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
지켜보던 이들이 순간 말을 잃었다.
모인 이들 모두가 무인이었다.
그것도 무림맹의 정예, 무력대에 속한 내가기공의 고수들이었다.
그렇기에 매화신협이 눈을 뜨는 순간, 자연스럽게 발한 영성을 모두가 느꼈다.
신비를 담은 기운.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저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건만, 매화신협에 압도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세에 삼켜졌다.
그래서 그의 입을 열릴 때만 하여도 무슨 말을 할지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그들이 기대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운기조식을 처음 보냐고……?”
“잘못 들은 거겠지?”
모두가 당혹감을 터트릴 무렵.
“대주님!”
“괜찮으십니까?”
서둘러서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멸절대였다.
그들은 전투가 끝나고 마지막 현장으로 찾아왔다가, 천휘가 운기조식하는 것을 보자마자 원형으로 호법을 서고 있었다.
그러다 천휘가 눈을 뜨자마자, 바로 달려간 것이다.
천휘의 말에 당혹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천휘가 뱉은 말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정도였다.
그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편 천휘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상자는요?”
천휘가 그들을 보며, 물었고.
“사망자는 없고, 부상자만 삼십이오. 다행히 며칠 요양하면 될 경상만 있고 중상은 없소.”
단리관천이 빠르게 대답했다.
멸절대의 상황은 진작 파악해 둔 채였다.
천휘가 슬쩍 멸절대를 훑어봤다.
그 시선에 멸절대원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경외의 시선을 내비쳤다.
“그 정도면 괜찮네요.”
“그보다 대주는 괜찮소?”
단리관천이 걱정하며, 물었다.
미간을 와락 좁힌 그의 시선은 천휘의 가슴팍에 단단히 여며져 있는 붕대를 향해 있었다.
하얀 붕대는 피로 붉게 물든 상태였다.
아마 깊은 상처이리라.
“이 정도는 별거 아니죠.”
단리관천의 걱정과 달리 당사자인 천휘는 매우 담담했다.
‘이게 뭐라고.’
남들이 보기엔 중상처럼 느껴질 터였지만, 천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침 바르면 나을 정도가 아닌가.
“그렇다면 다행이오.”
단리관천이 고개를 주억일 즈음.
“대주. 날도 쌀쌀한데 계속 그런 모습으로 있기는 좀 그렇지 않아?”
호광개가 웃으며 바짝 다가왔다.
“이거라도 걸치는 게 어때?”
미소를 지은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 위에는 검은 장포가 있었다.
천휘는 바로 앞에 내밀어진 장포를 보다가 자신의 상체를 바라봤다.
붕대만이 상체를 조금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임시로 상처를 막았던 상의는 피로 물들어 버려 버린 지 오래였으니.
“안 그래도 필요했어요.”
천휘는 바로 장포를 잡아서.
휘리릭―
호쾌하게 몸에 걸쳤다.
그리고 호광개와 어느새인가 그 뒤에 도열한 멸절대를 보며 말했다.
“잠깐 모두 대기하고 있어요.”
담백한 명령을 내린 천휘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걸어갔다.
육원이 있는 쪽이었다.
다가오는 천휘를 본 육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몸은 괜찮은가?”
“이 정도면 멀쩡하죠.”
“그렇다면 다행이군.”
육원이 눈웃음을 지을 무렵.
“이제 복귀하나요?”
천휘가 물었다.
내려진 임무는 끝마쳤다.
불사천교주는 명을 달리했고, 불사천교 본단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형체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임무 수행이었다.
“그러네. 마침 뒷정리도 거의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돌아갈 때지.”
육원이 웃음을 흘리며, 말한 뒤.
휙―
몸을 돌렸다.
그리고 주변을 보며, 소리쳤다.
“모두 떠날 준비하게!”
사자후가 곳곳에 뻗쳤다.
그에 막 정리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던 무림맹 무인들이 곧바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부상을 당한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강남 무림.
사파의 영역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그들이 몰려올지도 몰랐으니, 서둘러야만 했다.
“중상자들은 번갈아 가며 업어라!”
“이제부터 쉴 새 없이 나아간다!”
“마음을 놓지 마라! 아직 임무는 끝이 아니다! 맹으로 복귀할 때까지가 임무란 것을 잊지 말아라!”
사방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전투가 끝났다고 혹시나 긴장감이 풀렸을까, 정신을 차리게 하는 외침들이었다.
육원은 자신이 더 말할 필요 없이 사자후를 터트리는 이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다가,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한 번 더 외쳤다.
“이제 복귀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휙― 휙―
수백의 무인들이 보법을 펼쳤다.
무림맹으로 복귀하기 위해서.
* * *
불사천교 본단은 엉망이 되었다.
중앙에서 만민을 내려다보던 천통각은 그 형체조차 찾기 힘들 지경으로 부서졌고, 그 주변의 전각과 바닥 또한 아예 뒤집혀 있었다.
온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황폐화된 땅에서.
“아아. 신께서…….”
“말이 안 되는 일이로다.”
통곡의 소리가 울려 왔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그대로 놔두고 간 불사천교 교도들은 불사천교주라는 ‘신’을 잃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눈앞에 불사천교주의 수급과 그 잘린 몸뚱아리가 나뒹굴고 있음에도.
그때.
“신, 신…… 나의 신이시여!”
광기에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사천교 교도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낯익은 이가 서 있었다.
불사천교의 이사자, 망혼사자였다.
“어찌 이러한 일이…….”
그의 눈에 광기가 차올랐다.
그 기운이 섬뜩할 정도였다.
혼란으로 가득한 기운을 사방에 퍼트리던 그는 바닥에 나뒹구는 불사천교주의 초점이 맺히지 않은 눈을 마주하며, 무릎을 꿇었다.
느릿하면서도 정중한 행동.
곧 그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뻗어서 불사천교주의 수급을 쥐었다.
아주 조심스러웠다.
곧 그가 수급을 품에 안았다.
이미 피는 바짝 말라 있었고, 생기는 한 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차가움만이 그를 반겼다.
주르륵―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시뻘건 피눈물이었다
곧 그는 수급을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돌려서, 악문 이를 달싹였다.
불사천교의 교도들을 향해서였다.
“신의 복수를 원하지 않느냐?”
광기에 찬 그 목소리에 교도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신의 복수.
그 말이 신을 잃은 상실감에 넋을 놓고 있던 그들의 정신을 크게 일깨웠다.
“원한다면 나를 따르라.”
그의 말이 섬뜩하게 퍼졌다.
그런데 묘했다.
분노에 타오르는 것치고 그가 흘린 음성의 기파는 매우 차분했다.
그 순간.
번쩍!
그의 눈에서 광망이 터져 나왔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혼란의 기운.
멸천신마기의 마성이었다.
이내 그가 손에 들린 불사천교주의 수급을 번쩍 들며, 크게 소리쳤다.
“신의 복수를 하고, 너희들에게 불사라는 영생을 안겨 줄 것이니!”
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육합전성이었다.
일순간 육합전성으로 변모한 음성이 교도들의 뇌리에 강렬히 박혔다.
마치 불사천교주의 음성처럼.
망혼사자는 눈에 생기를 찾기 시작한 교도들을 보며, 내공을 폭사했다.
“신을 죽인 하늘을 멸하리라!”
* * *
빠른 속도로 북상해 귀주를 벗어난 무림맹 무인들이 선박에 올라탔다.
“오셨군요.”
“휴우, 언제 오실까 했습니다.”
선박에서 오매불망 무림맹 무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이들은 복귀하는 그들을 보자마자 화색이 되어 반겼다.
“헉, 헉.”
“드, 드디어 끝난 건가.”
하나 며칠간 급하게 달려왔던 이들은 녹초가 되어, 선박에 올라타자마자 인사를 받아 주는 대신 곧바로 대자로 뻗었다.
꼬박 사흘이었다.
그동안 그들은 제대로 된 식사는커녕, 오직 물만 마시며 길을 내달렸다.
“으으, 죽겠다.”
“피곤…….”
게다가 수면조차 취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몇몇은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배에 도착하자 안심이 되며 피로가 몰려온 탓이었다.
그나마 내공의 화후가 깊은 자들은 운기조식을 취하며, 안정을 취했다.
“후우, 드디어 안도할 수 있겠군.”
육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다.
불사천교주를 죽이고, 복귀라니.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모두 소협 덕분이지만.”
그의 시선이 천휘를 쫓았다.
선박에 올라탄 그는 어느새 도복으로 갈아입고,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손짓.
마치 바람을 움켜쥐는 듯한 행동이었는데, 어딘가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때.
스윽―
돌연 그의 손짓이 거칠어졌다.
격랑과도 같은 손짓이었다.
그 여파가 상당했다.
그의 손에서 흐르던 유연한 손짓의 기운이 크게 요동을 치며 흘러간 것이다.
“소협. 왜 그러는가?”
육원이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휘는 손을 거두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거세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쥐새끼들이 있어서요.”
“쥐새끼?”
육원은 중얼거리다 화들짝 놀랐다.
그 순간 천휘가 손을 털어 냈기 때문이다.
파앙!
털어 낸 장심에서부터 공기가 사방에 터져 나가며, 밑으로 내리꽂혔다.
장강을 향해서였다.
불투명한 원형의 기파는 단숨에 장강의 물과 부딪치며, 큰 파도를 만들어 냈다.
“헙!”
“흐, 흔들린다!”
그에 갑작스럽게 선박이 크게 흔들렸다.
몇몇 잠들었던 이들마저 흔들리는 선박에 화들짝 놀라며 깨어날 무렵.
콰아아앙!
폭발이 터지며, 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사이로.
타앗!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단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허리 끝까지 기른 사내였다.
“이, 이런 무공이……!”
물을 박차고 나타난 그는 경악한 얼굴로 재빨리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다 침음을 흘렸다.
자신처럼 공격에서 벗어난 이는 없었다.
솟구치는 강물 아래 처참한 몰골의 수하들과 붉은 피만이 보였다.
‘오십의 수하들이…….’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었다.
고작 장법으로 장강이 폭발했다.
듣도 보도 못한 무위였다.
일천의 십야문도들 중에서 단 오십 명밖에 없는 백야(白夜)인 자신조차도 이러한 무위는 불가능했다.
아니, 자신뿐이랴.
십야문의 중심전력 환야(幻夜)들이라 해도 이러한 무공을 보일 수는 없으리라.
‘매화신협이란 꼬맹이가 이런 무위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탄 선박이 도착한 것을 알고 정보를 얻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떠한 것보다 놀라운 정보를 손에 넣은 참이었다.
‘당장 문주님께 전해야 해!’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이 정보보다 더한 것은 없었다.
어쩌면 십야문의 앞길에 가장 방해되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가 재빨리 휘청거리던 몸을 바로잡은 뒤 백야총결(白夜總結)의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내 발에 새하얀 공력이 맺힌 순간.
그는 곧바로 요동치는 물결을 박찼다.
그의 신형이 명멸하며, 이제야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관통하며 나아갔다.
“쟤는 정말 쥐새끼네.”
천휘는 빠르게 멀어져 가는 사내를 보더니, 검지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한 줄기의 적광이 쏘아졌다.
검지에서부터 쏘아진 적광은 단숨에 사내의 심장에 닿았고.
푹!
그대로 관통하며 지나갔다.
사내의 몸에서 흐른 핏물이 꽃잎처럼 사방에 흩날리고, 몸뚱이는 달려가던 그대로 고꾸라져, 풍덩 빠졌다.
절명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장법에 폭발했던 물들이 아래도 다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
비처럼 물이 쏟아지고 나서야 흔들렸던 배도 천천히 중심을 잡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뭐 하려…… 헙!”
뜬금없는 출수에 당황하던 이들은 강물에 크게 번지는 핏물과 둥둥 뜬 사체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시체?!”
“숨어 있던 자들인가!”
모두가 놀랄 무렵.
“쥐새끼들도 다 잡았으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천휘가 태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