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드모드 아이돌-15화 (15/320)

15.

“나 말인데, 데뷔 조에 있긴 하지만 춤도 애매하고, 노래도 애매해. 그래서 서브 보컬이고. 나도 내가 어떻게 데뷔 조에 합격했는지 몰라. 1군 중에는 나보다 잘하는 형, 동생들이 훨씬 많거든.”

왜겠어. 너 귀엽게 생겼잖아. 지금 보니까 성격도 딱 귀염귀염 순둥이구만. 급발진하는 것만 고치면 완벽한 아이돌 감이다. 조용히 하랬으니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지만, 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너부터 말하고 다음엔 내가 말한다.

“자신감 떨어질 때마다 나 응원해주고, 끌어주고 돌봐 준 게 재혁 형이야. 형 없이 나 혼자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 없어. 나는 형 없으면 안 되거든…….”

각인된 새끼 새가 어미 따르듯이 따랐다는 소리네. 그런 사람을 내가 밀어내고 들어왔다고 오해했으니 싫어할 만도 하지. 이쪽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형이 없어졌어. 너 때문에 없어진 거야. 그래서 네가 미워. 널 좋아하기가 힘들어. 이건 솔직한 내 마음이야. 미안해. 노력은 해볼게.”

그렇군. 할 말 끝났나? 이야기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겨서 나도 말하고 싶어졌는데.

“나 이제 말해도 되나?”

“아이씨, 너 진짜 눈치 없냐?”

눈치 백 단인데 무슨 섭섭한 말씀을. 그저 인간관계가 어려울 뿐이다. 너도 내 입장 되면 똑같아질걸.

강아지가 두 손으로 연거푸 얼굴을 쓸어내린 뒤 한숨 쉬었다.

“하, 진짜. 알았어. 말 해봐. 나도 말했으니까 네 말도 들어줄게.”

“어. 내가 왜 그 재혁 형이란 사람을 쫓아내고 들어왔다고 생각하는지부터 알고 싶은데.”

진짜 궁금하다. 한 사람이 나가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막무가내로 오해하진 않을 거 아냐. 대충 추리한 게 있긴 하지만, 이건 본인들 입으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준재혁 내보내고, 넣을 사람 있습니다.’라고 한 말 들었어. 정확하게 기억해. 그런데 그날 오디션 보자마자 널 합격시켜선 데뷔조 멤버라고 우리한테 인사시킨 거야. 지금까지 그런 경우 없었어.”

“누구한테 들었는데?”

“재혁 형 일 물어보려고 갔다가 대표님이랑 실장님 이야기하는 거 우연히 들었어. 내 귀로 직접.”

“아하.”

궁금증이 해결됐다. 진짜 완벽하게 오해한 모양이다. 일단 나는 애초에 메보로 캐스팅된 거 아니다. 비주얼 멤버지. 아마도 ‘준재혁 내보내고’와 ‘넣을 사람 있다.’는 다른 문맥이었을 거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준재혁은 내보내는 걸로 결론 내리자.’랑 ‘새롭게 넣을 만한 사람이 있다.’ 두 가지가 합쳐져서 생긴 해프닝이란 거지. 두 사람은 상황을 알고 있으니까 함축해서 말한 거고 강아지는 오해한 거고.

“반응이 그게 뭐야? 인정하는 거야?”

“전부 우연의 일치라고 하면 믿을래?”

“믿겠냐?”

설명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구구절절 말해봤자 불신만 깊어질 것 같다. 얘는 이미 결론 내렸는데 아니라고 해 봐야 소용없지.

“어, 뭐. 어렵긴 하겠네. 알겠어.”

“너 진짜 재수 없어!”

정황상 강아지가 오해할 이유도, 날 미워하는 이유도 명확하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멤버들의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리면, 그때는 얘도 풀리겠지.

“알겠어. 그런 거로 하자.”

“뭐? 장난하냐?”

“아니. 진담인데.”

갑자기 강아지가 씩씩거리면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렸나?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진심을 곡해하지 말아줘.

“진정해. 너 놀리는 것도 아니고, 농담한 것도 아니야. 싫어하는 사람 억지로 좋아해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어?”

“나 싫어하잖아.”

“으, 으응.”

“싫어하는 감정은 없애기 어렵거든. 그러니까 계속 싫어해도 괜찮아. 어차피 난 이런 일 익숙하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편하게 미워해.”

내 메인 미션에 많은 지장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갈 길이 머니 얘는 마지막으로 미뤄도 되지 않을까. 나중에 오해 풀리면 중립으로 바뀌겠지. 그동안 스탯은 트레이닝 열심히 받아서 올리는 수밖에.

“익숙하다고? 미움받는 게 익숙해질 일이야? 그건 너무 슬…….”

“나 싫어하는 사람한테 그거까지 말해줘야 해?”

얘는 내가 호구로 보이나? 강아지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제 뒤통수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아니, 그건 아닌데. 아! 그러고 보니 너 왜 자꾸 나한테 반말해?”

“네가 먼저 했잖아.”

“내가 형이잖아!”

정신연령은 내가 더 높은데. 이래 봬도 27년 살아보고 다시 18살이 된 거라서 말이지.

“그럼 형이라고 불러줘? 나한테 형 소리 듣고 싶어?”

“아니!”

“그럼 따지지 마.”

“아니, 뭔가 이상한데. 어? 잠깐만. 아씨. 그럼 계속 나한테 너라고 할 거야?”

아 귀여워라. 강아지 귀여운 거 모르고 살았는데 이 녀석 진짜 귀엽네. 대형견 같다.

“이제 눈치챘어?”

눈꼬리를 접어 웃어주면서 강아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강아지가 얼굴을 붉히면서 빼액 소리쳤다.

“형이라고 해!”

“네네, 형.”

“아……! 너 진짜 짜증 나!”

원하는 대로 맞춰줘도 승질이야.

“아, 맞다. 강……. 아니. 잠깐만.”

얘 이름이 뭐였지. 나는 재빠르게 미션 창을 확인하고 ‘이서호’라는 이름을 봤다.

“이서호.”

“형이라니까?”

“알았어. 서호 형.”

“왜.”

“내가 보기에 너는 데뷔 조에 들어올 만한 사람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얼떨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기분 나빠 보이진 않았다. 역시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나도 칭찬받으니까 좋던걸.

“일단 귀엽게 생겼잖아.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더 잘났을 수는 있지만, 너보다 귀엽진 않을 것 같아.”

“너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되게 기분 이상한데…….”

강아지는 설익은 감을 한 입 베어 물기라도 한 것처럼 무척 떫어 보이는 얼굴로 갸웃거렸다. 그 반응마저 귀여워서 이런 게 덕후몰이상이구나, 하고 단번에 이해했다.

“그것뿐이야? 너 착해. 싫어하는 사람한테 진심 담아서 사과할 수 있는 사람 별로 없다? 적어도 나는 한 번도 못 만나봤어. 네가 처음이야.”

“……잘못한 건 사과하라고 배웠으니까.”

“그래. 그래서 너 데뷔 조에 있을 자격 있다는 소리야. 얼굴, 인성, 실력. 전부 따져서 정해지는 거잖아.”

“……그런가?”

“당연하지. 회사가 장난이야? 그러니까 널 믿어. 못 믿겠으면 널 뽑은 실장님을 믿던가.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강아지의 커다란 손을 내려보면서 말했다.

“너 손버릇 나빠.”

“와이씨, 너 그 말 하려고 나 칭찬했냐?”

“응. 그렇다고 빈말로 칭찬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손부터 올리고 보는 버릇 고치는 게 좋아. 나중에 문제 돼서 그룹에 피해 입히면 네가 더 속상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너한테 듣고 싶진 않거든?”

“내가 할 말은 이제 끝. 고칠지 말지는 네가 알아서 판단하고. 그럼 나 간다. 사과해 줘서 고마웠어. 처음 받아 보는 건데 기분 좋네.”

강아지, 아니. 이서호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름 자꾸 까먹으니까 부르는 버릇 들여야겠다.

내가 보컬룸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등 뒤에서 “아, 맞다! 형이라니까!”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처럼 굴어야 형 소리 해주지. 아주 아기야, 아기.

“어? 실장님.”

실장님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나 했더니 내가 있던 방에서 이서호가 나온 걸 보신 모양이었다.

“서호랑 이야기했니?”

“네. 사과받았어요.”

실장님이 가느다랗고 긴 숨을 뱉으셨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애들한테 한 번 더 말했거든. 네가 합류했든, 안 했든 재혁이는 내보냈을 거라고. 그래도 안 믿네. 왜 저렇게들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설득할 테니까 기다려 줘.”

실장님은 이서호가 대화 엿들었다는 건 모르시나 보다. 귀띔해드릴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실장님은 더 신경 쓰일 거고, 이서호의 불신만 깊어질 수 있다. 쫓아낸 이유를 멤버들한테 설명해 줄 것도 아니고.

“오해는 곧 풀리겠죠.”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실장님은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날 살폈다. 내가 방긋방긋 웃고 있자 날 따라 웃으셨다.

“그래. 그래야지. 신기하게 하온이 미소 보고 있으면 뭐든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야.”

“제가 좀 행운의 아이콘이라서요.”

“맞아. 그런 것 같다.”

이거 아닌데? 농담으로 말했는데 동의하시니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부끄러움을 물리치기 위해 더 열심히 웃었다.

“그럼 이제 어떡할래? 계약도 잘 끝났는데 계속 보컬 연습할래? 아니면 댄스 트레이닝도 받아 볼래? 연기 쪽도 관심 있으면 말해. 선생님 붙여줄게. 외국어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건 좀 천천히 해도 되겠다.”

공부라는 말에 시선을 피하자 실장님이 피식거리면서 말을 돌려주셨다. 외국어 공부는 스탯 다 올린 뒤에 할게요. 외국어 못해도 성공하는 데 지장 없으니까 우선순위 중 가장 밑이다. 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고.

“하하하……. 전 보컬 연습 계속하고 싶어요. 노래 배우는 거 너무 재밌어요.”

“응. 그래. 댄스 트레이닝은 애들이랑 사이 좀 괜찮아지면 그때 다 같이 하자.”

“넵.”

확실히 내 편의를 많이 봐주고 있긴 했다. 멤버들과의 관계 개선. 실장님도 원하고, 미션도 원한다. 나는……. 음. 아직 잘 모르겠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연습하러 간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날 보내주셨다. 보컬 쌤 만나기 전에 화장실부터 들러야지. 스탯부터 올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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