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내 의지로는 별동대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단 것이오?”
단리관천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그렇죠.”
천휘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당신만이 아니에요. 지금 여기 있는 전부 다 나갈 수 없어요.”
천휘가 뒤를 슬쩍 보며, 말했다.
“설마 별동대가 어디 객잔도 아니고, 마음대로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대다수가 속으로 뜨끔했다.
천휘는 그러한 그들의 반응을 모두 꿰뚫어 보곤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사흑련과의 전쟁에서 최전방의 임무를 맡게 될 별동대예요. 즉,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르는 부대인데, 마음대로 나간다라…….”
자연스럽게 뇌까리는 천휘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내려앉으며, 안 그래도 신법을 펼치는 것에 벅차하던 이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왜요? 목숨은 걸지 않고, 어중간한 명성만 얻어 보려고 했어요?”
단리관천을 비롯한 대다수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천휘가 그들을 한 명씩 훑었다.
그러나 그들은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창피한 건 아나 보네.
씩 웃은 천휘가 입을 달싹였다.
“그렇다면 그건 강호를 너무 얕보는 처사인데.”
단리관천과 몇몇 대원의 가슴팍에 천휘의 말이 비수처럼 날카롭게 꽂혔다.
그때 호광개가 호방하게 웃었다.
“하하핫! 그 말이 맞지. 누가 그런 마음가짐도 없이 이런 별동대에 입대하겠어. 안 그래?”
무홍은 자신을 보며 말하는 호광개와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나는 이미 별동대에 뼈를 묻기로 작정했네.”
대답하는 무홍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그에게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종남파에서는 입지가 다소 애매한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 무홍이기에, 그는 이번 별동대 임무로 명성을 쌓고, 무공을 연마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홍은 아까 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한데 대주. 하나 궁금한 것이 있소만, 물어봐도 되겠소?”
천휘는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무홍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해 봐요.”
“지금 무슨 임무를 하러 가는 것이오?”
순간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일을 해야 한다고 할 때부터 계속 궁금했던 것이지만, 분위기에 휩쓸려서 누구도 뱉지 못한 물음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천휘는 무홍을 지그시 응시했다.
“따라오면 알아요.”
일방적인 통보와도 같은 말에 무홍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으나.
“……알겠소.”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지금 그는 일개 대원.
앞의 천휘는 대주였기 때문이었다.
오호, 마음에 드는걸.
천휘는 곧장 수긍하는 무홍이 썩 마음에 들었다.
보통 거대 문파의 후기지수라면 대답을 듣기 위해 계속 캐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홍은 아니었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알았다.
지금은 종남파의 후기지수가 아닌 일개 별동대원이라는 것을.
“쩝, 이러다 늦겠어.”
천휘는 이야기를 하느라 잠깐 늦춰졌던 속도에 혀를 차고는, 대원들을 향해 입을 뗐다.
“속도 더 올릴게요.”
말을 마친 즉시 천휘가 땅을 거칠게 박차고.
휙― 휙―
그 뒤를 일행들이 힘겹게 쫓았다.
일행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어둠을 뚫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타다닷―
“헉, 헉.”
침묵 속 땅을 내디디며 뛰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귀에 울렸다.
몇몇은 거의 탈진이라도 할 것처럼 지쳐 있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동쪽에서 무림맹을 떠날 당시에 모습을 감췄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벌써 한나절이 지난 건가.”
속닥이던 무홍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그의 몸은 지친 상태였다.
하룻밤을 꼬박 새운 행군.
그것도 한 번의 휴식조차 취하지 않은 채 계속 걷고, 달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이었으니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얼굴에 피로가 드리워진 호광개가 앞을 보며 혀를 찼다.
“……허참. 대주는 멀쩡한걸.”
맨 선두에서 쭉쭉 나아가는 천휘의 모습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방금 전에 신법을 펼친 것처럼 쌩쌩하기까지 했다.
‘거기다가 지독하단 말이지.’
그의 시선이 천휘의 등을 담았다.
참으로 고약한 인물이었다.
지금 쫓아오는 이들 중 몇몇은 중간에 떨어질 위기를 여러 번 맞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천휘는 신법을 멈추고 걸어갔다. 그러다가 지쳤었던 이들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싶으면 다시 신법을 펼쳤다.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건가?’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이 많은 사람의 내공을 파악하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하지만 그것이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계속 이어지자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우연이 아니라 천휘의 실력 때문이란 것을 알아챘다.
‘……과연 소문대로야.’
그때 천휘가 멈춰 섰다.
비천행보를 거둔 채 전방에 있는 산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인가?”
천휘의 시선이 은은하게 산을 밝히고 있는 미명(微明)을 훑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는걸.”
천휘가 만족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밤새도록 신법을 펼치며 달리고 지쳤을 때조차 멈추지 않고 걸어서 이동한 덕분일까.
원래라면 시간이 더 걸렸을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천휘는 몸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하나둘 도착해서 자리에 멈춰 선 이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들을 보던 천휘가 짤막하게 말했다.
“반 시진만 휴식하죠.”
그 순간.
털썩―
서서 힘들게 숨을 고르던 대원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몇은 대자로 뻗어서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주, 죽는 줄 알았어.”
“이렇게나 고단하긴 처음이야.”
천휘는 그들에게 향하던 시선을 거두며, 매화신공의 내력을 끌어냈다.
순식간에 퍼지는 기감.
천휘가 잔뜩 벼려진 감각 속 안광을 빛내며 눈앞의 산을 살펴봤다.
‘쩝, 적긴 하네.’
산속에 느껴지는 인기척.
그 수는 얼추 백여 명을 살짝 넘는 인원이었다.
‘그래도 실전을 경험해 보기엔 좋으려나.’
기척을 꼼꼼히 확인한 천휘는 이내 내공을 갈무리했다.
찰나의 순간에 갈무리된 내공을 재정비한 천휘가 이제는 자신의 수하가 된 별동대원들을 쳐다봤다.
약 열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뻗어 있거나,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눈치 빠른 애들이 있네.’
그는 다들 편하게 휴식하기 바쁜 가운데 운기조식을 취하는 이들을 봤다.
그들은 별동대를 뽑을 때에도 눈치 좋게 천휘의 기준이 족적임을 알아챈 자들이었다.
‘지금이라도 싸울 거니까 운기조식을 취하라고 하면 편하겠지만…….’
천휘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실전.
말로 알려 주는 건 의미가 없었다.
직접 부딪치고, 깨달아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짓거리를 벌였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그것보다 더 깨닫기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
한편 휴식을 취한 덕분에 한결 나아진 이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목적지인가?”
“이곳에서 뭐 하려는 거지?”
그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쉴 새 없이 달려왔건만 도착한 곳은 그냥 야산이었으니, 의아할 만했다.
그런데 그때.
“……그렇군.”
회색의 도복을 걸친 도사가 무언가를 알아챈 것처럼 중얼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의 뒤에 서 있던 같은 도복의 도사들도 있었다.
“사형, 뭔가 알아채셨습니까?”
사제, 철호의 말에 곤륜의 도사, 육세곤(陸洗困)이 입술을 달싹였다.
“저곳이 어딘지 아느냐?”
어딘지 모를 산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철호가 고개를 갸우뚱할 때.
“적호채(赤虎砦).”
옆에서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
대답이 들려온 곳에는 새하얀 영웅건을 이마에 묶고 푸르른 녹색의 장포를 휘날리는 검수가 있었다.
송무문주의 서자이자 넷째 제자인 송대극(松大極)이었다.
“매화신…… 아니. 대주는 지금 적호채를 습격할 생각인 것 같소.”
“……!”
“저, 적호채를?”
그제야 현 상황을 파악한 몇 명이 화들짝 놀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동시에 불안감이 치솟았다.
“괘, 괜찮을까?”
“아무 훈련도 받지 않고 적호채를 습격하는 것은…….”
별동대가 결성된 지 하루였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하루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임무를 시작한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그 임무가 녹림의 산채 중 하나를 습격하는 것이라니.
그때.
“이제 다 쉬었죠?”
천휘가 그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언제?!’
‘이럴 수가!’
육세곤과 송대극은 불쑥 나타난 천휘의 신묘한 보법에 경악을 삼켰다.
하나 천휘는 둘에게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주변을 살피며 입을 뗐다.
“자, 그럼 이제 일을 시작할까요?”
천휘가 시퍼런 안광을 토해 냈다.
지금 불어오는 북풍보다도 차갑고, 시린 안광을.
* * *
“형산채에 분열이 일어났단 건가.”
작게 중얼거린 적호채주가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병나발로 들이켰다.
속이 화끈했다.
마치 복잡한 지금의 머리처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 건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전까지 녹림은 승승장구 중이었다.
사흑련에 들어갔고, 오황문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그런데 그것이 단번에 무너졌다.
‘총채주가 패퇴할 줄이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산파를 습격한 것은 녹림대제와 그 정예였다. 그것도 은밀하게 움직여 성공적으로 습격에 성공했었다.
한데 패퇴했다.
거기다 총채주는 아예 행방불명이었으니, 본채인 형산채에 분열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했다.
‘매화신협이랬나?’
작금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던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지금 항간에 떠돌고 있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녹림총채주, 녹림대제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았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고절한 경지.
그는 신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데 그가 고작 이립도 안 된 청년 도사에게 패배했다?
어찌 믿겠는가.
“……복잡하군, 복잡해.”
그의 미간에 파인 골이 점점 깊어질 때.
“채주님!”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생각에 잠겨 있던 적호채주는 갑자기 나타난 수하를 보며, 눈살을 구겼다.
“뭐냐?”
수하는 적호채주의 날카로운 눈빛에 흠칫하며 떨었으나, 부들거리는 입술을 억지로 떼어 냈다.
“스, 습격입니다!”
“습격……? 누구냐?”
“그, 그것이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그들 중 구파일방의 복장이…….”
“뭣이라?!”
적호채주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문 앞에 선 수하를 밀쳐 내며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보인 광경에 얼굴을 굳혔다.
적호채로 이어지는 산길을 재빠르게 올라오는 이들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절제된 기도, 빠른 경공.
하나같이 제대로 무공을 익힌 이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곤륜? 개방? 거기에 청성?’
재빠르게 그들의 복장을 확인한 적호채주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무림맹에서 온 건가?”
그는 당혹감을 터트렸다.
현 녹림은 사흑련의 소속이었다.
한데 무림맹이 습격해 왔다는 것은…….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가?’
순간 떠오른 생각이 있었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었다.
적호채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다가 이내 진각을 거칠게 밟았다.
콰직!
땅을 짓밟으며 단숨에 산 위의 절벽에 선 그는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지금 무슨 짓들이오!”
쩌렁쩌렁한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에 거침없이 달려들던 습격자들이 잠시 멈췄으나.
“시끄럽네.”
거기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호채주는 그 목소리에 미간을 좁히며, 그 말을 내뱉은 이를 봤다.
‘화산파?’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산파에서 왔다는 것은 복수를 하려는 것인가?’
바로 상황이 파악됐다.
하나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지금 본 채를 공격한다는 것은 사흑련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짓이오. 무림맹은 사흑련과 전쟁을 벌이려는 것이오?”
일부러 화산파와 녹림 사이의 일은 쏙 빼고 말한 그가 화산파 도사, 천휘를 노려봤다.
때마침 그의 입이 열리고.
“이놈들 왜 이리 정보가 늦어?”
신랄한 목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적호채주를 응시하던 천휘의 한쪽 입매가 와락 비틀렸다.
“이미 전쟁은 시작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