만, 현실에 강림했던 사기캐인 비스마르크나 운빨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던 프리드리히 대왕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히틀러를 플레이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히틀러의 사진을 누르자, 화면이 전환되며 ‘미션’이 나왔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는 독일의 깃발 아래 유럽을 하나로 만들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했습니다. 총통이 되어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들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의 이루지 못한 야망을 실천하시십시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고,

그 즉시 의식을 잃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눈을 떴을 때,

나는 히틀러가 되어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이며 귀에 들리는 소리, 그리고 피부에 와닿는 촉각까지.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맞았다.

처음 내가 처한 상황을 깨달았을 땐 진지하게 자살까지 생각했다.

죽는다는 게 조금은 무섭긴 하지만, 본래 세계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을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죽으려고 하니 괜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죽었는데 본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끝이라면?

그땐 어떡하지?

여기서 인생을 끝내기엔 지금까지 살아온 게 너무 아쉬운데.

또, 기다리다 보면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나 실마리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결국 죽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하기로 했다.

***

기왕 히틀러가 된 거, 역사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 속의 히틀러와는 다른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정치에 입문하는 대신, 군대에 그대로 남아 말뚝을 박았다.

철십자훈장을 수훈한 이력 덕분에 원사까지 달 수 있었다.

원래부터 사치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보니 지출이 적었고, 나중에는 늙어 죽을 때까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모았다.

그렇게 은퇴할 날만 기다리며 여유로운 인생을 보내던 와중,

내전이 터졌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이 전국 각지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독일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전을 틈타 폴란드가 쳐들어왔다.

나는 소대를 이끌고 폴란드군과 싸우다가 가슴에 총알이 박혀 전사했다.

‘이대로 끝인 건가······?’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다시 과거의 히틀러로 돌아와 있었다.

이때가 내 첫 번째 회귀였다.

이번에는 군대에 남지 않고, 히틀러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훗날 내전이 터질 예정인 독일과 달리, 오스트리아는 안전할 것이란 예상에서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독일에서 내전이 터지자, 오스트리아에서도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가 혼란에 빠지자, 이탈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당 토벌 및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내전에 개입했다.

나는 이탈리아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두 번째 회귀 때는 스위스로 갔다.

스위스라면 안전하겠지. 내전이 터질 이유도 없고, 침략당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 전쟁은 피했어도, 교통사고는 피하지 못했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을 건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던 트럭에 치였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틀 뒤 죽고 말았다.

세 번째에선 트럭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집에 침입한 강도와 몸싸움을 벌이다 그만 경동맥을 찔렸다.

과다출혈로 죽어가면서, 나는 뒤늦게 게임을 시작할 때 봤던 ‘미션’을 떠올렸다.

뭐라고 했더라? 그래, 총통이 되어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들라고 했었지.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할 수 없었던 죽음들은 내가 미션을 회피해서 생긴 일들일지도 몰라.

미션을 수행하면, 더 이상 죽지 않을뿐더러 이 지긋지긋한 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총통이 되기로 했다.

역사 속에서 히틀러가 그랬던 것처럼 총통의 자리에 올라, 라인란트를 재점령하고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으며 주데텐란트를 양도받고 서프로이센과 포젠을 되찾았다.

이로써 할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복병이 남아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숙적이었던 폴란드까지 무너뜨리자 프로이센의 귀족, 융커 놈들이 왕정복고에 욕심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는 왕정복고에 반대했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잘난 융커님들 생각은 달랐다. 진심으로 카이저가 없는 독일은 독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왕정복고는 핑계고 내가 가진 권력을 차지하고 싶었던 것인지······.

어쩌면 둘 다였을 수도 있고.

아무튼 놈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나를 아프베어(Abwehr, 방첩국) 지하실에 감금했다.

국민들에겐 내가 중태에 빠졌다고 발표하곤, SS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숙청을 감행했다.

SS는 얌전히 해체당하는 대신 저항을 택했고, 그 결과 내전으로 이어졌다.

독일에서 내전이 터지자,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소련이 끼어들었다.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하기 직전, 나는 지하실에서 끌려 나와 총살당했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나는 다짐했다.

다음 회귀에선 반드시 이전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반드시 성공해서, 나를 엿 먹인 개자식들의 대갈통에 총탄을 박아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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