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2화 (2/304)

2화 탈출 (2)

간수의 옷은 빼앗아 입지 않았다. 3급 간수복이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탈출하려면 2급 간수복 이상이 필요하다. 이 녀석은 아니다.

일단 강후가 죽은 간수가 들고 있던 장검을 주워들었다.

총 9등급으로 분류되는 헌터의 아이템 체계에서 8등급에 해당하는 무기 아이템이었다.

【고블린 전사의 장검】

【등급 : 8등급】

【근력 +10】

‘단순하군.’

따로 특수한 효과는 없다.

물론 근력 10도 가치는 충분했다.

몸이 일반인 수준을 겨우 넘는 강후에게는 더더욱.

현재 강후의 근력은 5.

여기서 10이 오르면, 적어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몇 개월 꾸준히 한 수준의 몸은 될 수 있다.

【고블린 전사의 장검을 ‘무기’ 탭에 등록하시겠습니까?】

바로 등록을 마쳤다.

헌터의 시스템 구조상 아이템을 이런 식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스탯 효과가 적용되지 않아서다.

하나의 무기만 등록할 수 있기에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효과를 다 볼 수 있지도 않았다.

‘정문으로 가야 한다.’

강후의 시선이 향한 곳은 경계가 제법 삼엄한 정문 방향이었다.

그쪽으로 가야만 탈출에 용이한 최단 루트를 선택할 수 있다.

원작에서 신강후가 선택하는 탈출로이기도 하다.

정해져 있는 모범 답안인 셈.

청명 수용소의 상주 간수 자체가 많지 않기에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전투 능력이 있는 헌터면 수용소 관리보다는 던전 공략에 대부분 참여하기 때문이다.

‘저쪽이 함정이고.’

북서쪽의 청명산을 봤다.

언뜻 보기에는 어둡고, 길도 복잡해 보이고, 경비 시설도 없어서 안전한 탈출로 같아 보이지만.

올가미와 덫은 기본, 푹 꺼지는 땅굴까지 파둔 곳도 있어 가장 위험했다.

이클립스 측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 둔 함정이었다. 그쪽으로 가면 무조건 죽는다.

‘눈길을 좀 끌어야겠다.’

강후가 장검을 든 채로 성큼성큼 수용소 18동 앞을 지나,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까운 간부 전용 숙소였다.

수용소 18동과의 직선거리는 50m 정도로 가깝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지 불침번을 서고 있는 간수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잠들어 있었다.

어차피 비상 상황이 생기면 사이렌이 울리는 만큼, 비효율적으로 불침번을 여럿 두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간수에게로 최대한 숨을 죽이고 거리를 좁히려 하는 순간.

“음······?”

미세한 기척을 느낀 간수가 눈을 번쩍 떴다.

간수들은 전부 헌터이기에 그들의 예민한 감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강후도 예상했던 바고.

영구적으로 차원 강탈자의 능력을 얻은 강후이기에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파앗!

10m가 넘는 먼 거리였지만, 강후가 도약 스킬을 활용해 순식간에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

허공에서 한참을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공간이동에 가까웠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처럼 강후의 위치가 단숨에 뒤바뀌었던 것이다.

서걱!

앞서 죽인 간수에게 탈취한 장검으로 불침번을 서던 간수의 목을 깔끔하게 날렸다.

아무리 양질의 강화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고 한들, 가장 취약한 부위인 목을 지키기는 어렵다.

투웅!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 머리.

두 눈이 황망한 표정으로 강후를 바라봤지만, 강후는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간수의 머리를 발로 찼다.

그리고 바로 그가 입고 있던 옷을 벗겼다.

이제 본격적인 탈출을 시작하려 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려면 위장은 필수다.

아무리 정문이 지름길이라고 한들, 죄수복 같은 수용자 전용 의복을 입을 수는 없잖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옷을 갈아입었다.

옷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긴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얼빠진 수용자를 손봐주다가 튀어서 묻은 피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니까.

그런 일은 청명 수용소에서 밥 먹듯이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다.

한편, 가장 벗기기 좋은 신발도 잽싸게 바꿔 신었다.

9등급의 아이템 신발.

민첩 스탯 5를 올리는 신발로, 10% 정도 주력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듯했다.

애초에 고유 재능으로 ‘제법 우수한 주력’을 갖고 있는 강후인지라 시너지는 괜찮을 것이다.

주르륵! 주륵!

강후가 간수동 근처에 있던 기름통을 가져와서는 주변에 남김없이 붓기 시작했다.

초봄이다 보니, 아직 추워서 여기저기서 불을 때려고 장작과 함께 준비해둔 기름이었다.

기름통의 기름을 말끔히 비운 후에는 죽은 간수의 속주머니에서 꺼낸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화르르륵!

그러자 간수동 외곽을 따라 만들어져 있는 기름띠 위로 불길이 활활 치솟았다.

탈출 계획의 시작이었다.

* * *

시간이 흐르고.

몸집을 키운 불길이 특유의 타는 냄새와 함께 시야에 들어오자, 다른 동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거나, 잠에서 깬 간수들이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뭐야? 불이야?”

“18동 앞이다! 누구 짓이야, 이거? 시체 소각은 간수동이 아니라 소각동에서 해야 할 거 아냐?”

“화재 진화반 불러!”

화재는 종종 있는 일이기에 당황하는 간수는 없었다.

애초에 헌터 출신의 수용자 인력을 착취하는 범죄의 현장이다 보니, 비상 대비는 물론 유사시엔 전투에 돌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신속히 수용자를 제압할 수 있어야, 그들의 인력을 온전히 마석 광산에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 무렵.

강후는 당당하게 정문을 향해서 걷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간수의 발걸음으로.

【당당히 정문으로 오는 신강후를 간수들은 탈출을 시도할 수용자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시선과 밝은 조명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지만 그럴수록 신강후는 더 당당하게 걸었다.】

원작 내용에 충실한 발걸음이었다.

강후는 서둘러서 뛰지 않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바로 그때.

“정지!”

철컥!

정문 양옆 초소에서 동시에 조명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라이트가 강후를 비췄다.

간수도 순환 근무를 하기에 서로의 얼굴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

가까이서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면, 간수 동료인지 수용자인지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강후가 태연하게 소리쳤다.

“어이, 나다! 18동! 우리 18동에 불이 났는데 생각보다 불길이 거세 지원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 능청스럽게 굴었다.

동시에 양쪽 팔을 들어 엄지 끝으로 등 뒤를 가리키자, 강후에게 쏠렸던 시선도 뒤쪽으로 향했다.

“어, X발. 불이야?”

“어떤 새끼가 담배 핀 거냐?”

적절하게 관심이 쏠렸다.

이내 라이트는 바로 꺼졌고, 강후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그러는 사이, 강후는 시야에 들어온 차 한 대를 향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막 출발을 앞둔 차였다.

이미 운전석과 조수석에 간수 둘이 타고 있었다.

오픈 형태의 군용 지프차였기에 안에 어떤 간수가 탔는지 보인다.

해골 모양 세 개. 3급 간수다.

강후가 옷을 빼앗아 입은 간수는 2급 간수로 그들보다 상급자였다.

가까이 온 강후가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자, 운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탈옥자가 있다. 18동 북서쪽에 있는 철조망 사이로 나갔어. 놈이 빠져나갈 앞길을 잡으려고 한다.”

강후가 차분하게 답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이기에 모를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대답이라 아주 잠깐의 망설임이나 버벅거림도 없었다.

“······배정된 차가 있으실 텐데.”

조수석의 간수가 강후를 흘겨보았지만, 상급자이기에 더 토를 달지는 못했다.

“여기서 이런 대화로 힘 뺄 거냐? 아니면 내려서 걸어가길 바라는 거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원하시는 지점까지 먼저 이동해 드리겠습니다.”

강후의 질타에 운전수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액셀을 밟았다.

강후는 팔짱을 낀 채로 최대한 여유 있는 모습을 하고서,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렸다.

곧 앞의 두 놈이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릴 것이다. 분명 간수의 생김새와는 거리가 머니까.

게다가 핏자국도 자세히 살피기 시작하면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도 있다.

가리거나 숨기려는 행동 자체가 오히려 의심을 받을 수도 있고.

물론, 알아채는 시점이 몇 초라도 늦어질수록 정문에서는 그만큼 훨씬 더 멀어진다.

강후는 시간을 더 벌기로 했다.

“수용자 새끼들. 말을 안 듣는 놈들은 독방이 아니라, 그대로 죽이는 게 속 편한데 말이야.”

운전수가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이름만 헌터지, 자기들 앞가림도 못 하는 패배자들 아닙니까. 우리가 갱생시켜주는 겁니다.”

이클립스의 슬로건이 그랬다.

【쓸모없는 인간쓰레기를 쓸모있는 일꾼으로.】

강후가 청명 수용소로 납치되어온 것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덧씌웠기 때문이다.

서울에 한정되어 움직이는 정부와 공권력.

그 외의 지역은 완벽한 무정부 상태였다.

- 통과!

그 사이, 정문 밖의 최종 검문이 끝나고, 지프차는 본격적으로 수용소 밖으로 향하는 도로에 진입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적막이 흐른 뒤, 검문소와의 거리가 300m 이상 벌어졌을 즈음.

처음부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뒤를 계속 살피던 조수석의 간수가 가늘게 뜬 눈으로 물었다.

“2급 간수님.”

“어?”

“18동에는 언제 오신 겁니까?”

“그저께 왔다.”

“9조 근무셨나 보군요.”

“그렇지.”

이 부분까지는 강후도 아는 내용이기에 대답이 쉬웠다.

누굴 죽였는지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오늘 암구호가 뭐였습니까?”

간수들만이 알고 있을 암구호.

원작에도 언급된 바가 없으니,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이 날 리가 없다.

강후는 다른 답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견했던 결과.

답은 하나뿐이었다.

솨악! 퍼석!

전광석화처럼 옆에 내려뒀던 장검을 들어, 순차적으로 두 간수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검에 마나를 최대한 싣는 안배도 잊지 않았다.

버프나 스킬 형태로 발현되지는 않지만, 마나를 실으면 예기가 좀 더 강화되는 효과가 있어서다.

“흐윽······.”

“커걱······.”

1초 아니, 0.5초만 망설였더라면 거꾸로 당했을 정도로, 두 간수의 반응도 빨랐다.

눈알을 까뒤집은 채로 죽어가고 있는 운전수는 이미 왼손에 마법 스킬이 캐스팅된 상태였고.

조수석에 있던 간수는 오른팔을 쭉 뻗어, 강후의 어깨를 단검으로 노리던 참이었다.

쿠웅!

“크윽.”

운전수를 잃은 지프차가 산길을 따라 난 도로의 흙벽을 들이받고 멈췄다.

강후가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자칫 밖으로 튕겨 나갔을 수도 있었을 충돌이었다.

핑······!

그 순간, 세상이 마치 360도로 회전하는 것처럼 강후의 시야가 한 바퀴 돌았다.

“망할 마나 과민증.”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방금 일격에 힘을 싣느라 마나를 전부 끌어다 썼더니, 몸에 곧바로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다.

부우웅!

검문소 방향에서 엑셀이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헤드라이트가 향하는 방향을 보니, 이쪽으로 출발한 것이 틀림없다.

‘마지막 고비다.’

강후는 연신 고개를 휘저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아직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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