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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35화 (35/304)

35화 대참수 (4)

화르르륵!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발트만이 불의 가호를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는 기제를 활성화했다.

예상했던 대응이었기에 일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었던 강후는 빠르게 호흡을 골랐다.

시야 강탈로 시각을 일시적으로 상실한 발트만은 강후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강후는 구식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가장 확실한 공격 수단을 썼다.

“하아압!”

기합과 함께 손끝을 떠난 창공의 환희가 굉음을 내며 발트만을 향해 날아갔다.

단검 투척이었다.

“죽여버리겠다! 내 기필코 너를 죽…… 끄억!”

몸 전체를 불로 활활 태우면서 복수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던 발트만의 말이 멈췄다.

날아간 단검이 정확히 그의 양미간을 뚫은 탓이었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즉사로 이어진 깔끔한 일격.

발트만이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입이 가벼우면 보통 끝이 좋지가 않더라고.”

강후가 불길과 함께 영원히 꺼져버린 발트만의 목숨을 확인하고는 혀를 끌끌 찼다.

【레벨이 대폭 올라 39가 되었습니다.】

【대상으로부터 대참수 스킬을 성공적으로 강탈했습니다.】

동시에 두 개의 메시지가 출력됐다.

레벨 39 달성.

암살자용 기본 스킬을 얻게 되는 레벨 40이 코앞이었다.

스킬을 얻는 순간부터 숙련도가 최대치를 찍는 만큼, 기대가 잔뜩 될 수밖에 없었다.

【대참수】

【스킬 숙련도 : Lv. Max】

【체력과 마력을 각각 25%씩 소진하여, 지정한 하나의 대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힙니다.】

【대미지는 착용한 무기와 사용자의 근력 총량에 비례하며, 상대의 맷집에 반비례합니다.】

【사용자 레벨의 33% 미만에 해당하는 레벨을 가진 몬스터, 헌터는 일격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지금 내 레벨이 39니까, 레벨 13 미만의 몬스터나 헌터는 즉사라는 거군.”

강후가 흡족한 표정으로 대참수 스킬을 확인했다.

직업 페널티를 가진 상태로 학습했다면 형편없는 스킬 구성이 되었을 텐데.

페널티는 없는 데다가, 숙련도 최대 보조까지 받은 상태이다 보니 가히 구성이 사기적이었다.

라이센스 대여에 쓴 10억 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잠재적 가치로만 본다면, 그 돈의 10배, 아니 100배도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전리품도 괜찮은 편이고.”

이어서 발트만이 죽은 자리에 툭 하고 떨어진 초록색 마석 2개를 주웠다.

1개당 가격이 1억 원은 되니, 2억 원은 회수한 셈이다.

빨리 레벨 40, 50을 찍고 싶었다.

스킬을 하나하나 늘려가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했다.

【시시해 보이는군.】

그때, 오랜만에 차원 강탈자가 말을 걸어왔다.

좀처럼 말을 잘 하지 않는 성좌이다 보니,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반갑게 느껴졌다.

“이제는 공략하는 던전 수준을 좀 더 높일까 해.”

【확실히 그게 좋아 보이는군. 지금의 수준으로는 네게 제대로 된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없을 터.】

“언제든 시험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어. 망설이지 말고 제안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결정은 내가 한다.】

“나중에 더 많은 성좌들이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땐 당신도 뒷방 늙은이가 될 수 있어.”

【네 녀석의 오만한 성격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날 자극할 수 있다고는 생각 마라.】

“훗, 시간은 내 편이야.”

강후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별 볼 일 없는 헌터였다면 당연히 시간이 성좌의 편이었겠지만.

강후는 스스로가 꽤 투자 가치가 높은 헌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좌 입장에서 말이다.

이미 레벨 100 이하의 던전에 대해서는 공략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나마 까다로운 것이 보스 몬스터지만, 이 역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선에 머무르고 있다.

레벨 39의 헌터 혼자서는 기껏해야 레벨 4, 50대의 던전을 솔플하는 것이 능력의 최대치다.

하지만 강후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상위 던전을 홀로 공략하며 경험치를 독식하고,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것이다.

운 좋게 요행으로 얻은 성과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200% 활용할 수 있는 현명함이 가져다준 결과이기도 했다.

* * *

그날 밤.

강후는 성공적인 스킬 획득을 자축할 겸, 수원역 안에 위치한 바에 들렀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솔라키움 버스트를 시켰다.

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밝고 좋았다. 가드도 충분히 있어 그런지, 눈살 찌푸릴 상황도 없었다.

수원역 정도의 느낌만 되어도, 제법 살만한 도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갑자기 전투가 벌어지거나, 유혈 사태가 일어날 것 같다는 걱정은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평화에 물들어 느슨해진 공간에는 늘 피에 굶주린 늑대들이 나타나곤 한다.

지금은 거대한 전쟁의 용광로와 같이 되어버린 대전역도 과거에는 치안이 좋은 곳에 속했었다.

하지만 평화 속에 자라난 이권에 군침을 흘린 이클립스와 흑사자가 대전역에 마수를 뻗쳤을 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이예린의 청안이 추가되면서 지금은 지옥이 됐다.

“흠.”

유일하게 자신이 앉은 테이블만 ‘혼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강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곁에 누가 있는 것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힘들 때, 마음을 툭 터놓고 대화할 친구가 없다는 것은 분명 큰 외로움이었다.

한서연에게 기대려면 기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가장 좋지 않은 일이다.

‘우정. 사랑. 이 무거운 감정의 의미가 그다지 와닿지 않는 것은 말살된 내 감정 때문이겠지.’

자조적인 냉소가 나온다.

신강후라는 인물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따뜻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냉혈한으로 말이다.

그래도 아주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가끔, 아주 가끔 뜨거워질 때가 있기는 했다.

‘청명 수용소의 동기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바로 지금처럼.

문득 떠오르는 추억과 생각들이 있다. 물론 그뿐이다.

인정과 동정에 이끌려 비효율적이고도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진 않는다. 이성의 완벽한 통제다.

‘하루는 푹 쉬자.’

기분 좋게 솔라키움 버스트 한 잔을 마신 강후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트만과의 전투에서 몸이 제법 무리를 하기도 했고.

수원역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보니, 여기서 마음 편하게 수면을 취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제 이곳의 볼일도 끝났다.

다음은 그라운드 제로로 갈 차례다.

매드 솔라키움의 채집부터 시작해서, 이예린에게 의뢰를 받은 조구빈에 대한 건도 있으니까.

* * *

그 시각.

“잘 지내고 계시려나?”

리코우 길드원 전용의 숙소이자 5성급 호텔이기도 한 ‘리코우 호텔’ 최상층.

VIP 룸이라고도 불리는 방에서 한 남자가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강후를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안영호였다.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그는 길드 내외의 정보통을 활용해 강후에 대한 조사를 했다.

당연히 정선규라는 가명을 썼기에 그에 맞는 자료들이 수집됐다.

꽤 많은 정보가 있을 듯했지만.

막상 정보를 수합하니, A4 용지 한 장의 절반도 채우기 어려울 만큼 부실했다.

이래서는 강후의 실력이나 경지부터 시작해,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짐작도 안 됐다.

“분명 날 구해주기 위해서 썼던 스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외삼촌도 믿지를 않잖아.”

안영호의 기억에는 강후와 함께했던 그 순간이 모두 생생했다.

직접 본 것은 아니더라도, 강후가 레벨 80대의 헌터 둘을 일격에 제압한 것은 소리로 들었다.

훈련된 헌터를 단숨에 죽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강후는 적을 쉽게 제압했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도약으로 자신을 구해줬다.

클래스는 분명히 ‘암살자’가 틀림없는데, 연계해서 쓰는 스킬 구성이 직업의 틀을 벗어나 있었다.

이러니 외삼촌이자 암살계인 스즈키 후미야도 잘못 봤을 것이라고 말하며 믿지 않는 것이다.

물론 강후가 조카를 구해 준 은인이라는 사실에는 깊이 고마워하고 있었다.

강후에게 약속한 길드의 특혜와 특전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예를 갖춰 강후를 대할 생각이었다.

다만 조카가 강후에 대해 가진 기억의 일부가 과장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빨리 일본에 놀러 오셨으면 좋겠네. 괜찮은 던전이 많은데 말이야. 호흡도 맞춰보면 좋겠고.”

강후를 생각하면 힘을 가진 자에 대한 동경이나 경외감이 생기는 듯해서 기분이 묘했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생명의 은인이기에 더 감사한 마음이 들어 그럴 것이다.

“문자나 하나 남겨볼까?”

가볍게 연락이나 해 볼 생각이었다. 일본에 언제 올 계획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고.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안영호도 어떻게든 강후에게 더 확실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선규 형님,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저는 일전에 형님이 구해 주셨던 안영호…….”

결심과 행동은 빨랐다.

안영호가 바로 강후에게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 * *

살인적인 서울의 물가.

평범한 사람에게 서울의 물가는 생수 대신 화장실의 수돗물을 먹게 할 만큼 잔인하지만.

잔고가 두둑해진 강후에게는 더 이상 큰 부담이 되진 않았다.

확실히 서울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

가드도 어느 건물을 가든 항상 주둔하고 있고.

안전 대피 시설 역시 모든 건물에 의무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대피 시설은 통제를 벗어난 헌터들이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때, 민간인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공간이 된다.

보통 1시간 이상 견뎌내도록 설계되는데, 그 전에 헌터 치안청의 치안관이 현장에 도착한다.

‘서울은 CCTV의 도시라는 말도 틀리진 않아.’

강후가 어느 공간을 가도 보이는 CCTV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들은 든든한 보호 장치라고 생각하지만, 강후에게 보이는 그림은 달랐다.

장시환과 그 일당들이 효과적으로 민중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수단이 바로 CCTV다.

그들의 눈 밖에 난 존재가 서울에 머물고 있다면, 절대 이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 번 그들에게 찍히면 도망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무조건 잡힌다.

그때.

서울역 중앙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현장 속보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 방금 막 정화 길드 마스터 장시환 님과 포르투나(Fortuna) 길드의 마스터 케이시 렉스 님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 두 마스터는 바로 회담장으로 이동, 상호 협력 및 전면 교류에 관한 협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크! 이제는 세계로 나가는 정화 길드인가? 포르투나 길드면 미국에서도 알아주지 않나?”

“그렇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줄을 못 대는 길드인데, 정화 길드는 한 방에 뚫었나 보네?”

“다 이게 장시환 님 덕분 아니겠어? 실력을 인정받으니까 안 될 게 없는 거지!”

“크, 취한다, 취해!”

보도를 들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장시환과 그의 길드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사실 서울 전체가 거대한 정화 길드의 팬클럽과 같다. 좁혀 보면 장시환의 팬클럽이기도 하고.

서울의 영웅이라고도 불리는 마당에 이런 호의적인 반응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다만.

‘케이시 렉스도 열세 개의 별 중의 한 명이라는 게 문제지.’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는 강후로서는 저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 같잖게 보일 뿐이었다.

개수작도 저런 개수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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