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16화 (116/320)

116.

자연스럽게 쫓아낼 방법을 궁리해 보려는데, 가뜩이나 빈혈 때문에 어지러운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차라리 매니저 형이 빨리 돌아와서 쫓아내 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약국 가서 피로회복제 사 오겠다고 한 지 몇 분은 지난 것 같은데, 왜 안 오지…….

“많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내가 대답하지 않아서인지 교주가 성큼,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염려 섞인 어조로 물었다. 눈썹 끝이 축 처진 모습이 정말,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저렇게까지 본모습을 완벽하게 숨기는 사람은 처음 봤어. 분명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런 낌새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 보는 시선이 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면, 정말 깜빡 속았을 것 같았다.

“아, 네, 괜찮, 아요…….”

그런 교주를 도저히 자연스럽게 쫓아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대화하기 힘든 티를 팍팍 냈다. 굳이 연기할 필요도 없이 자꾸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삼키느라 말이 뚝뚝 끊겼다. 눈치가 있다면 갈 테지만…….

교주는 눈치가 있어도 갈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이렇게 몸이 약하셔? 유찬이가 걱정이 많겠다.”

아예 유찬 형 옆에 자리 잡고 서서 걱정스럽게 날 내려다보는데,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제 곧 상태 이상이 끝날 테니 교주 얼굴이라도 안 보려고 소파 등받이 쪽으로 몸을 틀어버렸다.

시야가 꽉 막혀서 답답했지만 기분은 훨씬 나았다. 토기를 참아내느라 심호흡하면서 어지럼증과 맞서 싸우는데, 소스라치게 차가운 손길이 뒷덜미를 어루만져오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우리 멤버 중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열은 없으신데.”

지금 날 만지고 있는 게 교주란 걸 깨닫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팔을 뒤로 뻗어서 교주의 팔을 확 쳐냈다.

“윽.”

교주가 손목을 부여잡고 상체를 수그렸다. 동시에 상태 이상이 완전히 끝났다. 상태 이상 종료와 함께 찾아온 탈력감에 몸이 완전히 늘어졌다.

“헉! 재혁 형!”

이서호가 화들짝 놀라서 교주의 손을 살폈다. 그러면서 잔뜩 울상인 얼굴로 교주와 나를 번갈아 보는데, 아픈 나한테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많이 아파? 어떡하지…….”

“괜찮, 윽. 아, 미안. 조금 시큰거리네. 유찬아, 혹시 스프레이 파스 있어?”

“어? 아! 있어!”

유찬 형이 허둥지둥 스프레이 파스를 찾으러 갔다. 이서호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교주의 손목을 살피고 있었다.

“미안해……. 진하온이 지금 아파서 좀 예민하게 반응했나 봐. 원래 형들 껌딱지인데…….”

“아니야, 내 잘못이지. 선배님이 싫어하는 짓을 했으니 맞아도 싸.”

이서호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잖아. 그냥 몸 상태가 별로라서, 실수로 그런 걸 거야. 그렇지?”

이서호가 나를 보면서 빨리 교주의 오해를 풀어주란 눈치를 대놓고 주고 있었다.

……뭔데, 지금 이 분위기. 이게 정말 내가 사과해야 하는 일인가? 남의 몸을 멋대로 만진 건 교주잖아. 지금도 뒷덜미에 뭔가 벌레 같은 게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감이 일어 손으로 문지르고 싶은 걸 꾹꾹 참는 중이었다.

“진하온…….”

이서호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애처롭게 날 봤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이서호 얼굴 봐서 사회생활 해준다, 내가.

그리고 어쨌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상처 입힌 건 내 쪽이니까. 손목을 삘 정도로 세게 때린 것 같진 않았지만 본인이 아프다는데 어쩌겠어. 누워서 사과할 순 없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했을 때였다.

“그냥 누워있어.”

지금까지 내내 무선 이어폰을 낀 채 한 발자국 물러나 있던 강현 형이 날 다시 소파에 눕혀줬다. 강현 형은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등 뒤에 있는 교주에게 말했다.

“재혁 형, 하온이는 원래 다른 사람이 만지는 거 싫어해.”

형은 미소 띤 얼굴로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들겨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교주를 막아서듯 시야에 가득 찬 강현 형의 든든한 등을 보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우리야 서로 각별하니까 그렇다 쳐도. 형이 그렇게 덥석덥석 만지면 안 되지. 하온이는 형 멤버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형이랑 일면식도 없는데.”

“하온아, 많이 놀랐어? 어지러운 건 이제 좀 괜찮아?”

정이한도 아예 교주를 등진 채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교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울상이 된 얼굴로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정돈해주기 바빴다.

“네. 괜찮아요. 지금은 힘이 좀 없을 뿐이라서……. 쉬면 나을 것 같아요.”

이대로 교주가 나가주면 금상첨화일 텐데.

“그렇구나……. 내가 그걸 몰라서 실례되는 행동을 한 것 같아. 선배님께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싶은데, 잠깐만 옆으로 비켜줄래?”

강현 형이 몇 분 정도 가만히 서 있다가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그 사이 스프레이 파스를 찾아온 유찬 형이 조심스럽게 교주에게 파스를 건네줬다. 교주가 파스를 받아 들면서 씁쓸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제가 너무 주제넘게 굴었던 것 같아요. 선배님 직캠이랑 디아스 영상들을 정말 열심히 봤거든요…… 그래서 저 혼자 내적 친밀감이 쌓여있었나 봐요. 선배님이 걱정되는 마음에 한 행동이었지만, 불쾌하게 만들어서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정말 교묘한 화법이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아니에요, 괜찮아요.”하고 대답해 버렸다. 이걸로 대화가 좀 끝났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내 체력은 0에 머물고 있었기에, 여기서 또 상태 이상이 터질까 봐 불안했다. 무의식중에 자꾸 체력을 확인하다가 교주가 나를 관찰하듯 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의식적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교주의 정체를 간파하지 못한 지금, 소소한 행동으로라도 절대 힌트를 주고 싶지 않았다.

혹시 모르잖아. 저 사람도 나처럼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지도. 그러면 허공을 더듬는 행동만 보고도 무언가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그럼 제 사과, 받아주신 거죠? 아, 다행이다…….”

그런데 교주가 천연덕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상대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능숙한 교주 같은 타입은 분명 연예계에서도 인싸가 될 텐데, 이걸 간과했다가 인성 터졌다는 소문의 빌미를 제공할 순 없었다.

“……네. 저도 예민하게 군 것 같아서 죄송했어요. 좀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랬어요. 당연히 우리 형들인 줄 알았거든요.”

“아니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선배님께 밉보이긴 싫었거든요.”

교주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날 향해 손을 내밀면서 화려한 눈매를 곱게 접었다.

“그럼 화해의 악수, 받아주실 거죠?”

악수…….

이거 좀 위험해 보이는데. 내 체력은 여전히 0에 머물고 있었다. 차지도 빠지지도 않는 아슬아슬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교주랑 손을 잡는다고? 분명 마이너스로 가는 지름길일 게 뻔했다.

“아, 혹시 악수는 좀 껄끄러우신 건가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교주가 먼저 시무룩한 얼굴을 하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대답 안 하고 그냥 적당히 웃어넘기려는데, 이서호가 갑자기 내 팔목을 잡아끌었다.

“에이! 뭘 재고 있어! 그냥 시원하게 악수하고 깔끔하게 화해하면 되지!”

이서호가 발랄하게 웃으면서 내 손을 교주에게 대신 건네주었다. 교주가 덥석 잡아 오려고 해 재빠르게 빼내려고 했는데, 운 나쁘게도 그보다 교주의 행동이 더 빨랐다. 고의인 게 분명한 강한 악력에 손이 꽉 잡힌 순간이었다. 손에서부터 시작된 저릿한 감각이 확 타고 올라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졌다.

<시스템: 상태 이상 발생!>

화들짝 놀라서 교주의 손을 쳐내는 바람에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서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술을 끔벅거리면서 나를 봤다.

“아, 죄, 송해, 요. 지금, 몸…이…….”

<시스템: 상태 이상 ‘기절’에 걸렸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하필이면 최악의 상태 이상이 떴다. 나는 흐릿해지는 의식 너머로 형형하게 빛나는 교주의 눈을 봤다. 무언가, 시험해 본 게 분명해…….

“하온아!”

동시에 불러오는 형들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완전히 의식을 놓았다.

***

준재혁은 꽉 움켜잡았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반사되어 돌아왔다, 고. 우호도가 없는 대상에게는 한 생에서 오직 세 번만 쓸 수 있는 세뇌였지만, 그 한 번을 날린 가치는 있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진하온은 2회차 회귀자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혹은 다른 계열의 신에게 ‘시험’을 받고 있다. 시험을 받는 자들은 서로에게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게 그 증거였다. 혹은…….

‘나보다 강한 정신 지배 계열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분명 발동 조건도 까다롭고, 그에 따른 패널티도 강할 터였다. 역시, 갑자기 혼절한 것도 패널티 때문이려나.

준재혁은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진하온을 한 발자국 물러서서 지켜봤다. 당황한 디아스 멤버들이 진하온을 둥글게 에워싼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유찬아.”

박유찬은 준재혁이 부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소중한 제 그룹 막내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여념 없었다.

‘확실히 연결이 약해졌어. 우호도는 그대로인데.’

준재혁은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박유찬의 어깨를 잡고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그의 이목을 제 쪽으로 끌어올 수 있었다.

“진정해. 네가 리더잖아. 리더가 당황하면 어떡해?”

“아, 응, 그, 그렇지. 리……더.”

박유찬은 희게 질린 얼굴로 ‘리더’라는 말만 반복했다. 여전히 책임감에 약한 녀석이었다. 이런 녀석을 휘두르는 데 능한 걸 보면 역시 정신 지배 계열인 거려나. 준재혁은 혼란을 틈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박유찬에게 물었다.

“하온 선배님, 평소에도 컨디션 안 좋으면 이렇게 픽픽 쓰러져?”

“오늘처럼 기절한 적은, 없었어…….”

“몸은? 원래 약해?”

“체력이 조금……. 그런데 평소에는 되게 밝고 건강해. 그런데 한 번씩 이렇게…….”

“형! 하온이, 저, 정신을 아예 못 차리는데 어떡해…….”

다급한 목소리로 둘의 대화에 끼어든 정이한 탓에, 박유찬의 관심이 다시 진하온에게 돌아갔다. 박유찬은 아예 고개를 돌려 버린 채 다급하게 외쳤다.

“구, 구급차, 구급차 부를게!”

좀 더 정보를 캐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였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 상관없었다. 준재혁은 팔을 뻗어 그런 박유찬을 제지하곤, 고개를 저었다.

“방송국으로 구급차 불러서 어쩌려고. 멤버 쓰러졌다고 연예면 장식하고 싶어? 하온 선배님도 원하지 않으실 거야. 안 그래?”

“……아. 그, 그렇지. 그래, 재혁이 네 말이 맞아.”

“매니저님한테 연락하고, 지하 주차장에서 최대한 조용히 만나서 바로 커넥션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게 나아. 괜히 잡음 생기는 거 싫으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할 텐데, 너희 다 도저히 그럴 상태가 아닌 것 같다. 내가 데리고 갈게.”

이서호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도와달라며 펑펑 울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이성적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인 백강현이, 곧장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하는 게 보였다.

차분한 음성으로 진하온이 쓰러졌다고 알린 뒤, 지하 주차장으로 조용히 데리고 가겠다는 말까지 전했다. 곧 전화를 끊은 백강현이 준재혁의 눈을 올곧이 마주하며 말했다.

“도와준 건 고마워.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우리 막내 못 넘겨.”

하온이는 우리가 지킬 거야.

단호하게 거절한 백강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정이한에게 업을 수 있게 도와달라면서 진하온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양팔을 뒤로 돌렸다.

‘여전하네, 백강현.’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우호도 탓에, 백강현은 연습생 시절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멤버였었다. 신뢰를 얻지 못하니 힘도 쓸 수 없었고. 그런데…… 진하온은 그걸 해냈단 말이지.

‘활동기가 겹치지 않는 게 아쉽네. 그랬다면 굳이 떠볼 필요도 없이 이것저것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미끼는 던져놨다. 지난 생에까지는 없었던 인물. 갑자기 어디선가 뚝, 떨어진 것처럼 등장한 아름다운 외모의 소년.

평범한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기회: 3/3]

신이 내린 시험을 통과하라고 보내준 구원자일까. 아니면 모든 걸 망칠 방해자?

[목표: 0/100%]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상태창 속 수치를 보면서 준재혁은 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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