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그간 겪은 정신적인 고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듯 박유찬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벌써 이틀째.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진하온을 보고 있으니 세상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데, 또…….
“하온아, 언제 일어날 거야…….”
너라도 일어나야지.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 삼켰다. 지난 이틀 새에 반복적으로 느꼈던 끔찍한 두통이 유찬을 괴롭히고 있었다.
“유찬 형 시간 됐어. 갈 거야?”
“가야지.”
박유찬은 백강현과 교대하듯 일어났다. 잠깐 멈칫거린 유찬은 침대를 빙 둘러 엎드려 졸고 있는 이서호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줬다. 지난 이틀 동안 내내 잠도 안 자고 버티더니…….
“갔다 올게.”
유찬은 병실 문을 닫으며 잠든 것처럼 보이는 하온을 눈에 담고는 길고 긴 한숨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하온의 병실에서 중환자실까지 가는 길은 유독 공기가 무거웠다. 마치 이곳만 중력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만 같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도착한 중환자실 입구는 면회 대기 중인 환자의 가족들로 붐볐다.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하루에 두 번, 30분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에 제한이 있었다.
원칙상으로는 가족 이외에는 면회가 불가능하지만, 이들은 특별히 병원 측의 허가를 받아 정이한의 어머니를 모시고 교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박유찬이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는 정이한의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웃어 주시려는 듯 입가가 가늘게 경련하다가 뒤늦게 말려 올라갔다.
“괜찮으세요?”
“그럼, 괜찮지. 우리 이한이가 아직 힘내고 있으니까 괜찮아.”
“면회 시작하겠습니다.”
간호사의 안내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유찬은 이한의 어머니와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환자가 생명을 거머쥐고, 소생하기 위해 조용히 싸우는 치열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정이한도 아직 싸우고 있었다.
“이한아……. 엄마 왔어.”
어머니가 아들의 뺨을 쓰다듬었다. 애절한 목소리만큼 애틋한 손길이었다.
“이번엔 형이 왔어. 네가 하온이 기다리는 거 아는데, 하온이는…….”
유찬은 억지로 텐션을 높여 목소리 톤을 올렸다.
“너 일어나면 보여주려고 우리가 숨겨놨어.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자.”
“맞아. 하온이가 정말 착하고 예쁘더라. 우리 아들이 왜 그렇게 막내 자랑을 많이 했는지 알겠더라고.”
진하온이 쓰러진 지 이틀째였다. 이한의 어머니는 아직 하온과 대화를 나눠본 적 없었으나, 사고의 경위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제 몸을 날려서라도 지키고 싶은 아이를 칭찬해 주면 제 아들이 좋아서 눈을 뜰 것 같았다.
어머니는 기계가 연결된 아들의 손을 꼭 붙잡았다.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훌쩍 커져서 단단해진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누워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이한이 ‘엄마!’하고 웃으며 품에 달려드는 환영이 자꾸만 보였다.
“이한아, 엄마 아들. 우리 아들……. 내 귀한, 내 새끼…….”
어머니의 눈물이 떨어졌다. 가느다랗게 새어 나오는 흐느낌 속에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어우, 왜 이러니, 정말. 우리 아들 금방 일어날 건데. 엄마가 주책맞네.”
유찬은 묵묵히 울음을 삼키며 어머니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눈가를 훔친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아들의 생환을 믿고, 웃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유독 짧게 느껴졌다. 어느새 30분이 지나 쫓기듯 나와야 했다. 어머니는 중환자실 앞을 떠나지 못하고 긴 나무 의자에 주저앉았다.
“식사…… 하셨어요?”
“대충 먹었어. 유찬이는 먹었니?”
“……저는 아직인데, 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어머니는 유찬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웃었다.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배려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기특했다. 아들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게 지금 이한의 어머니에게 아주 큰 위안을 주고 있었다.
***
“……흐어엉, 흑, 흐끅.”
강나리는 침대에 엎드려 서럽게 울었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대답도 못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밥을 마다하는 딸 때문에 그녀의 엄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나리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새로운 정보가 없을까 해서 이곳저곳 다니다가 발견한 기사 때문이었다.
정이한이 쾌차했다는 소식을 바랐건만, 뜬금없이 하온이까지 혼수상태라는 기사였다. 발밑을 지탱하고 있던 땅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어떡, 해, 어떡해……. 어떡해에…….”
[인기 아이돌 디아스 교통사고 멤버 정이한, 진하온 혼수상태
지난 19일,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OO 대로변에서 15중 연쇄추돌사고가 일어났다. 전문가는 눈이 온 직후 비가 내려 미끄러워진 도로가 사고의 규모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촬영을 마치고 복귀 중이던 인기 아이돌 디아스의 멤버 정이한, 진하온이 이 사고에 휘말려 현재 혼수상태다.
당시 112를 통해 음주운전 추정 제보가 빗발쳤다. 경찰은 가해 차량의 운전자 김 모씨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으나, 혈중알콜농도는 0%였으며 그의 혈액에서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 이딴 쓰레기 낚시 기사 쓰고 싶냐? 개레기새끼!
─ 하온이는 멀쩡합니다 하온이는 멀쩡합니다 하온이는 멀쩡합니다 하온이는 멀쩡합니다 하온이는 멀쩡합니다
┗ 어떻게 알아요?
┗ 멀쩡해야 하니까요.
─ 전문가 아니어도 빙판길 때문인거 ㅈㄴ 잘 알겠는뎈ㅋㅋㅋ
─ 애들 잘못되면 나도 못 살아...
┗ 쟤들 죽으면 자살하나?ㅋㅋㅋ 오오! 청정민국!
┗ 이거 신고해 인류애 박살난다 진짜
─ 제발... 이런 기사 말고... 우리 애들 퇴원했다는 소식 좀 전해주세요... 진짜 ㅠㅠ... 이렇게 빌게요..ㅠㅠㅠㅠ 제발요제발..ㅠㅠ
─ 젊은 청년들이 쾌유하길 바랍니다.
─ ㄱㅎㅊ가 마약하고 칼부림한거잖아 일부러 갖다 박은건데 조사하긴 뭘 조사해? 살인미수로 처넣어야 한다
┗ 님 칼부림 영상 있어요? 너튭 영상 다 삭제돼서 지금 못보네요 궁금한데
─ 방금 쓰알 공지 떴어요 하온이는 갈비뼈에 금 가서 입원 중이고, 이한이는 중환자실... 하. 진짜 무슨일이야... 김xx 개새끼 죽여버리고 싶다
┗ x호x 그 새끼는 하온이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저 지랄이야!
┗ xx채 씨벌 마약 사범 범죄자 새끼 사형 선고하고 싶다
┗ 하온이라도 무사해서 다행이지만 하.. 착잡하네요...
“……정말? 하온이는 괜찮은 거야?”
댓글을 보기 무섭게 강나리는 SR 홈페이지로 달려갔다. 진하온은 늑골에 금이 가서 입원 중이며 정이한은 아직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찌라시가 진짜인 것처럼 둔갑한 기사에 바로 대응해서 공지를 띄워준 소속사에 감사하며 강나리는 절반쯤은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이한이 퇴원하지 않는 이상 그녀의 눈물은 마를 수 없을 터였다.
한 명이 잘못되면 전체가 무너질 것 같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 끈끈한 그룹이 바로 디아스였다. 사고로 인해 마음고생하고 있을 다른 멤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또 왈칵 흘렀다.
“우리 애들, 또 무대에서 볼 수 있을까.”
강나리는 무대 위의 디아스가 보고 싶었다.
멤버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무대. 그 무대에서 빛나는 디아스를 강나리는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 그렇기에 지금 강나리는 제 생살을 찢고, 뼈를 잘게 부수는 것 같은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눈물을 쏟았다.
“이한아……. 하온아……. 얘들아, 제발 무사히 퇴원해줘…….”
전 세계 디어리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바랐다.
***
몽롱한 부유감 속에 눈을 뜨니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머릿속이 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옜다. 그러다 몸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머릿속도 명료해졌다.
“이한……!”
벌떡 일어났다가 찌르르 울리는 통증에 가슴을 붙잡았다.
“진하온!”
이서호는 들고 있던 전기 포트를 내려놓기 무섭게 내 쪽으로 왔다. 반가움에 활짝 편 표정과 달리 눈동자는 그렁그렁했다. 이서호를 달래주고 싶었지만, 그보다 궁금한 게 있었다.
분명 죽어도 고 스킬이 강제 종료되면서 페널티를 받았다. 그렇다는 건 사고 당일부터 사흘이 지났다는 소리였다.
“이한 형은 어디 있어? 정곤 형은?”
“……어? 저, 정곤 형은 이미 퇴원했어. 형은 괜찮은데…….”
이서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혈색이 빠져나갔다. 눈에 띄게 말을 더듬거리며 내 눈을 피하는 모습이 꼭 불길한 신호 같아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솔직하게 말해줘…….”
“그러니까, 아우, 아오.”
이서호는 하필 이 타이밍에 형들이 자리를 비웠다며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나한테 말하기 곤란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건가? 설마 잘못된 건…….
나는 불안한 마음에 이서호의 팔을 꼭 잡았다.
“부탁이야…….”
“……하아. 아직 중환자실이야…….”
“……뭐? 내가 며칠 만에 깨어난 건데?”
스킬 켠 지 하루 만에 강제 종료된 거였으니까 일찍 깨어났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실낱같은 기대는 “삼일.”이라는 대답에 와장창 무너졌다. 왜 아직도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건데?
“의식은…… 돌아왔고? 상처가 심해서 일반 병실로 못 오는 거야?”
끔찍한 날붙이가 정이한의 가슴 깊숙이 박혀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아직.”
기묘한 이명이 찾아왔다. 시끄럽게 머리를 울리며 지나가는 소리에 구역질이 나왔다. 독감이라도 걸린 것처럼 몸이 벌벌 떨렸다.
지금 당장 정이한을 봐야겠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였을 때였다. 가슴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윽.”
“야! 움직이면 안 돼. 너 갈비뼈 나갔대!”
“정이한, 이한 형을 봐야 해. 지금 당장.”
“진하온. 움직이지 말라니까!”
일어나려는 나를 이서호가 강한 힘으로 내 어깨를 꾹 눌러 눕혔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애처로운 얼굴과 달리 나를 짓누르는 손길은 우악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