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설마 강현 형한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목덜미가 선뜩했다. 놀란 우리는 잠시 제 자리에 서 있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씨름판을 향해 뛰었다.
스태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누군가가 다친 게 분명했다. 제발 다친 사람이 강현 형이 아니기를. 이기적인 소망이었지만 나는 오로지 강현 형의 안부만 빌며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다.
누구야? 누가 다친 거야? 강현 형은? 형은 어딨지?
“어! 강현 형!”
이서호가 먼저 형을 찾았다. 본능적으로 이서호의 얼굴을 확인했다. 단번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이서호가 한 번 더 “강현 형!”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잔뜩 놀란 목소리에는 걱정과 염려가 가득했다. 이서호의 시선 끝에는 의료진과 마주 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강현 형이 있었다.
“……!”
“강현아!”
유찬 형이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나도 유찬 형의 뒤를 허겁지겁 따라갔다. 강현 형이 우리를 발견했는지 이쪽을 보며 민망한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 괜찮아?”
이서호가 발을 동동 구르며 근처를 맴돌았다. 의료진은 처치가 끝난 듯 이제 괜찮다는 말과 함께 의료 가방을 챙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강현 형의 옆에서 연신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는 사람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어떻게 된 거야? 많이 다쳤어?”
“아니. 살짝 삔 거야.”
하지만 아까 내가 들었던 비명소리는 단순히 가벼운 사고인 것 같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내게 강현 형이 손짓했다.
“미안. 걱정 끼쳤네.”
“……많이 안 다쳤어요?”
“응. 지금은 하나도 안 아픈데, 나중에 혹시 모르니까 임시 처치만 가볍게 받은 거야.”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현 형의 팔을 꼭 움켜쥐었다.
“저 때문입니다……. 제가 나가다가 넘어졌는데, 절 도와주시다가…….”
“다현아!”
상대 측 멤버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제 멤버들을 보고는 금방 울상이 되어서 “형아아아!”하고 달려갔다. 웅얼거리면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자기 멤버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남자를 살핀 뒤 우리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우리 다현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좀 위험하게 넘어가는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잡았을 뿐입니다.”
그에 다현이라는 사람이 마구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통수부터 땅에 떨어질 것 같아서 눈 감았는데, 눈 뜨고 보니 강현 씨가 제 밑에 깔려 있었어요…….”
강현 형은 그때 팔이 깔리면서 살짝 삔 것뿐이라며 손목을 털어냈다. 그와 동시에 형의 미간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반듯하게 펴졌다. 팔 아픈 거 맞잖아!
“나 응원할 거지?”
“뭐? 계속할 거야?”
놀란 유찬 형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해야지. 별것도 아닌데.”
하지만 씨름이잖아. 팔에 부담이 갈 텐데…….
“절대 안 돼.”
유찬 형이 팔짱을 낀 채 서슬 퍼런 얼굴로 강현 형을 내려봤다.
“진짜 별것 아니라니까.”
강현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유찬 형의 어깨를 잡아 뒤로 밀었다. 강현 형은 밀려나지 않으려고 버티는 유찬 형을 오직 팔 힘으로만 라인 바깥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 뒤 손을 탁탁 털었다.
“어때?”
“……진짜 괜찮은 거지, 너?”
“내가 하온이도 아니고.”
강현 형은 그러면서 날 보고 웃었다. 여기서 나를 끌어들이다니. 하지만 오늘 스포츠를 즐기는 강현 형은 춤출 때만큼이나 즐거워 보였다. 저 형도 고집 있어서 말려봤자 안 들을 텐데…….
나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강현 형의 손을 꼭 잡은 채 곧바로 구원 스킬을 사용했다. 남은 체력이 형의 부상 정도에 비례해 떨어졌다. 큰 부상이 아니라더니 그게 사실이라는 듯 떨어진 체력의 폭은 크지 않았다. 다행이다. 어쨌든 형의 부상이 회복되어 마음이 편해졌다.
괜히 걱정하느라 신경 쓰는 것보다 체력을 소모해서 형을 고치는 게 더 나았다. 내 체력은 멤버들한테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되니까. 저녁 시간에 한숨 자도 되고.
“음?”
강현 형은 팔을 내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 뒤 날 봤다. 나는 형을 잡은 손을 놓아주고 등 뒤에서 손깍지를 낀 뒤 방긋 웃었다.
“말려도 할 거면 금메달 따 오세요!”
“하온아.”
유찬 형이 날 타박하듯 불렀지만, 강현 형의 부상이 나았다는 걸 아는 나는 마음 놓고 형을 응원했다.
“그래. 금메달 걸어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
강현 형은 어깨를 짚은 뒤 팔을 몇 번 돌려보고는 선수석으로 돌아갔다.
***
- 이야! 내가 바로 디아스의 백강현이라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것 같네요. 강현 선수의 깔끔한 엎어치기 한판승!
“와!”
나는 입만 쩍 벌린 채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과연 힘의 백강현, 운동 신경의 수혜자 백강현! 강현 형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 선수를 들어 올려 깔끔하게 엎어치기를 했다. 심지어 바닥에 상대 선수를 내려놓을 땐 속도를 줄여 폭, 하고 깃털처럼 폭신하게 떨궈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강현 형의 부상을 의심하던 유찬 형도 이제는 마음 놓고 응원하고 있었다.
이어서 결승전이 시작됐다. 강현 형의 상대는 텐스타의 서운 선배님이었다. 저쪽도 한판승으로 연승을 거두고 결승전까지 올라왔다더니 확실히 근육이 딴딴해 보였다.
서운 선배님이 등장하는 순간 팬들의 목소리가 체육관을 들썩일 정도로 커졌다. 그에 질세라 우리 디어리도 목소리를 높였다. 팬석의 수가 차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밀리지 않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려나.
“강현 형!”
내가 목청껏 부르자 형이 이쪽을 돌아봤다. 우리는 다 같이 슈퍼맨이라도 된 것처럼 한쪽 팔을 번쩍 들고는 동시에 “화이팅!”하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우릴 보는 형의 눈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텐스타 멤버들도 우리에게 질세라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면 숙소에 들어올 생각 말라거나, 금메달이 아니면 숙소까지 뛰어서 오라는 등의 조금 이상한 응원이었지만.
“야야, 너무 한다. 진짜. 쟤들처럼 귀엽게 파이팅 외쳐주면 안 되냐?”
서운 선배님이 자신의 멤버들을 보며 치가 떨린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한 멤버가 턱 밑에 꽃받침을 한 채 “지면 숙소까지 뛰어와요옹~”하고 비음을 섞어 말했다.
“푸흑.”
“흐흫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솔직히 좀 웃겨서 나도 피식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유찬 형이 내 팔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강현아! 이기면 하온이가 소원 들어준대!”
“그래? 아”
내가 언제! 하지만 아니라는 말을 곧바로 할 수 없었다. 단단히 기대하는 듯한 강현 형의 눈빛에 결국 나는 “네……. 저도 몰랐는데 그렇대요.”하고 대답했다. 왜인지 모르는데 주변 사람들이 또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대화의 어디가 웃긴 건지 모르겠네.
“선배님, 죄송하지만 제가 이겨야겠습니다.”
강현 형이 승부욕을 드러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서운 선배님은 먼저 무릎을 꿇고 앉은 뒤 손바닥에 모래를 묻혀 탈탈 털었다.
“나도 숙소까지 거리가 꽤 멀어서 말이야.”
유찬 형과 이서호가 열성적으로 강현 형을 응원했다. 나는 슬쩍 정이한을 찾아서 가슴팍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정이한은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감싸고는 어깨에 턱을 올린다. 좋아, 좋아. 길이 아주 잘 든 덕에 내 체력 회복도 순탄했다.
- 두 선수의 열기가 아주우 뜨겁습니다! 아이돌 추석 대축제! 대망의 씨름 결승전! 지금 시작합니다!
MC의 신호에 맞춰 심판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두 선수가 서로의 샅바에 손을 꿰었다. 그리고 바로 고쳐 잡는척하면서 짧은 신경전을 펼쳤다. 곧이어 심판의 팔이 올라가고, 강현 형과 서운 선배님은 상체로 서로를 밀어붙이며 일어났다.
드러난 팔뚝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힘줄이 불거졌다. 서운 선배님도 장난 아니네. 괜히 짐승돌 소리 듣는 게 아니었다.
“강현 형! 힘내요!”
내가 목청껏 외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강현 형이 서운 선배님을 들어 올렸다. 장담하건데 지금 여기서 저 거구를 들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그건 서운 선배님도 마찬가지인 듯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대로 메다 꽂힐 줄 알았는데, 빠르게 이성을 찾은 서운 선배님이 강현 형에게 안다리를 걸었다. 강현 형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강현 형!”
본능적으로 형의 이름을 외치며 상체를 곧추세웠다. 그 때문에 내 어깨에 턱을 올리고 있던 정이한이 억, 하는 소리를 냈다. 흥분해서 정이한과 기대고 있던 걸 잊어버렸다.
“미, 미안해요.”
“아니야, 괜찮아…….”
턱을 문지르는 정이한에게는 미안했지만, 지금 경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정이한의 턱과 부딪혀 아픈 어깨를 무시하고 경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깐 못 본 사이 서운 선배님의 발이 모래밭에 닿아 있었다.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모래가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힘과 힘의 격돌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강현 형의 몸 때문에 샅바를 잡기 힘들었던 선배님이 팔을 빼낸 순간, 갑자기 강현 형이 허리를 숙여 서운 선배님의 배 쪽으로 파고들었다.
선배님의 허벅지를 붙잡은 강현 형은 일순, 순간적인 힘으로 일어나 몸을 뒤로 젖혔다. 그 반동에 한 바퀴 넘어간 서운 선배님의 등이 모래에 닿았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뒤집기 한판! 레드 승!”
“강현 형이 이겼어요!”
“우와악! 강현 혀어엉!”
이서호가 껑충껑충 뛰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던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아, 잠깐. 이러면 나 소원 들어줘야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