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마-304화 (304/391)

304화

본단의 중앙에 침묵이 드리워졌다.

소리 하나 없는 고요함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내려앉았다.

냉랭하고, 차가웠다.

근방에서 두 절대 고수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경악이 어린 시선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귀주에서 신으로서 군림해 오던 절대자, 불사천교주가 화산의 어린 도사의 검에 의해서 쓰러진 것이다.

울컥―

피를 한바탕 쏟아 내면서.

고요한 충격이 요동쳐 갔다.

‘충격’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지금 눈앞에 광경이 펼쳐져 있음에도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몇몇 이들은 이게 환상이거나 꿈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가 떠도, 시간이 흘러도 눈앞의 광경은 그대로였다.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이것이야말로 꿈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

그렇게.

점차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요동치던 충격은 물결이 일 듯 빠르게 퍼지더니, 어느 순간 적막이 깨어졌다.

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반응한 것은 불사천교의 교도들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신이 쓰러지실 리가 없다.”

“……교주님!”

경천동지할 대결의 결과를 마주하게 된 그들은 혼란에 빠져 갔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불사천교주는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그렇기에 불사천교주가 패배를 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눈앞에 벌어졌으니.

깊은 혼란이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편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싸움을 바라보던 육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또한 믿기 힘들었다.

직접 목도한 불사천교주의 무위는, 신위는 그 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세상을 비트는 경천동지할 신위.

괜히 귀주에서 신처럼 군림하고 무림맹에서 경계하던 이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쓰러졌다.

단 한 명의 검에 의해서.

“정말 쓰러트릴 줄은…….”

그의 눈이 천휘를 향했다.

은은한 적빛이 감도는 검을 아래로 늘어트린 모습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보다 상처를…….”

육원이 천휘의 가슴팍에 쩍 갈라진 상처를 보며, 움직이려고 할 때.

“즉사는 아니네.”

불현듯 천휘가 입을 달싹였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투명한 눈동자가 아래로 떨어지며, 한곳을 향했다.

불사천교주를 향해서였다.

허리춤에 기나긴 혈흔이 새겨진 그의 모습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누운 주변에 피가 번지고 있었다.

다 그가 흘린 피로, 즉사할 만한 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는 죽지 않았다.

피로 물들어 있는 그의 입가에서 아주 가느다란 숨결이 느껴졌다.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고수는 상단전이 발달하기 마련이었고, 그에 따라 선천지기가 강해지는 법.

특히나 지고의 경지에 오른 불사천교주였으니, 극한으로 발달된 선천지기가 그의 명을 질기게 만들었다.

“상당히 끈질기단 말이지.”

그를 바라보던 천휘가 손을 움직여, 넝마가 된 상의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가슴팍에 흐르는 출혈을 막기 위해서 대충 묶은 뒤.

저벅.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천휘가 내디딘 걸음 뒤로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며, 흔적을 남겼다.

곧 그는 쓰러진 불사천교주 앞에 섰다.

천휘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처참한 몰골로 누워 있던 불사천교주의 시선이 들리며, 눈이 마주쳤다.

뜻밖에도 무심한 눈빛이었다.

이제 곧 죽음을 앞에 둔 자치고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평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죽음을 받아들였나?’

그때 불사천교의 입이 달싹이고.

“놀…… 라운 무위…… 였도다.”

떨리는 육성이 들려왔다.

마성이 깃든 육합전성이 사라진 그의 음성은 의외로 평범했다.

“그 초식…… 의 이름…… 이 무엇이더냐.”

“영겁천하만리향.”

“영겁천하만리향…….”

불사천교주가 음미하듯 속닥였다.

그러기를 잠시.

“본좌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좋은 검이었도다.”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회광반조라도 되는 것일까.

생기를 잃어 가던 무심한 눈에 시퍼런 광망이 감돌기 시작했다.

영롱하면서도, 섬뜩하게 느껴지는 빛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멸천신마기가 흩어지는 대신에 삼단전이 열린 것이다.

스으으으―

그의 몸에서 희미한 광채가 흘러나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그를 감쌌다.

지고의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가 흘리는 선천지기는 신비를 불러냈다.

불사천교주가 천휘를 똑바로 봤다.

직후 그가 피로 물든 입을 뗐다.

“본좌를 쓰러트렸다고 한들, 불사천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본교의 교리가 존재하는 한 본좌를 대신해서 새로운 이가 나타나, 교를 다스릴 터이니.”

“뭐, 그건 그렇겠지.”

천휘가 나직이 동조했다.

“교주가 죽는 것으로 사라질 거라면 그건 교가 아니잖아.”

“마치 교의 생리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이 말하는구나.”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

천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모습에 불사천교주의 눈이 살짝 커지려던 찰나, 천휘가 입을 뗐다.

“더 할 말 있어?”

“……없도다. 패배자가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불사천교주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뒤이어 그가 바로 말을 덧붙였다.

“승자의 뜻대로 하도록.”

그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내뱉은 음성이 파문을 일으켰다.

삼단전에 축적되어 있던 멸천신마기와 선천지기를 더 이상 붙잡지 않고, 자연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그를 본 천휘가 씩 웃었다.

선천지기가 올라온 김에 괜한 수작을 벌일 줄 알았는데, 꽤 시원한 태도였다.

“좋아. 그럼 끝내자고.”

천휘가 화월을 치켜들었다.

무색의 강기가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은은한 적빛을 반사했다.

“꽤 재미있었어.”

그와의 대결에 대한 감상인 듯한 말을 내뱉은 천휘의 손이 움직이고.

번쩍!

화월이 적광의 빛줄기로 화했다.

좌에서 우로 그어진 검격은 불사천교주의 명줄을 단숨에 끊어 냈다.

수급이 나뒹굴었다.

그렇게 그의 죽음으로써 불사천교와 무림맹의 싸움은 종결되었다.

* * *

불사천교주의 죽음으로 전투가 종결되고, 이각 뒤.

엉망이 된 불사천교의 본단을 무림맹의 무인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처참하군.”

협위대주가 주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멀찍이서 싸움의 여파만 느낄 때도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으나 직접 본 내부는 생각 이상으로 엉망이었다.

아니, 엉망 수준이 아니었다.

온전한 전각은 존재치 않았고 사방에 흙바닥의 공터만이 존재했다.

“보고도 믿기 힘들군.”

훑어보던 그가 혀를 내둘렀다.

신화 속 신들의 싸움이 끝난 곳이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그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 끝.

상체에 붕대를 감싼 청년이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바로 천휘였다.

그의 주변 일정 거리에는 멸절대원들이 지키듯이 호법을 서고 있었다.

두 눈을 부라린 채였다.

그들은 천휘를 보는 이들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모두의 관심은 천휘에게 쏠려있는 상황이었다.

모두 목격하지 않았던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부서지며 솟구치는 격렬한 신위를.

그리고 그 놀라운 일을 벌인 자가 다름 아닌 저 천휘이니, 어느 누가 관심을 안 보일 수가 있겠는가.

“소협의 무위가 맞는 건가…….”

“사실이네.”

혼잣말에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협위대주가 빠르게 가까워진 인기척에 고개를 틀었다.

그곳엔 육원이 있었다.

치료를 받고 온 것인지 붕대를 전신에 감싼 그는 협위대주가 아닌 천휘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이 온갖 경외로 가득했다.

“소협이 홀로 불사천교주를 쓰러트렸네.”

육원이 쓰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방해만 될 정도였네.”

협위대주가 허하고, 숨을 터트렸다.

육원과 은설설, 기중학은 자신과 비교해도 실력이 밀리지 않는 자들이었다.

한데 그들이 방해라니.

“설마 소협이 그런 실력을 지녔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협위대주가 혀를 찼다.

동시에 궁금증도 일었다.

과연 정말로 천휘가 그만한 무위를 지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곧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인가.

전쟁이 끝난 뒷정리를 마저 하는 게 급선무였다.

궁금증을 털어 낸 협위대주는 주변을 바라보며, 육원에게 물었다.

“그보다 이제 어쩔 생각이십니까?”

“뭐, 더 할 것이 있겠는가.”

육원이 웃으며, 말했다.

“임무도 끝났으니 정리가 되는 대로 무림맹에 복귀해야지 않겠나.”

“저 교도들을 놔두고 말입니까?”

육원이 슬쩍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곳에만 몇백 명에 달하는 불사천교 교도들이 넋을 놓고, 가만히 있었다.

불사천교주의 수급을 보면서였다.

“교주님이…….”

“……죽으셨다는 말인가.”

주변으로 무림맹 무인들이 포위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곳에 눈길도 주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중얼거렸다.

그들의 풍기는 허무함과 허탈감이 여기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저들이 뭘 할 수 있겠나?”

육원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도망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이곳까지 들어와, 교주의 수급을 앞에 두고 가만히 있지 않았는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었다.

“그렇다면 도망친 자들은…….”

협위대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불사천교 교도들 모두 이렇게 전의를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절반가량이 도망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광명사자가 있었다.

협위대주는 그가 도망치기 전 불사천교 교도들을 이끌며 하던 말을 되새겼다.

‘저것은 껍데기다! 교주님께서는 인간의 거죽을 벗고 새로운 몸으로 환생하실 터이니, 모두 몸을 숨기고 다시 신을 모실 준비를 하여라!’

“그들을 놔두면 후에 피를 보게 될 겁니다.”

협위대주가 힘을 주어 말했다.

전면에서 전투에 앞장선 그는 느꼈다.

불사천교의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광명사자는 자신과 파마대주의 합격에도 밀리지 않았지 않은가.

그런 자가 열두 명이나 더 있었다.

특히 일사자는 십삼 사자 중에서도 그 무위가 월등하다 할 정도라 했으니, 이대로 살려 두기엔 영 찜찜했다.

하지만.

“그대로 놔두세.”

육원은 반대했다.

“이미 끝난 일이네. 불사천교주란 구심점을 잃은 그들이 다시 힘을 합치려면 시간이 걸릴걸세.”

“하지만…….”

“부상자들이 많네.”

육원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불사천교주를 죽임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출혈이 컸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백을 넘었고, 중상자는 거의 반절이었다.

남은 자들을 쫓기에는 버거웠다.

“그리고 그들을 쫓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가? 천하 방방곡곡에 불사천교의 지부만 해도 수십을 넘네. 지금 그들을 모두 잡으려면 시간과 인력이 상당히 필요하단 걸 자네도 아주 잘 알지 않은가.”

육원의 말에 협위대주가 입을 다물었다.

그 말대로였다.

천하 방방곡곡에 알려져 있는 불사천교 지부만 해도, 사십을 헤아렸다.

그렇게 퍼진 그들을 모두 잡는다는 것은 육원의 말처럼 불가능에 가까웠다.

입을 다문 협위대주를 본 육원이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만 상기하게. 불사천교주와 본단을 부수는 것이 목적이지, 그들을 멸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만…… 하아.”

협위대주가 한숨을 내뱉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불사천교주를 죽이고 본단을 점령했으니, 아예 멸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것보다 소협이 괜찮을지 모르겠군.”

육원이 다시 천휘를 응시하며 작게 말했다.

그의 신경은 지금 다른 무엇보다 천휘에게 모조리 쏠려 있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이곳 주변에 있는 무림맹 무인들의 대다수가 천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사천교주를 죽인 절대고수.

거기다 그 나이가 이제 막 약관을 넘어선 어린 나이라는 것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스윽―

감겼던 천휘의 눈이 뜨였다.

순간 모두가 숨을 삼켰다.

가늘게 뜨인 눈동자에 머문 광망이 그들의 눈빛을 사로잡았다.

영성스러울 정도로 선명했다.

운기조식을 통해 쌓인 매화신공의 내력이 눈빛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숨을 죽이며 볼 때.

“응?”

완전히 눈을 뜬 천휘는 자신에게 쏠린 수많은 시선을 확인하곤 의문을 띄웠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운기조식하는 것 처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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