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305화 (305/320)

305.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야, 김호채. 너는 그게 뭐가 좋다고 쫓아다녔냐? 볼 거라곤 얼굴뿐 이던데. 방긋거리면서 사람 물 먹이는 새끼.”

제대로 들었네? 김호채라고? 그럼 텐스타로 마약이 유입된 경로가 아직 틀어 막힌 게 아니잖아?

“준 새끼도 마음에 안 들어. 사사건건 방해하고 지랄이야. 씨발, 인기 많으면 다냐?”

같은 그룹 멤버를 다른 사람한테 저렇게 욕하고 싶을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강조는 준 선배님도 싫어한다는 거.

텐스타 멤버 중 마약에 연루되는 건 세 명은 준, 강조, 사윈이었다. 사윈 선배님은 아추대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강조와 마찬가지로 나와는 거의 대화를 한 적 없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안 됐다.

나는 불현듯 떠오른 말도 안 되는 가설 하나에 인상을 찌푸렸다.

“닥쳐, 이 새꺄. 물건이나 내놔. 오늘 보자. 빡쳐서 안 되겠어.”

하……. 현재 진행형이라 그거지? 통화를 끊는 것 같아서 나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허공에 뱉는 나직한 욕설이 가까워졌다. 이대로 숨죽이고 있어야 하나?

아, 아니지. 교주의 스킬이 먹힐 법한 사람인지 확인이나 좀 해 볼까. 나는 태연하게 기다리다가 목소리가 가까워졌을 때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악, 씨발!”

평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인가 봐. 그렇지 않으면 놀랐을 때 저렇게 자연스럽게 욕이 나올 수 없을 텐데.

욕설, 비상구에서 같은 멤버와 타 그룹 멤버를 비난하고, 촬영할 때의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약까지. 강조는 재활용 불가 쓰레기장행이었다. 선배라고 불러주기도 아까워. 끼리끼리 논다더니 소파남이랑 친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너, 왜 거기서 나와?”

강조는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그 눈빛이 꽤 살벌하고 험악했다. 저런 얼굴로 날 보는 사람은 오랜만에 마주치네.

“……화장실에 다녀왔는데요?”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지, 그럼 다른 일을 보느냐는 듯한 의문을 담아서.

“뭐 들은 거 있어?”

“뭘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자 강조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날 탐색하듯 봤다. 조금씩 내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강조가 확신할 무렵, 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배님.”

“…….”

또다시 경계심이 맥스로 치솟았다. 어쩐지 도깨비한테도 매번 데굴데굴 구르더라니, 이 녀석 참 단순하구나. 저렇게 경계하면 ‘내가 방금 들키면 안 되는 수상쩍은 무언가를 했어.’하고 광고하는 꼴이잖아.

교주가 입맛대로 요리하기 좋아 보이네. 그렇다면 내가 미리 경계심을 높일 필요는 없지.

“준 선배님 못 보셨어요? 인사드리려고 하는데 안 보여서요.”

“그 새……, 아니. 나도 몰라.”

퉁명스럽게 말을 뱉은 강조는 일부러 그랬다는 게 티가 날 정도로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억울하게도 덩치 차이 때문에 비틀거리며 옆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아니, 여기서 이렇게 굴면 내가 우습게 보이잖아! 아니나 다를까, 강조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굳이 뒤를 돌아 나를 비웃었다.

그 순간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준 선배님이 보였다. 강조는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한번 해 볼까? 팔이 안으로 굽을지, 밖으로 굽을지.

정말 내 가설이 맞다면 교주에게도, 준 선배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나는 어깨를 부여잡고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강조가 무서운 것처럼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쳤다. 단순하고 열등감에 휩싸인 녀석일수록, 상대가 겁을 먹고 약하게 굴면 더 강하게 나오곤 했다. 강조가 딱 그런 사람인 것 같은데.

“고작 그거 가지고 벌벌거릴 거면서 개기긴 왜 개겨?”

강조가 검지로 내 이마를 툭툭 쳤다. 빙고네.

“야, 강만팔.”

준 선배님이 나직한 목소리로 강조를 불렀다. 꽤 화난 듯한 목소리였다. 정말 나를 위해 화를 내주잖아? 확률은 절반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어? 준 왔냐? 화장실 가려고?”

내 이마를 치던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듯해졌다. 거짓된 미소를 휘감고 뒤를 돌아보는 강조는 꼬리 만 개 같았다. 순종적으로 변한 강조가 “아, 그리고 후배도 있는데 본명으로 부르지 말지……?” 하고 투덜댔다.

“너 지금 뭐 했냐?”

“뭘?”

시치미 떼는 강조를 물끄러미 서서 보던 준 선배님이 빠른 보폭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마치 나를 보호해 주려는 것처럼 나를 등 뒤로 숨긴 채 강조와 마주 봤다.

“너 지금 탱 뺏겨서 애한테 화풀이한 거 아냐?”

“내가 왜 그런 걸 가지고 화내겠어. 아니야.”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너 그런 하찮은 일로 화내는 인간이잖아.”

강조의 웃는 면상에 빗금이 갔다. 한쪽 입꼬리 끝이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말이 심하다?”

“심하면 어떡할 건데.”

강조는 가느다랗게 좁힌 눈으로 준 선배님을 한껏 노려보다가 휙 고개를 돌렸다.

“먼저 간다.”

그리고는 스튜디오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혔다. 긴 한숨과 함께 준 선배님이 내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하온아, 괜찮아?”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방긋 웃으며 준 선배님을 올려봤다.

“미안한데 이 일은 함구해 줄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준 선배님은 입술을 꽉 붙인 채 날 보다가 돌연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렸다.

“예쁜 녀석이 예쁜 짓만 한다. 응?”

왠지 내 가설이 맞는 것 같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약 게이트에 연루될 때 저 사람이 준 선배님을 끌어들인 거다. 준 선배님의 팔이 밖으로 굽은 순간, 저 두 사람이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서 마약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또 다른 멤버 사윈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니, 이건 검색을 좀 해 볼까. 멤버들 관계성이야 검색해보면 널리고 널렸으니까. 강조와 친하다면 백 퍼센트 확신해도 될 것 같은데.

“어? 선배님, 하온이…….”

준 선배님의 등에서 묵직한 저음이 울렸다. 정이한이다! 내가 늦어서 찾으러 왔나 봐. 나는 한껏 반가움을 드러내며 선배님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형!”

“하온아.”

정이한이 성큼성큼 다가와 기사님이라도 된 것처럼 내 옆에 바짝 섰다. 나는 정이한에게 웃어 보인 뒤 준 선배님께 인사했다.

“선배님, 그럼 다음 주에 봬요.”

“그래. 조심히 가고, 오늘 고생했어.”

“고생하셨습니다.”

“어어. 이한이도 고생했다.”

스튜디오로 돌아가기 무섭게 정이한이 목소리를 낮췄다. 준 선배님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냐고 묻는 목소리에 걱정과 분노가 담긴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정이한의 등을 살살 달래주며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우연히 만났는데 저 오늘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그게 다야? 예전에 너한테 그 속옷……. 변태잖아…….”

정이한은 립스틱 광고할 때를 떠올리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아하하. 네. 정말이에요. 그냥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일 뿐이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신기했나 봐요. 그보다 형, 아까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아까? 아까 언제?”

“강조 선배님이 형 무시했잖아요.”

“아. 나 못 한 게 사실인데, 뭐. 나는 그보다 하온이가 잘해서…….”

정이한은 주변을 슥 둘러본 뒤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또 반했어.”

나는 화들짝 놀라 한 손으로 귀를 가린 채 굳어 버렸다. 정이한의 목소리가 귓속을 찐득찐득하게 맴도는 것만 같았다. 고장 나서 삐거덕거리는 날 보고 정이한이 웃었다. 스튜디오의 조도를 단숨에 끌어 올리는 듯한 환한 미소였다.

“이, 이런 데서 할 말은 아니잖아요.”

정이한은 귀엽게 눈을 홉 뜨고는 “그럼 어디서 해?”하고 순진하게 물었다. 순진한 게 아니라 순진한 척하는 거 아니야? 정여우한테 내가 한두 번 당하나.

나는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다며 잡아떼고는 정곤 형을 향해 달렸다. 아니, 달려갈 생각이었다. 뒤에서 정이한이 내 허리를 확 끌어안아 품에 가두지만 않았다면.

정이한의 향기가 훅, 끼쳐 들어왔다. 등에 닿은 가슴이 단단했다. 그 순간 정이한의 배를 만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손끝에 감겨들던 매끄러웠던 근육의 감촉이…….

정이한의 턱이 내 어깨에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거칠게 뛰는 심장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가 발치까지 단번에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온아, 나 버리고 가면 어떡해…….”

정이한은 종종 내게 이런 식으로 매달렸었다. 어깨에 턱을 올린 채 말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독 귓가가 간지럽고, 누군가가 내 등줄기를 긁어대는 것만 같았다. 저릿한 감각이 낯설고 이상해서 나는 온몸을 비틀고 싶어졌다.

“무, 무겁거든요…….”

상체를 비틀어 정이한의 어깨를 꾹 밀어냈다. 하지만 정이한의 어깨에 닿은 내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걸 보고는 황급히 손을 숨겼다. 정이한의 눈꼬리가 깊고 진하게 휘어졌다. 마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지금의 내 마음을 전부 알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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