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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42화 (142/304)

142화 울릉도 (2)

* * *

신속하게 현장을 이탈하는 회피 스킬을 사용한 강후와 달리.

문형서는 반응이 반 박자 정도 늦었다. 대응은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장창을 들어 본능적으로 전방을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존재’가 자신을 터치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제길.”

문형서는 자신이 강후와 같지만 다른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분리된 것이다.

같지만 다르다는, 의미가 충돌되는 표현을 쓴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공간 격리를 당할 줄이야.”

바로 공간 격리.

그라운드 제로에 ‘검은 인도자’가 살고 있다면, 그라운드 제로 북쪽에는 ‘검은 그림자’가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 쪽에서만 볼 수 있는 몬스터였다.

녀석은 은신도 가능하고, 동시에 형체 분화도 가능한 망령으로 상당히 까다로운 놈이지만.

그라운드 제로에 서식하는 검은 인도자와는 적대적인 관계라 접근하는 즉시 격퇴당했다.

서로가 영역 싸움이 치열한 데다가, 수적으로 대단히 열세라 검은 인도자에게 상대가 안 됐다.

그래서 그라운드 제로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녀석이었는데 울릉도에 유입이 된 것이다.

이제야 실종 사건의 전말도 이해가 갔다. 이 녀석의 소행이 분명하다.

아마 실종자들은 이렇게 공간 격리를 당한 것이 아니라, 잡아먹혀 죽었을 것이다.

너무 깔끔하게 다 먹혔기 때문에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던 것일 테고.

“5분…….”

문형서가 자신의 상태창에 활성화되어 있는 5분짜리 디버프를 확인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공간 격리는 디버프로 분류됐다. 상대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분명히 강후가 눈앞에 보이지만, 손을 뻗어도 만질 수 없었다. 마치 연기를 만지는 듯했다.

“망할.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 마스터께서 안전하게 모시라고 했는데…….”

문형서가 이를 까득 갈았다.

검은 인도자와 달리, 검은 그림자는 상대하기가 훨씬 더 까다로운 녀석이다.

정해진 레벨은 없지만, 통상적으로 레벨 300은 넘어가는 위력적인 녀석이었다.

괜히 헌터들이 손도 못 쓰고 실종을 당한 게 아닌 것이다.

맞상대를 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녀석에게 먹히고 만다.

검은 그림자는 자신이 훨씬 더 레벨이 높다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격리시킨 것일 터다.

놈은 영리하고 강하다.

과연 강후가 버틸 수 있을까.

문형서는 부정적이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

강후는 문형서가 공간 격리 상태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알아챘다.

까다로운 적을 일시적으로 전장 이탈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인 공간 격리.

장시환이 주로 쓰는 능력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장시환‘만’ 갖고 있는 능력은 아니다.

장시환은 이 능력을 이용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까다로운 광역 공격 패턴에 진입할 때.

녀석을 다른 공간으로 보내 버렸다. 그러면 혼자 격리된 공간에서 헛심만 잔뜩 쓰고 돌아온다.

공간 격리는 장시환이 쏠쏠하게 재미를 보는 요소 중에 하나였는데, 그런 이유로 원작에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 장시환이 나타났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경우를 생각했고 그게 검은 그림자였다.

【강동의 대현자】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성좌입니다. 한 명의 대상을 지정하면, 그 대상이 은신했을 경우에도 불투명한 형태로 외형을 파악합니다.】

강후가 ‘강동의 대현자’ 성좌를 이용해서 검은 그림자를 대상으로 지정했다.

일전에 차소희를 죽이고 강탈했던 성좌로, 이럴 때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성좌였다.

덕분에 검은 그림자가 은신으로 모습을 숨겼음에도 이동 경로가 명확하게 보였다.

마치 오래된 트럭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을 한데 뭉쳐놓은 듯한 형태였다.

바로 그때.

키시시시시!

멀찍이서 크게 원을 그리며 돌던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강후를 향해 돌진했다.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는 건지, 엄청난 속도로 직선 접근했음에도 동력을 잃지 않았다.

【보호 결계】

쿠웅!

“크윽!”

바로 충돌이 일어났다.

그리고.

카싱! 카시싱! 카싱!

보호 결계와 맞부딪힌 검은 그림자가 잠깐 사이에 결계에 수많은 상처를 냈다.

할퀴고 지나간 모양대로 결계가 찢어지고 깨졌을 만큼, 위력적인 공격이기도 했다.

“지랄 같은 놈이네.”

강후가 적의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방금은 정말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만약 보호 결계가 없었다면, 저 찢어진 결계의 파편이 자신의 살점이 되었을 테니까.

녀석은 까다롭다.

회피하거나 멀리 있을 때는 연기처럼 변했다가.

공격이 필요할 때만 ‘실체화’가 되어서 맹공을 쏟아붓는 식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이기적인 대미지 교환을 하고 빠지니까 지랄이라는 욕이 나올 수밖에.

키시시시!

“읏.”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검은 그림자가 다시 돌진해 온다.

상황을 봐서 속주머니에 넣어 둔 솔라키움을 꺼내서 먹어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

곧바로 녀석이 쇄도했고.

스카앙!

강후가 다시 보호 결계로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이번에는 녀석도 출력을 높였는지 방금보다 훨씬 더 쉽게 결계가 깨졌다.

저녁이 된 탓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 요청할 수 있더라도 그럴 만한 주체가 없다.

설령 지나가던 헌터가 이 현장을 보더라도 돕기보다는 모른 체하기 바쁠 것이다.

문형서의 공간 격리는 짧게 잡아도 5분. 그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일단. 단순하게 가자.’

명확히 판단을 내렸다.

일단 검은 그림자의 공세를 극한의 방어로 막아내며, 반격의 찬스를 노려보기로.

녀석의 공격 방식과 패턴, 속도에 대한 숙지가 되어야 그다음 플랜도 짤 수가 있다.

지금은 아무리 머리를 잔뜩 굴려 봐도, 예측과 맞지 않으면 쓸모없는 하찮은 전략이 되고 만다.

암살자와 방어는 어떤 형식으로 생각해도 참 앞뒤가 맞지 않는 단어의 조합.

하지만 강후는 자신 있었다. 다 이럴 때 쓰려고 스킬을 열심히 모아 둔 것 아니겠는가.

이제부터 그 값을 할 차례다.

* * *

얼마 후.

“실력이 상당한데.”

격리된 공간 안에서 강후와 검은 그림자의 교전을 지켜보던 문형서가 감탄했다.

일단 유의미한 반격 없이, 일방적으로 강후가 막아내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후의 대응에 빈틈이 없었다. 문형서가 생각한 그림보다 훨씬 견고했다.

우선 강후의 보호 결계 스킬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암살자가 이런 형태의 설치형, 이동형 방어 스킬을 갖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스킬의 구성과 내구도, 활용도를 본다면 전문 탱커의 스킬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후는 무조건 벽을 세워 막는 정직한 방어로 일관하지도 않았다.

문형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곧바로 현장을 이탈하는 신속 회피 스킬이었다.

회피 스킬이 최대 숙련도를 달성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스킬이기도 하다.

문형서도 레벨 1, 레벨 10에 얻은 기본 스킬이 이제 막 최대 숙련도가 되려는 참이다.

하지만 회피는 암살자의 레벨 40 기본 스킬이다.

일반적인 암살자들의 성장 곡선을 생각하면, 지금 숙련도 최대를 찍는 것이 불가능한 스킬이었다.

그런데 강후는 아주 알차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검은 그림자가 헛심을 많이 썼다.

그림자 걸음을 활용한 위치 전환 역시 마찬가지.

강후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를 요리조리 잘 피해 가며, 위치를 바꿨다.

물론 녀석이 너무 빠른 탓에 바로 위치를 특정 당하고 공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시간은 잠깐이라도 확실하게 벌 수 있었고, 그런 만큼 검은 그림자의 힘도 빠졌다.

문형서는 자신이 검은 그림자를 상대했을 때보다 안정성 측면에서는 강후가 훨씬 더 높은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강후는 분명 즉흥적이고 본능적인 대응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대응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아무 생각 없이 방어만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강후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키잇?

전력으로 공격을 퍼붓던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강후의 위치를 놓쳐 버렸다.

“설마?”

이런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상대가 언데드일 경우다.

그렇다면…… 강후에게 언데드로 위장할 스킬까지 있다는 걸까?

문형서의 동공에 지진이 발생했다.

* * *

검은 그림자에 대한 계산이 끝났을 때.

강후가 반격의 포문을 열기 위해 사용한 스킬은 바로 사령의 침묵이었다.

【사령의 침묵】

【초당 마나 10을 소모해, 언데드로 위장합니다. 그들 고유의 기운을 풍기므로 들키지 않습니다.】

마나 소모량을 반으로 낮춰주는 ‘야만의 시대’ 스킬이 적용된다고 해도 마나 스탯이 20인 강후의 입장에서는 1초에 보유 마나의 25%가 뭉텅이로 없어지는 상황.

그래서 과부하의 정도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스킬이지만, 지금은 전략적 쓰임새가 분명했다.

‘역시.’

검은 그림자가 위치를 잃었다.

녀석은 별도로 시야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질감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구조였다.

어차피 눈코입을 정확히 볼 필요가 없고, 형체만 명확하게 살필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바로 기교의 장막을 깔면서, 동시에 분신술로 분신 하나를 그 밖으로 내보냈다.

녀석에게 잠깐 사라졌던 자신의 재등장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분신은 사령의 침묵 스킬의 적용을 받지 않는 만큼, 본래의 강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 사이.

【흑월참】

히든 스킬을 준비했다.

지금으로서는 검은 그림자를 말끔하게 끝내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고 전부였다.

이미 특정을 당한 만큼 무시하고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도망치더라도 결국 따라잡힐 것이고, 또 공간 격리를 당하거나 전투를 불사해야 할 터.

여기서 끝을 볼 생각이었다.

키시시싯! 크싯!

검은 그림자는 역시 강후의 분신을 보고는 이때다 싶어 다시 공세를 높였다.

강후는 흑월참을 시전하기 위해 암흑기를 모으는 와중에도 최대한 분신을 컨트롤했다.

너무 일찍 분신이 당해서 없어져 버리면, 녀석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

‘좋아.’

암흑기가 빠르게 소진되고, 단검에 맺힌 흑월참의 기운이 뜨겁게 차오르기 시작한다.

양쪽으로 집중하는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강후가 이를 악물고 해냈다.

사령의 침묵 스킬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인지, 두통도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찾아왔다.

어차피 이 문제는 마나 스탯을 무작정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선천성 마나 과민증이 압도적으로 빠르게 마나를 빨아들이며 생기는 문제니까.

마나의 총량이 문제가 아니라, 마나의 회복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마나 스탯이 높다고 해도, 결국 스킬을 쓰면 마나의 소모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빈틈을 과민증이 즉각적으로 채우기에 어떤 상황이어도 과부하는 피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됐어.’

흑월참의 기운이 최대로 차올랐다.

암흑기도 바닥을 드러냈고, 검은 그림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분신을 다시 노리고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기교의 장막이 만들어낸 은신의 어둠 속에서. 강후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한 방을 준비했다.

그리고.

시이잉!

검붉은 검기가 냉랭한 숨소리로 찬 밤하늘을 가르며.

솨아악!

어둠이 만들어낸 저주받은 피조물의 몸뚱이를 반으로 갈랐다.

영원히 잘리지 않을 것 같던 그림자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반으로 갈라져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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