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벌써 임무에 나선단 말인가?”
곤륜의 장로 고영진인(高詠眞人)이 방금 들은 소식에 미간을 좁혔다.
아니, 그만이 아니었다.
탁자에 두루 앉은 많은 이들의 이마에는 고영진인과 같이 한 줄기 주름이 잡혀 있었다.
무림 대회의가 끝난 지 겨우 이틀.
그날 선포된 것이 별동대의 창설이었다.
한데 벌써 별동대가 임무를 수행하다니.
“별동대의 인원을 선발은 한 것이오?”
고영진인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겨우 하루 만에 별동대의 인원을 정한단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한데.
“맞습니다.”
“정말 하루 만에 정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선별했기에…….”
아직 천휘가 별동대를 어떻게 선별했는지 듣지 못한 이들이 의아해했다.
보통 수하를 정하는 일에는 심사숙고하기 마련이라, 최소 며칠은 고르고 골라서 선별하는 것이 당연했다.
한데 겨우 하루 만에 인원을 모두 뽑았다?
마치 그냥 아무나 골라 뽑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하지만 군사. 아무리 인원을 선발했다고 해도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니오?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소.”
“아미타불. 소승 또한 진인의 말씀에 동의하오이다.”
“천휘 소도장…… 아니. 천휘 대주가 대원을 모두 선발한 것은 들었소만 아무 훈련도 없이 바로 임무에 들어가는 것은 알아서 위험에 빠지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저기서 걱정의 말을 쏟아 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제 곧 벌어질 사흑련과의 전쟁에서 최전방을 누벼야 할 별동대였다.
한데 그 중요한 부대의 대원을 겨우 하루 만에 선발한 것도 마뜩잖은 일이거늘, 바로 임무를 수행한다?
이건 죽겠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모인 이들 모두가 반발하는 그때 군사가 입을 뗐다.
“별동대를 창설한 목적을 잊으셨습니까?”
순간 모두가 흠칫했고, 그걸 본 군사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본 맹이 별동대를 만들고자 한 목적은 당장의 전쟁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훈련하고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면 별동대를 만들 필요가 없지요.”
무심한 목소리였다.
하나 안에 담긴 내용은 걱정하던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했다.
그때.
“별동대 창설의 이유는 이해했네. 그런데 가능하겠는가?”
잠자코 가만히 앉아 있던 백발 백미의 노인, 청성파의 장로 도양흔(道陽昕)이 군사를 응시하며 말했다.
“별동대의 인원이 극히 적다고 들었네만.”
“말씀대로 인원은 적습니다. 채 오십 명이 되지 않는 사십이 명이라고 보고받았으니 말입니다. 천휘 대주까지 합치면 사십삼 명이군요.”
“그 정도의 인원으로 임무를 수행…… 아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말과 함께 도양흔은 군사를 지그시 주시했다.
미려하고 새하얀 눈썹 밑 차디찬 눈빛이 빛났다. 동시에 그가 재차 입을 열며 수염이 크게 들썩였다.
“그뿐이 아닐세. 오십이 채 안 된다지만 그들 모두가 각자의 문파에서 무공을 배워 온 이들이네. 서로 성향이 다른 이들을 모았는데,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고 임무에 성공할 수 있겠냐는 말일세.”
“인원은 적지만 천휘 대주는 임무를 수행하기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제게 임무를 요청해 왔습니다.”
도양흔의 강렬한 눈빛을 받으면서도 군사는 무심하게 말했다.
“만약 임무에 실패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휘 대주가 짊어질 겁니다.”
순간 도양흔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리며, 눈이 싸늘한 안광을 발했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겐가?”
“천휘 대주가 직접 바란 겁니다.”
군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별동대에 누구를 선발하든, 어떻게 훈련하든, 어떤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하든 모든 권한은 그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요.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도양흔은 입을 꾹 다물었다.
듣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린 도양흔이 슬쩍 옆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겠는가?”
현도는 자신을 보며 묻는 도양흔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이미 천휘에게 들은 말이었다.
“상관없습니다.”
현도까지 그 말에 동의하자 도양흔은 더 말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걱정한 것은 하나였다.
단리관천이 천휘의 별동대에 속한 것.
하지만 이렇게 군사에 이어 현도까지 천휘가 책임을 질 거라고 말하니,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때 아까 전부터 계속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곤륜의 장로 곡평(瀫平)이 말을 꺼냈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는 것은 어떤가? 보게나. 옥기린은 아직 별동대의 인원을 완전히 선별하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이왕이면 같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보기에도 좋고 서로 간의 도움을 주기 좋을걸세.”
“너무 태평한 생각이시군요.”
군사의 입술 사이로 엄동설한과 같은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할 때이거늘,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임무를 늦추라는 겁니까?”
다분히 공격적인 언사에 곡평의 눈가가 살짝 떨리는 찰나.
“마침 잘됐군요.”
군사가 무심한 태도로 말을 덧붙이며 슬쩍 옆을 바라봤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부군사, 설검이 고개를 한차례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음?”
“그건?”
설검의 손에는 거대한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그는 손에 든 두루마리를 묶은 붉은 줄을 풀더니, 탁자 위에 그대로 굴렸다.
데구루루―
이윽고 거대한 종이가 탁자에 펼쳐지자, 그것을 확인한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중원 지도(中原地圖)?”
“한데 보통 지도와 다르군.”
그들의 눈이 중원 지도에 꽂혔다.
일견 평범한 지도로 보였으나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내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곳곳에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수십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것을 집중적으로 볼 때.
“붉은 원은 현 사흑련에 소속된 문파들입니다.”
“허어.”
“……이렇게나 많았던가.”
군사가 설명했고, 이를 들은 사방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사파가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지도로 표시한 것을 확인하니 느낌이 달랐다.
가히 구주삼패세 중 하나라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군사가 중원 지도의 정중앙을 가르는 장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흑련에 속한 사파는 대부분 이 장강의 밑 강남 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의 아래쪽을 향했다.
그 말대로 붉은 원은 장강의 밑에 쪽에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나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예로부터 정파와 사파는 기름과 물처럼 서로 섞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세력을 구축하곤 했다.
그리고 그 기준이 장강이었다.
강북의 정파. 강남의 사파.
정파와 사파는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구축했고, 침범하기를 꺼렸다.
“만약 구주삼패세 이전의 시대였다면, 이 장강에 본 맹의 전력을 집중했을 겁니다. 하지만…….”
말끝을 늘어트린 군사의 손가락이 장강을 넘어서, 위로 점점 올라갔다.
“지금은 그럴 수 없지요. 바로 이 장강 위, 강북에도 사흑련에 소속된 사파가 있으니 말입니다.”
원래라면 강북에는 사파가 터를 잡기 어려울 터였지만, 제갈세가를 필두로 한 세가들이 무림맹을 탈맹한 이후로 상황은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본래 정파와 사파, 둘의 싸움에 정파가 둘로 쪼개져 버린 상황.
사파는 그 상황에서 북진했다.
그리고 그중 성공적으로 안착한 문파가 바로 이젠 멸문해 버린 백귀성이었다.
“귀영문(鬼影門), 혈우검가(血雨劍家)…….”
그의 손이 장강의 위쪽에 있는 몇 개의 붉은 원을 하나둘 짚어 갔다.
그렇게 약 열 개 정도 되는 붉은 원을 가리키며 각 문파명을 읊어 가던 그가 이윽고 한 곳에서 멈췄다.
동시에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그리고 강북에 있는 사파들 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녹림이 있습니다.”
그는 잠시간 무림맹과 가장 가까운 산채를 가리키더니 고개를 들었다.
“현 녹림의 상태를 아십니까?”
“…….”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최근 무림 대회의와 사흑련과의 전쟁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녹림에 대한 정보를 모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한 명만은 달랐다.
“분열이 일어났지.”
용주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녹림대제가 행방불명된 상황에 본채인 형산채에서는 서로 자기가 총채주가 되겠다며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 그리고 다른 채주들은 총채주가 없는 틈을 타서, 자신의 몫을 챙기기 바쁘다고 들었는데. 아니냐?”
“맞습니다.”
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녹림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치려면 지금이야말로 기회입니다.”
그제야 모두가 말뜻을 이해했다.
“별동대를 보낼 생각이로군.”
“그렇습니다. 이 강북에 있는 사파들이 사흑련과 힘을 합치기 전에 쓰러트려야 됩니다.”
군사의 말에 모두가 안도했다.
사흑련의 본진 쪽으로 움직인다면 위험하겠으나, 강북에 있는 사파들을 상대로라면 오히려 경험을 쌓는 데에 좋은 일이었다.
“강북에서 가장 위협적이었던 백귀성도 없으니…… 오히려 좋군.”
“그런 거면 진작 말하지 그랬나. 이런 임무였으면 빈도 또한 날카롭게 말하지 않았을 걸세.”
괜히 걱정했다고 생각한 곡평이 웃으며 핀잔을 줄 때.
“하나 안심할 수 없습니다.”
군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알아챈 것처럼 사흑련에서도 눈치를 채고, 몇몇 고수들이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고수들?”
“그게 누구요?”
“……사흑련주의 막내 제자 흑야차(黑夜叉)와 호법들입니다.”
* * *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밤.
원래라면 열리지 않을 무림맹의 북쪽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조, 조심히 가십시오.”
문을 연 수문 위사는 눈앞의 청년 도사를 보며, 경직된 표정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현 강호에 그 위명을 널리 떨치는 매화신협, 천휘였으니.
천휘는 그런 수문 위사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바라봤다.
그의 뒤편에는 아직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얼떨떨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실전이 최고지.’
훈련? 수련?
그것도 물론 좋았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있을 때의 일.
지금은 전쟁이 코앞이지 않은가.
그런 와중에 이런 피도 한번 보지 못한 듯한 애들을 데리고 훈련이나 해 봐야 의미 없었다.
어설프게 훈련대로 하겠다고 나서다가 그냥 눈먼 칼에 죽고 마리라.
‘마침 적당한 곳도 있으니까.’
천휘는 용주개를 통해 전해 받은 녹림채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따라와요.”
간단히 말을 끝낸 천휘가 비천행보를 펼쳤다.
“헉!”
“저렇게 빠, 빠를 수가!”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했다.
발을 구른다 싶더니, 어느새 천휘가 저 멀리 작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신법이었다.
특히나 신법 하나만으로는 곤륜파와 함께 수위에 드는 개방의 호광개는 혀를 내둘렀다.
‘만리추풍신법(萬里追風身法)을 전력으로 펼친다면 아슬아슬하게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생각하던 중 고개를 흔들었다.
‘추월하는 것은 무리겠어.’
전력으로 펼친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는 발끝이 여유롭지 않은가.
그때였다.
휙―
그림자 하나가 쏜살처럼 지나갔다.
바로 단리관천이었다.
“……세류도는 신법이 취약하다 들었는데, 헛소문이었군.”
무홍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래서 세간에 떠도는 소문의 반은 걸러 들어야 된다니까.”
호광개가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에 소문은 많지만, 보다 과장되거나 헛소문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소문을 맹신하기보다는 눈치껏 걸러 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것이 개방도의 자세였다.
내달리는 단리관천을 보며 대꾸하던 호광개는 순간 아차 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러다 놓치겠어.”
짧은 대화를 나눈 사이, 천휘와 단리관천의 등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 먼저 갈게.”
무홍에게 툭 던지듯 말한 호광개가 서둘러서 신법을 펼치자, 뒤따라서 무홍도 지체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넷이 멀어져 가자.
“이런!”
“얼른 쫓아가야…….”
남은 이들도 황급하게 하나둘씩 보법을 펼치며 그들을 뒤쫓아 달렸다.
“공기가 좋은걸.”
모두 출발한 걸 확인한 천휘가 주변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산에서 맞이한 밤공기여서일까,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따라붙었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 안 쓰는 것이오?”
천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로 옆에 따라붙은 단리관천을 바라봤다.
“흠, 신경 쓰여요?”
“……이 속도로 가다가는 중간에 떨어지는 이가 있을 것이오.”
단리관천이 슬쩍 뒤로 눈짓했다.
뒤따라오는 이들의 대부분이 새파래진 안색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몇 명은 호흡이 곤란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도 못 쫓아오고 낙오될 거면 차라리 지금 떨어지는 게 낫죠.”
천휘가 냉정하게 말했다.
겨우 이 정도 속도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전쟁에서는 죽을 목숨일 터.
‘거기에 이 정도로 쓰러질 만한 놈은 없고.’
생각을 마친 천휘는 바로 뒤쪽에서 바짝 따라붙은 둘을 향해 물었다.
“둘도 그렇게 생각하죠?”
무홍과 호광개는 자신들에게 물어 올 것이라 생각 못 했기에, 내심 놀랐으나.
“대주의 말이 맞소.”
“후에 죽을 바에야 지금 떨어져서 목숨을 부지하는 게 낫지.”
곧장 천휘의 말에 동조하며 대답했다.
“뭐, 제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면야 바로 나가라고 하고 싶지만.”
천휘가 말과 함께 단리관천을 응시했다.
“……!”
단리관천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흑과 백이 선명하게 나뉜 눈.
드리워진 어둠보다 더욱 새까만 눈동자에 담긴 무심함에 손이 떨렸다.
“별동대를 떠날 마지막 기회를 놓친 이상 이제는 나갈 수 없어요.”
차가운 안광을 발하던 천휘가 단리관천을 응시하며, 입술을 비틀었다.
“제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