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장시환 (2)
“어디서 오셨죠?”
“양양입니다. 좀 멀죠.”
“용병이신 모양이네요. 그렇잖습니까. 강원도 양양이 워낙 유명한 용병 집결지로 알려졌으니.”
“네.”
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시환이 어떻게 생각하든 구체적으로 대답해 줄 필요는 없다.
양양에서 왔다고 둘러댄 이유는 그의 말처럼 용병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용병단이 있기에 어디 소속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장시환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지금이라도 아는 척을 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유명인을 만났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강후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일이었다.
아니, 흉내 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낯간지럽고 낯뜨거워지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굳이 아는 척을 해야 할까 싶은 이유도 있었다. 녀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양양에서는 정화 길드와 저를 어떻게 보던가요?”
장시환이 화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강후에게 인지시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강후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지금의 질서 있는 서울을 만든 정화 길드와 장시환 님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죠.”
“오호, 그래요?”
“다들 정화 길드에 소속되고 싶어 합니다. 떠돌이 생활을 할 필요도 없고, 지원도 받으니까요.”
“기분 좋은 소식이네요.”
기분이 좋으라고 해 준 거짓말이다.
양양은커녕 아직 강원도에 가 본 적도 없는 강후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뚝딱 지어냈다.
머릿속을 헤집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절대 거짓임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장시환이 말을 이었다.
“그럼 당신은 저희 정화 길드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럴 만한 실력이 없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저희는 언제든 입단 테스트의 길이 열려있습니다만?”
“아직은 부끄럽습니다.”
“많이 겸손하시군요. 보통 헌터들은 자기 실력에 크든 작든 자부심이 있기 마련인데요.”
“이리저리 많이 깨져서 그런지, 자신감이 참 부족하네요.”
서로를 탐색하는 눈빛 속에 대화가 오갔다.
평범한 대화일 수도 있었지만, 강후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시환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유독 관심을 갖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살가운 성격인 건 맞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리 말을 길게 거는 타입은 아니다.
여기서 더 이어갈 얘기도 없고, 슬쩍 뒤를 보니 장시환을 지키는 헌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파악되지 않은 마스터 곁의 사람에게 무언의 압박을 준다.
오랜 시간 머물지 않도록 말이다. 그들의 경호 방침이다.
“이제 돌아가야겠습니다. 즐거운 서울 나들이였네요.”
“살펴 가세요. 잠깐이지만 반가웠습니다.”
“항상 무탈하시길.”
강후는 마음에도 없는 덕담을 건네고는 자리를 떴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호위 헌터의 매서운 시선이 뒤통수에 꽂혔다.
최대한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움직인 덕분인지, 얼굴이 각인되진 않은 듯했다.
‘자주 오진 말아야겠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후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전망대는 장시환의 휴식처이자, 사색지다. 수시로 오는 만큼 얼굴을 마주칠 일이 많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에게 자신은 여전히 하찮은 일개 헌터일 뿐이다. 관심이 조금 동했을 뿐인 정도겠지.
그게 좋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이름과 얼굴이 낱낱이 알려지기 전까지, 굳이 미리 인지될 필요는 없다.
이후.
강후는 서울에서 광주송정역 인근의 버스터미널로 내려가는 안전 버스를 타고 편히 몸을 눕혔다.
버스에 타는 순간까지 꼼꼼하게 주변을 살핀 덕분에 차소희의 눈에는 띄지 않았다.
꽤 많은 지출이 있긴 했지만, 프리미엄 안전 버스를 탄 덕분에 자리는 편했다.
모든 자리가 1인석이고 작은 커튼이 쳐져 있어, 충분히 독립적인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다만 버스를 탄 헌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광주송정역 인근 전체가 거대한 격전지라서, 용병이 아니면 갈 일이 없어서였다.
가면 언제 어디서 전투에 엮일지 모르는데, 목숨을 걸고 갈 이유가 없다.
강후처럼 반드시 가야 하는 용무가 있거나, 전투에 연관된 조직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흠…….”
강후가 미리 수집해뒀던 자료를 훑으며, 동시에 부족한 내용을 기억 속에서 충당했다.
원작에서 언급된 내용은 그대로 구현되어 있을 테니까.
우선 광주 광산구 전역이 격전지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초대형 마석 광산이 무려 3개나 자리 잡고 있어서였다. 그것도 오픈형 던전 내부에 말이다.
강후가 있었던 청명 수용소, 그곳과 연결되어 있던 청명 마석 광산의 5배 규모였다.
하루 순수익이 최소 15억 원 이상에 달했다. 캐기만 하면 이득인 노다지인 셈이다.
한 달이면 무려 조직의 자금으로 450억 원을 챙길 수 있는데, 누가 포기하겠는가?
이 광산들을 두고 총 4개의 세력이 대립하고 있었다.
3개의 길드와 1개의 용병 연합이다.
청호, 해영, 유수, 용병 연합 킹덤.
청호는 원래 이곳에 터를 내리고 있던 길드였다. 원주인이다.
나머지 셋이 외부에서 꼬인 세력인데, 해영 길드의 경우에는 위성 길드를 이곳에 세웠다.
본래 거점은 부산에 있지만, 마석 광산을 탐내다 보니 여기까지 손이 뻗친 것이다.
서울에 정화가 있다면, 부산에는 해영이 있다는 말도 있을 만큼 세력이 컸다.
그래서 광주에 해영 길드의 지부를 세우고는 끊임없이 헌터들을 파견하는 중이었다.
유수 길드는 뒤늦게 광주에 뿌리를 내렸지만, 청호에서 길드원들을 많이 빼냈다.
그리고 킹덤은 용병이 뭉친 연합체로 마석 광산의 이권 하나만 보고 뭉친 조직이었다.
연대감은 다른 조직에 비해 적지만,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실력자가 많았다.
살짝, 긴장이 됐다.
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언제 어느 곳이 갑자기 전장으로 바뀔지 알 수 없어서다.
워낙 다양한 세력이 엮인 곳이라 관련이 없는 사람이어도 오해를 받고 휩쓸리기 딱 좋다.
잔챙이들이 꼬인다면야 직접 처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름 윗대가리인 녀석들이 꼬이면, 그때부터는 계산이 복잡해진다.
* * *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광주송정역 인근의 버스터미널이었다.
중간에 일부가 내렸는지, 마지막에 내릴 때는 강후 혼자밖에 없었다.
내리자마자 강후는 3번 출구 근방에 있는 던전으로 향했다.
이미 위치는 파악해뒀고, 어떤 형태로 주변이 관리되고 있는지 볼 생각에서였다.
“인증 시스템이네.”
예상했던 대로였다.
별도로 치안관이 파견되어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헌터 치안청 깃발이 보란 듯이 꽂혀 있고, 던전 입구 전체에 보안 철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즉, 발급받거나 허가받은 던전 라이센스를 인증하지 않으면 절대 입장할 수 없는 구조였다.
헌터 치안청이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받기는 해도, 구조물을 건드리면 범법 행위가 된다.
주변이 모두 CCTV로 확인되고 있는 데다가, 헌터 치안청의 사유물을 함부로 건드릴 경우.
재수가 없으면 정화 길드의 표적이 될 수도 있어, 망나니 같은 헌터도 시설은 건드리지 않았다.
헌터 치안청과 협력해서 범죄자 소탕이니, 수배자 추적이니 하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6시간쯤 남은 건가.”
강후가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한 던전 라이센스 승인 시점을 확인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6시간 동안은 던전에 들어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만큼, 적당히 쉴 곳을 찾을 요량이었다.
그때.
“빨리! 빨리 움직여, 새끼들아!”
“잠들 좀 깨란 말이다! 잠이나 쳐 자라고 우리가 파견된 게 아니잖냐?”
“가자, 해영! 나가자, 해영!”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함께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무리의 헌터가 보였다.
해영 길드의 헌터들이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을 보니, 전장으로 다급하게 이동 중인 모양이었다.
해영 길드의 헌터들은 악명이 높았다.
포로 송환 같은 것은 애초에 머릿속에도 없고, 고문과 살인이 일상인 놈들이었다.
어찌나 악랄하게 굴었으면, 이권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세 조직이 연대해서 견제할 정도.
전장에서 네 조직의 일원이 한데 엮이면, 일단 해영 길드원부터 치고 봤다.
강후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슬쩍 물러나서, 그들이 이동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봤다.
하지만 대장으로 보이는 헌터 하나가 강후의 행동을 보고는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
“야, 저 새끼 뭐야. 왜 여기서 알짱거려? 족쳐! 족쳐버려!”
“…….”
던전에 가기 전에 괜히 힘 빼고 싶지 않아서,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게 해 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날이 잔뜩 서 있는 그들은 강후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누군지 파악하려고도 하지 않고 말이다.
강후가 말했다.
“그냥 갈 길 가라. 난 여기 사람 아냐. 괜히 칼 맞기 싫으면, 가서 너희들 일이나 봐.”
“뭐래, 이 새끼가! 말하는 본새가 킹덤 새끼인 것 같은데? 죽여버려! 목부터 따!”
예상은 했지만, 한 마디로 끝난 대화의 결렬에 강후도 미련 없이 공격 자세를 취했다.
상대는 아홉.
그중에 다섯은 성좌와 계약한 헌터고, 나머지는 잔챙이다.
오해를 받게 된 입장이라 열 받긴 하지만, 차라리 확실하게 경고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타다다닷!
이내 가속 상태에 돌입한 강후가 무리를 향해 정면 돌진하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수적 열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강후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중, 강후와 똑같이 단검을 쓰는 대장과의 거리가 코앞까지 좁혀졌을 때!
스르륵.
횡 이동을 전개한 강후의 위치가 대장의 앞에서 뒤로 바뀌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위치 전환.
푸슈슛!
동시에 대장의 팔 뒤쪽에서 피가 튀었다.
강후가 바로 단검 공격을 꽂아 넣은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바로 옆에서 함께 움직이던 다른 헌터의 옆구리에도 단검을 찔러 넣었다.
확실한 경고였다.
“……미친.”
“뭐야, 쟤.”
“갑자기 사라졌다가 뒤에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손도 못 쓰고 당했는데?”
일련의 과정을 모두 살핀 해영 길드 헌터들의 표정이 빠르게 굳기 시작했다.
눈이 있다면, 방금 강후가 보였던 움직임을 놓칠 수 없다.
물론 시선이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뒤늦게 꼬리를 쫓는 형태였다.
관찰자 시점에서야 구경으로 끝날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목숨과 직결되는 ‘뒷북’이다.
지금 상황이 강후가 둘을 죽일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걸, 눈치 빠른 이들은 느껴버렸다.
“보통 놈이 아냐.”
“……빠지자.”
“전장으로 빠르게 이동하시죠! 얘는 지정된 타깃도 아니잖습니까!”
헌터 셋이 빠졌다.
우습게도 성좌를 달고 있는 녀석들이 먼저 이탈했다.
목숨 소중한 줄은 아는 것이다.
오히려 대장과 함께 남은 녀석들이 잔챙이였다.
어쨌든 눈치 빠른 놈들의 손절은 빨랐다.
성좌도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이라 달리 미련은 가지 않았다.
쓸만한 성좌를 갖고 있었다면 생각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이기적이지만 현명하네.’
강후가 뒤도 안 돌아보고 현장을 이탈하는 세 명의 헌터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아직 행운의 여신이 웃어주지 못할 멍청한 여섯 놈이 앞에 자리하고 있다.
빠른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