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연예계 공략법-171화 (17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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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고개를 젓던 까를로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저게 생각이 안 나지?”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마이클.”

“저 배우들이 마지막에 먹었던 그 코리안 수프 말이야. 약간 뻘겋고 소시지가 들어가 있던 그 음식이 뭐지?”

까를로스의 말에 마이클이 TV 화면을 뒤로 돌렸다.

살짝 뒤로 돌리자 화면에서는 정여진과 이지유가 마주 앉아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커다란 냄비에 소시지와 햄이 혼란스럽게 엉켜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끌고, 라면 사리가 헤엄을 치듯 움직였다.

그 모습에 마이클도 침을 삼켰다.

“아, 부대찌개 말하는군.”

“아, 저걸 부대찌개라고 하나? 저걸 먹어 볼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에? 음식점도 다 문 닫아서 배달도 안 되는 데, 어떻게 저걸 먹어?”

“그럴 게 아니라 도훈에게 전화해 보자.”

“부대찌개 때문에 지금 전화를 하자고? 자고 있을 텐데.”

“노노, 한국은 지금 낮이잖아.”

까를로스가 미소를 짓자 마이클이 한숨을 내쉬었다.

“흠, 부대찌개 하나 가지고 그럴 게 아니라…….”

“일단 전화부터 하지. 마이클.”

“다른 용건을 꺼내야 도훈이 화를 안 낼 텐데.”

“무슨 용건을…….”

미간을 좁히던 까를로스가 손뼉을 쳤다.

짝.

순간 마이클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 깜짝 놀랐잖아.”

“좋은 생각이 났어. 지난번에 도훈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선물로 줬다고 했잖아?”

“그건 선물이 아니라 거래였어.”

“어쨌든! 나는 이번에 내 목소리를 선물로 주겠어.”

“무슨 선물?”

“내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피처링을 보강해 준다고 하면 안 될까?”

“네 매니저가 가만히 있겠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저기 나온 음식을 먹고 싶다고.”

까를로스는 마이클에게서 리모컨을 빼앗아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정지된 화면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마이클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대로 해.”

말을 마친 마이클은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    *    *

강시혁과 대화를 나누던 도훈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도훈은 상대를 확인한 후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 마이클! 그러지 않아도 지금 LA 오케스트라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네? 마이클이 아니면 누구…….”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통화를 이어 갔다.

“아, 깜짝 놀랐네요. 마이클이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어요…… 앗, 납치당한 거라고요? 하하.”

도훈이 웃자 옆에 있던 강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라도 영화 속 사운드트랙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도훈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표정을 풀었다.

강시혁은 이어지는 통화 내용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도훈이 난데없이 음식의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마이클이라면 LA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 지휘자의 핸드폰을 빌려 통화하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것도 이상한데, 지금 이어지는 대화는 계속 부대찌개를 만드는 얘기밖에는 없었다.

통화는 20분이 넘게 이어졌다.

툭.

도훈이 통화를 끝내자 강시혁이 물었다.

“대체 누군데 계속 음식 얘기만 해?”

“까를로스.”

“뭐, 세계 3대 테너라는 그 까를로스?”

“그 사람 말고 다른 까를로스가 어디 있겠어?”

“까를로스하고 20분이 넘게 통화했는데 부대찌개 얘기밖에 없다는 게 말이 돼?”

“처음에는 나도 조금 이상했어. 그런데 내가 보내 중 <초원의 집> 영상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갑자기 부대찌개가 떠올랐데.”

“허,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건 까를로스가 이번 초원의 집 음악에 참여하고 싶대.”

“헉,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건 안 된다고 했어.”

“뭐?”

강시혁의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살짝 떨리는 눈빛은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까를로스가 누구던가?

세계 3대 테너 중에서도 가장 대중성을 가지고 있는 가수였다.

그 사람이 사운드트랙에 참가한다는 것은 곧 블랙홀과의 협업을 뜻했다.

블랙홀 다섯의 목소리와 까를로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다면?

강시혁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그 기회를 걷어찼다고?

강시혁은 입을 벌린 채 도훈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도훈의 얼굴에서 월드컵 본선에서 홈런볼을 날렸던 어떤 선수가 겹쳐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 경기 중에 빈번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눈앞의 기회를 걷어차 버린다.

도훈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살짝 마음을 가라앉힌 강시혁이 물었다.

“대체 이유가 뭔데? 이 실장.”

호칭이 친구에서 실장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지금 날이 서 있다는 말이었다.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 사운드트랙 작업 다 끝났잖아. 칸에 최종본을 보내야 하는 마감일이 바로 다음 주야.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또 수정해?”

“허,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했지.”

“무슨 제안을 했는데?”

“블랙홀의 다음 곡을 부탁했어.”

“다음 곡이라니?”

“이번 활동 끝나자 녹음 들어가야지.”

“벌써 곡이 준비됐다고?”

“보이 그룹이 음원 가지고 운명이 결정 나는 건 아니지만…….”

도훈이 살짝 말끝을 흐렸다.

이건 도훈의 진심이었다.

보이 그룹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팬덤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것이 비즈니스적으로 맞았다.

음원보다는 대중들에게 그들이 캐릭터성을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맞았다.

“그건 알지만, 갑자기 다음 곡이라니? 그게 황당해서 물어본 거지. 그리고 까를로스가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도훈은 슬쩍 강시혁의 눈치를 봤다.

강시혁은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처럼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이번에 확실하게 인상을 남기려면 정점을 찍을 곡 하나 정도는 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정점을 찍을 곡이라니? 아윌비백이면 충분하잖아.”

“그건 해외용이고.”

“해외용이라니?”

“국내에서 탑을 찍기는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지난번에 고양미 작곡가가 마지막에 준 곡이 괜찮다고 했잖아. 네 번째 곡으로는 그걸 밀어 보자. 까를로스는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으니 블랙홀 일정만 맞추면 돼.”

“고민할 게 뭐가 있어. 까를로스만 내 앞에 데려오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까짓것 블랙홀 일정은 며칠이라도 뺄 수 있어.”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당연하지.”

강시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외용이니 국내용이니 하는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세계적인 테너와 같이 녹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    *    *

미라클 본사 대표실.

이세훈은 매의 눈으로 자료를 훑어봤다.

그가 보고 있는 자료에는 중간중간 형광펜으로 강조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세훈은 같은 내용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문서를 보면 볼수록 이세훈의 미간에는 깊은 골이 팼다.

이세훈은 보고 있던 서류를 구겼다.

그 모습에 비서가 황급하게 말렸다.

“대표님 일단 진정을…….”

“장 비서, 지금 이게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자네는 알고 있었나?”

“저는…….”

“내가 자네를 도준이한테 붙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녀석의 옆에서 줄을 서라고 한 게 아니야.”

말을 끊은 이세훈이 다 식은 커피로 입을 축였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평상시로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에 장 비서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삼켰다.

순간 이세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녀석을 도와주라고 한 것은 샛길로 빠질 때 따끔하게 충고하라는 의미도 있었네.”

“…….”

장 비서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는 겨우 표정을 숨겼다.

완벽하게 이도준의 사람이 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은 이세훈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기 같은 일개 직원이 로열패밀리에게 충고할 위치가 되나!

만약 충고했다면? 대표실로 불려 오기 전에 미라클에서 쫓겨났을 것이 분명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껏 이도준에게 JK유통이 전권을 주고 맡긴 것이 이세훈 대표였다.

장 비서는 이세훈이 왜 이러는지를 알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장경자 회장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분이 달고나의 조각도 아니고, 심심하면 지분을 조각내서 유레카의 대표인 이도훈에게 던져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녔다.

재미있는 것은 이세훈에 대한 장경자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이세훈은 그 이유를 자기 아들인 이도준에게서 찾았다.

이도준과 이도훈의 대립은 어찌 보면 집안싸움이었다.

문제는 그 싸움을 거는 것은 항상 이도준 쪽이라는 점이었다.

싸움을 걸어 놓고 항상 패배하는 자식을 보는 아버지의 입장은 씁쓸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안쓰럽게도 했지만, 지금은 장경자의 시선마저 곱지 않았다.

장 비서가 보기에도 이 싸움은 명분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실리도 없었다.

지금 이세훈이 살펴보던 서류는 SW엔터와 문동훈 등에 들어간 자금의 내역이었다.

장 비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이세훈의 눈치를 살폈다.

아마도 몰랐을 리가 없었다.

미라클의 곳간 열쇠는 이세훈이 쥐고 있었다.

비자금이라고는 하지만, 이도준이 그 많은 자금을 퍼부었다는 것은 이세훈이 묵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듯 장 비서를 이곳에 세워 놓고 두 시간째 닦달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 모든 모습이 장경자에게 보고될 것이었다.

장 비서는 지금 이세훈의 행동 하나하나가 연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세훈이 손짓하며 말했다.

“장 비서는 그만 나가 봐.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비서실 통하지 말고 내게 직접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나가는 길에 오정수 실장 들어오라고 하고.”

이세훈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장 비서는 재빨리 표정을 숨겼다.

“네, 알겠습니다.”

장 비서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대표실 앞에서 대기하던 이세훈의 비서 오정수 실장에게 말을 전한 후 잠시 비서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혹시나 몰라서 대표실에서 나오는 대화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장 비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모든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이세훈이라면 자기 아들 이도준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고도 남았다.

그때 대표실에서 몇 마디가 흘러나왔다.

―오 비서, 여의…….

장 비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비서실의 직원 하나가 장 비서를 쏘아봤다.

“누구 기다리시나요?”

“아닙니다. 오정수 실장님께 물어볼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오죠.”

살짝 고개를 숙인 장 비서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대표실과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대표실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장 비서는 이세훈의 표정에서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큰 인수 합병 혹은 정적의 목을 칠 때면 이세훈은 조금 전처럼 묘한 웃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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