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왜곡 각성 (2)
강후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읽었는지, 김신령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신기하지?”
“직접 제작하신 겁니까?”
“맞아. 호신용으로 제작 중인데 화력 조절이 잘 안되네. 물론 권총에는 문제가 없고, 화력이 너무 세서 문제기는 하지만?”
“멋지네요.”
강후가 헌터의 다양한 관련 분야 중에 가장 어렵고 대단하다고 느끼는 분야가 바로 세공과 제작이었다.
단순히 관련 지식이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타고난 감각도 필요하고, 직관도 상당히 중요했다.
정해진 공식 같은 것이 있지 않으므로, 그때그때에 맞는 임기응변도 꽤 중요했다.
강후가 마탄 권총에 시선을 좀처럼 떼지 못하고 있는 동안.
그의 얼굴을 계속 살피던 김신령이 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참 잘생겼단 말이야. 혹시 여자친구는 있어?”
“아뇨, 없습니다. 앞으로 사귈 생각도 없습니다.”
“그 잘생긴 얼굴을 혼자 쓰려고?”
“저 혼자도 위험한 세상을 함께 위험해지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요.”
“생각이 많이 담긴 대답이네.”
“네. 고민이 꽤 담겨 있죠.”
어쩌다 보니, 진지한 대답이 되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해 온 생각이기도 했다.
“내가 25년만 젊었어도! 먼저 고백했을 텐데 세월이 아쉽다! 아쉬워…….”
“제가 25년 일찍 김신령 님을 만났더라면 고백했을지도요.”
“멘트 좋은데?”
“진심입니다.”
강후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김신령의 입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지금의 그녀가 강후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느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잘생긴 남자에 대한 반응이야 늙고 젊음을 가릴 이유가 없기에 솔직히 말했을 뿐이다.
김신령의 성격이기도 했다.
그녀는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었다. 속마음도 포장해서 말하기보다는 날 것 그대로 말했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강후가 보기에는 지금의 김신령도 충분히 매력적인 외모였다.
젊었을 적에 무조건 미인 소리를 들었을 외모다.
몸으로만 보면, 지금 30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탄력적인 몸매를 가졌다.
아마 부단히 노력한 흔적일 것이다. 자기관리가 없으면 절대 저런 몸을 가질 수 없다.
어쨌든 서로 기분 좋은 덕담이 오가고 난 뒤.
그녀의 저택 안으로 들어가서 계속 대화가 이어졌다.
통유리로 된 창문을 통해 보이는 훈련장에는 이미 김신령이 소환해 놓은 소환수가 있었다.
강후는 그녀가 내어온 커피를 마시며, 소환수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적막이 어색했는지, 김신령이 화제를 돌렸다.
“내가 말 거는 게 관찰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니지?”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거 알아? 중국에는 소환수만 부리는 부대를 따로 두고 있다는 거.”
“신투 길드나 신수 길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모체, 그러니까 소환사를 극한까지 훈련시켜서 엄청난 수의 소환수를 부리게 만들지.”
“그래서 소환사 헌터의 수명이 길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단명한다더군요.”
“반쯤 기계라고 봐도 되지. 상대하게 되면 지옥이야. 헤어나올 수가 없어.”
“어느 정도입니까?”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저런 녀석들을 한 번에 열 마리도 넘게 부려. 무리하면 스무 마리까지?”
“…….”
지금 강후가 보고 있는 것은 소환된 늑대였다.
움직임이 매우 날쌔고 공격성이 높았다.
수준으로 따지면, 레벨 300 정도는 된다. 물론 내구성이나 체력은 꽤 떨어지지만 말이다.
그런 녀석을 한 번에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를 부린다면, 무척 까다로울 듯했다.
바꿔 말하면, 컨트롤해야 하는 소환사가 정신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만 했다.
그래서 오래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1년을 살면, 남들의 10년, 20년만큼의 정신력을 소모하고 늙어버릴 테니까.
“중국에 대한 정보는 늘 유심히 챙겨보도록 해. 남의 나라 같아도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끼칠 예정이기도 하죠. 영향권 안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고요.”
“응. 아무튼 소환수 얘기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흑랑이는 어때? 네가 보기에?”
흑랑. 검은 늑대다.
김신령이 자신의 소환수에 붙여 준 이름이었는데, 그 말이 딱 어울리게 생긴 외모이기도 했다.
“지금 녀석이 목각을 상대로 보이는 공격 패턴이 너무 단조롭습니다. 이유는 알 것 같아요.”
“왜지?”
“뻔한 얘기인데. 흑랑이 학습할 대상자로 생각한 헌터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네요.”
“선생이 별로였다?”
“정확히는 틀에 박힌 교과서적인 움직임만 보여줬네요. 그래서 학습도 그만큼만 됐습니다.”
“예리하네.”
“보이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더하고 덜한 것도 없고요.”
강후의 말대로였다.
김신령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았음에도 그간의 과정을 읽어낸 강후의 안목에 감탄했다.
왜냐면 다른 헌터에게도 흑랑의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었지만, 전혀 다른 대답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흑랑은 매우 날쌔고,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파괴적인 힘을 뽐내는 쪽이었다.
퍼포먼스 자체는 오히려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축에 속했다.
하지만 강후는 그 안에 숨겨진 공허함을 본 것이다. 어설픈 콜드 리딩이 아니었다.
“도움을 좀 줄 수 있겠어? 내 소환수들이 반쪽짜리로 성장하는 걸 원하진 않아.”
“요구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녀석도 전력으로 저와 싸웠으면 합니다. 보니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공격을 머뭇거립니다.”
“그래?”
“이건 주인의 통제가 자주 있었다는 뜻입니다. 녀석에게 최종 결정권이 없었던 거죠.”
그 순간, 김신령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강후가 언급하지 않은 속사정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그녀는 소환수를 부리는 소환사로서, 전략적 움직임을 소환수에게 맡기는 편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소환수를 능숙하게 다루는 점에 있다고 생각했고,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생각대로 조종하는 쪽에 가까웠다. 흑랑이 그것에 호흡을 잘 맞춰주기도 했고 말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것이지만, 강후는 이미 다 파악이 끝난 듯했다.
“그렇게 가면 계속 반쪽짜리가 될 겁니다. 자동화 기계를 만들어 놓고, 기계가 못 미더워서 자기가 손으로 돌리는 꼴이죠.”
비유가 찰떡같이 들렸다.
놀란 만큼, 강후의 안목과 실력에 대한 신뢰는 저절로 올라갔다.
“알았어. 어떤 형태로든 간섭하지 않도록 해 볼게.”
“그러면 됐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저도 녀석에게 배워갈 것이 생길 것 같네요.”
강후가 몸을 풀었다.
흑랑이 전력을 다해서 싸워준다면, 자신도 학습할 수 있을 것들이 많을 듯했다.
이왕이면 서로에게 좋은 그림이길 바랐는데, 딱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
자신은 눈에 보이는 대로 짚어 주었던 것이지만, 김신령은 꽤 놀란 듯했다.
이상할 건 없다.
세공과 제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온 그녀에게 소환수를 다루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을 수 있다.
필요한 연구나 고민들도 세공과 제작 쪽에 더 쏠려 있었겠지.
“방음. 시야 차단. 전부 다 해 놓을 테니까, 외부 시선 걱정은 하지 말고 싸워 줘.”
“그러죠.”
김신령이 버튼 몇 개를 누르자, 훈련장을 둘러싼 외부 결계의 색깔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처음에는 단순 방음 정도만 되는 줄 알았는데, 선팅을 한 것처럼 시야 차단도 됐다.
상당한 고급 기술이다.
별장이든 저택이든 관계없이, 그녀와 관련된 시설은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이다.
‘긴장 좀 해야겠군.’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소환수는 주인의 레벨을 따라서 성장하는 만큼 보통 힘든 상대가 아닐 것이다.
강후는 백일참, 흑월참을 포함해 전략적으로 배제하기로 한 스킬을 다시 한번 짚고는.
바로 흑랑과의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전투에 진심을 다할 생각이었다.
* * *
그 이후.
김신령은 강후와 흑랑의 전투를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일단 생각했던 수준보다 흑랑이 훨씬 더 고전했다.
강후에게 공격 경로를 간파당한 듯, 공격 시도가 계속 무위로 돌아가며 역공을 허용했던 것이다.
‘한 번도 똑같은 패턴으로 가는 법이 없어.’
김신령은 지금 이 상황에 진심인 강후를 보며 놀랐다.
적당히 열심히 싸워주는 ‘척’만 할 수도 있었다. 화려해 보이도록 포장‘만’ 할 수도 있었다.
한데 그러지 않았다. 다양한 변수를 창출시켜, 흑랑의 폭넓은 학습을 도왔다.
그러자 이를 체득한 흑랑의 공격이 날카로워졌고, 그때는 오히려 강후가 학습하는 입장이 됐다.
선순환이었다.
‘상당히 잘 다듬어져 있어. 효율적이야.’
강후를 면밀히 지켜본 김신령의 총평이었다.
암살자에게 있어 움직임의 효율은 매우 중요하다.
낭비가 있으면 그 즉시, 상대에게 약점을 잡히기 가장 좋은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괜히 고레벨 대에서 암살자 수가 적은 것이 아니다. 그만큼 위험 노출 빈도가 높아서다.
‘도대체 뭘 했기에 스킬이 저렇게 많은 거지?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해도 20개는 넘어가는데.’
김신령은 그게 의문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호기심이다.
강후의 실력에 감탄했기에 생긴 자연스러운 궁금증이기도 하고.
지금 강후의 실력이 이 정도라면, 레벨이 제대로 올랐을 때는 시쳇말로 ‘미친놈’이 될 것 같았다.
공격 레퍼토리가 너무나도 다양하다. 적당히 많다의 수준이 아니라,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눈썰미 좋은 그녀가 10분 넘게 이어진 강후와 흑랑의 전투에서 ‘중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눈에 띄게 발전한 흑랑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도 마치 제대로 된 맞수를 만난 것처럼, 신나서 열심히 날뛰고 있었다.
그때마다 통제하고 싶은 마음도 살짝 올라왔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흑랑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왜 K가 저 녀석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겠어. 한 번 보면 절대 놓을 수 없을 그럴 실력이네.’
김신령이 웃었다.
칭찬에 인색한 그녀가 이 정도로 호평을 한 헌터는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K가 항상 자랑스러워 하는 문형서의 창술 실력에 대해서도 평이 박한 그녀였다.
하지만 강후는 아니었다.
흠잡을 곳이 없었다.
마치…… 암살자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그런 존재 같았다.
* * *
15분의 짧고도 임팩트 있던 훈련이 끝난 뒤.
결국은 체력에서 버텨내지 못한 흑랑이 강후의 대참수 일격을 맞고, 그대로 소멸됐다.
마지막이 인상적이었다.
흑랑이 강후를 기습적으로 노리기 위해 공간 이동 기술을 쓰려다가 실패해서다.
김신령은 그것이 흑랑의 실수가 아니라, 강후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공간 이동을 억제하는 능력이라니! 어지간해서는 안 놀라는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흑랑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테고, 강후에게도 마찬가지의 자극이 되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혹시 다른 콘셉트의 소환수는 없습니까? 아직 몸이 좀 덜 풀린 것 같은데요.”
“……응?”
강후가 예상치 못한 제안을 건넸다.
끝날 줄로만 알았던 훈련. 하지만 강후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