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26화 (126/320)

126.

<시스템: 작곡 등급이 E+로 변경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시스템: 작곡 등급의 성장이 완료되었습니다. 더 이상 승급이 불가능합니다.>

이게 뭔 소리야?

이상한 메시지를 본 탓에 멈칫거리자 세화 형이 “왜?”하고 물어왔다. 유찬 형과 정이한이 동시에 나를 보자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어. 다녀와.”

나는 최대한 느긋한 동작으로 녹음실에서 나와 화장실을 향하면서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똑같았다. ‘더 이상 승급이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작곡은 이제 고작 E+로 승급했을 뿐이었다.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자마자 내 정보 창을 불러냈다. 회색으로 변한 작곡 스탯 옆에 ‘최대 성장’이라는 표기가 붙어 있었다. 다른 스탯들은 잘만 올리고 있는데, 왜 이것만 여기서 승급이 막혔지? 딱히 작곡에 뜻이 있는 건 아니라 올릴 생각도 없었지만, 생각이 없는 것과 못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작곡이 갑자기 막힌 걸 보면, 다른 스탯도 안 그러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일단 포인트를 써도 못 올리는 건지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E+에서 D-로 승급하기 위한 포인트는 3이라서, 테스트용으로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아깝진 않았다.

하지만…….

<시스템: 최대치로 성장한 스탯입니다. 추가 승급이 불가능합니다.>

하…….

작곡은 E+가 최대치라고? 재시도 해봤으나 역시나 같은 메시지만 떠올랐다. 그러면 혹시 작사도 비슷한 수치에서 멈추려나? 곧바로 E에 머물러 있는 작사 스탯에 포인트 1을 투자해서 E+로 만들어 보았다.

이번에는 성장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따로 안 뜨길래 한 번 더 해봤더니…….

<시스템: 작사 등급이 D-로 변경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시스템: 작사 등급의 성장이 완료되었습니다. 더 이상 승급이 불가능합니다.>

똑같은 메시지가 떴다. 이 말인즉슨, 다른 스탯도 언젠가 성장이 멈출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불현듯 갑자기 성장 폭이 확 느려졌던 시기가 떠올랐다.

데뷔하기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노래랑 춤의 경험치 차는 속도가 몇 배는 느려져 애먹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정확하게 어떤 등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느려졌던 두 스탯이 서로 다른 등급이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겼었으니까.

최대 성장 가능한 등급과 가까워지면 느려지는 건가? 작곡과 작사는 요구 경험치가 너무 낮은 등급에서 멈춰 버린 탓에 확인해 볼 방법이 없었다. 혹시 몰라서 시스템에게 내 스탯 별 최대 등급이 뭔지 물어봤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내가 알아내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는 건데…….

지금이라도 연기 경험치를 좀 체크해둬야 하나? 하지만 스탯마다 최대치가 다르니 미리 확인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떠오를 것 같진 않았다.

데우스, 이거 맞아요? 이거 버그 아니야? 저기요! 데우스님! 시스템 버그 떴다니까!

<시스템: 시스템 점검을 시작합니다… 1%>

응? 어? 진짜 버그였어?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경험치 차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시스템: 시스템 점검이 완료되었습니다.>

엥? 이렇게 빨리 끝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 창을 살펴봤지만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작사, 작곡 스탯은 최대치라고 적혀 있었고, 따라서 추가 성장은 불가능했다.

아니, 이게 버그가 아니라고? 아무리 봐도 버그 맞는 것 같…….

<시스템: 시스템 점검을 시작합니다… 1%>

……아. 정말 친절하기도 하네. 내가 시스템의 성능을 의심할 때마다 자동 점검하는 기능이라도 넣어 둔 모양이었다. 허탈해져서 헛웃음을 삼켰다. 그러니까 버그는 아니라는 소리네?

어쨌든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내 스탯에는 최대 성장 가능한 등급 제한이 있다는 것.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스탯이 무조건 S+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니, 그러면 처음에 S 등급 스탯권 받았을 때, 작곡이나 작사를 선택했으면 그대로 날릴 수도 있었던 거야? 아니면 스탯권으로 올리는 건 등급 제한이랑 상관없나? 내가 했던 게임이랑 비교하면서 잠깐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보통 카드 게임류를 떠올려 보면, 캐릭터의 특성에 따라 능력치의 MAX 성장 수치가 다른 게 기본이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수월하게 올라가는데,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성장 속도가 아주 극악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최고 수치까지 성장하고 나면, 한계 돌파로만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한계 돌파를 하려면 대부분 캐시템이 필요하지. 아니면 극악한 확률로 얻을 수 있거나. 게임을 충실히 구현해 놓은 만큼 이런 것도 똑같이 반영해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작사, 작곡 재능이 없다는 거지. 다시 말해 데우스 신은 ‘S등급 스탯권’이라는 일종의 캐시템 개념으로 내 한계치를 뚫어 준 걸지도 모른다. 그러면 매력은 경험치 다 채우면 끝이라고 봐야겠네.

그러고 보니…….

내 스탯 별 최대 수치는 뭘 기준으로 잡은 걸까. 재능?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춤, 노래, 연기 모두 A를 넘어섰다. 솔직히 내가 저것들을 전부 다 잘한다고 볼 수 없을 테니 잠재력을 기준 삼은 건 아닐 것 같고.

진짜 내 재능은 뭐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엿보기 스킬이 떠올랐다. 평소라면 체력 두고 모험 따위 하지 않겠지만, 궁금한 건 못 참지. 내게 엿보기 스킬을 쓰려고 했는데…….

스킬 설명에 떡하니 ‘다른 사람의’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발동시켜 보았지만 내게는 쓸 수 없다는 단호한 메시지만 떠올랐다. 너무하네.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스킬 창을 노려보고 있을 때 화장실 중문이 열리며 정이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온아, 여기 있어?”

“…아, 네! 형 저 있어요!”

“어어.”

왜 왔지? 내가 그렇게 오래 있었나? 좀 오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달갑지 않은 오해를 받을 것 같아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자 정이한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어디 아파?”

“아뇨. 그냥 혼자 생각할 게 있어서 앉아 있었어요.”

“고민 있었어? 뭔데? …나한테는 말하기 어려운 거야?”

정이한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면서 염려스러운 티를 팍팍 냈다.

“아, 저는 작곡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요…….”

아주 거짓말로 둘러대는 건 아니었다. 정말 내 재능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정이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절대 그렇지 않다면서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나를 독려했다. 스탯이 안 된다는데?

이게 춤이나 노래였다면 한계치를 뚫으려고 미친 듯이 노력했겠지만, 솔직히 내게 작사, 작곡은 그렇게 노력할 만큼의 가치가 없었다.

“아니에요, 형.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르잖아요. 대신 저는 노래를 잘 부르니까.”

“어어. 하온이는 춤도 잘 춰!”

“응, 알아요!”

당당한 대꾸에 정이한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합, 다물었다. 까만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서 내게 고정되었다. 마주 보면서 방긋방긋 웃어주니까 금세 또 표정이 풀리면서 눈웃음 지어주는 게 좋았다.

***

그래도 나름 환생한 후로 꽤 빡빡하게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지금과 비교하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게 휴식기인데도 활동기보다 훨씬 더 바빴다. 덕분에 휴식기에도 메인 미션 경험치를 착실하게 쌓을 수 있다는 점이 위안 아닌 위안이랄까.

그런 데다, 아직 촬영이 시작되기 전인 드라마 쪽에도 문제가 생겼다. 원래는 서너 번 정도 승리한과 촬영하면 끝나는 정도의 스케줄이었는데 갑자기 공동 주연인 형사와도 얽히게 되었다.

스토리가 조금씩 수정되었다면서 새로 나눠준 대본을 받아서 읽어보니 내가 맡은 배역 ‘정현’이 과거 두 주연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덕분에 촬영 씬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

체력 괜찮으려나, 이거. 운 나쁘면 진짜 상태 이상 팡팡 터질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답 없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답답해져 연습실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그러자 강현 형이 힘들면 잠깐이라도 편하게 쉬고 오라고 말하고는 다시 안무 창작에 열을 올리면서 집중했다.

열중하는 강현 형에게 자극받은 나는, 일단 나중에 촬영할 드라마는 슬쩍 뒤쪽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보다 당장 다음 주부터 리얼리티 시즌 2 촬영에 들어가는 게 문제였다. 2박 3일 일정이라서 그 전에 최대한 안무 창작을 끝내기 위해 강현 형과 머리를 맞대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나는 여권이 없는데 여권 만들라는 소리를 안 한다. 그때 우리가 적어 낸 소원은 분명 해외여행, 별 보기, 숲으로 힐링 여행 가기, 어트랙션 체험. 그리고 내가 적은 공포체험이었다. 전부 다 들어준다고 했으니 해외 가서 다 해치우고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나는 연습실 바닥에 늘어뜨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앉아, 거울 속의 자신과 싸움이라도 하듯 진지하게 안무를 체크 중인 강현 형을 불렀다.

“어?”

형은 이마에 맺힌 땀을 팔등으로 대충 훔쳐낸 뒤 숨을 골랐다.

“형 해외여행 적은 거 맞죠?”

“쪽지?”

“네.”

“응. 맞아.”

“그런데 왜 여권 만들라는 소리를 안 할까요…….”

이상하지 않아요? 강현 형은 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이상하네.”

“형 여권 있어요?”

“없어. 그보다 하온아, 싸비 부분 팔 동작.”

역시, 강현 형은 해외여행에 관심이 없나 보다. 그것보다는 지금 만들고 있는 안무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음악을 재생시킨 형이 두 가지 동작을 보여주고는 어떤 것이 더 매끄러운 지 내게 물었다.

하긴, 찝찝해한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안무 창작에 집중해야지.

***

드디어 우리의 소원 여행 촬영일이 되었다. 촬영을 나서기 전 다들 커다란 캐리어에 짐을 꽉꽉 눌러 담았는데, 2박 3일 여행 가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하온아, 정말 그거면 돼?”

정이한은 멤버들 중 가장 단출한 내 가방이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겨울도 아니고 초여름인데. 햇볕 가릴 모자,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속옷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게다가 촬영으로 가는 거니까 옷은 어차피 협찬 의상 입을 테고.

이래 봬도 물에 빠질 걸 대비해서 속옷은 넉넉하게 챙겼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네, 전 완벽해요.”

“부족해 보이는데…….”

“형들이 너무 과하게 챙긴 거예요. 누가 보면 이민 가는 줄 알겠어요.”

형들에게 이상한 데서 쿨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평가를 받으면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무섭게 카메라가 우리를 맞이했다. 2박 3일 카메라 달고 다니면 메인 미션도 끝낼 수 있겠네. 메인 미션 완료까지는 고작 8%만 남아 있었다.

…그나저나 예쁜 척 스킬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경험치가 많이 남았을 때는 별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완료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괜히 궁금했다. 반대로 리얼리티 촬영은 별 기대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외는 아닌 것 같거든. 우리를 어디다 떨궈놓을지 오히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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