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다 해 먹는 천재 암살자-1화 (1/304)

1화 탈출 (1)

“강후야, 괜찮아?”

동료의 목소리에 강후가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살필 수 있는 녹슨 거울을 봤다.

테두리를 따라서 잔뜩 슬어있는 녹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핏자국도 같이 묻어 있다.

“음······. 주간 노동이 좀 무리였던 모양이네.”

창백하게 변한 얼굴을 보고 놀랄 법도 하지만, 강후는 무표정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선천성 마나 과민증 때문이다.

자주 일어났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으니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일장일단이 있는 병.

마나를 느끼고 교감하며 끌어당기는 능력에서는 남들에 비해 압도적인 강점을 갖고 있지만.

몸이 견뎌낼 수 있는 이상으로 마나를 사용하면 탈진하고 쓰러지고 만다.

즉 체력 소모가 심하다.

그렇기에 마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체력 회복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수용자를 마석 캐는 노예로만 보는 수용소에서 체력 회복은 언감생심이었다.

“버틸 수 있겠어?”

“신경 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라도 해.”

“······.”

강후의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동료는 이내 자신의 철제 침상으로 돌아갔다.

수용소 18동 인부 61명 중, 강후를 제외한 모두가 곤한 잠에 빠져 있다.

새벽 3시.

취침 시간인 자정, 기상 시간인 오전 6시의 완벽한 중간 지점이라 도저히 깰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낡은 침상 위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 없는 강후의 정신은 더없이 맑기만 했다.

‘인생이 참.’

강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상황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쓴 소설에 빙의했기 때문이다.

구원자가 된 빌런의 생활백서.

인기가 많았지만, 변수를 준답시고 막판에 낸 배드 엔딩 때문에 욕을 바가지로 먹은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사실 마왕의 부역자였고, 결국 세상이 마왕의 손에 넘어갔다는 최악의 마무리.

‘욕먹어도 싼 내용이었지. 차별화를 한다고 너무 무리수를 뒀어.’

몇 번을 곱씹어도.

무슨 고집에 정신이 나가서 그런 결말을 냈나 싶을 정도로 참담한 결말이었다.

만약 작중 주인공 – 엔딩에서는 빌런이 되지만 - 인 ‘장시환’에게 빙의했다면.

엔딩에서 5년 전인 지금, 세상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을 텐데.

하필이면 장시환의 대항마로 만든 비운의 빌런 ‘신강후’의 몸으로 빙의를 해 버렸다.

시니컬한 인물로 설계를 해 놓고 선천성 마나 과민증부터 해서 긍정적 요소를 말살시켜 놨으니······.

피폐한 정신으로 처박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며칠 사이, 정신적인 동기화가 완벽히 끝난 상태.

덕분에 빙의하기 전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물론 원작의 기억은 또렷하다.

‘탈출이 늦어질수록 세상을 구할 골든 타임도 함께 놓치는 거다. 낭비할 시간이 없어.’

이야기 속 신강후의 시작은 빌런이지만, 결국 엔딩만 놓고 보면 그의 본질은 구원자다.

진짜 빌런은 마왕 강림을 돕고, 이 세계를 통째로 마왕의 손에 넘겨버리는 존재.

주인공 장시환을 포함해 영웅으로 추앙받는 열세 명의 헌터, 바로 ‘열세 개의 별’이다.

‘그놈들의 입맛대로 잘 짜인 이 세계에서 빈틈을 찾는 건 쉽지 않겠지.’

신강후에게 설정된 특유의 염세주의가 감정을 잠식하지만, 그는 좀 더 먼 미래를 봤다.

어차피 마왕 엔딩을 보게 될 이야기의 끝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인간은 부역자들 뿐이다.

미래를 바꾸지 못하면 이러나저러나 죽는다.

딱히 살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

사실 깊은 고민할 것 없이 지금 목을 긋고 죽으면 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지독한 비관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원작에서 신강후를 세상으로 나가게 만든 유일한 빛이다.

강후는 그 시기를 앞당기고 싶었다. 바로 오늘로.

이유는 명확했다.

새 수용자가 들어오면서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야 했었던 간수들이 가장 지쳐있는 날이라서다.

【신강후는 그날 청명 수용소를 탈출하겠다고 마음먹었어야 했다. 그날의 망설임이 그에게 3년의 지옥을 선물로 남긴 것이다.】

환상처럼 아른거리는 원작의 기억.

강후는 고개를 저으며, 그 기억을 휘휘 털어냈다.

그리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거울을 살피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반드시 나간다.’

단기 목표를 정했다.

범죄 조직 이클립스(Eclipse)에게 관리되고 있는 거대한 인력 착취의 장.

청명 수용소를 탈출한다.

수용소 밖이라고 해서 세기말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천국처럼 느껴질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몸의 자유는 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정도면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 * *

얼마 후.

“1분이다. 그 이상이면 네 똥은 안 끊겨도, 목숨은 끊길 거다.”

“예.”

강후는 간수의 감시 속에 수용소 바로 옆에 마련된 간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화장실 특유의 악취와 더불어 시체 썩는 냄새도 함께 풍겨왔다.

원래는 수용소 내에도 화장실이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 안에서 목을 매고 자살하는 수용자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궁여지책을 낸 것이다.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이 수용소는 사실상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이 화장실도 그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였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강후가 주변을 살폈다.

기억대로 밖에서 누군가가 발로 찼는지 외관이 찌그러지며 안으로 날카롭게 들어온 부분이 보인다.

살점을 그어 상처를 내기 딱 좋을 날카로움과 길이다.

스으윽!

강후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그었다. 그러자 선혈이 철철 쏟아지며 바닥을 적셨다.

남은 시간 50초.

강후가 피를 잉크로, 반대편 손가락을 붓으로 삼아 좁은 화장실 바닥 위에 오망성을 그렸다.

소환 의식이다.

성좌 ‘차원 강탈자’를 불러내는 의식.

지금의 강후에게 이 성좌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차원 강탈자가 부여해줄 수 있는 성좌 특성은 전부 잠재력을 폭발시켜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레벨 10 헌터의 육신으로만 수용소를 탈출하기에는 다수의 난관이 있다.

당장 문밖에서 장검을 든 채 기다리고 있는 간수만 해도 레벨이 45다.

헌터 경험을 쌓은 지 최소로 잡아도 1년은 됐다는 얘기다.

즉, 정면 승부로는 힘들고, 상황을 단번에 반전시킬 수 있는 힘의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안 싸냐, 새끼야?”

날이 선 간수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바닥을 긁는 쇳소리도 같이.

40초.

오망성이 반짝이며 특유의 검붉은 생기가 피어올랐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강후가 오망성에 닿을 듯 말 듯 손바닥을 올린 채, 머릿속에서만 맴돌 생각의 말을 꺼냈다.

‘내 운명을 관찰하고 있다는 걸 알아. 그리고 당신이 계약자의 비극, 시련, 슬픔에 열광하는 것도.’

······.

답은 들리지 않는다.

성좌와의 계약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다. 오고 가는 말의 교감과 의식을 필요로 한다.

차원 강탈자는 ‘하찮은’ 인간의 반말에 감정이 상할 옹졸한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흥미를 느끼지.

‘당신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나야.’

역시 무응답.

강후는 원작에서 차원 강탈자가 미래를 비관하고 부정하던 신강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당신이 하루를 망설일수록, 이 세계에 찾아올 희망은 몇 배, 몇십 배로 더 멀어질 거야.’

앞으로의 삶이 결코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세상이 악마라고 손가락질을 할 빌런에게 빙의했으니.

또 마왕의 부역자들이 능숙하게 짜놓은 선전 선동의 틀, 프로파간다를 정면으로 들이박아야 한다.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이제 생생하게 현실이 된 세계에서 의미 없이 소모품처럼 죽고 싶진 않았다.

바로 그때.

【당돌한 놈. 네게 고귀한 성좌의 힘을 경험할 아주 짧은 시간을 주겠다. 증명해봐라.】

‘됐어.’

강후가 웃었다.

그가 성좌로서 계약자를 지정하면 세 가지 특성을 부여한다.

첫째, 학습한 혹은 학습할 모든 스킬의 숙련도를 최대치로 유지시킨다.

둘째, 보스 스킬을 나의 것으로 강탈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셋째, 다른 헌터를 죽였을 경우 그가 섬기던 성좌와의 계약을 강탈할 수 있다.

하나 같이 계약자로 하여금 강력해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다.

그리고 지금 강후가 재미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첫째, 스킬 숙련도다.

【신강후 Lv. 10】

【클래스 : 암살자】

【클래스 스킬 보유 : 단거리 도약(레벨 1 획득) / 횡이동(레벨 10 획득)】

【기타 스킬 보유 : 없음】

【고유 재능 : 제법 우수한 주력 / 대단히 뛰어난 동체 시력】

비록 스킬은 두 가지밖에 없지만, 요구받은 증명에 문제는 없을 듯했다.

그가 말하는 증명이란, 손에 피를 묻히는 것에 두려움이 없음을 보이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밖의 간수, 그놈의 숨통을 끊으라는 뜻이다.

20초.

“······.”

강후가 숨을 죽였다.

그사이, 임시로 특성을 부여받은 강후의 두 스킬은 전혀 다른 형태가 되어 있었다.

스킬 숙련도는 레벨 1에서부터 시작, 레벨 20이 되어야만 비로소 최대치가 된다.

숙련도 작업은 오랜 시간의 꾸준함을 필요로 하는데, 아무리 서둘러도 최하가 5년이었다.

물론 최대치를 찍는 것은 의미가 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스킬의 유지 기간부터 시작해서 거리, 파괴력 등등 모든 계수가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게 변했다.

1m나 뛰면 다행일 단거리 도약 스킬은 12m를 단숨에 좁히는, 사실상의 공간이동 스킬이 됐고.

살짝 측면으로 회피하는 수준인 횡이동 스킬은 은신 상태에서 대상의 등 뒤로 이동하게 됐다.

전자와 후자를 누가 같은 스킬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이것이 신강후라는 인물과 성좌인 차원 강탈자의 시너지다. 사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5초.

“이 새끼가······!”

끼익!

간수는 나올 기색은 없는데,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는 강후에게 괘씸함을 느끼고 문을 열었다.

어차피 수용자가 하나 죽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어차피 ‘법’이라는 것이 그나마 기능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서울이 전부니까.

그 외에는 군벌과 범죄 조직, 용병들의 질서가 잡힌 세계다.

힘이 법이다.

강한 힘 앞에서는 살인도 죄가 되지 않는다.

바로 그때, 간수는 분명히 아주 잠깐이지만 강후의 모습을 봤다.

눈빛이 정확하게 마주쳤었으니까.

하지만 마치 사람이 투명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말이 되지 않는다.

겨우 레벨 10에 불과한!

자신보다 레벨이 35나 낮은, 보잘것없는 실력의 수용자를 자신이 놓칠 리 없다.

그런데.

푸우욱!

“커억!”

경동맥을 뚫으며 들어온 차가운 금속성의 무언가가 목의 중심점을 그대로 관통했다.

비명을 더 토해낼 것도 없는 완벽한 치명상이었다.

간수의 목 옆에 강후가 꽂아 넣은 것은 젓가락이었다.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이 없을 때, 깨끗하게 자신의 목숨줄을 끊기 위해 쓰려고 마음먹었던 무기.

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는, 젓가락의 방향을 자신이 아닌 적으로 바꿔주었다.

그리고.

【계약은 성립되었다.】

고귀한 성좌가 레벨 10의 볼품 없고 형편없는, 초라한 헌터의 부름에 응했다.

레벨 100을 넘어도 차원 강탈자와 같은 고위급 성좌와의 계약은 꿈도 꾸지 못하는 대다수의 헌터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이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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