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312화 (312/320)

311.

바닥을 둘러봐도 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괜찮은 거겠지? 정이한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쓰러져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정이한의 등뿐이었다.

“이, 이한 형……?”

나는 홀린 것처럼 정이한을 향해 걸었다. 경찰이 정이한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정이한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똑바로 뉘었다. 다급한 경찰의 외침과 함께 나는 숨을 들이켜며 풀썩 주저앉았다.

“흉부 자상 환자 발생! 구급대!”

사라진 칼은 정이한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구, 구원……. 구원 스킬을 써야 해. 나는 바닥을 기었다. 정이한한테 가야 해.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지만, 물속에 잠긴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게 보이는 건 오직 정이한의 파리한 얼굴뿐이었다.

가까스로 정이한의 손을 잡고 구원 스킬을 연발했다. 하지만 조건이 맞지 않다는 빌어먹을 메시지가 눈앞을 까맣게 채웠다. 체력이 부족해서 안 되는 거면, 내 목숨을 끌어다 써도 좋아. 정이한만 살려줘. 제발, 제발 스킬 좀 써줘…….

그러나 끝내 보이는 건 조건이 맞지 않다는 냉혹한 메시지뿐이었다. 입술이 벌벌 떨렸다. 잇새로 새어 나오던 흐느낌이 오열로 바뀌었다. 울지 말라고 해야지. 왜 울고 있냐고, 나를 달래줘야지……. 왜 눈을 감고 있어? 왜 나를 안 봐. 왜…….

“……세요!”

누군가가 내게서 정이한을 빼앗아 가려고 했다. 나는 무서워서 제대로 만지지도 못하고 있는데, 정이한을 들어 올렸다.

“안 돼요! 데려가지 마요. 안돼!”

“진하온 씨!”

갑자기 불린 이름에 정신이 확 들었다. 내 앞에 있는 여성분이 안타까운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주황색 옷……. 구급대원이었다.

“진정하세요. 병원에 데리고 가야죠. 정이한 씨, 치료해야죠. 그렇죠?”

아. 병원…….

좁아졌던 시야가 조금씩 확장됐다. 스트레처카에 누운 정이한이 구급차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저, 저도…….”

“정신이 좀 들어요?”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나는 정이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친 곳은요?”

“없어요. 없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후 구급차에 함께 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저, 정곤 형은…….”

내 정신을 붙들어준 여성분이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다른 구급차로 이송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고, 맡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문이 닫혔다. 구급대원은 칼을 뽑지 않고,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했다. 저게 계속 꽂혀 있으면 아플 텐데……. 저 칼이 정이한을 죽일 것 같아서 무서웠다.

“환자분! 정신이 들어요?”

구급대원의 목소리에 정이한의 얼굴을 봤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입술이 달싹거렸다.

“여기 어디예요? 이름이 뭐예요? 기억나는 거 있어요?”

정이한의 정신을 붙잡으려는 듯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정이한의 입술 모양을 정확히 읽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평소에 저 입술이 얼마나 자주, 많이 담던 말인데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하온아, 괜찮아?’

눈물이 쏟아졌다. 다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나는 평생 흘릴 눈물을 오늘 다 흘려버릴 것처럼 오열했다.

***

정이한이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보호자라고는 나뿐이라 정이한이 죽을 수도 있는 수술을 허락하는 서명란에 내 이름이 박혔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자였다. 내 동의서를 받아 간 사람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서둘렀다.

나는 그렇게 정이한을 수술실에 들여보낸 뒤,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저 멍하니 수술 중이라는 안내판만 들여다봤다.

정이한이라고 적힌 이름 세 글자가 소름 끼치고 기분 나빴다. 빨리 저기서 정이한의 이름이 사라지길 바랐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밖으로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나와 눈을 마주쳐주길 바랐다.

우우우웅-.

어디선가 진동을 느꼈다. 아, 휴대폰……. 내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구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계속 울어대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서호였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 또 한 번 진동이 울렸다. 내 휴대폰이 아니었다.

“아.”

정이한의 휴대폰이다. 정이한의 소지품은 비닐에 싸여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툭, 툭.

비닐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르륵 미끄러진 눈물은 내 셔츠에 닿아 흡수되어 사라졌다.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차마 정이한의 휴대폰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정이한의 물건을 건드리면 그가 사라져 버릴까 봐 무서워서 나는 정이한의 소지품을 으스러질 듯 끌어안기만 했다.

진동이 뚝 그쳤다. 세 번째로 우는 건 다시 내 휴대폰이었다. 이번에도 이서호였다.

“…….”

- 야! 진하온! 왜케 전화를 안 받아~ 이한 형도 안 받던데. 언제 와? 눈 그치지 않았어? 길 아직도 많이 막혀?

20분. 사고 난 현장에서 회사까지는 고작 20분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됐었는데…….

- 너 없으니까 죽겠다……. 쉬질 않아. 지금 겨우 쉬는 시간 받아서 음료 산다고 도망쳤거든. 야, 빨리 좀 와. 나 좀 살려줘어…….

“……서, 호 형.”

- 엉? 뭐야?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있, 잖아. 흐으, 사…….”

울음소리에 삼켜져 말이 나오질 않았다.

- 진하온? 너 울어……? 뭔데? 무슨 일인데? 지금 어디야?

이서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 순간 혼자 있기 싫다는 생각만 들었다. 멤버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무, 무서워, 형……. 나 무서워……. 빨리 와.빨리 와줘…….”

- 어딘데! 당장 갈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 상주 형! 빨리 차! 진하온한테 가야 해요! 지금 당장!

- 무슨 일인데? 하온이가 왜?

- 하온이랑 통화 중이야?

형들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렸다.

- 진하온. 하온아. 울지 말고, 지금 어디인지 말해. 바로 갈 테니까 어딘지 말만 해.

“병원, 병원인데…….”

- 병원?

이서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형들의 실랑이 소리가 들렸다.

- 하온아, 유찬 형이야. 지금 병원이야? 어디 병원이야?

“모르겠…….”

나는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잡았다. 애써 울음을 삼키며 병원 이름을 물었다.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손을 내밀었다.

“제가 통화해 드릴까요?”

끄덕이면서 휴대폰을 건넸다. 차분한 목소리가 형들에게 전해졌다. 내게 휴대폰을 돌려준 간호사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실래요? 여기 서 계시면 힘들잖아요.”

“……수술, 중이라.”

“대기실에서도 현황판을 보실 수 있거든요. 보호자분이 여기서 고생하시는 거 알면 환자분이 슬퍼하지 않을까요.”

나는 품 안의 소지품을 꽉 끌어안았다. 바스락대는 비닐 소리가 ‘하온아, 괜찮아?’하고 날 살피는 정이한 같았다.

“그럴게요…….”

“별말씀을요.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간호사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이 커졌다. 급기야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 안쪽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여기서 대기하시면 돼요.”

“……감, 사합니다.”

나는 제일 먼저 정이한의 이름부터 찾아, 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쿡쿡 쑤셔대는 가슴의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점점 숨 쉬는 게 버거워졌다.

하지만, 자리를 비우고 싶지 않아서 꾹 참았다. 내가 못 본 사이에 정이한이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갈까 봐 두려웠다.

“학생, 괜찮아?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몸이 안 좋아 보이네.”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중년 여성분이었다. 그녀는 하얀 꽃이 그려진 손수건으로 내 이마의 땀을 닦아 내주며 혀를 끌끌 찼다. 지금은 낯선 사람이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되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아휴, 아휴우. 학생이 잘 버텨야 수술 중인 사람도 힘낼 수 있는 거야.”

아주머니의 손에 들린 손수건이 붉게 변해 있었다. 내 얼굴에 묻었던 건, 정이한의 피였다. 정이한의…….

“흐윽, 읏.”

나는 손등에 입술을 묻은 채 흐느꼈다. 잠시 그쳤던 눈물이 또다시 왈칵 쏟아졌다.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하온아!”

오매불망 기다리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끔찍하게 아팠지만, 나는 무시하고 달렸다. 사색이 되어 숨을 헐떡이는 유찬 형이 나를 안아줬다.

“형……! 이한, 이한 형이, 이한 형이…….”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형 믿지?”

유찬 형의 가슴에 안겨 눈물을 쏟았다. 어깨에 내려앉은 손길이 나를 다정하게 토닥였다.

“정곤 형은?”

“……다른, 흡, 차로 간다고 했어요.”

“그래. 일단 앉자.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너도 쓰러질 것 같아.”

나는 유찬 형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어, 지, 진하온, 피, 피…….”

“서호야, 정곤 형한테 전화 좀 해볼래? 형도 찾아야지.”

“어?”

“얼른.”

“아……. 으응. 응…….”

강현 형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형은 젖은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줬다.

“괜찮을 거야.”

신뢰가 가는 단단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시스템: 사용자의 체력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잠시 후 ‘죽어도 고(F)’ 스킬이 자동 종료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