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67화 (167/320)

167.

연습실에 가기 전에 엿보기 스킬을 갱신해 두고 싶었던 나는 오전 6시에 진동 알람을 맞춰 놓고 잠들었다. 진동이 느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곧바로 살금살금 움직였다. 제일 먼저 이서호의 방문을 열었다. 잠든 이서호에게 엿보기 스킬을 쓰고, 그 다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형들의 방문을 열었다.

두 형의 갱신된 정보까지 손에 넣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체력 요구량이 줄어든 덕에 세 사람에게 엿보기 스킬을 써도 체력이 30이나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움직이는 것에는 문제 없었지만, 연습하고 외출하려면 회복이 필요했다. 형들이 일어날 때까지 체력 회복도 할 겸 침대에 누워서 갱신된 정보 좀 봐야겠네. 에어컨 때문에 실내 온도가 조금 서늘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스템 창을 켰다.

[박유찬]

특화 재능: 작곡, 노래, 춤

작곡: B+(?)

노래: B+(?)

춤: A-(?)

버프: 책임감

디버프: 신뢰(Lv1), 책임감

우리 유찬 형은 밸런스가 좋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작곡도 잘해!

심지어 작곡 스탯은 벌써 B+까지 올라 있었다. 앞으로 저 스탯은 계속 성장하겠지. 뿌듯하게 들여다본 뒤 시선을 내렸다. 책임감이 버프와 디버프 양쪽에 다 있는 걸 보니 유찬 형 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수상쩍은 신뢰. 레벨 표시가 함께 적혀 있는 걸 보니 저게 교주의 스킬인 것 같았다. 비교를 위해 바로 이서호의 정보를 불러왔다.

[이서호]

특화 재능: 연기, 끼, 바이올린, 피아노

연기: B-(?)

끼: A-(?)

바이올린: A(?)

피아노: A+(?)

버프: 단단한 정신

디버프: 신뢰(Lv3), 철없음

우리 서호 형……. 디어리 휘어잡는 솜씨가 남다르더니 끼 수치가 높았네. 무엇보다 의외였던 건 바이올린과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거였다. 다루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왜 악기 다룰 줄 안다는 거 말 안 한거지? 나중에 슬쩍 물어봐야겠다. 의외의 보물을 발견한 느낌으로 기분 좋게 버프를 확인했는데…….

철없음 디버프를 보고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겨우 삼켰다. 언젠가 지워지길 바랄게. 나는 결국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입술을 꾹 눌러 작게 웃으면서 디버프 ‘신뢰’에 집중했다.

유찬 형의 신뢰는 1레벨이고, 이서호의 신뢰는 3레벨이다. 즉 교주의 스킬에 당하면 ‘신뢰’라는 디버프가 생기고, 두 사람의 교주 신봉 정도를 봤을 때 레벨이 높을수록 강하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거기에 또 하나.

예전에 교주는 ‘등급이 하락했다.’ 와 비슷한 뉘앙스로 이야기를 했었다. 당시 흘러가듯 들은 탓에 정확한 워딩까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두 사람에게 레벨 다운이 있었다는 거였다. 그렇다는 건 신뢰의 맥스 레벨은 3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소리.

이건 내일 소파남에게 엿보기 스킬을 써 보면 확실히 알겠지. 교주가 약속대로 소파남에게 스킬을 쓴다는 전제가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스킬 ‘구원’으로 디버프를 지울 수 있느냐였다.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건, 이전에 이서호의 ‘혹’ 상태 이상을 한 번 해제해준 적 있었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혹만 치료가 되긴 했는데…….

내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 이상은 해제가 불가능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교주의 ‘신뢰’는 내 구원으로 해제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이건 나중에 슬쩍 확인해 보면 될 문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강현 형.

[백강현]

특화 재능: 댄스, 운동신경, 민첩

댄스: S-(?)

운동신경: S(?)

민첩: S(?)

버프: 소속감, 강인함

디버프: -

……진천 선수촌에서 귀중한 인재를 놓쳤네.

그나저나 뭐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다 있지? 강현 형의 특화 재능에 매력이 없다는 게 의아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디버프도 없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무 과하게 완벽하면 인간미 없는데…….

나는 강현 형의 스탯을 마지막으로 창을 꺼버렸다. 그 사이 체력은 고작 15 정도만 회복되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슬슬 움직일 준비는 해야겠는데. 나는 형들이 일어나기 전에 잽싸게 모닝 샤워를 끝내고, 소파에 늘어졌다.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체력 회복을 위한 휴식을 하던 중 형들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 이서호 모닝콜 담당은 강현 형이었는데, 형은 힘으로 이서호를 둘러업은 채 성큼성큼 욕실로 들어갔다.

이제는 없으면 섭섭한 이서호의 아침 비명이 시원하게 울렸다. 유찬 형이 언제쯤 혼자 일어날까, 하고 혀를 쯧 차면서 내 옆에 앉았다. 마침 기다리고 있었기에 유찬 형에게 슬쩍 기댔다.

“우리 막내 피곤해?”

“……어제 드라마 촬영 끝나고 피로가 안 풀렸나 봐요.”

“연습 쉴래?”

유찬 형은 걱정스러운 듯 나를 살피면서도, 욕실 문을 닫는 강현 형의 눈치를 보았다. 나는 작게 웃으면서 은근슬쩍 유찬 형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형의 신뢰 디버프를 생각하면서 구원 스킬을 발동했다.

<시스템: 등급이 낮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와, 이게 되네? 등급만 올리면 지울 수 있다는 거잖아! 이번 미션만 깨면 곧바로 구원 스킬에 모든 포인트 올인한다. 이걸로 내 최우선 과제는 ‘구원’과 ‘엿보기’ 스킬 등급 업이 되었다.

***

나는 연습실 벤치에 앉아 허벅지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연습하는 형들을 구경했다. 연습 좀 해보려고 했는데, 체력이 부족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쉬고 있었다.

평소 연습에 진심이었던 내가 쉰다고 하자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들었다. 덕분에 그냥 좀 피곤해서 그렇다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어쨌든 나는 물지기로 전직해서, 돌아가면서 오는 형들에게 색색의 텀블러를 건네주고 있었다. 텀블러가 비면 채우는 것도 내 몫이었다.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다가 보니 문득 저 속에 섞여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강현 형의 시야가 내 생각보다 더 넓었다. 박자가 조금 늦어지거나, 군무가 어긋날 때마다 강현 형의 매서운 눈빛이 거울을 통해 상대방에게 쏘아졌다.

주로 정이한이나 이서호가 대상이었는데, 두 사람은 그럴 때마다 기합을 바짝 넣고 동작을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함께 출 땐 거울 속의 나와 전체적인 밸런스를 보면서 움직이느라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이렇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네.

하지만 재미는 잠시뿐이었다. 이내 같이 움직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체력 제한만 없으면 진짜 훨훨 날아다닐 텐데…….

나는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벽에 기댄 채 엉덩이를 주르륵 미끄러트렸다. 벤치 끝에 엉덩이를 걸친 채 대롱거리고 있었더니, 강현 형이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검은색 텀블러와 형의 수건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지 뭐야?

“형, 물부터 마셔요.”

강현 형에게 텀블러를 쥐여주고,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톡톡 닦아내고 있었더니 묘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본다.

“……심심해?”

“어떻게 알았어요?”

“반기길래.”

어허, 이 형님이 왜 이러실까.

“저 평소에도 형 보면 반가워하지 않아요?”

“같이 있을 땐 안 그래.”

“그거야…….”

그렇긴 해. 계속 옆에 있는데 새삼 반가울 일이 없잖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합죽이가 되는 걸 선택했다.

“여기서 쉬면 불편하지 않아?”

“여기 있으면 이렇게 형들 서포트도 해줄 수 있고 좋은데요.”

나는 형에게서 텀블러를 받아 들고 생글거리며 웃었다. 강현 형이 그런 날 보면서 피식 웃고는 머리를 톡톡 두들긴 뒤 돌아갔다. 반쯤 빈 텀블러에 또 한 번 물을 가득 채운 뒤 구멍이 뽕 난 자리에 형의 텀블러를 돌려놓았다.

점심 먹은 뒤에는 연습 좀 할 수 있으려나. 하교 시간에 맞춰서 약속 시간을 잡았으니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해야지.

다시 심심한 시간이 이어지던 중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얼른 발신자를 확인했는데, 김호채였다. 호오. 교주 너? 진짜 날 도운 거야?

소파남과 통화할 때는 항상 형들과 함께하기로 했기에, 나는 얼른 형들을 불러 모았다.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고.

“뭐? 내일 만나기로 했는데 왜?”

유찬 형이 놀란 눈으로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다른 멤버들도 형의 뒤를 따라 우르르 몰려들었다.

“받을게요?”

“난 준비됐어!”

이서호가 긴장감 어린 눈으로 날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통화 버틀을 누르며 마주친 정이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애써 모르는 척하며 나는 얼른 스피커 모드로 바꾼 뒤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김호채 선배님.”

- 매번 딱딱하네. 그냥 형이라고 불러.

“……제가 어떻게 그래요.”

- 뭐, 호칭은 차차 교정하도록 하고.

꿈도 크다. 인생 3회차를 시작하게 되더라도 소파남을 형이라고 부를 일은 없을 거다. 나는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형,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는 편이 좋아요.

- 아, 그래. 그랬지. 크흠흠.

스피커를 손으로 가린 건지 소리가 멀어졌다. 놀란 이서호가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듯한 모습이었는데, 유찬 형이 얼른 이서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쉿.”

“헙.”

이서호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확인한 유찬 형은 그제야 이서호를 놓아 주었다. 이서호가 놀란 건 당연했다. 소파남의 휴대폰에 섞여 들어온 목소리는 교주의 것이었으니까.

- 흠흠. 별 건 아니고 내일 약속 장소를 좀 바꿀까 하는데…….

“아, 저는 괜찮아요. 어디로요……?”

- 6시에 정화로 2번 출구 버거퀸 앞.

정말 야무질 정도로 번화한 거리였다. 목격자 같은 건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람이 빽빽하게 많은 곳. 그리고 새벽에는 클럽이 판을 치는 장소기도 했다.

완전히 건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약속 시간이 8시에서 6시로 두 시간이나 당겨졌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사람이 많은 건전한 장소, 라는 것에 합격점을 줄 만했다.

남은 건 내일 소파남을 만나 엿보기 스킬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상태 이상도 터트려야 했는데, 엿보기 스킬 연타하면 되겠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6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