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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72화 (17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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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서는 대표실을 바라보며 그 묘한 웃음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아마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보겠지만, 비서 생활만 10년이 넘는 장 비서는 그 미소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물론 진짜로 죽인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재산을 빼앗기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그 대상은…….

장 비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대상이 문득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유레카의 이도훈 대표는 아닐 것이다.

장 비서는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여의…… 뭐라고 했는데? 여의도였던가? 아니야, 여의…….”

단어를 떠올리던 장 비서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분명히 여의주라는 말을 한 것 같았다.

대충 정리해 보면 여의주를 빼앗자는 이야기 같았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장 비서는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의주를 빼앗자는 의미는 간단했다.

미라클의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장경자를 용이라 부른다.

그냥 용도 아닌 개천에서 난 용이 바로 장경자였다.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미라클이라는 기업을 세운 입지적인 인물.

더 재미있는 것은 미라클이라는 기업의 이름도 모자라 실질적인 힘은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실질적인 힘은 바로 현금이었다.

임직원들은 장경자는 용이고 그녀의 현금은 여의주라 일컫는다.

즉, 여의주를 빼앗겠다는 것은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장 비서는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무사히 넘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장 비서에게 닥친 과제였다.

미라클에 피바람이 분다면 선택은 두 가지였다.

미리 자리를 뜨든가, 아니면 승자의 쪽에 서든가.

장 비서가 잔뜩 인상을 쓰고 있을 때였다.

그의 윗주머니가 드르륵 하고 떨렸다.

장 비서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최 과장이…… 왜?”

최 과장이라고 저장된 번호는 최대한이었다.

이도준이 유레카에 첩자로 심어 놓은 인물이었다.

요즘은 활용도가 다소 떨어져서 연락도 뜸하던 차였다.

그런데 왜 이자가?

의문도 잠시, 장 비서는 본능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비서님, 저 최대한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뭡니까? 최 과장.”

―다른 일은 아니고 비서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할 얘기 있으면 찾아오시죠.”

장 비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최대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도훈 대표님이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순간 장 비서의 눈이 커졌다.

“지,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유레카의 이도훈 대표님이 자리를 만나자고 하십니다.

“지금, 이도훈 대표라고 했습니까?”

―네, 맞습니다. 자리를 한번 마련하라고 하십니다.

“…….”

장 비서는 잠시 숨을 멈췄다.

정말 묘한 시기에 이도준의 천적이었던, 이도훈이 눈길을 준다고?

장 비서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서 움직여도 유레카의 이도훈과 만날 때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    *

한 시간 후.

장 비서는 이도준과 마주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이도준은 눈웃음을 치며 장 비서를 맞았다.

“장 비서, 수고 많았어. 아버지가 뭐라고 했는지 편하게 얘기해 봐.”

“문동훈과 SW 엔터에 지원한 비자금을 캐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보고 그 사실을 아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장 비서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세훈과 이도준은 부자 사이가 아니던가?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솔직히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마 이세훈이 이도준에게 미리 연락했을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괜히 거짓을 늘어놓았다가는 자신의 목에 스스로 칼을 들이미는 것과 같았다.

장 비서의 보고에 이도준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장 비서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이건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음,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 그래서 그쪽 문제는 어떻게 돼 가고 있다고 그러셔?”

“검찰 쪽에 넘어가는 바람에 문동훈은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본부장님께도 피해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물어보시더군요. 이 상황을 알고 있었냐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아무 대답도 안 했습니다.”

“모른다고 하지.”

“몰랐다고 하면 무능한 비서가 되는 거고, 알았다고 하면 양심 없는 비서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대답을 안 했군. 아버지가 뭐라고 안 하셔?”

“저를 내보내고 오정수 비서실장을 불렀습니다.”

“오정수 실장하고 아버지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본부장님 마음속도 읽지 못하는데요.”

“그래, 그럼 내가 솔직하게 얘기할 게. 아니 이건 제안이라고 봐야지.”

“무슨 말씀입니까? 본부장님.”

“장 비서, 평생 비서만 할 거야? 끝까지 올라가도 비서실장이야. 그것도 내가 대표가 되면 말이지.”

“…….”

“그래서 하는 얘기인데, 평생 비서로 끝낼 게 아니라 적어도 그룹 대표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대, 대표요?”

장 비서는 눈을 크게 떴다.

비서실 직원 중에 경영진으로 빠진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안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세상에 태어났으면 한 번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망은 가지고 있어야 할 거 아니야.”

“…….”

“장 비서가 딱 한 가지 일만 해 줘. 그럼 내가 유통 쪽 대표 자리 약속하지.”

“그 일이라는 게 뭡니까? 본부장님.”

“이번에 검찰로 넘어간 일 말이야. 장 비서가 책임졌으면 좋겠어.”

“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미라클 법무팀하고 변호사 못 믿어? 그 정도면 딱 일 년만 살다 나오면 돼. 일 년 잠시 쉬었다 오면 유통 분야 대표가 보장되는 일이라고. 어때?”

“…….”

“지금 나 못 믿는 거야?”

“못 믿는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렇습니다.”

장 비서는 이도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쪽으로 오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원래 슬픈 예감을 틀린 적이 없다는 가사도 있지 않은가.

장 비서의 심정이 그랬다.

이도준은 장 비서의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건 내가 장 비서를 위해서 제안한 거고 사실 가만히 있어도 검찰에서 타깃으로 삼는 건 장 비서야.”

“네?”

“돈 누가 보냈어? 그 돈 내가 보냈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솔직히 내가 직접 보낸 건 아니잖아. 장 비서가 비자금 관리했잖아.”

“그거 본부장님이 시키신 일이 아닌가요?”

“증거 있나?”

“음.”

장 비서는 침음을 삼켰다. 한참을 고민하던 장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일까지 시간을 주시죠.”

“그래, 현명한 판단 내리길 바랄게.”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지금 퇴근해도 좋아.”

“네,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장 비서는 방을 빠져나왔다.

그 몇 초 사이에 장 비서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상상이 펼쳐졌다.

뭐, 예상 못 한 일은 아니었다.

이도준의 말 중에 반 정도는 맞았다.

돈을 보낸 것은 자신이 맞았다.

그런데 그 돈이 자기 돈인가?

그 중 한 푼이라도 자신을 위해 썼다면 순순히 순순히 죄를 인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 십 원 한 장도 자신을 위해 쓴 적이 없는 장 비서였다.

일이 터지자 비자금 계좌를 모두 뽑아서 장 비서도 모르는 해외 도피처에 입금시켜 놓은 것이 이도준이었다.

장 비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이건 외통수였다.

외통수도 지독한 외통수.

지나가다 둔 장기판이라면 뒤집기나 하지.

이건 판을 뒤집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도준의 얘기만 보면 벌써 판은 짜 놓은 상태였다.

그 판 위에 장기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장 비서의 운명인 것이다.

“아, 그게 내 돈이냐고!”

장 비서는 비상구 계단에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잠시 멍하니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한발만 더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였다.

장 비서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장비서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재빨리 단축 키를 눌렀다.

“최 과장?”

*    *    *

청담동의 어느 한식집.

미슐랭 별까지 박혀 있는 유명한 한식이었다.

하지만 장 비서는 전혀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지독한 독감에 걸린 것처럼 장 비서는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모든 음식이 밋밋하기만 했다. 마치 맹물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이도준의 제안 때문이었다.

사실 장경자에게 갈까도 고민해 봤었다.

하지만 장경자가 뭐라고 할까를 생각해 본 후 장 비서는 바로 포기했다.

이도준은 장경자의 손자이기도 했다.

손자 대신 직원 한 처넣겠다고 하는데, 할머니까 말릴까?

그런 경우는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었다.

뭐, 여의주라는 단어와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을 전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보를 전한다고 해도 자신이 이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말을 장경자가 믿어 줄지도 의문이다.

장경자 쪽에서는 기업에서 버림받은 비서가 칭얼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장 비서의 앞에는 지금 도훈이 있었다.

말이라도 한마디 해 줬으면 좋으련만, 도훈은 지금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잘 지냈냐는 인사 이후에 도훈은 조용히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식사를 마친 도훈이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놨다.

탁.

그러고는 조용히 장 비서를 바라봤다.

“장 비서님, 제가 이 숟가락을 왜 조심스럽게 놨는지 아십니까?”

장 비서는 도훈이 내려놓은 숟가락을 바라봤다.

도훈의 말대로 숟가락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깨끗하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 숟가락을 본 장 비서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숟가락은 일회용이 아닙니다. 저는 일회용을 싫어합니다. 뭐, 물론 환경오염 때문은 아닙니다.”

“그럼 왜 싫어하십니까?”

“한 번 쓰고 버려진다고 하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

장 비서는 할 말이 없었다.

마치 자신을 빗대어서 하는 얘기 같았다.

그때 도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저도 일회용품이 되긴 싫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장 비서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솔직하셔서 좋습니다. 사실 미라클 쪽 상황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도준이 형 쪽이죠. 그냥 넘기려고 하다가 생각해 보니 이번 일로 가장 피해 볼 사람이 한 명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뵙자고 했습니다.”

“네,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럼, 벌써 진행 중이군요. 도와드릴까요?”

“네?”

“제가 무슨 힘이 있겠냐는 표정이군요. 저 생각보다 아껴 둔 힘이 조금 있습니다.”

“…….”

장 비서는 물끄러미 도훈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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